산행기(2000년 부터)

1653 인제 백담사~봉정암1244m~오세암~백담사 2025.10.15.수요일 흐린후 보슬비

산야55 2025. 10. 17. 18:43

인제 백담사~봉정암1244m~오세암~백담사

2025.10.15.수요일 흐린후 보슬비

참석인원 : 마나님이랑 둘이서

 

청주 집 02:55 호법분기점 03:45 문막휴게소 04:10 ~04:25 홍천톨게이트(통행료 8300) 04:53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 06:00 ~06:55(아침식사) - 셔틀버스 2500백담사 주차장(465m) 07:10 ~07:15 탐방지원센타(0.677km, 475m) 07:23 계곡 좌측 철판길 돌길 설악 10-08 표지목 07:33 데크길 흙길 길골 건너는 철다리(1.6km, 485m) 07:40 돌길, 데크길, 돌길, 데크길, 돌길 철판다리 07:47 돌길- 목교 07:50 돌길,흙길 - 백담사2.7, 대청봉10.2km이정표(2.7km, 500m) 07:55 곰골 철다리- 13번 표지목 -철판다리(4.1km, 530m) 08:15 목교 08:17 14번 표지목 영시암(4.6km, 540m) 08:20 오르막 데크계단 오세암 삼거리 이정표(오세암2.5km, 봉정암7.1km, 4.8km, 580m) 08:25 잠시 내려서서 철판다리, 돌길,데크길 돌길, 철판길, 널찍한길 돌길, 목교, 돌길, 목교 수렴동대피소(5.9km, 580m) 08:40 데크계단, 데크길 연속 설악10-18번 표지목 08:49 -오르막 철계단(6.4km, 600m) 08:50 올라서고 내려서는 데크길, 돌길 오르막 계단, 냇가바위옆 데크길, 오르막 철주길 08:56 데크길 오르막 돌길 냇가옆 데크길 20번표지목 09:04 -데크길, 돌길 연속 설악10-21번 표지목(7.6km, 688m) 09:11 철판길, 데크길 대청봉5.5km이정표(우측 백운계곡 입구, 8.0km, 690m) 09:18 22번 표지목 09:22 목교 건너고(8.2km, 700m) 09:23 목교09:24 이어서 오르막 계단,내리막계단, 돌길 오르막계단(8.7km) 09:34 오르막데크계단 폭포앞 목교(, 8.9km, 770m) 09:42 폭포옆 오르막 철계단 목교() - 대청봉4.5km 이정표(9.2km, 800m) 09:49 잠시후 목교() - 오르막 돌길 오르막계단, 데크 오르막 철계단 쌍용폭포 아래 철다리() - 오르막 철계단, 데크계단 쌍용폭포 전망대(9.6km, 865m) 10:03 오르막데크계단 다리(), 봉정암1.6km 이정표(9.7km, 875m) 10:06 데크길 철다리() 10:10 오르막 돌길 - 오르막 데크계단,데크길 내리막 철계단,철다리(, 10.1km, 935m) 10:16 잠시 데크길, 돌길 - 구급함, 쉼터(10.2km, 940m) 10:18 데크, 오르막 돌길 목교() 10:20 목교(, 10.7km, 1010m) 10:28 목교(, 10.9km, 1030m) 10:33 오르막 데크계단,돌길 해탈고개이정표(봉정암 0.5km, 11.0km, 1050m) 10:36 ~10:46 오르막돌길, 철주길에 짧막한 데크계단2고갯마루(11.3km, 1150m) 10:59 살짝 내러선후 오르막돌길,데크계단, 돌계단 봉정암(11.9km, 1200m) 11:10~11:15(중식, 쌀밥+미역국+단무지) - 오르막 돌계단 사리탑(12.1km, 1244m) 11:33 사자바위 옆 고갯마루 오세암 4.0km 이정표 11:37 내리막 철계단, 데크계단1.2 설악13-07표지목(12.6km, 1045m) 11:59 짧막한 널빤지다리1.2 오세암3.2km이정표, 쉼터(13.1km, 950m) 12:15 내리막데크계단 12:48 짧막한 널빤지다리1.2 가야동계곡 다리(13.9km, 835m) 12:37 데크길 - 오세암 2.5km 이정표 12:39 오르막 길다란 데크계단, 육산길, 침목계단 고갯마루13-04지점 표지목 (14.5km, 935m) 13:03 내리막 계단 오르막 데크계단 고갯마루(15.1km, 915m) 13:21 설악13-03번 표지목(15.3km, 885m) 13:28 오르고 내려서는 데크계단 13:35 오르막 데크계단 13-02번 고갯마루 이정표(15.8km, 860m) 13:40 고갯마루(16.3km, 845m) 13:58 잠시후 내리막 침목계단 오르막길, 오르막데크계단, 오르막길 고갯마루(17.0km, 880m) 14:19 서서히 내려서는 길 다리 데크길 오세암(17.4km, 815m) 14:30 ~14:37 데크길, 오르막길 고갯마루(18.0km, 855m) 14:48 ~14:58 내리막길 영시암 1.9km 이정표(18.4km, 765m) 15:07 오르막길 언덕빼기(18.6km, 765m) 15:12 언덕빼기 영시암 1.4km 이정표(설악02-12, 18.9km, 750m) 15:17 내리막 침목계단 15:24 영시암 0.9km 이정표(19.4km, 710m) 14:27 내리막 돌길, 물건너고, 흙길 널빤지다리1.2.3 데크길 영시암 0.4km이정표(20.0km, 635m) 15:38 내리막 데크계단1.2.3, 데크길 데크다리(20.5km, 575m) 15:46 데크길- 계단 삼거리 이정표(20.7km, 580m) 15:49 영시암(21.0km, 540m) 15:54 철다리 15:59 곰골 철다리, 이정표(22.9km, 500m) 16:21 돌길 다리 16:26 철판다리(23.5km, 500m) 16:29 데크길, 돌길, 데크길 좌측 귀때기골 입구(23.9km, 490m) 16:35 길골 철다리(24.1km, 485m) 16:37 흙길, 데크길, 돌길 계곡옆 철판길 16:45 탐방센타(25.2km, 475m) 16:54 백담사 주차장(26.0km, 465m) 17:03 ~17:15 셔틀버스2500용대리 백담사 주차장(주차료 8000) 17:30~18:00(황태국밥 2인분 26000) - 홍천 톨게이트 19:01 만종분기점 19:27 문막휴게소19:33~09:38 호법분기점20:03 서청주 톨게이트(8300) 20:48 청주 집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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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담사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690 033-462-6969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이다. 647년(진덕여왕1)자장이 창건하였는데, 처음에는 한계령 부근의 한계리에 절을 세우고 한계사라고 하였다. 690년(신문왕10년)에 불타버려 719년(성덕왕18)에 재건하였는데,《백담사사적기》에 이때의 중건과 관련된 전설이 수록되어 있다. 낭천현(지금의 화천군)에 비금사가 있었는데 주위의 산에 짐승이 많아 사냥꾼들이 많이 찾아들었다. 이 때문에 산수가 매우 부정해졌는데 비금사 승려들은 그것도 모른 채 샘물을 길어 부처님에게 공양하였다. 더러움을 싫어한 산신령은 하룻밤 사이에 절을 설악산 대승폭포 아래의 옛 한계사터로 옮겼다. 승려와 과객들이 아침에 깨어나 보니 비금사는 틀림없었지만 기암괴석이 좌우에 늘어서고 앞뒤에 쏟아지는 폭포가 있는 산이 이전과 달라 그 까닭을 몰라 할 때 갑자기 관음청조가 날아가면서“낭천의 비금사를 옛 한계사터로 옮겼노라”고 일러주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도 이 전설은 그대로 전해지며, 이 지방 사람들은 춘천시 부근의 절구골, 한계리의 청동골 등의 지명이 절을 옮길 때 청동화로와 절구를 떨어뜨려 생겨난 것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구전으로 미루어 보면 한계사를 중창할 때 비금사를 옮겨간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785년(원성왕1)에 다시 불탔으며, 790년에 한계사터 아래 30리 지점으로 옮겨서 중건하고 절 이름을 운흥사라고 하였다. 그러나984년(성종3)에 다시 불타버려 운흥사지 북쪽60리쯤 되는 곳으로 이건하고 987년 심원사로 개명하였다. 이때부터 조선 초기까지 전승 되다가1432년 4번째 화재로 다시 폐허가 되었다. 그뒤 2년 만에 심원사지 아래 30리쯤 되는 곳에 법당과 요사채를 세우고 선구사라 하였으나 1443년에 불타버렸고, 1447년 옛 터의 서쪽 1리쯤 되는 곳에 다시 절을 세워 영축사라 하였다. 그러나 1455년6번째 화재로 불에타고 이듬해 옛 절터의 상류 20리 지점으로 옮겨 중건하여 백담사라 하였다. 1772년(영조51) 다시 불타 버리자 1775년 최붕,태현,태수 등이 초암을 짓고 6년 동안 머물면서 법당과 향각 등의 건물을 중건하고 심원사라 하였다가 1783년(정조7년)에 절 이름을 다시 백담사로 바꾸었다. 근대에 이르러 한용운이 머물면서《불교유신론》,《십현담주해》,《님의 침묵》을 집필하였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현존하는 부속암자로는 봉정암,오세암,원명암 등이 있다.백과사전

 

봉정암[鳳頂庵]

강원 인제군 북면 설악산(雪嶽山:1,708m)소청봉 북서쪽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의 말사인 백담사의 부속암자이다. 대표적 불교성지인 오대적멸보궁(五大寂滅寶宮)가운데 하나로 불교도들의 순례지로서 유명하다. 대청봉 산마루 가까이에 있는데, 해발고도1,244m지점에 있어 백담사와 오세암을 거쳐 봉정암에 이르기 위한 산행은 매우 힘겹다. 봉황이 알을 품은 듯한 형국의 산세에 정좌하고 있는 봉정암은 거대한 바위를 중심으로 가섭봉·아난봉·기린봉·할미봉·독성봉·나한봉·산신봉이 감싸고 있다. 현존하는 전당은 법당과 요사뿐이다. 법당 옆 바위 위에는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된 봉정암석가사리탑이 있다. 고려시대 양식을 따른 이오층석탑은 부처의 뇌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하여‘불뇌보탑’이라고도 부른다. 다른 사찰의 여느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고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바로 오층의 몸체를 얹었다. 이 자연암석에 연꽃이 조각되어 있는데, 1면에 4엽씩 16엽이 탑을 포개고 있어 부처가 정좌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맨 위에는 연꽃인 듯한 원뿔형 보주가 높이 솟아 있다. 643년(신라 선덕여왕12)자장(慈藏)이 중국 당(唐)나라에서 가져온 부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봉안하여 창건하였다. 원효·보조 등 여러 고승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677년(문무왕17)원효가, 1188년(고려 명종18)지눌이 중건한 것을 비롯하여 6·25전쟁 이전까지 7차례에 걸쳐 중건하였다. 6·25전쟁 때 화재로 자칫하면 명맥이 끊어질 뻔하였다.

 

봉정암 석가사리탑[鳳頂庵石迦舍利塔]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백담사의 암자 봉정암에 있는 석탑.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산76

고려시대 석탑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1호

1971년12월17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31호로 지정되었다. 설악산 대청봉아래 봉정암에 있는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석탑이다. 해발고도1224m고지에 있는 봉정암은 백담사에 딸린 암자로, 신라 선덕여왕(善德女王)때 자장율사(慈藏律師)가 당나라에 건너가 도선(道宣)율사로부터 수계한 후 가사와 발우 및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받아가지고 돌아와 동왕12년(643)이 탑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하였다고 한다. 봉정암이 한국5대적멸보궁(寂滅寶宮)의 하나로 불리는 연유이다.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을 모심으로써 부처님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음을 상징하는 곳이다.

석탑은 봉정암 오른쪽 암벽 뒤에 세워져 있다. 거대한 암벽을 지대(地臺)겸 기단으로 삼아 복련(覆蓮)받침 위에 초층탑신을 세운5층 석탑으로, 옥개석과 탑신석을 각각1매석으로 쌓아올린 일반형이다. 2층 이상의 탑신의 높이는 비슷하면서 탑신과 옥개의 폭이4/5정도의 비율로 줄어들어 균형을 이룬다. 옥개받침은 3단이고 낙수면과 옥개받침의 두께가 비슷하며 옥개석은 두터운 편이다. 자장이 세웠다고 하지만 이러한 각부의 작풍(作風)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정된다. 탑의 모양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정교한 균형비가 돋보인다.[출처]봉정암 석가사리탑[鳳頂庵石迦舍利塔]|네이버 백과사전

 

오세암[五歲庵]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22-33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 설악산 만경대(萬景臺)에 있는 절.

 

역사적 변천

643년(선덕여왕12)에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 하였으며, 1548년(명종3)에 보우(普雨)가 중건하였다. 이 암자를 오세암이라고 한 것은1643년(인조21)에 설정(雪淨)이 중건한 다음부터이며, 유명한 관음영험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설정은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는데, 하루는 월동 준비 관계로 양양의 물치 장터로 떠나게 되었다. 이틀 동안 혼자 있을 네 살짜리 조카를 위해서 며칠 먹을 밥을 지어 놓고는, “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법당 안의 관세음보살상)를 관세음보살,관세음보살 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다.”고 하는 말을 남기고 절을 떠났다.

장을 본 뒤 신흥사까지 왔는데 밤새 폭설이 내려 키가 넘도록 눈이 쌓였으므로 혼자 속을 태우다가 이듬해3월에 겨우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법당 안에서 목탁소리가 은은히 들려 달려가 보니,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가 목탁을 치면서 가늘게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었고, 방 안은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아이는 관세음보살이 밥을 주고 같이 자고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다섯 살의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관음암을 오세암으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그 뒤 1888년(고종25)백하화상(白下和尙)이 중건하였다. 당시 법당을 2층으로 짓고 박달나무로 기둥을 세웠는데, 매끄럽기가 부드러운 명주옷으로 문질러도 결이 일어나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내용

이 절은 수선도량(修禪道場)인 동시에 유명한 기도도량으로 손꼽힌다. 아늑한 맛으로는 설악산 내 사찰들 중에서 제일이며, 많은 고승들이 주석했던 곳이기도 하다.

김시습(金時習)이 승려가 된 뒤 머물렀던 곳이고, 조선 중기 불교의 부흥을 꾀하다 순교한 보우가 수도하였으며, 근대의 고승이자 시인이요 독립운동가였던 한용운(韓龍雲)이 머물렀던 곳이다. 특히,김시습과 한용운이 이곳에 머물면서『십현담(十玄談)』의 주석서를 쓴 것은 매우 유명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법당과 승방ㆍ객사,새로 지은 산신각이 있고, 옛 절터가 근처에 있어 석물(石物)등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 약2㎞떨어진 곳에는 마등령이 있다.

 

설악산 오세암과 만해 한용운

근대사에 만해 한용운스님 만큼 뚜렷한 족적을 남기신 분도 드물다. 스님께서는 1879년 충남 홍성군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 나셨으니 속명은 유천이며 호적에 등재인 이름은 정옥이다. 6세때에 향리의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하였으며 1894년에는 16세 때에 갑오개혁과 동학혁명이 일어나자 18세 때인 1896년에 동학혁명에 가담한 후 인생에 회의를 느끼고 선각자를 찾아 다니며 전국을 주유하기 시작하였다.

스님은 설악산 백담사에서 김연곡 스님을 은사로 김영제스님을 계사로 하여 득도를 하여 봉완이라는 법명을 수지하게 된다. 용운이라는 당호는1907년 건봉사에서 만화선사에게 전법을 하여 받은 당호이다. 이때 스님의 속납이 29세이며 1913년 35세때에[조선불교월보]에[승려의단결] [조선불교유신론]의 일부 원고를 기고하면서부터 만해라는 자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스님의 정확한 표현은 용운 봉완이다.

스님의 연보는 일일이 다 설명하기 보다는 오세암을 위주로 하여 살펴 보고자 한다. 1917년 스님은 오세암에서 화두를 참구하며 정진하던 중 갑자기 바람소리에 무엇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의심하던 마음이 몰록 풀리면서 오도를 하였다.

 

男兒到處是故鄕 幾人長在客愁中 一聲喝破三千界 雪裡挑花片片紅

남아도처시고향 기인장재객수중 일성갈파삼천계 설리도화편편홍

 

사나이 가는 곳마다 고향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그네 시름을 겪고 있는가?

한마디 큰소리를 질러 삼천대천세계를 뒤흔드니 눈 속에 복사꽃이 곱게 물들었네.

 

그때가 12월3일 밤10경이라고 기록에 전하고 있다.

1919년3월1일 파고다 공원에서 민족대표33인 가운데 불교측 대표로 스님과 용성진종스님이 참가를 하였다.

3.1운동 주도자로 옥중에 투옥되었으나 스님은 옥중에서도3대원칙을 세웠다.

1.변호사를 대지 말 것

2.사식을 넣치 말 것

3.보석을 신청하지 말 것

이것만 보더라도 스님의 기개가 절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투옥하여 3년간 옥고를 치르고 난 후 1926년 오세암에서 십현담주해를 6월7일 탈고 하였으며 8월29일에는 스님의 대표 시인“님의침묵”을 발표 하였다.

십현담은 중국 당나라 선승인 동안상찰이 조동종의 가풍과 수행자의 실천 지침서 등을 칠현율시 형식으로 노래한 10수의 계송을 엮은 책을 말한다. 매월당 김시습도 십현담요해를 발표 하였다. 오세암은 매월당 김시습,허응 보우대사,만해 한용운스님등이 수행하였던 도량이다. 위에서 살펴 보았듯이 오세암하고 십현담하고는 아주 인연이 깊은 사찰이다. 김시습 한용운 두분 다 오세암에서 십현담에 관해 주해를 냈으니 말이다.

암울한 이땅에 등불이 되셨던 스님은 1944년6월29일 66세의 일기로 세연을 다하여 심우장에서 입적하여 미아리 화장터에서 화장을 하고 유골을 수습하여 망우리 공동묘지에 안장을 하였다.

 

님의침묵

님은 갔습니다.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어 갔습니다.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 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 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걷잡을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때에 떠날 것을 염려 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오세암 관음도량이다. 그리고 정토염불도량이다. 강원도 인제 북면 용대2리에 있는 오세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신흥사 말사이며 백담사의 산내암자이다.

오세암의 전설~~<부처가 된5세 동자>

...<한 스님이 5살 먹은 어린 소년과 이 곳 암자에 머물고 계셨다. 눈이 많이 내린 어느 겨울날 스님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속초로 길을 떠나셨다. 이 때 암자에는 5일 분의 식량이 남아 있었으며, 스님께서는“내가 만일 눈길에 막혀 5일만에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식량을 아껴 먹으면서 꼭 기다리라고”소년에게 말씀하셨다. 많은 눈이 내린 탓에 암자 주위의 동물들도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암자를 찾았다. 소년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식량을 동물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소년은 굶주림에 지친 상태에서 끊임없이 기도를 하였다.한 달 만에야 눈길은 뚫렸고 스님이 도착하셨다. 스님이 암자 문을 여니“스님 이제 오셨어요?”하는 소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한다. 이미 소년은 숨진 상태였으며 생불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

(조선 인조21년(AD1643)에는 설정대사(雪淨大師)가 다시 관음현신을 목격하고 중창불사를 편 후 절의 이름을 오세암이라 고쳤다. 이 과정에 너무나 유명한 오세동자의 전설이 생겨났다.

 

설정대사는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절에 데려다 키우고 있었다. 대사는 어느 해 초 겨울날 월동준비를 하기 위해 마등령 넘어 양양의 물치장터로 가게 되었다.어린 조카를 혼자 두고 가기가 마음에 걸려 며칠분의 밥을 지어 두고 법당안의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며“이 밥을 먹고 저 어머니에게‘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하고 부르면 잘 보살펴 주실 것”이라고 신신 당부를 한 후 무거운 발길을 옮겨 양양으로 떠났다

설정대사가 양양에서 장을 본 후 외설악 신흥사(新興寺)에 왔을 때 갑자기 폭설이 내리기 시작해 산길이 막히고 말았다. 대사는 조카가 걱정이 되어 조바심을 태우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신흥사에서 그해 겨울을 넘길 수밖에 없었다.

이듬해 이른 봄 설정대사는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암자로 달려왔다. 그런데 경내에 다달았을 때 뜻밖에도 법당안에서 은은한 목탁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대사는 황급히 법당 문을 열어보았다.그런데 거기에는 굶어 죽은줄만 알았던 어린 조카가 목탁을 치면서 나지막한 목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고 있었고, 방안에는 훈훈한 기운과 함께 향기가 감돌고 있었다.

대사는 어린 조카를 와락 끌어안고 어떻게 지냈느냐고 다그쳐 물었더니 관세음보살을 가리키며"저 어머니가 와서 밥도 먹여주고 잠도 함께 자고 놀아도 주었어요"하는 것이었다. 그 때 홀연히 한 백의의 젊은 여인(白衣女人)이 관음봉으로부터 내려와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부처가 되었다(成佛)는 기별을 주고 한 마리 푸른 새로 변하여 날아가 버렸다.

설정대사는 그 순간 관세음보살의 가피(加被)에 감격하고 다섯 살의 어린아이가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으로 살아나게 된 사실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절을 중건하고 이름을 오세암으로 고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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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2:55

올 가을날씨는 거의 매일같이 비가 와서 산행날짜 잡기가 어렵다. 원래는 화요일 백담사에서 봉정암을 가려고 한것인대 역시나 비가 와서 하루 연기하여 수요일 가기로 한다. 인제 북면의 날씨는 구름을 하루종일 끼지만 비는 오지않는다고 나온다. 일찍이 잠을 자고 일어나니 22시 밖에 안됐다. 자다깨다 하며 자는둥 마는둥 하며 밤잠을 설치고 2시에 일어나 산행준비를 마치고 집에서 3시가 조금 못 된 02:55분 나선다.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 06:00 ~06:55(아침식사)

집을 출발하여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하여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비가 온 끝이라 도로가 적어 있다. 50여분 진행하여 호법분기점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간혹 보슬비가 오는 곳도 있고 안개가 많이 낀 곳도 있다.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25분가량 진행하여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다. 연료도 가득넣고(44000) 다시 진행하여 만종분기점에서 북쪽으로 중앙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달리면 25분정도면 홍천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이후 국도를 따라 진행하여 두촌을 지나고 신남 인제를 지난후 원통에서 잠시 더 올라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 십이선녀탕입구를 지나고 좀 더 진행하여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에 닿는다. 벌써 여러대가 주차되어 있다.

 

백담사 주차장(465m) 07:10 ~07:15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오면서 점심으로 준비한 햇반을 놓고 온 것이 생각나 위쪽 편의점에서 햇반2(6600)에 사서 배낭에 넣고 준비해간 아침밥으로 식사를 하고 짐정리하고 나섰는대 셔틀버스 정류장에는 긴 줄이 서 있다. 첫 버스는 탈수가 없겠다. 첫 버스는 7시에 출발하는대 645분경 출발하고 뒤이어 우리가 탄 2번째 버스는 0655분 출발을 한다. 이렇게 2대가 떠나니 남은 사람을 6~7명 밖에 안 보인다. 이들은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셔틀버스는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한후 줄을 선후 차례대로 승차를 하는 방식이다. 요금은 1인 편도 2500원이다. 셔틀버스가 출발을 한후 차단기를 가기 전 버섯을 따라가는 것으로 보이는 한분을 태웠는대 기사님이 좋은일 하는구나 생각하고 말면될 것을 어느 한 분이 나서서 막 뭐라한다. 어쨌든 이른아침에 좋은 소리도 아니고 기분이 서로 상하는 소리를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백담사는 오래전에는 걸어서도 3번이나 올라갔으며 버스를 타고도 2번쯤 올라갔었다. 그후 큰 수해가 나서 통행이 금지 되었다가 수해복구가 완료되고 지금은 데크길도 만들었는데 위쪽 일부분은 아직 데크길이 연결이 되지 않아 대략 5km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버스는 대략 15분후 백담사 앞 주차장에 닿는다. 이곳 주차장에는 승용차도 많이 올라와 있는대 밤에 올라온 것인지는 모르겠다.

 

영시암(4.6km, 540m) 08:20

백담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마나님 무릅보호대 하고 스틱조정한후 0715분 산행을 시작한다. 여기 주차장이 대략 해발465m이니 봉정암까지는 고도 800m정도를 올라야 한다. 거리는 약 11km. 이제 널찍한 길을 따라 진행하면 10분이 조금 못되어서 탐방지원센타에 닿는다. 여기서 잠시 질컥거리를 길을 따라 들어가고 이후 인위적으로 깔아놓은 돌길을 따라 가면 계곡 옆으로 설치한 철판길을 따라 가고 돌길을 따라 가면 설악 10-08지점 표지목이 나온다. 해발 504m가 적혀 있다. 이후 데크길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라 가면 좌측으로 길골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건너는 철다리에 닿는다. 길골을 따라 올라가면 그 끝은 저항령이다. 오래전 저항령에서 길골을 따라 이곳까지 내려온적이 한번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이후 진행을 하면 돌길 데크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진행하고 철판다리를 건넌다. 다시 돌길을 따라 진행하고 목교를 건넌후 돌길 걷기좋은 길도 지나면 백담사 2.7km, 대청봉 10.2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오고 바로 앞쪽으로 곰골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건너는 철다리를 건넌다. 곰골도 오래전 이곳에서부터 올라서 마등령까지 간적이 한번 있다. 이후 2분여 지나면 작은 널빤지 목교를 건너고 좌측으로 설봉대(雪奉臺)라고 쓴 표지석 앞쪽으로 10-14번 표지목이 있다. 이후 조금더 가면 영시암에 닿는다. 영시암까지 4.6km가 나온다.

영시암

영시암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설악산에 위치한 암자로, 조선 후기 유학자이자 시인인 삼연 김창흡이 1709년 창건한 곳이다.

영시암의 역사와 의미

1.김창흡은 부친의 죽음과 정치적 혼란을 겪은 뒤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로 영시암(永矢庵)’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영시는 화살이 활을 떠나면 돌아오지 않듯, 자신도 다시는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뜻을 담고 있다.
2.영시암은 6년간 김창흡이 머물렀으나, 이후 폐허로 남아 있다가 1691년 오세암의 주지 설정이 중건하였다.

3.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으로 소실된 전각은 1992~1994년 백담사 주지 설봉도윤이 중창하였다.”

 

수렴동대피소(5.9km, 580m) 08:40

백담사에서 영시암까지는 거의 평탄한길로 이어지기 때문에 시간이 그리 많이 걸리지 않는 코스다. 영시암에서 다시 진행을하면 고목나무사이로 천천히 오르기 시작하여 길게 이어지는 데크계단을 따라 오르면 오세암과 봉정암이 갈리는 삼거리 이정표에 닿는다. 작은 초소가 있는 곳이다. 오세암 2.7km, 봉정암 7.1km가 적혀 있다. 봉정암 방향으로 잠시 내려서면 작은 물길을 건너는 철판다리를 건너고 이후 돌길과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고 다시 돌길과 철판길 널찍한 좋은길을 지난후 수렴동 대피소가 가까워지며 돌길을 따라 진행하여 가야동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건너는 목교를 2번에 걸쳐서 잠시 가면 수렴동대피소에 닿는다. 영시암에서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는 곳이다. 오래전 이곳에서부터 용아장성을 간다고 밤 0시부터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걸어서 올라온후 이 길을 따라 이곳까지 와서 용아장성으로 진입하던 곳이다. 2번은 무사히 통과를 했지만 한번은 살금살금 기어가다시피 했어도 소리를 듣고 나온 직원한테 걸려서 안간다하고 조금 위쪽에서 돌아 올라간적도 있는 기억에 많이 남는 장소이다.

수렴동 대피소는 2008년도 12월까지는 민간에 임대해오다가 새롭게 단장하고 지금의 대피소로 깔끔하게 단장을 하고 국립공원에서 직접운영하고 있다.

예약은 국립공원관리공단 용대리 사무소 010-2599-1715 / 033-801-0900

주중 12000원 주말 성수기 13000원 정원 16명이다.

 

대청봉5.5km이정표(우측 백운계곡 입구, 8.0km, 690m) 09:18

수렴동대피소에서 데크계단을 올라서고 이후 데크길을 따라 이후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데크계단, 데크길을 따라 가면 설악 10-18번 표지목이 나온다. 해발595m가 적혀있다. 표지목에서 바로 앞쪽으로 가파르게 오르는 철계단을 따라 올라서고 다시 올라서고 내려서는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면 계곡 건너편으로 모처럼 바위봉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이제 파란 하늘도 보인다. 이후 돌길을 따라 진행하면 오르막 계단이 다시 나온다. 다시 한동안 진행한후 가파르게 오르는 철주길이 나온다. 짤막하지만 길이 좋지를 않다. 이후 잠시 내려서서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면 냇가 바위옆으로 이어지는 데크길을 따라 가면 냇가 우측으로 작은폭포와 비스듬히 바위를 따라 흐르는 물줄기도 보인후 이제 서서히 오르는 돌길을 따라 진행하여 20번 표지목이 나온다. 여기서 데크길과 돌길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진행하면 설악 10-21번 표지목이 나오고 해발 688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다시 철판길을 따라 가고 길게 이어지는 데크길을 따라 가면 대청봉5.5km, 백담사 7.4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 앞쪽으로 보이는 물줄기가 백운계곡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로 한계령에서 올라서서 주능선 삼거리에 닿게 되면 좌측으로 조금 진행한후 비등산로를 따라 내려오게 되면 이곳에 닿는다. 상당히 험한길이니 경험자를 대동하는 것이 좋다.

 

쌍용폭포 전망대(9.6km, 865m) 10:03

백운계곡 입구 이정표에서 다시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고 돌길을 따라 진행하면 10-22번 표지목에 닿는다. 해발715m가 적혀 있다. 아직도 고도는 그리 높이 올라오지는 못했다. 이후 목교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넌다. 잠시후 다시 우측에서 좌측으로 목교를 건넌후 이어지는 오르막 계단과 내리막 계단을 따라 간후 돌길을 따라 한동안 진행하면 오르막계단이 나오고 잠시 더 진행하여 오르막 데크계단을 올라서면 폭포앞 목교에 닿는다. 용손폭포, 관음폭포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여기 목교에서 보는 경치가 좋다. 오면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는 파란하늘과 톱날처럼 날카롭게 이어지는 용아장성의 모습도 볼수 있다. 이쯤 부터는 단풍도 곱게 물들어 보기 좋다. 단풍은 현재 고도 800m정도까지 내려온 것 같다. 이제 폭포 우측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을 따라 오르고 다시 우측에서 좌측으로 목교를 건너면 대청봉 4.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오고 잠시후 목교를 건너고 오르막 돌길을 따라 올라서면 오르막 계단과 데크길을 따라 진행한다. 다시 철계단을 오르고 쌍용폭포 아래쪽 철다리를 건너 좌측편으로 건넌후 오르막 철계단과 데크계단을 따라 오르면 이윽고 쌍용폭포 전망대에 닿는다. 보통 쌍폭이라 하고 두 마리 용이 승천하는 형상을 닮아서 붙여진 이름으로 오른쪽은 끝청쪽 쌍폭골에서 내려오는 물길이며 왼쪽은 중청,봉정암쪽인 청봉골에서 내려오는 물길이 만나는 곳이다. 우측으로 보이는 대장부처럼 힘차게 흘러 내려서 남폭이라 하고 좌측은 여인네의 치맛자락에서 떨어지는 듯하다해서 여폭이라 한다.

 

해탈고개이정표(봉정암 0.5km, 11.0km, 1050m) 10:36 ~10:46

쌍용폭포 전망대에서 곧장 오르막 데크계단을 따라 오른다. 다리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고 봉정암1.6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데크길을 따라 가고 철다리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고 이후 오르막 돌길을 따라 숨차게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막 데크계단을 오르고 데크길을 따라 진행한후 잠시 내려서는 철계단을 지나 곧장 철다리를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넌다. 주변으로 단풍은 절정에 이르러 보기 좋고 간혹 보이는 용아장성의 암봉들과 바위벽으로 이어지는 곳곳에 물든 단풍이 너무곱다. 오늘 이것을 보기 위해 온것이지만 예전에 올때만큰 올해도 단풍이 곱게 물들었다. 이제 잠시 데크길 돌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면 구급함과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방향이 꺽이며 올라서고 데크길 오르막 돌길을 따라 진행한다. 단풍 때문에 힘이 드는 줄 모르고 오르지만 이제 고도도 상당히 높이 올라온 것 같다. 목교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고 8분쯤 진행한후 다시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면 5분이 지나 좌측에서 우측으로 목교를 또다시 건너선다. 용아장성의 뾰족암봉과 붉고 노랗게 물든 단풍이 어우러져 한폭의 수채화같은 곳이다. 오늘은 오르는 분들은 몇 되지 않은 것 같은대 일찍이 내려오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마지막 목교에서 다시 오르막 데크계단을 오르고 돌길을 따라 오르면 해탈고개라 적힌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봉정암 0.5km가 적혀 있으며 해발 1050m라 되어 있다. 이곳에서 잠시 간식을 들고 쉬어 간다.

 

봉정암(11.9km, 1200m) 11:10~11:15(중식, 쌀밥+미역국+단무지)

해탈고개 이정표에서 잠시 쉬고 오르기 시작한다. 오르막 돌길에 철주가 설치된 길로 군데군데 2번에 걸쳐 짧막한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이렇게 오르면 고갯마루에 닿는다. 이제 구름이 몰려와 바로 앞쪽 바위도 잘 보이지 않는다. 우짠일인가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고 했는대 비가 올것만 같다. 고갯마루에서 살며시 내려선후 오르막 돌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면 주변은 곱게 물든 단풍으로 덥였다. 날씨가 화창하고 좋았으며 더욱 빛나는 단풍을 보았을것인대 아깝다. 갑자기 물려든 구름이 전 산을 감쌌다. 잠시 데크계단을 올라서고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봉정암 공양간에 닿는다. 먼저 오른 10여명이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도 따끈한 쌀밥과 미역국, 단무지 무친거 간단하지만 맛은 꿀맛이다. 봉정암에서 몇 번째 미역국을 먹은것인가. 용아장성할 때 전에 이코스를 똑같이 할 때 한번은 시간이 늦어서 못먹은적도 있다. 봉정암에 도착하니 구름이 꽉차서 전경은 볼 수 없고 밥이나 맛있게 먹고 가는 수밖에는 없다. 식사가 끝나고 설거지를 하고 나니 보슬비가 제법온다. 우비를 입고 다시 산행을 이어간다.

흔히 봉정암이 우리나라에서 가장높이 있는 절이라고 하는대 사실은 이보다 더 높은 곳에 있는 절도 있다. 모두 암자이지만 해발 1490m에 있는 지리산 반야봉 아래 묘향대다. 노고단 아래 문수대도 1400m쯤 된다. 이들 암자는 스님 한분만 기거를 했었다.

 

가야동계곡 다리(13.9km, 835m) 12:37

봉정암에서 우비를 입구 출발을 한다. 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선다. 주변으로 곱게 물든 단풍나무가 사리탑까지 이어진다. 여기 사리탑의 높이가 해발 1244m쯤 된다. 비는 오고 조망도 볼수 없으니 능선을 따라 올라선다. 조망가 각 방향으로 되어 있지만 보이는 것이 없으니 그냥 지난다. 잠시 내려서서 사자바위라고 높다란 봉정암 뒤편 암봉 옆으로 오세암 4.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다. 곧이어서 가파르게 설치된 철계단을 따라 내려선다. 잠시후 데크계단을 따라 내려서고 이후 한번 더 데크계단을 따라 내려선 후 미끄러운 바윗길을 따라 조심조심 내려선다. 한동안 내려서니 앞쪽으로 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는 오똑선 바위가 보이고 이후 우측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서니 젊은 2분이 먼저 내려가며 조심해서 오시라 한다. 사리탑에서 25분가량을 내려서니 설악13-07번 표지목이 나온다. 해발 1045m가 적혀 있다. 이후 내려서는 길에는 짧막한 널빤지로 된 다리를 이리저리 2번에 걸쳐 건너고 오세암 3.2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는 쉼터에 닿는다. 이곳에서 잠시쉬었다가 다시 진행을 하면 내리막 데크계단이 나온다. 다시 짧막한 널빤지 다리를 2번에 걸쳐 건넌후 한동안 진행하면 가야동계곡을 건너는 다리에 닿는다.

 

오세암(17.4km, 815m) 14:30 ~14:37

가야동계곡 다리를 건너며 데크길이 이어진다. 설악13-05표지목이 나오고 해발858가 적혀 있다. 잠시후 오세암 2.5km가 적힌 이정표를 지나며 오르막 길다란 데크계단길로 들어선다. 에고 숨차다. 봉정암에서 그냥 되집어 내려설 것 공연히 이곳으로 온 것 같다. 비가 오지 않으면 괜찮을 긴디 보슬비가 슬슬 내리니 궁상맞기도 하고 편치 않다. 마나님은 연신 잔소리하지 에고 힘들다. 한동안 데크계단을 올라선후 육산길을 따라 다시 오르고 침목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고갯마루에 13-04번 표지목이 서 있다. 해발970m가 적혀있는대 실제는 935m쯤 되는 것 같다. 단풍은 잘 들었다. 이후 내리막 계단을 따라 내려서고 다시 오르막 데크계단을 따라 올라서서 두 번째 고갯마루에 닿는다. 이후 설악 13-03번 표지목을 지나고 다시 오르고 내려서는 데크계단을 지난후 조금 길게 올라서는 데크계단이 또 나온다. 이렇게 세 번째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오세암 1.0km13-02번 표지목이 있으며 해발 919m가 적혀 있다. 이후 20여분후 네 번째 고갯마루를 지나 내리막 침목계단을 내려서면 13-01지점 표지목이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고 데크계단을 따라 올라서서 잠시 더 오르면 오세암 전 마지막 5번째 고갯마루에 닿는다. 이제 서서히 내려서는 길을 따라 가면 오세암의 지붕이 보이기 시작하고 다리를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면 잠시후 마등령과 갈리는 곳에 이정표가 있으며 여기서 데크길을 따라 내려서면 오세암에 닿는다. 공양시간이 5시라고 적혀 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간다. 역사적으로 많은 유명한 스님들이 거쳐한 곳이기도 한 오세암은 전에 보다는 건물도 많이짓고 해서 규모가 제법 커졌다.

 

영시암(21.0km, 540m) 15:54

오세암에서 내려서서 데크길을 지난후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서기 시작한다. 암자에서 자려는 분들인지 이제서 오르는 님들도 여럿이 보인다. 한참을 올라서서 첫 번째 고갯마루에 올라선다. 마나님 배가 고파서 못가겟다고 햇반 먹고 가겠단다. 그럼 식사를 하셔야지 어쩌것수 식사하는대 10분이 걸린다. 이후 내리막길을 따라 가면 영시암 1.9km 이정표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서서 언덕빼기에 닿는다. 여기서 내려서고 올라서서 다음번 언덕빼기에 올라서면 영시암 1.4km와 설악02-12번 표지목이 나온다. 이후 내리막 침목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0.9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오고 내리막 돌길을 따라 진행하여 요즘비가 많이 와서 인지 작은 계곡으로 흐르는 물길을 한번 건너고 흙길을 따라 진행하면 널빤지 목교를 이리저리 3번에 걸쳐 건너며 진행하여 테크길에 닿는다. 데크길을 따라 가면 영시암 0.4km이정표가 나오고 내리막 데크게단을 3번에 걸쳐 내려선후 데크길을 따라 가면 이어서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는 마지막 데크다리를 건넌후 데크길을 따라 가고 잠시 올라서면 영시암이라 적혀 있는 이정표삼거리에 닿는다. 작은 초소가 있는 지점으로 이제 올라갈 때 길과 만나게 된다. 오세암 2.5km, 봉정암 7.1km, 백담사 3.5km가 적혀있다. 이정표 삼거리에서 데크계단을 따라 쭈욱 내려서면 영시암에 닿게 된다.

 

백담사 주차장(26.0km, 465m) 17:03 ~17:15

영시암에서 부터는 좋아진 길을 따라 빠르게 진행을 한다. 17시경 있을것으로 예상을 하는 버스탈수 있을지 모르겠다. 혀튼 마나님도 내맴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지런히 앞서서 간다. 철다리를 건너고 곰골 철다리를 건너 이정표를 지난다. 이후 돌길을 따라 진행하여 우지곡 다리를 건너고 다시 철판다리를 건너서 가면 데크길 돌길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여 좌측으로 귀떼기골 입구가 보이는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여 우측편 길골에서 흐르는 물길을 건너는 철다리를 건넌다. 이후 질컥거리는 흙길도 지나고 데크길 돌길을 지난후 계곡옆 철판길을 따라 나가면 돌길을 따라 쭈욱 나가서 탐방지원센타에 닿는다. 잠시 우측편 해우소를 다녀온후 잠시 나가면 백담사 앞 주차장에 닿는다. 우리가 도착하며 버스도 도착하여 금시 매표소에서 표를 구입후 승차를 하니 10여분 기다린후 버스가 1715분 출발을 한다. 이렇게 하여 오늘 백담사에서 봉정암을 거쳐 오세암 영시암 백담사로 이어지는 단풍길을 원없이 걸었다. 대게는 22km라고 하는대 우리는 다른데 들른 곳도 없는대 트렝글, 산경표 모두 26km가 나왔다. 오늘 짧지않은 거리에 10시간 가량을 비가 오는 가운데도 쉼없어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잘 걸어준 마나님께 박수를 보낸다.

 

용대리 백담사 주차장(주차료 8000) 17:30~18:00(황태국밥 2인분 26000)

백담사 주차장에서 일인 2500원씩 셔틀버스표를 구입하여 1715분 출발을 한다. 올라갈때와 마찬가지로 우측편에 앉아서 백담계곡의 경치를 구경하며 내려온다. 예전보다 말끔하게 단장을 한 백담계곡으로는 데크길이 잘 조성이 되어 있는에 상단부에서 조금 내려오면 일정부분 아직 데크길이 안 된곳도 있지만 대부분 데크길로 걷기 좋게 만들어져 있다. 걸어서 가면 대략 2시간이면 갈수 있으니 걸어서 백담사까지 가서 백담사 구경하고 내려오는 것도 좋겠다. 이렇게 구경하며 15분을 지나 용대리 백담사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여기 주차장은 무인으로 사전정산기를 통해서 주차요금을 정산하면 자동처리 된다. 정산을 하니 8000원이 나온다. 마나님은 먼저 식당으로 가서 황태해장국 시켜놓고 나는 주차정산하고 차를 가지고 식당 앞에 도착하여 황태 해장국으로 저녁식사를 한후 집으로 향한다.

 

돌아오는 길

용대리를 18시 출발하여 비가 오는 길을 따라 달린다. 원통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인제를 지나고 신남 홍천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니 1시간이 걸린다. 이후 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열심히 달린다. 억지로 잠을 참던 마나님 골아 떨어지고 나혼자 열심히 달려 원주 만종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잠시 가니 마나님이 잠을 깬다. 문막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억수같이 내리는 빗길을 따라 달려 호법분기점에서 다시 청주방향으로 진행여 달린다. 비는 계속 많이도 온다. 이렇게 하여 호법에서 45분 가량을 달려 서청주 톨게이트로 빠져나온다. 오늘 비가 오고 날씨가 좋지를 않아서 인지 도로를 막히지 않아 좋았다. 이후 청주 집에 도착을 하니 21시다. 용대리에서 꼭 3시간이 걸렸다. 오늘 먼거리 운전하고 장시간 산행하느라 피곤도 하였지만 마나님이 좋아하니 내또한 기분이 좋다.

마나님은 모처럼 장거리 산행을 해서인지 엄청 피곤해 한다.

다음번주에는 오대산을 가자고 하니 그리 하겠다.

 

산행시간 : 9시간 48분 소요

산행거리 : 26km

 

연료비 : 5만원

통행료 : 8300(왕복16600)

셔틀버스비 : 왕복210000

용대리 백담사 주차요금 : 8000

햇반 2: 6600

저녁식사(황태해장국 2) : 2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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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제 백담사~봉정암~오세암~백담사

청주~백담사 주차장 : 252km, 3시간 통행료 8300

백담사 주차장 주차료 18000, (인제군 북면 용대리 903-5)

백담사 버스 : 25007시부터 운행, 백담사 막차 19(71~1030) 30분 간격, 만차시 출발

인제군 북면 백담로 746

 

0589 설악산 백담사~봉정암~오세암~백담사 2011.10.11.화요일 맑음

청주3:00 -문막휴게소4:17 ~4:28 -용대리주차장6:00 ~6:54 -백담사7:10 -영시암8:07 ~8:15 -수렴동8:38 -백운계곡입구9:38 -대청봉4.5km전 이정표(구조10-24)(첫번째 폭포위) 10:06 -쌍폭10:25~10:40 -봉정골입구11:18 -사자바위11:35 ~11:43 -봉정암11:55 ~12:30(중식) -가야동계곡12:40 ~12:57 -고개(오세암2.1km지점) 13:20 -고개14:40 -고개14:54 -고개15:13 -고개15:30 -오세암15:38 -고개15:52 -고개(영시암1.4km,오세암1.1km)(구조01-12) 16:10 -영시암16:38 ~16:57 -귀때기골 입구17:35 -백담사18:02 ~18:18 -용대리18:32~18:50 -여주휴게소20:40 ~20:45 –서청주톨게이트21:35 –청주집21:45도착 22km, 10시간 52분

 

설악산 백담사~수렴동산장 오세암 망경대-백담사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백담사"에서 출발하여 "영시암-수렴동대피소-천왕문-오세폭포-오세암-만경대"를 둘러보고 "백담사"로 원점 회귀하는 GPS 측정 "21.6km"를 진행합니다.

8시간 30분 소요

 

용대리 ~7.6km~ 백담사 ~10.6km~봉정암 ~2.3km ~대청봉 ~6.0km ~한계령 삼거리 ~4.5km ~ 구곡담계곡 백운계곡 합수지점 ~7.4km(대청봉5.5km) ~백담사

산행시간 : 15~16시간, 산행거리 : 38.4km

 

***수렴동 대피소 ~1시간 ~곡백운계곡 입구 ~1시간 ~합수점(오른쪽이 곡백운) ~30~백운폭포 ~1시간 ~막영터(심마니터)~ 1시간 30~능선 도둑바위골 상단안부 ~15~한계령 갈림길

***용대리 버스 : 편도 250010~15분 소요 7~17시까지, 백담사~용대리 막차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