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0년 부터)

1654 평창,진부 오대산 비로봉1565.4m~상왕봉1493m 2025.10.21.화요일 흐리고 보슬비 조금

산야55 2025. 10. 23. 09:00

평창,진부 오대산 비로봉1565.4m~상왕봉1493m

2025.10.21.화요일 흐리고 보슬비 조금

참석인원 : 3(마나님, 이재원님, )

 

청주 집 05:00 호법분기점 05:45 평창휴게소(아침식사, 순두부2, 16000, 소고기 비빔밥 10000) 06:41 ~07:28 속사톨게이트(통행료 9400) 07:31 오대산 국립공원 입구(주차료 6000) 07:46 - 상원사 주차장(해발 약850m) 08:02 ~08:15 상원사 08:24 오르막 데크계단, 돌계단 오대01-01지점 표지목(1.1km, 해발 1000m) 08:41 상원사1.1km, 비로봉 2.2km 이정표(오대01-02지점 표지목, 해발 약1045m) 08:45 돌계단 - 중대 사자암(1.5km, 1055m) 08:47 ~08:52 우측편 돌계단 따라 진행 돌계단 좌 꺽임지역 이정표(1.7km, 1095m) 08:57 이어지는 오르막 돌계단 용안수 09:06 등산로 입구(비로봉 1.5km, 탐방지원센타 2.0km) 09:08 오르막 돌계단 적멸보궁(2.2km, 1185m) 09:10~09:13 다시 돌계단 따라 내려와 등산로 입구 데크길 진흙길 공원 지킴터(2.5km, 1175m) 09:19 서서히 오르는 길 내리막 침목계단 구급함, 쉼터(2.7km, 1175m) 09:23 ~09:32 오르막 돌계단, 침목계단 오대 01-04지점 표지목(2.9km, 1205m) 09:36 오르막 돌계단 목봉 데크계단 위(3.2km, 1280m) 09:44 잠시후 오르막 침목계단 오르막길 비로봉 0.7km이정표, 오대01-05지점 표지목(3.4km, 1295m) 09:48 오르막 계단 비로봉 0.4km이정표, 오대01-06지점 표지목 쉼터(3.9km, 1365m) 09:55 ~10:06 오르막 목봉 데크계단1.23(3.9km, 1470m) 10:17 목봉 데크계단4 침목계단 목봉데크계단5.6 비로봉(4.2km, 1555m) 10:29 ~11:05 진흙길 헬기장1(비로봉0.5km, 상왕봉1.8km 이정표, 오대01-08표지목, 5.2km, 1535m) 11:13 진흙길 헬기장2(5.5km, 1540m) 11:17 내리막 침목계단, 데크계단(주목나무 다수) - 오대01-09표지목 11:23 - 진흙길, 내리막 침목계단 평탄하게 이어지는 진흙길 안부 상왕봉 0.9km이정표(6.2km, 1415m) 11:30 서서히 오르는 진흙길 고목나무 앞 오대01-10번 표지목 11:32 오대01-11표지목, 상왕봉 0.3km 이정표(6.9km, 1450m) 11:39 오르막 침목계단 상왕봉(정상석, 두로령1.9km이정표, 7.2km, 1493m) 11:47 내리막 돌길 오대01-12번 표지목 11:54 -이어지는 내리막길 오대01-13번 표지목 12:05 이정표 북대삼거리(두로령 0.9km, 북대 미륵암 1.5km, 8.1km, 1375m) 12:06 우사면길 탐방지원센타 5.6km 이정표(8.5km, 1355m) 12:15 오대01-14표지목 12:16 - 임도 이정표(탐방지원센타4.6km, 두로령1.8km, 미륵암 0.4km 9.1km, 1255m) 12:24 임도 좌사면길에서 우사면길로(10.4km, 1150m) 12:39 탐방지원센타 2.9km 이정표(10.7km, 1110m) 12:43 탐방지원센타 1.9km 이정표(11.7km, 1020m) 12:55 송신탑 12:56 탐방지원센타 1.6km 이정표(12.1km) 12:59 탐방지원센타 0.5km이정표(13.2km) 13:12 상원사 주차장(13.8km, 850m) 13:20 ~13:50(중식) - 속사톨게이트 14:30 여주 휴게소 16:00~16:08 호법분기점 16:21 오창톨게이트(통행료 9100) 17:03 내덕동 경유 청주 집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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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국립공원

오대산국립공원은 오대산을 중심으로 하여 강원도 평창군·홍천군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으로 면적298.5㎢이다.오대산에는 동쪽에 만월대(滿月臺) 서쪽에 장령대(長嶺臺) 남쪽에 기린대(麒麟臺) 북쪽에 상삼대(象三臺) 중앙에 지공대(知工臺)가 있어 이들 5개의 대를 꼽아 오대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중대, 동대, 서대, 남대, 북대의 5대(五臺)에 각기 석가, 관음, 미타, 지장, 문수의 부처가 상주하며 설법하는 성지이므로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비로봉(毘盧峰,해발1,563m)을 주봉으로 하여 남서쪽으로 소대산(小臺山,해발1,270m),호령봉(虎嶺峰,해발1,560m), 소계방산(해발1,490m)으로 뻗어내리고, 동쪽으로 상왕봉(上王峰,해발1,493m), 두로봉(頭老峰,해발1,422m), 동대산(東臺山,해발1,434m), 노인봉(老人峰,해발1,338m)등으로 이어지는데 이 모두 고도 높이가1,000m넘는 준령으로 이름난 명산이다. 이 산들이 마치 분지를 에워싼 것 같은 지형을 이루고, 그 사이의 분지를 북한강(北漢江)의 지류인 오대천이 비교적 깊은 협곡을 이루면서 남류한다. 다만 동대산과 노인봉 사이의 안부(鞍部)인 진고개는 오대천의 한 지류와 연곡천(連谷川)과의 분수령이 된다.

오대산이라는 이름은 신라시대 지장율사가 지은 이름으로 전해진다.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다른 이름이 바로 오대산이다. 지장율사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에 자리한 이 산을 보고 오대산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오대(五臺)는 비로봉(毘盧峰,해발1563m), 호령봉(虎嶺峰,해발1560m), 상왕봉(象王峰,해발1493m), 두로봉(頭爐峰,해발1421m), 동대산(東臺山,해발1433m)등 다섯 봉우리를 말하는 것이다. 오대산은 1975년2월1일 우리나라1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연간 약 백만명 이상의 탐방객들이 찾는다.

 

오대산

오대산은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명산중의 명산이다.

오대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사계절 언제나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하얀 설화가 환상적이며, 조망이 뛰어나고 겨울 산의 대명사로 각광을 받는 산이다.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3m)과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5개 봉우리가 병풍처럼 늘어서 있으며, 동쪽으로 떨어져 나온 노인봉(1,338m)과 그 아래로는 최고의 절경인 오대산 소금강이 있다.

오대산 비로봉-상왕봉 등산은 상원사 주차장을 출발하여 넓은 임도를 따라 시작하며 비로봉까지는 3.3km이다.

임도를 20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으로 비로봉으로 오르는 작은 오르막길이 나온다.

오르막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지붕이 계단식으로 층층이 지어진 중대 사자암이 나오고, 20분 정도 더 걸으면 적멸보궁 입구 약수터와 삼거리 갈림길이 나타난다.

적멸보궁은 석가의 정골 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주차장에서 50분 걸린다.

적멸보궁 삼거리를 지나 오솔길로 10분 정도 가면 아름드리 소나무와 참나무가 있는 넓은 휴식터를 만난다.

휴식터에서 휴식 후 가파른 산길을 따라 아름드리나무와 고사목이 펼쳐진 능선을 따라 30분 정도 더 오르면 넓은 쉼터가 또 나온다.

등산시작 2시간 걸려 비로봉(1,565m) 정상에 도착한다. 비로봉 정상에서는 전망이 탁 트이면서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우리나라에는 비로봉이라는 명칭을 가진 산봉우리들이 많은데, 이는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한 불교신앙이 산을 숭배하는 신앙으로 녹아 들어간 것이다.

오대산의 겨울 설경은 주봉인 비로봉에서 상왕봉(1,493m)을 잇는 능선의 나무에 피는 눈꽃이 절경이다. 비로봉에서 상왕봉까지는 2.3km이다.

비로봉에서 0.5km떨어진 헬기장을 걸쳐 철쭉나무들이 있는 완만한 능선을 따라 작은 봉우리를 넘어 1km 이동하면 300년 이상 된 오대산 주목군락지가 나타난다.

주목군락지에서 능선으로 1.3km 더 가면 상왕봉(1,491m) 정상이다. 상왕봉에서는 지나온 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왕봉에서 0.7km 지나면 상왕봉 삼거리 갈림길이 나온다. 상왕봉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6.1km가면 상원사 주차장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2.8km 가면 두로봉(1,422m)이다.

하산은 상왕봉 삼거리에서 상원사 주차장 방향으로 하며, 큰 고사목이 있는 넓은 휴식터를 거쳐 1.1km10분 정도 이동하면 임도를 만난다.

넓은 임도를 따라 5km1시간10분 정도 내려오면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고 원점회귀 산행이 종료된다.

코스 : 상원사 주차장-적멸보궁-비로봉-상왕봉-상원사 주차장(5시간10, 12.4km)

(산악투어)

 

비로봉 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오대산유래 안내판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과 홍천군 내면 경계에 있는 산이며 우리나라의 가장 크고 기나긴 산줄기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로봉(해발1563m), 동대산(해발1433.5m), 두로봉(해발1421.9m), 상왕봉(해발1491m), 효령봉(해발1531m)등 다섯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있으며, 동쪽으로 따로 떨어져 나온 노인봉 아래로는 천하의 절경 소금강이 자리잡고 있다.

오대산이란 명칭은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의 오대산과 산의형세가 흡사하다 하여 같은 이름으로 불렀다고 한다. 소금강은 노인봉을 시작으로 동쪽으로 펼쳐진 기암들의 모습이 마치 금강산과 비슷하여 붙혀진이름이다. 오대산은 내륙성기후 특성을 보이는 월정사지역과 동해와 인접한 해안기후 특징을 보이는 소금강구역으로 구분되며 1975년2월1일 우리나라11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연간 약 백만명 이상의 탐방객들이 찾는다.

강원도 강릉시 연곡면,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동대산,호령봉,상왕봉,두로봉과 오대산을 구성하는 다섯개의 봉우리 중 주봉(主峰)으로 원래는 풍로산 또는 지로산으로 불리웠는데 이곳 오대산은 불법(佛法)이 가득한 불교신앙이 녹아들어 비로나자불을 나타내는 비로봉이라 불렀다.

연화장세계(蓮華藏世界)에 살면서 그의 몸은 법계(法界)에 두루 차서 큰 광명을 내비추어 중생을 제도하는 부처이다. 그러니 비로봉은 부처의 산이다. 오대산은 부처를 중심에 모신 불교신앙의 성지이다. 오대산 외에도 비로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봉우리들이 우리나라의 산에는 많다. 금강산 비로봉(1638m), 치악산 비로봉(1288m), 속리산 비로봉(1057m)과 소백산 비로봉(1439.5m)이다.

비로봉의 이름이 된 비로나자(불)은 산 크리스트어Variocana로“태양”이라는 뜻이다 산크리스트어Variocana를 발음을 따라 한자어로 음역한 것을 우리 식으로 읽어서 비로나자(毘盧遮那佛)가 된 것 으로서 절대 불신佛神, 부처님의original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모양이 변함없는 진리이자 최고를 의미하며 가장 높다는 의미라고 한다.

오대산은 중국 산서성 청량산의 별칭으로, 신라시대 지장율사가 당나라 유학 당시 공부했던 곳이다.

그가 귀국하여 전국을 순례하던 중 백두대간의 한가운데 있는 오대산을 보고 너무 흡사하여 오대산이란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이곳 오대산을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상주하는 곳이라 지목하여 개산(開山)한 이후 불교계에서는 성산(聖山)으로 받들고 있다.이 산은 신라시대에서 부터 오대산으로 불리웠고 삼국유사에서는 국내의 명산중에 이곳이 지세가 가장 승하니 불법(佛法)이 길이 번창할 곳이라 하면서 각 대(臺)에서는 부처님의 진신이 상주한다고 씌여있다.

오대산은 봉우리(臺)마다 유서깊은 암자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중대에는 규모가 가장 큰 사자암이 있고 동대에는 관음암, 서대에는 우리나라 유일한 굴피집 암자인 염불암(예전에 수정암), 남대에는 오대산속에 유일한 비구니 사찰인 지장암이 그리고 북대에는 미륵암(북대사)이 있다

오대산의 최고봉 비로봉이 비록 백두대간 마루금으로부터 6Km나 서편으로 벗어나 있지만 워낙 산세가 장중하기 때문에 선조들은 황병산,덕유산,민주지산 등과 마찬가지로 오대산도'백두대간의 산'으로 치부해 왔다. 오대산은 한반도의 중심부 심장을 향해 서쪽으로 힘차게 벋은 양수기맥(兩水岐脈:또는 한강기맥)과 정남으로 내리 뻗어 충주호 북안을 꾸미는 치악기맥(雉岳岐脈)의 산뿌리가 된다.

백두대간 마루금의 오대산 두로봉에서 비로봉,효령봉을 거쳐 계방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서쪽으로 힘차게 뻗어나가면서 북한강과 남한강을 가른다. 이 산줄기에는 계방산(1577m:남한제5봉), 운두령(1089m), 태기산(1261m), 운무산(980m), 오음산(930m), 중원산(799m), 용문산(1157m), 유명산(864m),청계산(658m)을 거쳐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양수리까지 먼 거리를 힘차게 달린다. 그러나 선조들은 산경표에 정맥(正脈)의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다에 이르지 못하고 내륙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산줄기를 한강기맥이라 부른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신라 시대의 건축물이다. 신라 시대인647년경(진덕왕 재위 기간)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석가모니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찰 당우(堂宇)가운데 하나

 

[적멸보궁의 유래]

석가모니가 설법을 펼친 보리수 아래의 적멸도량을 뜻하는 전각으로 석가모니 사후에 와서는 그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탑,암자 등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보통 절과 보궁을 헷갈려 통도사 절 자체를 적멸보궁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틀린말은 아니지만 엄격히 따지자면 절 자체가 적멸보궁이 아니라, 절에서도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장소를 일컬어 보궁이라 한다. 석가모니의 사리를 진신사리라고 하며, 이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절에서는 석가모니, 즉 부처님이 계신다고 하여 다른 부처님을 상징할 수 있는 불상이나 조각을 절에 두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절의 시설은 전(殿)이나 각(閣)으로 나타내지만, (대웅전,삼신각)진신 사리를 봉안한 절은 보궁이라 하여 궁(宮)으로 높여 부른다. 적멸보궁은 여러 불교 문화재 중에서도 그 가치가 두드러지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 남아 있는 적멸보궁 중 가장 유명한 5개의 보궁을 꼽아 5대 적멸 보궁이라 하는데 영축산 통도사의 적멸보궁, 오대산 중대(中臺)상원사에 있는 적멸보궁, 사자산 법흥사(영월군)(法興寺)에 있는 적멸보궁, 정암사(淨巖寺)의 적멸보궁, 설악산 봉정암(鳳頂庵)에 있는 적멸보궁 등이다.

 

오대산 중대 상원사(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중대(中臺)에 있는 적멸보궁)

자장율사가 오대산을 개산한 이후로, 오대산에도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하여 불교 성지로 추앙받았으나, 이 사리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는 정확하지 않아, 신비로운 전설처럼 전해진다. 상원사는 이 사리를 보호하기 위한 수호령 역할을 맡는 절이며, 이 상원사의 건립과 관련해서는 삼국유사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자면, 상원사는 선덕왕의 두 왕자에 의해서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진여원이라 불렀다. 자장율사가 개산한 뒤로 오대산이 불교 성지로 그 이름을 빛내면 서 마침내 오류성중, 곧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곳으로 신앙화 되기 시작하던 즈음이다. 절을 짓고 난 후 두 왕자는 그 곳에서 수행을 했는데, 신문왕이 죽은 후 후계 문제로 다툼이 끊이질 않자, 오대산의 두 왕자를 찾아왔고 그 중 하나가 왕이 된 후 진여원을 상원사로 개명했다. 고려시대에 들어 상원사에 대한 설명은 오히려 찾아보기 힘들다. 국교가 불교이니만큼 불교 성지에 대한 중흥이 일어날 법도 한데, 더 이상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후삼국 시대를 전후로 소실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고려 후기 이색의 오대상원사승당기라고하는 기행문에서 나옹스님의 제자로 알려진 영로암 스님이 재건했다는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현재의 상원사는 적어도 고려 말 이후의 것이다. 그 이후 조선 시대의 숭유억불(崇儒抑佛)정책으로 인해 상원사는 자칫하면 소외된 절이 될 뻔 했으나. 세조와의 인연으로 다행히 그 명성을 이어가게 된다. 현재 상원사는 월정사에 포함된 절이다.

 

중대사자암(中臺獅子庵)

적멸보궁이란 불상을 모시지 않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곳으로 오대산 적멸보궁은 신라시대 때 자장율사가 중국 오대산에서 기도하던 가운데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얻은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봉안한 불교의 성지이다. 우리나라에는 설악산 봉정암, 오대산 상원사, 사자산 법흥사, 정선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의 적멸보궁을 합쳐서5대보궁이라 일컷는다 .불자들에겐 반드시 참배하는 성지(聖地)이다

적멸(寂滅)이란 모든 번뇌의 불이 꺼진 곳, 본래의 마음자리인 고요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열반을 뜻한다. 그런 적멸에 든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니‘적멸보궁’이다.

 

상원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 나옹(懶翁)이 중창하였고, 월봉(月峯)·위학(偉學)·정암(靜巖)·해봉(海峯)·삼공(三空)·축념(竺念)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에서 국태안민(國泰安民)을 기도하게 하였다. 그러나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되었던 것을 1968년 주지 송문영(宋文永)과 의성(義成)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요사채, 객사(客舍)등이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에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아름다운 삼층석탑 2기가 있다. 이 탑은 상원사의 창건과 동시에 세워진 것으로, 상륜부(上輪部)에 둥근 연꽃 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炎文)을 보이는 섬세한 불상의 광배(光背)와 연화대석(蓮華臺石)이 있어, 원래 이 절에 석불이 봉안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절 뒤쪽 200m지점에는 높이1m의 지극히 단조로우나 매우 오래된 부도와, 무착이 중국에서 묘목을 얻어와 심었다는 계수나무 네 그루가 있다.

 

상원사 대웅전앞 연등의 모습

신라의 보천(寶川)과 효명(孝明)형제도 이 곳 어디선가 푸른 연꽃을 보았을 것이다. 두 형제는‘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가장 멋진 사내들이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저마다 일천명을 거느리고 성오평(省烏坪)에 이르러 여러 날 놀다가 태화(太和)원년(元年)에 형제가 함께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출가의지를 오래 전부터 다졌을 법도 한데, 그런 이야기는 없고 저마다 1000명과 놀다가 아무도 모르게 오대산으로 입산출가 했단다! 유쾌한 반전이다. 보천은 오대산 중대 남쪽 밑 진여원터 아래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암자를 지었고, 아우 효명은 북대 남쪽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 곳에 암자를 지었다. 형제는 함께 염불하며 정진했고, 오대에 나아가 예배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장군 네 명이 찾아와 형제에게 왕위계승을 청했다. 보천은 울면서 사양했고, 아우 효명은 수락해 신라33대 왕위(성덕왕)에 올랐다.

보천을 보라. 왕의 자리조차 울면서 사양하지 않는가? 구도를 향한 절실함이 묻어나 있는 범상치 않은 반전이다. 자장으로 태동한 문수성지 오대산은 보천으로 인해 동서남북 ,그리고 중대에 각각1만 보살이 머무는‘5만 보살 상주 성지’로 확대됐다. 연꽃처럼 펼쳐진 다섯 개의 봉우리 안에 석가모니를 비롯한5백 아라한과 문수,관음,지장,대세지 등의5류 성중5만 진신이 법을 펴고 있는 셈이다. 성덕왕 즉 효명이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 지금의 상원사다. 6·25한국전쟁 중 월정사는 불탔어도 상원사만은 건재했다. ‘한암’이라는 고매한 학(鶴)이 큰 둥지를 틀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울 봉은사에서 법을 폈던 한암 스님은 일제의 감시로 포교와 수행이 어렵게 되자1927년 오대산으로 들어온다. 그 때 세상에 남긴 한 마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추는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가 되지 않겠다! ’일제의 압제 속에서 허수아비 노릇하며 살지 않겠다는 수좌의 천명이다.이후 1951년 입적 전까지 27년 동안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일본 이께다 경무국장이 오대산 한암 스님을 찾아와 물었다.

“이번 전쟁, 어느 나라가 이길까요?”연합군의 승리를 장담하면 당장 목이 떨어질 수 있고, 일본군의 승리를 장담하면‘앵무새’가 되고 만다. 원 안에 있어도 죽고, 원 밖에 나와도 죽는 상황에서 어찌할 것인가? 목을 내놓을 것인가, 앵무새가 될 것인가? “이번 전쟁은 덕 있는 나라가 이긴다!”일본은 패망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상원사가 인민군 은신처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감에 국군은 상원사 소각 명령을 내렸다. 국군장교가 절에 남아 있던 한암 스님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스님은 “잠시 기다리라”하고는 가사장삼을 수한 후 법당에 앉았다. 그리고는 한마디 이른다. “불을 질러라!나는 불법을 위해 죽을 것이다. 중이 죽으면 어차피 화장해야 하는 법. 절을 지키는 것은 중의 본분이다. 나는 마지막까지 중의 위치를 지키다 죽을 것이다. ”장교는 법당 문 한쪽 태우고 물러갔다.

 

상원사 문수동자상과 한암스님 설화

상원사에 있는 문수동자상은 국보 제221호로 유서 깊은 우리 민족의 문화유산입니다.

상원사는 민족의 비극인 6.25사변이 터지고 중공군의 참전으로 1.4후퇴를 할 당시 상원사 절을 불로 태우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고 들이닥친 군인들에 의해 불에 태워질 위기에 처해졌던 사찰입니다.

당시 법당에 들이닥친 군인들에게 한암 스님은 “당신들은 상부의 명령을 복종해야 하는 것이니 불을 놓으면 되는 것이고, 나는 중으로서 부처님의 제자이니 마땅히 절을 지켜야 되는 입장이다.”
“너희는 상부의 명령을 따르면 되고, 나는 중으로서 부처님 명령을 따라 절을 지키면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염려 말고 불을 질러라.”하고 법당에 들어가 가부좌를 하며 군 책임 장교에게 불을 놓으라고 태연히 말을 했습니다.

서릿발처럼 꼿꼿한 한암 스님의 자세를 보고 책임 장교는 보통스님이 아니라 도인(道人)임을 알아차리고 모든 사병들을 밖으로 물리고 절을 태웠다는 증명을 얻기 위해 문짝만 떼어서 태웠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래서 상원사가 불에 탈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모면했는데, 그때 만약 상원사가 불에 탔으면 상원사 문수 동자상(국보221호)은 불에 타서 후세 사람들이 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상원사에 모셔져 있는 문수동자상에 대해 전해져 오는 실화가 있습니다. 단종이 폐위된 뒤 세조가 정신적 고통에서 피부병으로 고생을 하다가 상원사 근처 계곡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때 어떤 동자가 와서 등을 씻어주었는데, 세조가 하는 말이 “다른데 가서 임금님이 여기에 와서 몸을 씻고 갔다고 말하지 말라”

라고 하니 동자가 하는 말이 “임금님께서는 오대산에서 문수보살을 봤다고 하지 마십시오.”라고 말해서

깜짝 놀라 돌아다보니 이미 동자는 없어지고 피부병이 다 나아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조는 문수보살님의 은혜에 감사의 백일기도를 올렸으며 상원사에 있는 문수동자상은 세조가 당시 기억을 떠올리며 조성한 것이라고 합니다.

상원사를 온몸으로 지키신 한암 스님은 1876년 강원도 화천에서 태어나 세수22세 때 금강산 장안사에서 출가하여 수행하였으며 선불교의 고승인 경허스님에게 인가를 받았고, 통도사 조실스님으로 계시며 파계승이 들끓는 현실을 비판하면서 “천고에 자취를 감출지언정 춘삼월에 말 잘하는 앵무새는 되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오대산 상원사로 들어갔습니다. 상원사 가람수호를 하시면서 문화재를 수호(守護)한 한암 스님은 조계종 종정을 네 번이나 역임한 근대 불교의 큰 어른이십니다, 또한 열반에 들 때는 좌탈입망(座脫立亡)을 하여 후학(後學)들에게 많은 신심을 불러일으키게 한 불교계의 큰 스승이었습니다.

 

오대산 상원사 팔각구층석탑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신앙되고 있는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가 있었고, 1464년(세조10)에 말사인 상원사)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보관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8각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이 있다.

 

상원사목조문수동자좌상((上院寺木彫文殊童磁坐象,높이98㎝.)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에 있는 상원사는 신라 성덕왕4년(705)에 보천과 효명의 두 왕자가 창건한 진여원(眞如院)이라는 절에서 시작된 사찰로¸ 조선 세조가 이곳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질병을 치료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이와 같이 상원사는 문수신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절로¸ 상원사의 문수동자상은 예배의 대상으로서 만들어진 국내 유일의 동자상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고개는 약간 숙인 상태이며 신체는 균형이 잡혀 있다. 머리는 양쪽으로 묶어 올린 동자머리를 하고 있으며¸ 얼굴은 볼을 도톰하게 하여 어린아이같은 천진스러움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넓은 어깨에는 왼쪽에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가로질러 옷자락이 표현되어 있고¸ 가슴에는 구슬장식이 늘어져 있다. 옷주름은 신체의 윤곽에 따라 부드럽고 자연스럽게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엄지 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왼손은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거의 맞닿을 듯 섬세하게 표현하였다. 왼쪽 다리를 안으로 접고 오른쪽 다리를 밖으로 둔 편한 자세로 앉아 있는데¸ 대좌(臺座)는 마련되지 않았다. 최근에 이 동자상 안에서 발견된 유물에‘조선 세조의 둘째 딸 의숙공주 부부가 세조12년(1466)에 이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모셨다'는 내용이 적혀 있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와 유래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조선 전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1446년 조선 초기 조성된 문수동자상(국보)은 오대산 문수신앙의 상징이다. 암살 위험에서 세조를 구해준 고양이를 기리는 상원사 고양이상과 한암 스님이 사자암에 꽂아둔 지팡이가 큰 단풍나무로 자랐다는 ‘한암스님 단풍나무’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오대산 월정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로 강원도 중남부에 있는60여 개의 절을 관리하고 있다. 삼국유사권 3대산오만진신(臺山五萬眞身)에 따르면 643년(선덕여왕12)자장율사가 중국 당나라에서 문수보살의 감응으로 얻은 석존 사리와 대장경 일부를 가지고 돌아와서 통도사와 함께 이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에는 초암(草庵)으로 엮어 만든 임시암자에 불과했지만, 그 뒤 신효(信孝)·신의(信義)·유연(有緣)대사가 차례로 이곳에 머물면서 점차 사찰다운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대산의 동대·서대·남대·북대·중대에 각각 관음암·수정암·지장암·미륵암·사자암 등 암자가 있는데, 이 암자들은 월정사(月精寺)의 부속암자이다. 동대 만월산을 뒤로 하고,그 만월산의 정기가 모인 곳에 고요하게 들어앉은 월정사는 사철 푸른 침엽수림에 둘러싸여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띤다. 그 앞으로는 맑고 시린 물에서 열목어가 헤엄치는 금강연이 또한 빼어난 경관을 그리며 흐르고 있다.

월정사를 품고 있는 오대산은 자연 조건이며 풍광이 빼어날뿐더러 예로부터 오만 보살이 상주하는 불교성지로서 신성시 되어 왔다. 그 오대산의중심 사찰로서 신라 때부터 지금까지 1400여 년 동안, 개산조 자장율사에서부터 근대의 한암,탄허스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름난 선지식들이 머물던 곳이려니와, 월정사는 오늘날에도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이 곳 전나무 숲의 그 곧음과 푸름으로 승가(僧伽)의 얼을 오롯이 지키고 있는 한국 불교의 중요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상원사 동종(上院寺 銅鍾)국보 제36호

-소재지:강원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1211-50,상원사(동산리)

오대산 상원사에 있는 동종으로 신라 성덕왕24년(725)에 만들어졌다. 경주 성덕대왕신종(국보 제29호)과 더불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완형의 통일신라시대 범종3구 중 하나이며, 크기는 높이167cm,입지름 91cm이다.

이 종의 맨 위에는 큰 머리에 굳센 발톱의 용이 고리를 이루고 있고, 소리의 울림을 도와주는 음통(音筒)이 연꽃과 덩굴 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종 몸체의 아래 위에 있는 넓은 띠와 사각형의 유곽은 구슬 장식으로 테두리를 하고 그 안쪽에 덩굴을 새긴 다음 드문드문 1∼4구의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을 두었다. 네 곳의 유곽 안에는 연꽃 모양의 유두를 9개씩 두었다. 그 밑으로 마주보는 2곳에 구름 위에서 무릎꿇고 하늘을 날며 악기를 연주하는 비천상(飛天像)을 새겼다. 비천상 사이에는 종을 치는 부분인 당좌(撞座)를 구슬과 연꽃 무늬로 장식하였다.

이 종은 조각 수법이 뛰어나며 종 몸체의 아래와 위의 끝부분이 안으로 좁혀지는 고풍스런 모습을 하고 있다.또한,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종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아름다운 것으로 한국 종의 고유한 특색을 모두 갖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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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5:00

저번 주에 설악산 백담사에서 봉정암,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까지 산행을 하고 이번주 단풍산행은 오대산으로 잡았다. 지긋지긋하게 오던 비도 이번 주부터는 오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갑자기 날이 추워져 5~13도까지 나온다. 오대산 산악날씨는 1~7도로 나온다. 옷도 단단히 준비해 입고 가야 할 것 같다. 오대산 비로봉은 오래전(2003.10.14.) 직장산악회에서 상원사에서 비로봉을 거쳐 상왕봉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 코스를 다녀온적이 있는데 이 코스와 똑 같이 하려 한다. 그때 적멸보궁으로 오르며 상당히 가파르고 힘들었던 생각이 난다. 비로봉은 한강기맥때 계방산에서 시작해서 효령봉을 거쳐 비로봉 두로봉을 찍고 다시 두로령으로 내려와 임도를 따라 내려온적도 있다. 오늘 아침도 일찍일어나 산행준비를 마친후 이웃에 사는 마나님 친구분과 셋이서 05시 출발 한다.

 

상원사 주차장(해발 약850m) 08:02 ~08:15

청주 집을 출발하여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45분후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첫머리는 화물차 승용차가 뒤엉켜 매우 혼잡하다. 여주 분기점을 벗어나며 화물차가 거의 다 빠지고 나면 대부분 승용차와 간혹 화물차가 다니지만 혼잡하지는 않다. 문막휴게소를 통과하고 새말등을 지난후 횡성휴게소에 닿지만 여기는 별로 안 좋아 한다. 주변으로 축사가 많은지 냄새가 많이 나는 휴게소다. 이후 진행을 하여 우측으로 백적산이 있는 이목정리 부근의 평창휴게소에서 쉬어 간다. 이곳에서 아침식사도 하고 가기로 한다. 마나님과 나는 순두부찌개로 이 여사는 소고기 비빔밥으로 아침식사를 한후 다시 진행을 하면 몇분후 속사톨게이트로 빠져나가 터널을 지난후 진부에서 월정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가면서 도로변으로는 채소를 쌓놓고 파는 곳이 여러곳 보인다. 금시 오면서 수확을 하던 당근도 많이 쌓여 있고, 커다란 무, 총각무우, 양파, 단감도 있다. 이곳은 단감주산지는 아닌대 생각보다는 많다. 이렇게 진행하면 조선왕조실록 박물관 옆 매표소에서 주차료 6000원을 선결제후 들어간다. 이곳은 사찰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이후 안으로 들어가면 잠시후 월정사가 나오고 이후 비포장길을 따라 쭈욱 들어간다. 새벽까지 비가 내렸는지 길이 매우 질컥거린다. 일찍이 나와서 도로를 정비하는 불도저가 움직인다. 이곳 비포장길은 시속 30k/h. 한참을 올라가면 마지막에 상원사 주차장이 우측으로 나온다. 아직 차량이 많지는 않다.

 

중대 사자암(1.5km, 1055m) 08:47 ~08:52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0802분이다. 잠시 산행준비를 마친후 0815분 산행을 시작한다. 도로를 건너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을 따라 잠시 올라서면 우측으로 계단을 따라 올라서서 상원사에 도착을 한다. 잠시 상원사를 대충 구경한후 좌측으로 화장실 방향으로 나가면 잠시후 우측으로 오르는 돌계단이 보인다. 이곳으로 올라서서 진행을 한다. 오르막 데크계단을 오르고 다시 엉성한 돌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오대 01-01지점 표지목이 나온다. 해발 1000m가 적혀있다. 주차장이 해발 850m 정도되니 150m쯤 오른 것이다. 이후 돌계단을 따라 한동안 올라서 가면 간혹 평평한 곳도 있고 돌길도 있다. 이렇게 진행을 하면 도로를 따라 쭈욱 올라가서 편하게 올라오는 계단길과 합류하는 지점에 상원사 1.1km, 비로봉2.2km가 적혀있는 이정표와 오대 01-02지점 표지목이 나온다. 이곳에서 사찰옆 돌계단을 따라 가파르게 올라서면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중대 사자암 비로전에 앞에 닿는다. 앞쪽으로 노랗게 물든 산하에 구름이 살짝 끼였다. 오대산의 이름은 주봉인 비로봉(1,563m)과 동대산(1,434m), 두로봉(1,422m), 상왕봉(1,491m), 호령봉(1,561m) 5개 봉우리를 따서 졌다고도 하고 동쪽에 만월대(滿月臺) 서쪽에 장령대(長嶺臺) 남쪽에 기린대(麒麟臺) 북쪽에 상삼대(象三臺) 중앙에 지공대(知工臺)가 있어 이들 5개의 대를 꼽아 오대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또한 중대, 동대, 서대, 남대, 북대의 5대(五臺)에 각기 석가, 관음, 미타, 지장, 문수의 부처가 상주하며 설법하는 성지이므로 이 이름이 붙여졌다고도 한다. 중대는 사자암으로 상원사에서 우측으로 오르고, 서대는 상원사 앞에서 남쪽으로 염불암, 북대는 상원사에서 임도를 따라 오르면 미륵암이며, 동대는 월정사에서 우측으로 관음암, 서대는 월정사에서 좌측으로 지장암으로 가장 가깝다.

 

적멸보궁(2.2km, 1185m) 09:10~09:13

중대 사자암에서 우측 편으로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돌계단이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는 부분에 이정표가 있다. 탐방지원센타 1.7km, 적멸보궁 0.3km가 적혀 있다. 이제 능선으로 난 돌계단길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오늘 적멸보궁으로 향하는 신도들이 상당히 많다. 이정표에서 10여분을 오르면 용안수라고 하는 샘물이 돌계단 좌측으로 있다. 스텐레스 뚜껑으로 덮여 있어 샘물이 깨끗하며 물맛도 좋다. 여기서 좀 더 오르면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적멸보궁은 좌측으로 계단을 따라 좀더 올라야 한다. 적멸(寂滅)이란 ‘불이 꺼진 상태. 즉 열반을 의역한 용어로, 본래의 마음자리인 고요의 상태로 돌아감을 의미한다고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계단을 따라 잠시 더 오르면 적멸보궁에 닿는다. 작은 보궁에서부터 늘어진 연등이 하늘을 가리고 그 아래쪽으로 신도들이 기도를 드리고 있다. 보궁 좌,우측으로도 보궁 뒤편에 보이는 바위언덕을 향해 기도를 열심히 드리는 신도들로 가득하다.

 

비로봉(4.2km, 1555m) 10:29 ~11:05

적멸보궁에서 다시 내려와 등산로 입구로 들어선다. 평탄하게 이어지는 데크길을 잠시 걷고 이어서 진흙길을 따라 걸어가면 공원지킴터가 나온다. 아직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이후 서서히 오르는 길을 따라 나지막한 봉을 넘어 내리막 침목길을 따라 구급함이 있는 쉼터에서 잠시 커피한잔마시고 쉬어 간다. 이후 오르막 돌계단, 침목계단을 따라 가면 오대 01-04지점 표지목이 나온다. 해발 1220m가 적혀있지만 실제고도는 1205m쯤 되는 것 같다. 잠시 휴식후 다시 오르면 역시 돌계단을 따라 오르고 목봉이 설치된 데크계단을 따라 올라선다. 잠시 더 오르면 침목계단길이 나오고 이후 오르막 돌부리길을 따라 천천히 오르면 비로봉 0.7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와 오대01-05지점 표지목이 나온다. 해발 1295m쯤 된다. 다시 오르막 계단을 오르고 역시 돌부리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서면 비로봉 0.4km가 적혀 있고 오대 01-06지점 표지목이 있는 쉼터에 닿는다. 해발 1378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후 다시 진행을 하면 비로봉 정상까지는 거의 다 데크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군데군데 침목계단으로 연결이 되기도 하고 연이어 데크계단으로 오르기도 한다. 목봉이 설치된 데크계단1.2.3을 오르고 잠시 올라 목봉 데크계단4를 지난후 조금 길게 이어지는 침목계단을 따라 오르면 목봉이 설치된 5번째 6번째 계단은 연이어져 있어 있는 힘을 다해 올라서면 비로봉 정상이다. 커다란 정상석이 있으며 좌측으로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의자가 있는 쉼터가 있다. 두 여사님은 이곳에서 쉬고 있으라 하고 예전에 효령봉에서 올라와서 보았던 삼각점을 찍기 위해 좌측으로 잠시 가니 목책을 쳐서 막아 놓았다. 옆으로 돌아서 가는 길을 따라 잠시 가니 역시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문이 있다. 해발 1565.4m가 적혀있다. 잠시후 다시 비로봉 쉼터로 돌아와 두여사님과 간식으로 준비한 절편으로 허기도 면하고 커피도 한잔씩 마시고 과일도 먹고 뒤에 올라오는 님들 사진도 찍어주며 35분 가량을 쉬어 간다. 오대산 정상에 올라오니 구름이 꽉 끼여 멋진 조망은 볼수 없어 아쉽다.

 

상왕봉(정상석, 두로령1.9km이정표, 7.2km, 1493m) 11:47

비로봉 정상에서 두로령 방향으로 향한다. 이 길은 3번째 걷는 것 같다. 새벽까지 비가 와서 인지 길이 질컥거린다. 이리저리 덜한 곳으로 진흙길을 따라 걷는다. 거의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은 날씨만 좋다면 기분좋게 걸을 수 있는 길인데 먹구름이 몰려와 별로다. 대전에서 왔다는 내외분은 구름이 걷히면 오겠다고 기다리고 있는대 쉽사리 구름이 걷히지는 않을 것 같다. 10분을 조금 못 가서 헬기장이 나온다. 비로봉 0.5km, 상왕봉 1.8km가 적혀있으며 오대01-08지점 표지목이 있다. 이후 다시 진흙길을 따라 진행하면 두 번째 헬기장에 닿는다. 이곳부터는 내리막 침목계단을 따라 내려서는대 진흙이 많이 묻어 있고 물기도 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내려서는 길에는 굵직한 주목나무가 다수 있는 지점이다. 다시 데크계단을 내려서고 이후 오대01-09지점 표지목을 지나 진흙길을 따라 내려서고 침목계단을 따라 내려서서 평탄하게 이어지는 진흙길을 따라 가면 안부 지점에 상왕봉 0.9km가 적혀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후 서서히 오르는 진흙길을 따라 가면 빙 둘러 줄을 쳐놓은 굵직한 고목나무앞 오대 01-10번 표지목을 지난다. 다시 한동안 올라서면 11번 표지목과 상왕봉 0.3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고 이후 오르막 침목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서면 상왕봉정상에 닿는다. 여기도 통나무를 잘라서 만든 의자가 여럿있는 쉼터가 있고 이정표에는 비로봉 2.3km, 두로령 1.9km가 적혀 있다. 여기도 정상석이 있어 인증사진 찍는다.

 

임도 이정표(탐방지원센타4.6km, 두로령1.8km, 미륵암 0.4km 9.1km, 1255m) 12:24

상왕봉에서 내리막 돌길을 따라 내려서면 오대 01-12번 표지목이 나오고 이어지는 내리막길을 따라 진행하니 보슬비가 오기 시작한다. 비를 맞으며 진행하여 13번 표지목을 지나면 금시 북대 삼거리 이정표가 나온다. 두로령 0.9km, 북대 미륵암 1.5km가 적혀있다. 두로령으로 가는 길은 지금은 한강기맥을 거의 하지 않는지 길이 이제 풀이 수북히 자랐고 우측으로 미륵암 방향으로 가는 사면길은 등산객들이 많이 다녀서 확실하다. 이제 우측으로 사면길을 따라 진행하면 10여분후 탐방지원센타 5.6km등이 적혀있는 이정표가 나오며 서서히 내려서는 능선길이다. 이제 보슬비도 그치고 간혹 파란하늘이 나오기도 한다. 올해 오대산 단풍은 곱게 물들지는 않았어도 주변의 신갈나무잎이 누렇게 변색이 되어 그나마 단풍산행의 맛이 난다. 이번 오대산 단풍은 크게 볼 것은 없다. 색도 좋지를 않고 벌써 잎이 다지는 상태다. 오대 01-14번 표지목을 지나고 이쯤인가 좀 더 지나서인가 좌측으로 풀이 수북한 샛길이 보이는대 그냥 지나쳣는대 나중에 보니 그샛길이 북대 미륵암으로 빠지는 길이 었다. 이후 능선길을 따라 쭈욱 내려서면 임도 이정표에 닿는다. 탐방지원센타 4.6km, 미륵암 0.4km, 두로령 1.8km등이 적혀 있다. 미륵암에서 0.4km를 내려온 지점에서 임도길과 만나게 등산로가 되어 있다.

 

상원사 주차장(13.8km, 850m) 13:20 ~13:50(중식)

이제 널찍한 임도길을 따라 내려선다. 임도길로 내려서며 뒤돌아보니 미륵암이 보인다. 주변으로 단풍나무도 있고 갈색으로 변한 주변의 색상이 곱다. 이후 잠시 더 내려서면 능선의 좌사면으로 내려서던 임도길이 이제 능선의 우 사면으로 넘어서서 내려서기 시작한다. 지루한 길이지만 두 여사님이 도란도란 애기를 하며 얼마나 빨리 내려가는지 뒤따라가기 버겁다. 얼마를 내려가니 탐방지원센타 2.9km가 적혀있는 이정표가 나오고 다시 8분여 내려서니 탐방지원센타 1.9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후 송신탑이 좌측으로 있고 여기서 주차장으로 직선으로 내려서는 길을 만들면 금시 가겠는대 길은 꼬불꼬불 돌고 돌아가며 내려선다. 탐방지원센타 1.6km이정표를 지나고 이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임도길은 좌측으로 급하게 꺽이며 직선으로 내려서기 시작한다. 좌측으로는 계곡 물이 흐른다. 이렇게 내려서면 탐방지원센타 0.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난후 마지막 차단기 앞을 지나서 좌측으로 이동을 하면 상원사 주차장이다. 아침에 올때는 거의 텅비어 있었는대 대형버스 승용차등으로 꽉차 있다.

 

돌아오는 길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안에서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하고 상원사 주차장을 13시 50분 출발한다. 월정사까지 내려오는 비포장길에도 마주 오는 차량이 많아 올라올 때처럼 빠르게 갈수는 없다. 이후 월정사를 지나고 아스팔트길에 닿고 나서 차량이 원활하게 달리기 시작하여 속사 톨게이트를 14시 30분 진입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오늘 따라 도로공사 하는 곳이 여러군데 있어 차량이 거의 서 있는 상태가 지속되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음성휴게소에서 한번 쉬고 가려 한것인대 시간이 지체가 되어 여주 휴게소에서 휴식후 다시 고속도로에 진입하니 에고 여기도 만만치 않다. 거의 호법분기점까지는 차량이 정체가 된다. 이후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하여 열심히 달려 오창 톨게이트로 빠져나와 청주 내덕동 핸드폰가게에 들렀다가 집에 도착을 하니 18시 10분이다.

오늘도 무사히 오대산 산행을 마쳤다.

 

산행시간 : 5시간 05분 소요

산행거리 : 13.8km

 

연료비 : 4만 5000원

고속도로 통행료 : 갈 때 9400원+ 올 때 9100원 = 18500원

주차료 : 6000원

아침식사 : 순두부 2인 16000+소고기 비빔밥 10000 =2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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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진부 오대산 비로봉1565.3m~상왕봉1493m

 

청주 ~상원사 주차장 : 220km, 3시간 통행료 10200, 무료 233km 3시간 40

주차료 : 국립공원입구 매표소에서 선결재(6000)

 

코스 : 상원사주차장-중대사자암-적멸보궁삼거리-비로봉-상왕봉-상원사주차장

거리 : 10.9

소요시간 : 5시간30(휴식시간 포함)

***주차장 ~비로봉 3.8km 1시간 30, 비로봉~상왕봉 2.3km 1시간, 상왕봉~ 상왕봉 삼거리 0.7km, 상왕봉 삼거리~미륵암(북대) 1.1km, 북대~상원사 주차장 :5km 1시간 30

 

등산 경로

상원사 주차장 상원사 적멸보궁 비로봉 상왕봉 상원사 주차장(원점회귀, 12.4km, 5~6시간 소요)

 

예전 한강기맥 산행때 (2017.6.20.)

호령봉(16.88km,약1566m) 02:20 ~02:32 -헬기장(17.67km,약1532m) 02:52 -우측 서대사 하산로(17.71km) 02:55 -헬기장(18.27km,약1520m) 03:11 -삼각점(18.82km) 03:30 -우측 하산로(18.90km) 03:32 -목책03:34 -오대산 비로봉 정상석(18.98km,약1563.4m) 03:35 ~03:45 -헬기장(19.47km,약1542m) 03:55 -헬기장(19.69km,약1537m) 03:59 -주목나무04:05 -비오기 시작-헬기장(20.88km,약1463m) 04:30 -상왕봉(21.21km, 1493m) 04:40 -약1410봉04:55 -북대사 삼거리(22.0km) 05:01 -헬기장(22.14km,약1410m) 05:07 -헬기장(22.40km,약1460m) 05:12 -두로령(23.06km,약1300m) 05:27~05:32 -헬기장(23.64km,약1320m) 05:45 -동대산 삼거리(24.65km) 06:07 -두로봉(24.75km,약1422m) 06:10 ~0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