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왕의 길 ~함월산(584m)
2026.09.23. 화요일 흐림(구름)
참석인원 : 마나님이랑 둘이서
청주 집 05:00 – 강서 하이패스 – 낙동강의성휴게소 06:00 – 화산톨게이트(분기점, 통행료 10100원) 06:37 – 포항톨게이트(통행료2100원) 07:01 – 동경주 톨게이트(통행료1440원) 07:25 – 기림사 주차장(해발 약100m) 07:40 ~08:10(아침식사) - 기림사 관람 08:15 ~08:22 – 세멘트길 앞 이정표(사거리, 0.980km, 약150m) 08:28 – 경주 국립공원 지킴터(1.2km, 약150m) 08:31 – 세멘트 다리(1.7km, 약155m) 08:39 – 용연폭포(1.8km, 약160m) 08:42 – 개울 건너 이정표(2.4km, 약185m) 08:51 – 구름다리 앞 임도 삼거리(좌측으로, 2.5km, 약200m) 08:54 – 서서히 오르는 야자메트길 – 경주 26-07번 표지목(3.0km, 약246m) 09:04 – 서서히 오르는 야자메트길 – 우측으로 방향 꺽여서 널찍한 오르막 침목계단길 – 능선 이정표(불령봉표, 3.4km, 약285m) 09:12 – 잠시 내리막길 – 평탄한 좌 사면길 – 경주 26-06번 표지목(3.9km, 약277m) 09:22 – 수랫재 1.0km 이정표(4.3km, 약270m) 09:33 – 경주 25-05번 표지목(4.5km, 약288m) 09:37 – 작은 개울건너고 – 잠시 계곡물길 우측길 따라 진행 – 서서히 오르는 길 – 목교 건너 쉼터, 수랫재 0.5km 이정표(4.8km, 약310m) 09:43 ~09:53 – 돌다리 건너고 – 서서히 오르는 길 – 세수방 표지판(5.2km, 약335m) 10:01 – 26-4번 표지목(5.3km, 약351m) 10:04 – 오르막 목봉 로프길 – 수랫재 이정표(5.7km, 약405m) 10:15 – 묵묘(5.9km, 약460m) 10:25 – 해발 약520봉(6.1km) 10:36 – 잠시 내려서고 – 서서히 올라 – 해발 약549.8봉 표지판(좌측으로 조망바위, 6.4km) 10:44 ~10:54 – 함월산 정상(작은 정상석, 7.1km, 약584m) 11:09 ~11:21 – 우측 능선 따라 진행 – 잠시 평탄한길 – 내리막 가파른길 – 능선에서 좌측으로(8.3km, 약435m) 12:05 – 골짜기로 내려서면 길 찾기 어려움 – 마지막 개울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면 길 나옴(9.4km, 약275m) 12:27 – 고사리밭앞 산소 12:29 – 이후 임도길 따라 진행 – 구름다리앞 삼거리 이정표 (10.5km, 약200m) 12:45 – 세멘트 다리 12:46 – 용연폭포앞(11.1km, 약160m) 12:52 – 세멘트 다리 – 국립공원 지킴터(11.8km, 약150m) 12:59 – 세멘트길 사거리앞 이정표(12.0km, 약150m) 13:01 – 기림사 – 기림사 주차장(12.8km, 약100m) 13:10 ~13:40(중식) - 오천교차로 14:02 – 포항 톨게이트 14:16 – 화산분기점,톨게이트(***3000원) 14:41 – 낙동톨게이트(통행료 8400원) 12:29 – 속리산 휴게소(연료 1만원 보충) 15:45 ~15:55 – 청주 톨게이트(통행료 4000원) 16:27 – 다농마트 16:47 ~17:40 – 청주 집 18:20
~~~~~~~~~~~~~~~~~~~~~~~~~~~~~~~~~~~~~~~~~~~~~~~~~~~~~~~~~~~~~~~~~~~~~~~~~~~~~~~~~~~~~~~~~~



○함월산(含月山,584M)은 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호암리에 있는 산이다. ‘
달을 머금은 산'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일설에는 천(天)의 본뜻인 '한밝'이 한박(寒朴) 혹은 함박(含朴)으로 되었으며 함월(含月), 즉 함달[含月]도 함박에서 분화된 말이라고 한다. 이곳 함월산의 남쪽은 추령(楸嶺)을 지나 토함산(吐含山), 북쪽은 운제산(雲悌山)으로 이어진다. 정상 부근은 바위가 많아 험준하지만 대부분 완만한 능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망이 좋아 정상에 서면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보물 제833호), 건칠보살좌상(보물 제415호), 삼신불(보물 제958호), 복장유물(보물 제959호) 등이 소장된 신라의 유서 깊은 절 기림사(祇林寺)와 암벽에 마애여래좌상(보물 제581호)을 새겨놓은 석굴사원 골굴사(骨窟寺)가 있다.
경주 함월산(584m)은 경주국립공원 토함산지구에 속하며 추령을 사이에 두고 토함산과 마주하고 있다. 추령의 모차골은 ‘신문왕 호국 행차길(왕의 길)’의 시작점.‘함월산(含月山)’은 ‘달은 품은 산’이라는 뜻이니 이름만 갖고도 풍류가 넘쳐난다. 무엇보다도 고찰 ‘기림사(祇林寺)’와 ‘골굴사(骨窟寺)’를 품고 있고, 지역신문에도 소개되어 더욱 알려진 산이다. 기림사는 불국사의 말사로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天竺國)의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 ‘임정사(林井寺)’라 불렀다. 원효가 중창하여 기림사로 개칭하였고, 철종 13년(1862)에 불이 났으나 대적광전(보물 제833호)만 화를 면했다. 기림사엔 보물 5점과 지방문화재 2점, 문화재자료 3점이 있다.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보물 제415호), 대적광전(보물 제833호), 소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 제958호), 소조비로자나불 복장전적(보물 제959호), 비로자나삼불회도(보물 제1611호)가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는 경주 기림사 삼층석탑(제205호)과 응진전(제214호)이고, 문화재자료는 경주 기림사 진남루(제251호)와 약사전(제252호), 기림사 소장 유물 (제301호)이 있다.
함월산엔 ‘신문왕 호국행차길(왕의 길)’이라는 테마 걷기길이 있다. 이 길은 신문왕이 아버지가 잠든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간 길로서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은 한번 불면 나라의 모든 근심·걱정이 해결된다는 신라 전설상의 피리. 궁궐을 출발한 신문왕의 행차는 수렛재를 넘어 용의 전설을 품고 있는 용연폭포를 지나 기림사에 이르게 된다. ‘대왕암’은 681년 문무왕이 죽자 동해의 용이 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며 잠든 곳. 다음 해에 감은사(感恩寺)를 지어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도록 만들었다. ‘대왕암’은‘경주 대왕암(문무대왕릉)’과‘울산 대왕암’이 지자체끼리 서로 치열한 각축전을 벌인다. 경주 대왕암이 문무대왕릉이라면 울산 대왕암은 문무대왕비의 수중릉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 산길엔 생소한 이름들이 나온다. ‘모차골’은 마차가 다닌 곳이라해서, ‘수렛재’는 수레가 넘어다닌 고개라서 생긴 이름. ‘말구부리’는 경사길에서 수레를 끄는 말들이 구부러져서이고, ‘세수방’은 신문왕이 잠시 쉬며 손을 씻었다고 붙은 이름. 한편 그 길목에는 조선 순조 때 입산을 금지한다고 새겨진 ‘불령봉표(佛嶺封標)’도 있다.
○기림사(祇林寺)는 경북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含月山)에 있는 삼국시대 천축국의 승려 광유가 창건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이다. 643년(선덕여왕 12) 천축국(天竺國)의 승려 광유(光有)가 창건하여 임정사(林井寺)라 부르던 것을, 뒤에 원효(元曉)가 중창하여 머물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란 부처님 생존 때에 세워졌던 인도의 기원정사(祈園精舍)를 뜻한다.
신라 신문왕은 대왕암(大王巖)에 다녀오던 길에 이 절의 서쪽 계곡에서 점심을 들었으며, 고려 말의 각유(覺猷)는 이 절의 주지로 있었다. 그 뒤 1578년(선조 11)에 축선(竺禪)이 중건하였고, 정조 때에는 경주부윤 김광묵(金光默)이 사재를 희사하여 크게 중수하였다.
1862년(철종 13)에는 대화재로 113칸의 당우가 재가 되었으나, 이듬해 봄에 사찰의 승려들이 부윤 송우화(宋迂和) 등의 시주를 받아 공사를 시작하여 가을에 복원하였다. 그 뒤 1878년(고종 15)의 중수를 거쳐 1905년에는 혜훈(慧訓)이 다시 중수하였다. 31본산시대에는 월성군 일대를 관장하였으나, 현재는 불국사에 그자리를 물려주었다.
조선시대에는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중심으로 동쪽에 약사전, 서쪽에 오백나한전과 정광여래사리각(正光如來舍利閣)인 삼층전(三層殿)이 있었으며, 남쪽에는 무량수각과 진남루(鎭南樓)가 있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대적광전을 중심에 두고, 왼쪽에 약사전, 오른쪽에 응진전(應眞殿), 앞쪽에 진남루가 사각의 성지를 이루고 있고, 뜰에는 삼층석탑과 새로 조성한 석등이 있다.
조금 떨어져 명부전·삼성각·관음전·산신각·주지실·종무소·요사채·산문(山門)·창고 등이 있으며, 특히 대방(大房)은 2동이 모두 중후하다. 그 밖에 김시습의 사당이 있다.
이들 당우 중에서 대적광전은 절의 본당으로 내부에는 전단토상(栴檀土像)의 비로자나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이 불상은 중원(中原)의 장인이 조성하였다 하며, 불상 조성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1986년 9월에 가운데 주존불의 복장에서 『대반야경』 등 금·은 사경 14권과 조선시대에 만든 불경, 부처님 진신사리 4과 등이 발견되었다.
또, 약사전에는 약사삼존상과 사천왕상, 사라수왕(沙羅樹王)의 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탱화는 기림사 창건의 연기설화를 보여 주는 특이한 불화로서 근래 이를 모사하여 다시 그렸다. 이 밖에도 응진전 안에는 오백나한상이 봉안되어 있다.
문화재로는 1965년 보물로 지정된 경주 기림사 건칠보살반가상과 목탑지(木塔址)·석조치미(石造치尾)·문적(文籍) 등이 있다. 이 중에서 석조치미는 화강암으로 만든 것으로 화문(花紋) 장식이 있으며, 신라 때의 것으로추정된다.
또, 문적 중에는 『경상도영주제명기(慶尙道營主題名記)』·『동도역세제자기(東都歷世諸子記)』·『부호장생생가(府戶長生生家)』 등이 있다.
이들은 경상도와 경주의 행정에 관한 것과 행정관에 대한 인적사항, 신라 이후의 지방제도의 변혁 등을 기록한 중요한 문헌들이다. 또, 이 절에는 조선 역대 왕들의 어필도 보관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석비 모양의 나무에 사적을 기록한 목비가 전한다.
이 절에는 원래 오정수(五井水)가 유명하였다고 한다. 그 중 장군수(將軍水)는 마시면 힘이 용솟음친다 하여 인근에 널리 알려졌는데, 조선시대 어떤 사람이 이곳에서 역적모의를 하다가 발각된 뒤 나라에서 샘을 메워버렸다고 한다.
나한전 앞쪽 탑 자리에도 샘이 있었다고 하나 이미 자취를 감추었고, 또 하나는 절 입구에 있었으나 최근 도로확장 때 매몰되었으며, 현재는 큰 방 옆과 아랫마을에만 보존되어 있다.
이 절에는 또한 천년에 한 번 핀다는 ‘우담바라’라는 한약초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실은 한방서에도 그기록이 있다.
달을 품은 산, ‘왕의 길’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
아버지의 수중릉 찾아 나선 신문왕 호국행차길
추령터널과 기림사를 잇는 왕의 길은 함월산 아랫자락을 잇는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고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아버지 문무왕의 묘를 찾아가는 길이자 나라를 구원할 힘을 얻은 길이다.
처음엔 신문왕길 혹은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공식적으로 왕의 길로 부르고 있다.
신문왕은 신라 31대 임금으로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의 맏아들이다. 삼국통일 이후 정세를 안정시키고 강력한 전제왕권을 확립한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681년 아버지인 문무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을 당시 신라는 겉으로는 평온한 듯 보였지만 안으로는 통일 후의 긴장과 귀족들과의 갈등으로 고군분투하던 시절이었다.
《삼국사기》에 전하길, “근자에 와서 도의가 사라진 상태에서 왕위에 있다 보니 정의가 하늘의 뜻과 달라, 천문에 괴변이 나타나고 해와 별은 빛을 잃어가니 무섭고 두려움이 마치 깊은 못이나 계곡에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신문왕이 종묘에 제사를 지내며 조상들에게 바친 제문의 내용이다. 그만큼 통일 직후였던 당시는 귀족들의 반란이 끊이지 않고 외부와의 전쟁 위험도 있어 나라를 다스리기에 어려운 시기였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신문왕은 즉위 다음해인 682년에 아버지 문무왕의 수중릉이 있는 동해바다에 갔다가 용을 만나 만파식적과 옥으로 만든 허리띠를 얻었다. 대나무로 만든 피리인 만파식적을 불면 적병이 물러나고 병이 나으며, 가물 때는 비가 오고 비가 올 때는 날이 개는 등 신비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만큼 나라의 평화와 안녕이 절실했다. 만파식적은 신문왕의 왕권 강화와 정세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설화였을 테다.
그러니까 이 길은 신문왕이 마차를 타고 아버지 문무왕의 묘를 찾아가는 길이자 나라를 구원할 힘을 얻은 길이다. 또 이보다 앞서 문무왕의 장례 행렬이 지나간 길이기도 하다. 처음엔 신문왕길 혹은 신문왕 호국행차길이라 불리다가 현재는 공식적으로 왕의 길로 불리고 있다. 비단 신문왕만 다니지는 않았을 테고, 여러 왕들이 동해로 행차하며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라는 추측에 따른 것이다.
더위 씻어주는 시원한 숲, 용이 승천하는 용연폭포
초입에서 숲길은 야생미가 넘쳐흐른다. 아이 키만 한 개망초가 길을 수놓고 옆으로 흐르는 계곡은 끊임없이 길을 따라온다. 작은 계곡을 건너는 일만도 수십 번이다. 한여름으로 접어들면서 숲은 온갖 식물과 갖가지 곤충, 개구리같이 작은 동물들을 무수히 키워내고 있다. 높은 나무에서 매미가 울어대고, 계곡은 졸졸졸 마르지 않고 흐른다.
가는 길은 내내 이런 풍경이다. 온갖 나무와 식물이 한여름에도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숲에 폭 안기는 느낌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이 길에 들어서면 시원하다. 삼림욕이 거저다. 길은 초입에는 사람 하나 지나다닐 만한 오솔길이었다가 이내 마차와 수레가 지나다녔을 만큼 널찍해진다. 걷다 보면 다양한 이정표를 만난다. 수레가 넘어 다녔다는 수렛재, 급한 경사에서 수레를 끌던 말들이 굴렀다는 말구부리, 신문왕이 잠시 손을 씻으며 쉬어 갔다는 세수방,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한 불령봉표를 거쳐 가며 옛길을 상상한다.
길은 용연폭포에 이르러 절정을 맞는다. 신문왕이 만파식적과 함께 얻은 옥허리띠의 한 조각을 물에 넣자 용이 돼 승천하며 이 폭포가 만들어졌다고 전한다. 폭포는 근처에만 가도 서늘한 기운을 뿜어낸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의 위용이 대단하다. 굳이 물에 들어가지 않아도 한여름 더위가 씻겨 내려간다. 발이라도 담그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상수원 보호구역이라 입수는 금지되어 있다. 차가운 물에 손과 얼굴을 씻으며 만족할밖에. 폭포 곁에 오래 머무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랜다.
용연폭포에서 800m가량 내려가면 불국사보다 먼저 지어졌다는 고사찰 기림사를 만나게 된다. 비로자나불이 있는 기림사 넓은 경내를 한 바퀴 휘 둘러보며 도보여행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처음 왔던 길로 되돌아가도 되고, 시내로 나가는 버스를 타도 된다. 구간이 길지 않아 왕복해도 8km이니 하루 코스로 적당하다.
[출처]달을 품은 산, ‘왕의 길’을 받들다, 경주 함월산 왕의 길|작성자새오늘
~~~~~~~~~~~~~~~~~~~~~~~~~~~~~~~~~~~~~~~~~~~~~~~~~~~~~~~~~~~~~~~~~~~~~~~~~~~~~~~~~~~~~~~~~~~






청주 집 05:00
오늘은 경주에 있는 함월산을 가기로 한다. 오래전 이곳은 토함산에서 추령을 거쳐 함월산, 무장산까지 진행한후 시간상 도저히 운제산까지는 갈 여력이 없어 무장산에서 암곡으로 하산을 하였던 곳이다. 그때 운토종주를 실패를 한후 오천에서 오어지로 들어가 운제산~시루봉 산행을 했던 곳이다. 그 이후 찾지 않다가 이번에 함월산 ‘왕의 길’이 유명하다해서 산악회에서 많이 찾기에 왕의 길 일부나마 걸어보고자 함월산 기림사로 가기로 한다. 왕의 길은 대부분 토함산 아래 고개인 추령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림사로 하산을 하는대 우리는 기림사에서 시작하여 수랫재에서 함월산에 오르고 계곡길을 따라 원점으로 돌아오는 산행을 하기로 한다. 오늘도 집에서 05시 출발한다.
기림사 주차장(해발 약100m) 07:40 ~08:10(아침식사)
청주 집을 출발하여 강서하이패스로 진입하여 고속도로에 진입한후 남이분기점에서 상주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대략 1시간을 달리니 낙동강을 건너 낙동강의성 휴게소를 지난다. 이후 진행을 하면 우측으로 대구 팔공산이 보이고 영천을 지난후 화산분기점에서 통행료 10100원을 지불하고 다시 포항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30여분후 포항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통행료 2100원이 나온다. 이후 진행을 하여 울산으로 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동경주로 빠져 나오니 통행료 1440원이 추가 된다. 이후 좁다란 길을 따라 진행하여 경주 방향으로 달리니 도중에 공사구간이 많아 지체가 된다. 이곳이 수해가 심했던 지역인 것 같다. 이렇게 진행을 하여 기림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07시 40분이다.
경주 국립공원 지킴터(1.2km, 약150m) 08:31
기림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니 상사화가 주변으로 이쁘게 피었다. 요즘 사찰에서는 상사화를 많이 심어 어느사찰을 가던 상사화를 많이 볼 수 있다. 일단 주차장에 도착하여 아침식사부터 한다. 30여분 식사후 물과 간단한 먹거리만 준비를 한후 산행을 시작한다. 기림사 주차장 바로 옆으로 일주문이 있으며 일주문을 지나면 서서히 오르는 길옆으로는 고목나무와 상사화가 반긴다. 대략 200m가량을 올라서면 기림사입구에 닿는다. 커다란 노송아래로 남방 명안수 안내도가 있다. 이절에 유명한 오정수의 하나로 마시면 눈이 밝아진다는 약수인데 도로 공사로 인하여 땅속에 묻혔다고 한다. 이후 천왕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좌측으로 샘터가 있고, 기림사의 연혁이 적혀 있다. 기림사는 신라시대때의 사찰이나 앞쪽에 보이는 대적광전은 조선후기에 지었으며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고 적혀있다. 좌측으로 응진전이 있으며 응진전 앞쪽에 신라시대 때의 작품이라고 하는 삼층석탑이 있다. 우측으로 약사전이 있으며 좌측으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커다란 건물의 삼천불전이 있다. 이후 관음전 삼성각이 있는 곳을 지나 뒷문으로 빠져나가면 앞쪽으로 신문와 호국행차길(왕의길)안내도가 커다랗게 서 있다. 여기서 양쪽으로 길이 갈리는대 어느길이건 세멘트도로 옆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만난다. 여기 이정표에 기림사주차장 0.9km, 용연폭포 0.8km, 모차골 5.1km가 적혀있다. 이제 이정표가 기리키는 방향으로 용연폭포를 향해 가면 200m가량을 진행하여 국립공원 지킴터에 닿는다. 아직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아무도 보이지는 않는다.
구름다리 앞 임도 삼거리(좌측으로, 2.5km, 약200m) 08:54
국립공원 지킴터를 지나면서도 길은 좋다. 널찍한 임도길을 따라 진행한다. 우거진 숲길을 따라 7분여 진행을 하니 앞쪽으로 바위절벽이 높다랗게 서 있는 앞쪽으로 세멘트다리가 나오고 이후 좀 더 가면 용연폭포가 나온다. 좌측으로 데크길을 따라 가면 용연폭포가 정면으로 잘보인다.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여기서 모차골 이정표를 가면 된다. 원길은 낙석으로 막아 놓았으며 새로 낸길로 야자메트를 깔아 놓았다. 거리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이후 임도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서서 용연폭포위쪽 지점을 지나고 이후 임도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폭포에서 10여분후 폭포로 내려가는 물길을 건너 이정표가 나온다. 모차골 3.9km, 수랫재 2.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3분여 더 가면 앞쪽으로 개울을 건너는 구름다리가 나오고 이정표가 있다. 용연폭포 0.2km. 모차골 3.9km가 적혀있다. 이곳에서 좌측편 임도길을 따라 간다. 우측편 임도길은 내려올 때 길이다.
수랫재 0.5km 이정표(4.8km, 약310m) 09:43 ~09:53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는 길이 왕의 길이다. 이정표에는 모차골이라 되어 있다. 마나님이 모차골이 뭐냐고 묻는대 모른다고 했다. 나중에 보니 모차골은 마차가 다니던 길이라고 되어 있다. 서서히 오르는 널찍한 왕의 길에는 야자메트가 깔려 있어 푹신하다. 10여분을 오르니 경주 26-07번 표지목이 나온다. 해발 245m가 적혀있다. 이곳에서 다시 서서히 오르는 야자메트길을 따라 진행하면 길이 우측으로 방향이 꺽이며 좁다란 산길을 따라 오른다. 중간쯤 부터는 널찍하게 놓여 있는 침목계단을 따라 올라서서 능선 이정표가 있는 고갯마루에 닿는다. 수랫재 1.6km, 모차골 3.0km가 적혀 있으며 불령봉표가 있는 곳이다. 불령봉표는 순조의 아들을 모신 연경묘에 쓰일 향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니 일반인의 출입을 금한다는 뜻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곳은 함월산 정상에서 능선을 따라 와 만나는 곳이기도 하다. 이제 이곳에서 잠시 내려서서 평탄하게 이어지는 좌 사면길을 따라 계속 이어간다. 우측 산으로는 사유지로 송이채취 구역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현수막이 몇군데 쳐져 있다. 대부분 평탄하게 이어지는 길을 따라 진행하면 경주 26-06번 표지목도 지나고 수랫재 1.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도 지난후 경주 25-05번 표지목을 지나면 작은 개울을 건너고 이후 우측으로 방향이 꺽여 시원한 물이 내려오는 계곡의 암반 우측으로 난길을 따라 잠시 올라서면 다시 서서히 오르는 길이다. 이후 목교를 건넌후 잠시 가면 쉼터가 나온다. 수랫재 0.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있는 곳이다. 여러개의 돌을 놓아서 빙둘러 앉아 쉴수 있도록 한곳이다. 주변으로는 예전에 전답으로 쓰였는재 계단을 쌓은 돌들 축대가 많이 보이는 곳이다.
수랫재 이정표(5.7km, 약405m) 10:15
목교 건너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간식도 들고 차도 한잔씩 마시고 휴식후 다시 진행을 하면 금시 돌다리를 건넌다. 이후 서서히 오르는 길 옆으로는 밤나무가 많다. 밤톨 몇 개를 줍느라 시간이 좀 걸린다. 널찍한 예전 전답자리로 안쪽으로 들어가니 세수방 안내문이 있다. 이 일대를 세수방 혹은 세수뱅이라 하며 세수방이란 이름은 신라 신문왕이 만파식적 대나무와 용왕이 건네는 옥좌를 얻어 서라벌로 돌아갈 때 세수를 하며 쉬어간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이곳에서 조금 위쪽으로 올라가니 숯가마터가 있고 이후 26-4번 표지목을 지난후 서서히 오르면 이제 마지막 지점에는 목봉에 설치한 로프길이다. 천천히 올라서면 그 끝에 수랫재가 나온다. 이곳 이정표에 용연폭포 2.5km, 모차골 1.4km가 적혀있다. 모차골로 가는 왕의 길은 널찍한 길이지만 능선길은 양쪽다 막아 놓았다. 운토종주길이기도 한 능선길로 빠질까봐 막아 놓은 것 같다. 여기에 지명에 대한 설명이 있다. 모차골은 수래가 넘던 길이라 해서 수랫재 말구부리 세수방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또한 이곳에 등산안내도가 있으니 참조하면 되겠다.
함월산 정상(작은 정상석, 7.1km, 약584m) 11:09 ~11:21
수랫재에서 처음부터 계획햇던 대로 우리는 우측 능선을 따라 함월산으로 향한다. 서서히 오르는 잡목길로 등산로는 확실하다. 잠시 오르면 묵묘가 나오고 이후 서서히 올라서서 해발 약520봉에 닿는다. 이후 조금 내려선후 천천히 능선을 따라 올라서면 지도에 조망이라 적혀 있는 지도의 해발 549.8봉이다. 이곳에는 호미지맥 549.8m가 적힌 표지판이 있다. 호미지맥은 첫구간을 하고는 그만두었는대 새롭다. 이봉 좌측으로 뾰족하게 솟은 작은 바위가 있다. 이곳에서 앞쪽으로 무장산, 토함산등이 조망이 된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후 다시 진행을 하면 잠시 내려서고 올라서서 바위봉에 닿고 평탄한 길을 따라 쭈욱 진행하여 마지막길을 따라 올라서면 함월산 정상이다. 작은 막대형 정상석과 각목으로 된 정상목이 같이 서 있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준비해온 간식을 들고 하산을 한다.
고사리밭앞 산소 12:29
함월산에서 좌측으로 가면 무장산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가면 불령봉표가 있던 고개로 내려서기도 하고 중간에서 좌측으로 빠져 계곡을 따라 갈수도 있다. 우리는 일단 능선을 따라 하산을 하기 시작한다. 첫머리는 평탄하니 진행이 되지만 이후 가파르게 내려서는 능선길이다. 가파른길을 내려서고 평탄해진 길을 따라 한동안 가면 좌측으로 내려서는 길 입구에 표지기 여러기가 걸려 있다. 예정한대로 이곳으로 내려서서 계곡길을 따라 진행하여 임도를 따라 가려 한다. 잠시 내려서면 계곡에 닿는다. 첫머리는 길이 그런대로 보이지만 잠시 가면 길이 점차 희미해지고 없어지다 시피 한다. 빗물에 쓸리기도 하고 그리 많이 다니지를 않은 길이라 길찾는대 주의를 하며 진행한다. 작은 계류를 두 번쯤 건너며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길이 없어져서 안보일쯤 우측편으로 푹 파여진 계곡을 넘어가면 오랜만에 표지기 하나가 보이며 임도길인 듯 조금 널찍한 길이 나온다. 이제 이 길을 따라 1~2분을 가니 우측으로 고사리밭이 있고, 좌측아래로 벌초를 깨끗이한 산소가 나온다.
기림사 주차장(12.8km, 약100m) 13:10 ~13:40(중식)
이제 임도길만 따라 가면 된다. 비가 많이 와서 파여진 부분도 많이 보인다. 지루하게 걷다보면 좌측으로 민가로 보이는 건물이 보일쯔음 길이 좋아지면 잠시후 임도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길이 양쪽으로 갈리던 구름다리 앞 삼거리 이정표에 닿는다. 이곳에서 개울을 건너 기림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후 세멘트 다리를 건너고 용연폭포 위쪽을 지난후 용연폭포 앞에 닿는다. 이후 진행을 하면 바위벽아래 세멘트 다리를 건너고 잠시 올라선후 널찍한 공터를 지난후 임도길을 따라 나오면 국립공원 지킴터에 닿는다. 2명이 근무를 서고 있다. 이후 임도를 따라 나오면 세멘트 포장도로옆 이정표에 닿고 직진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기림사 뒤편으로 진입하여 기림사를 경유해서 기림사 주차장에 도착을 하며 오늘 산행을 마감한다. 산을 그리 이쁘지는 안치만 왕의길이라는 멋진 이름이 붙어 있어 모처럼 경주의 산을 찾았다.
돌아오는 길
기림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한후 올 때와 다른 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운제산이 있는 오천 교차로에서 큰길로 진입하여 포항톨게이트를 지나고 화산분기점 톨게이트에는 통행료 3000원이 표시되는대 이곳에서는 찍히지 않고 50여분간 진행한후 낙동톨게이트에서 통행료 8400원이 찍힌다. 이후 속리산 휴게소에서 연료가 부족해서 1만원 채우고 다시 진행하여 청주 톨게이트로 빠져나오니 통행료 4000원이 나온다. 이후 3차 우회도로를 따라 문암교차로로 빠져나와 다농마트에 들러 시장을 보고 1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이 걸려 집에 도착을 하니 18시 20분이다.
오늘도 먼거리 무사히 다녀 왔다.
산행시간 : 5시간
산행거리 : 12.8km
연료비 : 4만원
통행료 : 갈 때 13640원 + 올 때 12200원 = 25840원
~~~~~~~~~~~~~~~~~~~~~~~~~~~~~~~~~~~~~~~~~~~~~~~~~~~~~~~~~~~~~~~~~~~~~~~~~~~~~~~~~~~~~~~~~~~~
경주 함월산(기림사)
청주 ~기림사(경북 경주시 문무대왕면 기림로 437-17) : 249km, 3시간 통행료 12400원
기림사 주차료 : 2000원
산행코스 : 기림사 –용연폭포 –임도 갈림길 –쌍무덤 –함월산 –전망대 –수렛재 –세수방 – 모차골(왕의길) 갈림길 – 용연폭포 –기림사
산행거리 : 10.75km, 산행시간 : 4시간 10분
경주 함월산-왕의길(인자암-수렛재-함월산-아랫도통골-용연폭포-빽-불령봉표-수렛재-494.2m-원점)
- 나홀로...2019. 9. 14(토)
- 초라한 왕의 길...
- 11.32km/4시간5분(점심15분포함)




































































































'산행기(2000년 부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1650 경주 무장산624m(억새산행) 2025.09.30. 화요일 맑음 (0) | 2025.10.02 |
|---|---|
| 1649 문경,주흘산주봉(1076m)~주흘영봉(1106m)~부봉 2025.09.27.토요일 맑음 (3) | 2025.09.28 |
| 1647 완도 금당도 적벽청풍길 트레킹 2025.09.16.화요일 짙은 안개후 갬 (2) | 2025.09.18 |
| 1646 완도 금당도 5산 종주(공산~금당산~삼랑산~오봉산~봉자산) 2025.09.15.월요일 비 오후 1시부터 갬 (1) | 2025.09.18 |
| 1645 괴산 마분봉776m ~821봉 ~은티재 2025.09.12. 금요일 흐린후 비 (2) | 2025.09.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