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 지산동고분군, 만대산, 합천 핫들생태공원 작약꽃
2024. 05.14.화요일 맑음
참석인원 : 마나님이랑 둘이서
청주 집 04:55 – 강서 하이패스 05:05 –낙동분기점 05:50 – 성주 참외휴게소(아침식사) 06:28 ~06:53 – 고령 분기점 07:00 –고령 톨게이트(통행료 8700원) 07:10 –고령 지산동 고분군 주차장 07:16 ~08:40 – 고령 쌍림면 산수리 771(고령신씨 세덕비앞 주차장, 해발 약225m)09:01 ~09:10 –좌측 임도 따라 진행(차단기) - 정자앞 등산로 입구 이정표(임도 좌측으로 진입, 0.171km, 약255m) 09:14 – 첫머리 풀밭길 – 오르막 돌계단길 – 낙엽송숲 좌사면길 – 오르막 통나무계단길(만대산 등산로표지판, 0.616km, 약350m) 09:32 –능선 이정표(0.970km, 약415m) 09:41 ~09:50 –오르막 통나무계단 , 돌계단길 –통나무계단길, 돌계단길 – 노태산 삼거리(우측으로, 1.5km, 약525m) 10:05 – 능선 좌측으로 산불지역 – 의자2개 있는 쉼터봉(수도지맥 545.5m 표지판, 1.60km) 10:10 –살짝 내려섰다 오르막길 – 헬기장(2.09km, 약615m_ 10:28 –서서히 오르는 길 – 오르막 끝(2.25km, 약645m) 10:35 –평탄하게 이어지는 바위길 – 우측으로 가야산 조망터(2.38km, 약645m) 10:40 – 서서히 오르는 길- 해발 약670봉(2.58km) 10:45 – 살짝 내려서고, 오르막길 – 만대산 정상(삼각점, 삼각점 안내문, 정상표지판, 콘테이너박스, 2.89km, 약688.4m) 10:57 ~11:00 –서서히 내려는 좋은 길 –내리막 통나무게단1.2 – 신갈나무 쉼터(3.10km, 약640m) 11:05 – 내리막 통나무계단(3.31km, 약595m) 11:10 – 내리막 통나무계단(3.46km, 약555m) 11:14 – 안부 삼거리(우측 계곡 방향으로, 3.55km, 약535m) 11:17 – 내리막 통나무계단 – 임도길 이정표(좌측으로, 3.70km, 약500m) 11:22 – 우측으로 연못(3.90km, 약485m) 11:32 – 만대산 정상 1.3km 이정표(4.53km, 약390m) 11:49 – 개울건너고(→, 4.90km, 약305m) 11:56 – 좌, 우측으로 사방댐 – 정자(5.23km, 약255m) 12:03 ~12:20(중식) - 고령신씨 세덕비앞 주차장(5.40km, 약225m) 12:24 ~12:35 – 합천 핫들생태공원 작약밭 13:01 ~14:06 – 고령 톨게이트 14:28 –고령분기점 14:37 –낙동분기점 15:24 – 강서 하이패스(통행료 8700원) 16:14 – 청주집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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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대산 688.4m
만대산(萬代山)은 만대(萬代)에 영화(榮華)가 지속되기를 바라는산이다.
경북 고령군과 경남 합천군 도, 군경계이며 수도지맥 마령재에서 기미재구간 중간에 우뚝솟아있는 산이다.
고령군에서는 산주리 녹색체험마을길을조성보상사를 깃점으로 한바퀴 돌아내려올수있는 산행을 할수있도록 등산로을 조성해놓았다.
동쪽으로는노태산(魯泰山) 과 시리봉 서북쪽으로 만대산을 거처 마령재방향 수도지맥이고 동북으로는녹대산 과 연계 산행도 할 수 있다.
만대산 에는 고령신씨(高靈申氏) 시조이자 신숙주(申叔舟)의 선조인신성용의 시조묘소가 있으며 고령신씨가 이 산에 시조 묘를 쓰면서만대(萬代)에 영화(榮華)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만대산의명칭이 유래되었다고한다.
산행지: 토곡산(645.1m), 만대산(688m)
위치: 경남 합천군 합천읍, 율곡면,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이동거리 및 소요시간: 8.36km/ 4시간 40분
들머리/ 날머리: 마령재 삼거리/ 산주리마을회관
산행코스: 마령재 삼거리→성산이씨묘→준희(님) 표지판→임도삼거리→토곡산 정상→매화재(약초재배표지판)→만대산 정상(폐 컨테이너)→헬기장→지맥 갈림길→보상사 갈림길(이정목)→산주리 마을회관
만대산
경북 고령은 옛날 삼국시대에 대가야의 도읍지로 지금은 명칭마저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변경한 곳이기도 한데 경남 합천을 가르는 경계 능선에 만대산이 있다. 만대산은 그리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경남, 북의 도경계를 다니는 사람들이나 지맥 길을 다니는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지나야하는 구간이다. 만대산은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와 합천군 합천읍 내곡리, 묘산면 거산리에 걸쳐 있는 산이다. 고령신씨가 이 산에 시조 묘를 쓰면서 만대(萬代)에 영화(榮華)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만대산의 명칭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우리산줄기이야기
가야기맥
백두대간 김천 대덕산 부근 초점산에서 분기하여 수도산 단지봉 가야산두리봉 깃대봉 의상봉 비계산 두무산 합천의 마터호른 오도산 만대산 시리봉 성산 삼학리에서 황강과 낙동강이 만나 낙동강이 되는 도상거리 약105km 정도의 산줄기를 말한다.[출처/ 우리산줄기이야기]
수도지맥(修道支脈)
백두대간이 전북 무주군과 경북 김천시, 경남 거창군 등 삼도가 만나는 대덕산(大德山 1,290.9m) 남쪽의 삼도봉(일명 초점산.1250m)에서 남쪽으로 약 300m 떨어진 지점에서 시작하여 남동쪽으로 가지를 쳐 내려가며 경상남북 도계를 따라 봉산(902m), 수도산(1317m),단지봉(1,326.7m), 좌일곡령(1257.6m)을 지나 가야산을 목전에 두고 두리봉(1133m)에서 도계를 벗어나 남쪽으로 거창군과 합천군 경계를 따라 남산(1113m), 마령(1006.5m), 우두산(의상봉.1046.2m), 비계산(1130m), 88고속도로, 두무산(1038.4m), 오도산(1120m)등 1000m이상의 장쾌한 능선이 60여km 이어진다. 오도산에서 거창군과는 작별하고 온전한 합천 땅으로 들어서며 고도를 낮춰 토곡산(644m)를 지나면 다시 경상남북도계를 만나 고령군과 합천군계를 따라 만대산(688m), 시리봉(408m)을 지나 솜등산(271m)에 올라선 도계능선과는 작별하고 마지막 필봉(330m), 부수봉(317m), 성산(205.7m)을 내려서며 맥을 다한다. 수도지맥은 백두대간 삼도봉(초점산)에서 동남쪽으로 가지를 쳐 합천군 청덕면 삼학리 황강에서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103.5km의 산줄기다. 산줄기상의 봉우리는 국사봉, 봉산, 수도산, 단지봉, 두리봉, 남산, 우두산, 비학산, 두무산, 오도산, 토곡산, 만대산, 노태산, 시리봉, 솜등산, 부수봉, 필봉, 성산 등이며, 산줄기가 가두는 물줄기는 북동쪽의 대가천, 감천, 추계천, 복하천, 양화천, 가야천, 안림천 등이 있고, 남쪽의 황강(황강천, 계수천, 좌가천,석가천, 합천천 등)이 흐른다.
[출처]합천 토곡산, 만대산|작성자 꼴통 도요새
다시찾는 근교산 <343> 경북 고령 만대산
경북 고령의 만대산(688.1m)은 전인미답의 땅이다.
산꾼들조차도 아는 사람이 없는데다 국내 산하를 소개하는 이름깨나 있는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같은 이름인 강원도 원주와 횡성군 그리고 전남 해남의 만대산은 산꾼들의 땀이 밴 족적이 역력하지만 고령의 만대산은 그 흔한 산행기조차 하나 없다. 혹 뭔가 있다면 고령 신(申)씨의 세덕비와 재실(齋室)이 만대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는 것뿐.
맑고 푸른 기운이 가득한 전형적인 우리의 산하지만 마을사람들 말고는 산행다운 산행이 이뤄지지 않은 만대산.
마을 촌로가 전하는 만대산은 이랬다. 진달래가 지천으로 널려있고 멧돼지와 청설모 등 야생동물의 천국. 20, 30년전에는 산 전체가 진달래 천지였는데 근래에는 나무들이 많이 자라 예전만은 못하며 멧돼지와 청설모는 애써 가꾼 농작물을 마구 파헤쳐 마을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는 것.
근교산팀의 만대산에 대한 첫 인상은 ‘두 얼굴을 가진 산’이었다. 올라갈 땐 오랫동안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길 찾기가 어렵고 잡목과 풀 넝쿨이 산길을 가로막고 있는 원시 그대로의 산이지만 하산할 땐 계곡의 물소리가 시원한 가운데 수십 수백년된 전나무 느티나무 등이 뻗어있어 산행의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준다.
산행은 보상사~장흥 고씨 묘 등 공동묘지~안부~헬기장~만대산 정상~매화재~산속 웅덩이~고령 신씨 세덕비를 거쳐 다시 보상사 앞에 이르는 원점회귀 코스로 대략 4시간 정도 걸린다.
쌍림면 산주리 산골마을은 한 눈에 이곳이 옛 고을이었음을 알 수 있다. 500년생 은행나무가 마을 수호신으로 떡하니 버티고 서있기 때문이다. 길 왼편엔 산기슭 마을이지만 계단식논인 다랑논이 친근감을 더해준다.
시멘트길을 계속 오르면 보상사 입구 팻말이 나온다. 이곳으로 직진.주차장을 지나 경내에 들어간다. 산행 들머리이기도 하지만 볼거리가 하나 있기 때문. 경내 한가운데 향나무도 그렇지만 대웅전 앞의 용왕당이 우선 시선을 모은다. 거북을 닮은자연석을 올려놓고 그곳에 단을 만들어 오가는 신도들이 참배할 수 있게 마련했다. 돌 끄트머리에 인위적으로 굵게 덧칠을 해놓은 것처럼 아주 신기하다.
산문에서 향나무를 지나 요사채의 부엌 왼쪽에 장독대가 있다. 이곳을 들머리로 산길로 직진한다. 물마른 도랑을 지나 오른쪽으로 향한다. 20m쯤 올라가면 갈림길. 왼쪽으로 간다. 넓은 임도인데 묘지로 가는 길이다. 또 갈림길. 왼쪽 임도를 택해 올라가면 8기의 공동묘지.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장흥 고씨 묘를 지나 본격 산길로 오른다.
이제부터 안부에 도달하기까지 1시간30여분 동안은 길 찾기가 매우 어렵다. 길이 아예 안보이는데다 잡목과 넝쿨이 산행을 어렵게 해 체력소모가 매우 심하다. 바람 한 점 통하지 않지만 옻나무가 많아 긴 옷은 필수다. 날파리는 왜 이리도 눈 앞에서 윙윙거리는지 하여튼 최악의 산행조건이다.
봉분이 거의 없는 무덤을 잇따라 지나 7, 8분 후에는 갈림길. 제법 큰 산벚나무가 있으니 참고하자. 왼쪽 길을 택한다. 지금부터 대략 40여분간이 이번 산행에서 가장 힘든 구간. 마치 산속에서 미로찾기 게임을 하듯 숲을 헤치고 전진한다. 눈에 띄는 지형지물이 없기에 근교산팀 노란 리본을 확인하며 능선을 탄다는 생각으로 오르자.
급한 오르막으로 미끄러짐과 보이지 않는 발 밑의 지형에 조심하자. 주변 큰 나무에 가려 말라죽은 진달래가 아예 길을 막고 있다. 이를 지나면 갈색 낙엽이 수북이 쌓여 발걸음을 가볍게 한다. 15분 정도 모처럼 편안한 산길을 걸으면 안부에 닿는다. 이제서야 파란하늘이 보이면서 숨통이 트인다. 다시 오르막길. 오르막이지만 이전과는 달리 길이 넓다. 6, 7분 후엔 길에 바위가 보이고 다시 7분 뒤면 헬기장.
직진한다. 헬기장부터는 산행 초입과는 달리 바람도 잘 통하고 걷기가 편하다. 이렇게 20분 정도 걸으면 눈앞에 정상이 보이고 길 오른쪽엔 오도산 두무산비계산 별유산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15분 후 쯤엔 정상. 팻말이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다. 한쪽 편에는태양광을 사용한 용도가 불확실한 안테나가 서 있다.
***산행 들머리인 보상사 경내 대웅전 앞의 용왕당. 거북을 닮은 자연석을 올려놓고 단을 만들어 오가는 신도들이 참배할 수 있게 마련했다.
나무에 가려 조망은 약간 가려져 있다. 그래도 남서쪽엔 황매산과 그 앞쪽 금성산 악견산 허굴산 논덕산이, 남쪽엔 대암산에서 미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펼쳐져 있고 북쪽엔 미숭산, 북서쪽엔 가야산이 보인다.
하산은 안테나 옆으로 내려선다. 길가엔 망개나무 열매도 맺혀있다. 인상적인 싸리나무 숲길을 오랫동안 걸으면 갈림길. 토곡산 능선으로 이어지는 왼쪽길을 택한다. 계속되는 길의 이어짐.
또 한번의 갈림길이 나오면 직진. 왼쪽으로 가면 합천 방향. 주변에 산딸기가 많이 널려있다. 하지만 이곳에서 지체하지 말자. 앞으로 40, 50분 정도는 길 양편에 산딸기나무의 연속이니까. 뒷사람을 위해 맛만 보고 남겨두자.
직진능선을 타면 뚜렷한 산길은 오른쪽으로 휘어져 내려간다. 오른편에 웅덩이가 보이면 그쪽으로 내려서자. 이때부터 길 오른편엔 냇물이 흐르고 산딸기가 지천이다. 하지만 길에는 돌부리가 곳곳에 산재해 있으니 조심하자. 확 트인 조망에 오른편 산쪽에는 20m가 족히 될 전나무가 솟아있다. 어쩜, 같은 산이지만 오를 때와 이렇게 다를 수 있을까.
착지는 고령 신씨 시조 세덕비(世德碑). 곧바로 보상사 쪽으로 내려가도 좋고, 10분 거리인 고령 신씨 재실을 구경해도 좋다.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다. 이곳에서 보상사를 지나 버스정류장까지는 20분 정도 걸린다.
/ 이흥곤기자
/ 산행문의=다시찾는 근교산 취재팀 (051)500-5151
이창우 산행대장 (051)245-7005
'떠나기 전에'
만대산은 합천군과 고령군의 경계에 위치한 알려지지 않은 작은 산이다. 잡목과 수풀에 가려 흔적만을 더듬고 오르는 깨끗한 산이다. 전국 8대 명당으로 꼽히는 이곳 만대산 품안에는 고령 신(申)씨 시조의 묘가 있으며 한창 성역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고령 신씨의 재실이 있는 곳은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등잔설. 바로 밑은 어둡지만 멀리 불을 밝히기 때문에 고령 신씨 후손들은 외지에 살고 있고 고령, 특히 산주리에는 한사람도 살고 있지 않다고 한다.
들머리인 산주리 산골마을은 산곡(山谷) 산주(山州), 만대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라하여 산골 또는 산곡이라고도 불린다. 고령군내에서는 유일하게 동, 리를 사용하지 않고 고을 주(州)자를 사용하여 산주리라 부른다. 이는 옛날 적화현이 야로면 중심으로 되어 있었는데 신라와 백제의 전쟁으로 잠시 산주로 적화현이 옮겨져 산주로 되지 않았나 추정된다. 산주리 밑 마을인 객기마는 옛날 난리를 피하기 위하여 객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객기(客基)마을 혹은 객기마로 됐다. 산골마을보다 아래에 위치해 있어 아랫마을, 아랫마가 되었다 한다. 고령IC를 빠져나오면 쌍림면 안림리. 이곳은 딸기로 유명하다. 그 맛을 인정받아 일본에 수출까지 하며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 식수는 보상사에서 미리 준비하자. 옻나무가 많기 때문에 긴팔과 긴바지는 필수.
정양늪 생태공원의 탄생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 후빙기 이후 해수면의 상승과 낙동강 본류의 퇴적으로 생겨난 정양늪은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에 위치한 곳으로 황강의 지류인 아천천의 배후습지이며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다양한 동.식물의 서식지로 생물학적, 생태학적 보존가치가 매우 높은습지로 보고되어 왔다.
그러나 황강의 수량과 수위 감소로 육지화되고 인위적인 매립으로 수질악화가 가속되면서 습지로서의 기능이 점점 상실되어, 합천군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2011년까지 5년간 계속사업으로「정양늪 생태공원 조성사업」을 3단계로 나누어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정양늪은 생물 다양성의 보고이자 자연과 인간의 공존을 이어주는 생명의 터로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출처]합천 정양늪 생태공원|작성자 대발이
합천 핫들생태공원 (경남 합천군 합천읍 영창리 463, 주차장 영창리 513-1
핫들생태공원은 합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약 6천 평의 작약 재배단지로 황강마실길 3구간에 위치하고 있어 트레킹 하기 좋은 곳이다. 핫들생태공원 주변에는 합천 황강이 흐르고 있으며, 신소양체육공원이 가까이 있어 축구장, 파크골프장,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시민공원이다.
작약꽃의 꽃말은 수줍음이라고 하며, 작약꽃이 피는 5월에는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으며, 쉼터, 주차장 등 편의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어 꽃구경하기 좋은 명소이다. 합천에는 황매산 철쭉, 합천영상테마파크, 정양늪생태공원 등 다양한 관광지가 있는 곳으로 관광하기 좋은 고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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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4:55
어제 간단히 금산에 있는 성치지맥길의 성덕봉, 갈미봉, 구봉, 투구봉을 둘러보고 오늘은 고령에 있는 만대산과 합천 핫들생태공원 작약꽃을 보러간다. 고령의 만대산은 합천 핫들생태공원의 작약꽃을 보러가기 위해 간단히 갈곳을 찾다가 잡은 산행지이다. 만대산은 녹대산~토곡산~만대산~노태산으로 한바퀴 돌아보는 산행을 하면 하루 산행으로 맞을듯하지만 마나님하고 꽃구경을 가기위해 잡은 산행지이니 가장 쉽게 간단히 돌아볼수 있는 방향으로 산행코스를 잡았다. 산행거리도 5km가 조금 넘고 3시간 가량이면 충분한 산행지 이다. 오늘 합천의 핫들생태공원에는 작약꽃이 활짝피어 볼만하다고 한다. 규모도 작지 않아 1시간 가량을 돌아보면 될 것 같다. 오늘은 거리가 먼관계로 집에서 일찍 출발을 하기로 한다. 항시 그렇치만 오늘도 집에서 04시 55분 출발한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주차장 07:16 ~08:40
집을 출발하여 강서 하이패소 진입하여 남이분기점에서 상주방향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얼마안가니 그새 날이 밝기 시작한다. 요즘은 해가 길어져 아침 해뜨는 시간이 5시 30분 쯤 되는 것 같다. 밝은 햇살을 받아 가며 진행을 하여 상주를 지나고 낙동분기점에서 우측으로 빠져가나 선산방향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김천 분기점을 지나고 좌측으로 금오산을 바라보며 진행하여 참외냄새가 진동을 하는 성주의 성주 휴게소를 지나고 그 다음 성주 참외휴게소에서 잠시 쉬어 간다. 쉬면서 미리 준비해간 도시락을 아침식사로 맛있게 한다. 오늘은 모처럼 아욱국을 준비해서 더욱 맛이 좋았다. 이후 진행을 하면 10분을 못가서 88고속도로로 빠지는 고령분기점이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빠져 88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고령톨게이트로 빠져나가 오면서 생각한 고령군소재지로 들어가기 전에 있는 지산동 고분군을 보기 위해 좌측으로 고령군소재지로 향하여 잠시후 지산동 고분군앞 커다란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청주에서 2시간 20분 가량 걸렸다.
지산동 고분군 관람 07:20 ~08:30
지산동 고분군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왕릉로 55(지산리)에 위치한 대가야시대에 축조된 무덤군을 의미하며, 폭넓게는 이후신라, 고려, 조선시대에 추가로 축조된 고분군까지 모두 포함하여 지산동 고분군이라고 불린다. 1963년에사적제79호로 지정되었고 고분은 총 704기가 확인되었다.
행정구역 명칭이 '지산동(洞)'이 아닌 '지산리(里)'지만 '지산동 고분군'이라 불리는 것은 지정 당시 행정구역인 '고령군 고령면 지산동'을 따랐기 때문이다.
가야시대의 유명한 금관인 리움미술관 소장 금관(국보제138호) 이 출토된 곳이 바로 여기이다. 정확히는 도굴로 세상에 나오자 이병철회장이 구매한 것. 그 때문에 당시에는 이 고분군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확실하지만 정확히 어느 고분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훗날 45호분에서 도굴되었음을 확인하였다.
2013년 12월에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고, 2015년 3월에는 우선등재 추진대상으로 선정, 10월에는 공동추진 MOU가 체결되었다. 이후 2023년 9월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워낙 수가 많다보니 2023년 말 기준 발굴된 무덤이 2%에 불과하다.#세계유산 등재에도 불구하고 발굴 진척이 늦다.
2.특징[편집]
한국사의 모든 고분군 중에서 가장 거대한 규모로 순장을 했던 고분군이다. 무덤 주인공이 묻히는 주부곽 주변에 순장곽을 수십개씩 설치했는데, 이런 다곽 순장묘는 오직 고령 지산동에서만 존재하는 특징이다. 수십명을 순장했고, 말이나 소같은 동물까지 추가로 순장했다.
고분군 가운데로 도로가 관통하며 그 부근에 '대가야박물관'이 있다. 고분군은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무덤을 백제나 신라처럼 산중턱 혹은 평평한 곳에 만들지 않고 산정상 능선 부근을 따라 축조했다. 높은 곳이 하늘과 맞닿은 신성한 장소라는 당시 가야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지산동 고분군이 자리잡은 능선 쪽은 나무가 없어서 시야가 탁 트였기 때문에 올라가면 고령군을 전부 내려다 볼 수 있다. 특히나안개낀 날도 사진이 잘 나온다. 고분군 사이에 안개가 낀 장면을 밑에서 보면 나름대로 좋은 구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도 너무 높지 않고 계단도 잘 갖추어 주민들에게는 좋은 등산로이자 공원이며 산책로다.
대가야박물관은 이 곳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할 뿐만 아니라 이 고분군의 경비 업무도 겸한다. 지산동 고분군은 인구가 바글바글한 곳이 아니라 고령군 내에서도 약간 외진 곳에 있어서 잘못하다가는 도굴꾼의 타겟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고분군 위에는 조명 시설이 일부 있고 가끔 순찰을 다닌다고 한다.
또한 워낙 무덤이 많아서 그런지 파괴되거나 유실된 고분도 은근히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당연히 무덤이 있었을 자리에 무덤이 없거나 야트막한 언덕 아니면 웅덩이 같은 흔적으로만 남아 있고 무덤의 권역을 표시하기 위해 쌓은 돌들이 노출되어 있기도 하다. 말하자면 가야시대에 쌓은 돌들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는 이야기. 결국 위의 사진의 평평한 지대가 원래는 모두 무덤 자리였다는 것이다. 평지가 된 건 유실된 봉분의 위치가 제대로 파악이 안 되어서 복원을 못한 듯하다.
3.역사
기록이 없기 때문에 처음으로 축조된 시기는 알 수 없다. 일단은 대가야(반파국) 1대왕인 이진아시왕 때부터 이 곳에 무덤을 만들었다고 추측할 뿐이다.
현재처럼 대규모로 무덤을 축조한 시기는 대가야가 고대국가로 성장한 5세기초부터 6세기중엽까지인 듯하다. 이 고분군이 유명한 이유는 문헌으로만 전하던 순장이라는 매장 풍습의 실체를 확인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에이 설마 이런 게 있었겠나' 하는 생각이었는데 파헤쳐보니 순장된 시신이 어마어마하게 나와 놀랐다고 한다.
규모가 크다 보니 대가야 멸망 이후에도 존재가 잊히지지 않았다. 조선시대 학자 남명 조식이 명종 15년(1560) 무렵 지산동 고분군을 보고 "산 위에 저게 뭐냐." 하며 놀랐다는 일화가 있다. 현대적 연구는구한말시절인 1906년에 일본인 세키노 타다시(関野 貞) 교수가 시작했다.
4.무덤의 내부 구조
전체적으로는 거의 구덩식 돌덧널무덤인데 신라에 병합된 이후에는 굴식 돌방무덤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곳 지산동에는 확인된 건 모두 구덩식 돌덧널무덤이고 굴식 돌방무덤은 약간 떨어진 고아리에 벽화고분 형태로 1기만 존재한다. 신라에 병합되기 전에는 부장품 토기도 가야토기였으나, 신라에 병합된 6세기 이후에는 신라토기들이 출토된다.
무덤의 내부 구조는 신라의 무덤과 백제의 무덤과는 확연히 형태가 다르다. 우선 왕이 묻힌 으뜸돌방(이하 주곽)이 한가운데에 있고, 왕이 저승에 가서 쓸 물건들을 매장한 딸림돌방(이하 부곽)이 1~2개 근처에 있으며 그 주위로 순장자들을 묻은 순장 덧널이 있는데, 많게는 20개 이상이 확인되기도 했다.
또한 왕이 안치된 주곽에도 순장자가 2명 있었는데 왕을 호위하던 최측근 무사나 신하인 듯하다. 부곽에는 장물들을 보관하는 장물지기를 한 명씩 순장했다고 한다.
주곽의 높이는 최대 크기 2 m, 길이는 9 m로 어마어마한 크기라, 그만큼 엄청 많은 유물을 부장했으리라 추정한다. 반면 순장 덧널은 길이가 1.6 m 남짓에 커봤자 2 m정도인데, 당시 사람들의 신체가 작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5.순장
지금까지 밝혀지기로는 한국사에서 가장 많은 인원을 순장했다고 확인된 고분군이 바로 지산동 고분군이다.고구려나 신라에서도 순장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고구려는 적석총이라는 무덤 특징상 몇 명까지인지는 특정이 되지 않고, 신라무덤은 많아야 2~3명 정도로 비교적 인도적인 수준이었다.
하지만 유독 흔히 가야권이라 부르는 삼국시대 경남 일대의 제 가야 각국의 고분군에서는 순장의 사례가 많으며 그 인원도 많으면 3~5명가량이다. 그 중에서 지산동 고분군의 대형분들은 수십 명씩, 가장 큰 44호분에는 대략 40여 명 남짓 순장되었다고 추정한다.
지금의 기준에서야 가혹하지만, 인권이라는 것이 없던 시절임을 고려해보면 순장된 사람들(이하 순장자)은 일종의 위세품과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무수한 토기, 화려한 부장품들의 존재는 계세사상(繼世思想)이라는, 즉 죽어서도 현세의 삶이 이어진다고 보는 관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순장 또한 그러한 계세사상의 일환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피장자의 위계에 따라서 그 수량이 정해졌다. 지산동 고분군 중에서도 왕묘급의 지름 20 m 이상 대형분들은 순장자가 20명을 상회하거나 그 수준인 반면, 왕릉급 바로 아래의 무덤들에서는 3~5명 정도로 순장자 인원 수가 줄어듦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위계(位階)에 따라 순장자 수가 줄어드는 것은 일반적으로 무덤에서 확인되는 부장품의 화려함의 정도, 수량적 측면이 상위 위계의 인물일수록 많고, 위계가 낮아지면서 그 급이 낮아지는 맥락과 동일한, 즉 순장자=부장품의 개념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가야권의 역사는 문헌이 엉성한 관계로 상세하게 알 수 없기도 하거니와, 고대 문헌에서 일반 백성에 대한 기록은 잘 드러나지 않는 만큼, 순장자의 입장이 어떠하였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2018년 지산동 고분군 남쪽 권역의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동쪽 순장곽에서 발치에 화살촉이 꽂힌 상태로 순장자의 인골이 처음으로 출토되었다. 법의학적인 측면에서 다각적 검토가 필요하지만, 정황으로 미루어보면 순장 예정자를 살아는 있으되 저항은 하지 못하도록 발에 활을 쏘았을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많은 인원을 순장하였던 관계로 대가야 권역의 고분군, 다시 말해 대가야가 축조한 고분군의 대형분들은 인골이 확인되지 않더라도 피장자가 묻힌 주곽(主槨)을 주변으로 빙 둘러져 순장곽(旬葬槨)을 배치한 양상이 자주 발견된다. 이는 대가야 고분군, 특히 수장층이나 왕족급의 위계의 표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가야권 영역을 규명하고 판별하는 여러 기준 중 하나로 기능한다.
신라는 지증왕3년(502)부터 순장을 금지했는데 562년 신라가 대가야를 멸망시키면서 구 가야 영토에서도 순장 금지법이 적용돼 순장이 한 번에 없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대가야박물관 부지에서 신라 병합 이후의 신라식 묘제인 횡구식 석실, 횡혈식 석실분이 34기가 조사됐는데 순장 흔적은 단 하나도 없었다
6.수난의 역사
1910년부터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임나일본부설을 증명할 증거를 찾으려 가야시대 고분을 발굴이라는 명목으로 마구 파헤쳤다. 이후 금림왕릉으로도 전하는 구 39호분, 현재는47호분으로 불리는 왕릉급 무덤을 마구잡이로 파헤쳐놓고 허름한 보고서조차도 남기지 않았다. 이 때문에 우리 손으로 발굴하기 전까지는 무슨 유물이 출토되었는지, 고분 내부는 어떠한 구조인지 알 길이 없었다.
이후에도 외진 곳에 위치한 이 고분들은 도굴꾼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어 어지간한 큰 무덤엔 도굴갱이 1~2개는 꼭 뚫려 있었다고 한다. 그것도 뚫기 귀찮아서 수많은 도굴꾼들이 선대 도굴꾼이 뚫었던 도굴갱으로 계속 드나들며 무덤을 도굴했고, 결국엔 왕이 안치되었던 주곽(主槨)과 왕의 유품들과 저승에 가서 쓸 물건들을 보관하는 창고 역할을 하던 부곽(副槨)은 모두 도굴되었다. 70년대에 들어서 44호분과 45호분을 발굴했을 때에는 토기 조각과 화살통, 환두대도 일부, 관장식 조각 일부만을 겨우 수습했을 만큼 도굴의 피해가 극심했다.
참고로 현재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가야 유물들 중 주곽에서 출토된 것은 별로 많지 않다. 도굴꾼들은 주곽 중심으로 도굴했고 부곽이나 순장덧널은 도굴하지 않았는데, 파는 데 드는 힘은 똑같은데 유물은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장곽 쪽은 그나마 도굴되지 않았고,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유물들은 순장덧널, 즉 순장곽에서 출토된 것이 많다.
그래도 1990년대 이후 대대적인 사적 관리와 체계적인 발굴이 시작되자, 도굴 피해를 입지 않은 유물을 비롯하여 여러 대형분과 중요 고분들이 학술적으로 발굴되었다. 일련의 발굴조사 과정에서 금동제 귀걸이나 금동관, 환두대도등 여러 위세품들을 비교적 온전히 보전한 고분들이 발견되어 지산동 고분군의 위계적 위치를 조명하게 해주었다.
지산동 30호분
지산동 30호분은 주산 남동쪽 능선 자락의 끝에 단독으로 자리잡고 있는 고총고분으로 5세기 중엽 개가야 지배층의 분묘이다. 크기는 동서 18m, 남북 15m이며 남아 있던 봉토의 높이는 1.5m였다. 1994~95년에 영남문화재연구원에 의해 발굴조사되었는데, 그 결과 으뜸돌방 및 딸린 덧널이 T자모양, 순장덧널 3기가 ㄷ자모양으로 동·남·북쪽에 배치되었다. 특히 가야지역 고분에서는 알려진 바가 없는 으뜸돌방의 바닥 아래에 하부덧널이 확인되었다. 남동쪽 경사면에 등고선 방향으로 구(溝)가 둘러져 있었는데 이곳에서 발전된 토기는 제의용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유물들은 바리모양 그릇받침과 목긴 항아리, 손잡이달린 항아리,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류와 덩이쇠, 말갖춤새, 무구, 금도오간 등 다양하다. 한편 하부덧널 덮개돌에 새겨진 바위그림은 선사시대까지 신앙의 대상이었던 바위그림이 더 이상 신상대상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음을 추정케 한다.
지산동 47호분
지산동 고분군 가운데 가장 큰 고분으로 1939년에 발굴되었다. 봉분의 직경이 49m, 석실 크기가 93.8m×1.8m로 금림왕릉으로 구전되며 출토 유물로는 금동제 호록, 황어뼈, 금장환두대도, 이형금동제품, 철촉 30점 등이 있고 대가야 15대 이뇌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전형적인 순장형태를 보이고 있다.
출처 네이버 워키백과
지산동 고분은 중앙에 박물관이 있으며 우측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대부분 고분군을 다 둘러 볼수 있다. 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아래쪽으로 70호 고분군이 보이며 73~74호 고분군에서 좌측으로 박물관 뒤편 길을 따라 올라가면 32~35호 고분군이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좌측으로는 518호 고분군 방향이고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200호대 고분군을 거쳐 서서히 올라서서 커다란 소나무가 있는 좌측으로 커다란 고분군은 44호 고분군, 우측으로는 45호 고분군이다. 양쪽다 정식 발굴을 한 고분으로 규모가 큰 고분군이다. 이후 오르게 되면 가장 위쪽으로 1호 고분이 있으며 그 위쪽으로 주산성으로 오는 길과 고령읍 충혼탑으로 이어지는 임도 길이 연결이 된다. 가장 위쪽에서 1~5호 고분이 나란히 있으며 이 고분은 아직 정식 발굴이 되지 않은 고분이라고 한다. 이제 다시 돌아서 내려선다. 처음 올라온 삼거리에서 점차 내려서면 좌측으로 박물관, 주차장이 보이는 생태터널 위를 지나 점차 계단으로 올라서면 400호대 고분군들이 있으며 중간지점을 넘어서서 518호 고분이 나온다. 이후 500호대 고분군을 지나 대가야역사테마관광지로 내려서서 한바퀴 돌아 오면 대략 4.4km로 1시간 20분 가량이 걸린다. 언제 시간이 있으면 미숭산에서 여기까지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 봐야 겠다.
고령 쌍림면 산수리 771(고령신씨 세덕비앞 주차장, 해발 약225m)09:01 ~09:10
고령 지산동 고분군을 구경하고 이제 목적지인 만대산으로 향한다. 되돌아 나와 고령 톨게이트 입구를 지나 반대편으로 향한다. 쌍림면소재지에 닿고 잠시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을 하면 앞쪽으로 높다란 산위에 송신탑이 보이는 오도산이 보이기 시작하며 잠시후 산주리 입구에 닿는다. 산주리로 들어가는 소로길은 널지 않아 조심조심 천천히 달려 시골집 담에 이쁘게 핀 장미꽃등을 구경하며 마을을 지나서 오르면 보상사 입구를 지나 좀 더 오르면 만대산 입구인 쌍림면 산주리 고령신씨 세덕비앞 주차장에 닿는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에서 20여분 걸렸다.
능선 이정표(0.970km, 약415m) 09:41 ~09:50
고령신씨 세덕비 앞에서 간단히 산행준비를 한후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잠시후 차단기가 설치된 임도방향으로 올라서서 가면 얼마 안 올라 정자가 나온다. 우측 개울 건너편으로 주황색 지붕의 집이 한 채 보이는 곳이다. 이곳 앞쪽으로 이정표가 있다. 좌측 등산로 방향으로 2.3km, 우측 임도 방향으로 2km가 적혀 있다. 우리는 좌측 등산로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첫머리는 풀섶길로 진행을 한다. 오늘 또 길도 없는 곳으로 간다고 잔소리다. 에고 조금 가면 길이 좋아질겨 ~` 잠시후 길이 좋아지며 천천히 올라서면 오르막 돌 계단길이 시작된다. 천천히 올라서서 이제 좌측 사면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우거진 낙엽송지대로 거의 평탄하게 진행을 하면 너덜지대로 지나고 한참을 진행한 후 오르막 통나무계단이 시작되는 지점에 만대산 등산로 표지판이 설치되어있다. 경로:총거리 5km로 만대산 정상 2.59km, 철쭉 군락지를 돌아서 돌아오는 대 4.56km가 적혀 있다. 이제 통나무계단을 따라 천천히 올라서서 가면 끝 지점에서 조금 가파르게 올라서서 능선 이정표가 있는 곳에 닿는다. 보상사에서 올라오는 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이다. 여기 이정표에 보상사 1.1km, 만대산 정상 1.6km가 적혀있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보상사 방향 벌목지를 살피러 잠시 가니 쓸만한 것은 없으며 싸리나무만 잔뜩 자라고 있다. 올라오면서 여러개의 만대산 일대 임산물 채취금지 표지판이 뜬금 없다.
만대산 정상(삼각점, 삼각점 안내문, 정상표지판, 콘테이너박스, 2.89km, 약688.4m) 10:57 ~11:00
능선 이정표에서 조금 가파르게 올라선다. 오르막 통나무계단을 오르고 다시 돌 계단길을 따라 오르고 다시 통나무계단을 따라 오르고 돌 계단길을 따라 올라서면 능선 좌측으로 시커멓게 그을린 나무들과 불에타 죽은 소나무들이 부지기수다. 산불이 난 지역이다. 잠시 더 산불지역을 따라 올라서면 표지기 몇 기가 걸려 있는 좌측 노태산 삼거리에 닿는다. 이후 능선을 따라 오르면 활짝핀 고사리가 다수 있는 불난 지역을 따라 진행하여 의자 2개가 설치된 쉼터봉에 닿는다. 수도지맥 545.5m 표지판이 걸려 있는 봉이다. 이후 살짝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기 시작하면 헬기장에 닿는다. 잠시 물 한모금씩 마시고 다시 진행을 하면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여 7분후 오르막 끝 지점에 닿는다. 이후 크고 작은 바위들이 널려 있는 평탄하게 이어지는 바윗길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가야산 의상봉등이 조망이 되는 조망터를 지난후 서서히 오르는 길을 따라 진행하여 해발 약670봉에 닿는다. 국가지점번호판이 서 있는 봉이다. 이후 잠시 내려서고 다시 오르막길을 따라 진행하면 만대산 정상에 닿는다. 만대산 정상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삼각점과 삼각점안내문이 있으며 작은 컨테이너 박스가 하나 있다.
안부 삼거리(우측 계곡 방향으로, 3.55km, 약535m) 11:17
만대산 정상에서 잠시 내려서면 내려서는 길 보상사 2.41km, 우리가 온방향으로 2.59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후 서서히 내려서는 길은 매우 좋다. 내리막 통나무계단을 두 번에 걸쳐 내려서면 커다란 신갈나무 아래 설치된 의자가 2개 있는 쉼터에 닿고 이후 내리막길을 따라 내려서면 통나무계단을 다시 내려서고 다음번 통나무 계단은 좀 더 길다란 통나무 계단을 따라 내려서서 안부 삼거리에 닿는다. 만대산 정상 0.62km가 적혀 있으며 매화재(합천)이라 적혀있다. 여기서 정면으로 잠시 올라서서 좌측으로는 토곡산이요! 우측으로는 녹대산방향이다. 우리는 여기서 임도방향으로 내려서기로 한다.
고령신씨 세덕비앞 주차장(5.40km, 약225m) 12:24 ~12:35
안부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는 길은 대부분이 통나무계단이다. 5분여 내려서면 임도길에 닿는다. 만대산 정상 0.64km, 보상사 1.61km가 적혀있는 이정표가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임도 길은 점차 넓어지며 좋아진다. 천천히 놀면서 10여 분을 내려서니 우측으로 연못이 보인다. 주변으로는 물이 흐르는 습지다. 이후 더욱 넓어진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17분가량을 내려서서 만대산 정상 1.3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지점을 지나고 이후 7분여 진행을 하여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는 개울을 건넌후 임도를 따라 내려서면 사방댐이 양쪽으로 보이다가 등산로 입구 이정표가 있는 앞쪽 정자에 닿는다. 만대산을 한바퀴 돌아서 내려온 것이다. 여기 정자에서 간단히 준비해간 절편떡으로 점심식사를 하고는 커피도 한잔씩 마신 후 잠시 내려서서 고령신씨 세덕비앞 주차장에서 산행을 마감한다.
오늘 산행은 간단히 한 바퀴 돌아오는 산행인대 마나님이 컨디션이 매우 나빠 시간은 다소더 많이 걸린 듯 하다.
합천 핫들생태공원 작약밭 13:01 ~14:06
만대산 산행이 끝나고 다시 합천 핫들생태공원으로 향한다. 쌍림면소재지 조금 전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진행하여 잠시후 좌측으로 들어간 후 큰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합천 핫들생태공원 주차장까지는 25분가량 걸린다. 요즘 활짝핀 작약꽃을 보러오는 관광객들이 많이서 진행요원들이 주차관리하고 정리하는라 더운날씨에 고생들이 많다. 대형차량은 핫들생태공원 주차장까지 들어오지 못하지만 승용차는 들어올 수 있다. 들어왔다 나가는 차량이 많아 금시 주차가 가능하다.
핫들 생태공원 작약꽃은 합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약 6천 평의 작약 재배단지로 황강마실길 3구간에 위치하고 있어 트레킹 하기 좋은 곳이다. 핫들생태공원 주변에는 합천 황강이 흐르고 있으며, 신소양체육공원이 가까이 있어 축구장, 파크골프장, 자전거도로를 이용할 수 있는 시민공원이다.
작약꽃의 꽃말은 수줍음이라고 하며, 작약꽃이 피는 5월에는 푸드트럭을 운영하고 있으며, 쉼터, 주차장 등 편의 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어 꽃구경하기 좋은 명소이다. 주변으로 유채꽃밭도 형성을 하였으나 유채꽃은 별 볼품이 없다. 노랑 코스모스꽃도 보이며 작약꽃은 거의 끝물이며 좌측 편으로 길 다랗게 형성된 작약꽃밭은 지금이 최적지로 아직도 생생하니 꽃도 볼품이 있고 보기 좋다. 본 작약꽃밭은 멀리서 볼 때는 코스모스 한창 핀 것처럼 화사하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진 것이 많다. 조금 더 일찍 오는 편이 좋겠다.
대략 1km로 1시간 가량을 걸어 구경을 하고 마친다.
돌아오는 길
합천 핫들생태공원에서 나오면서 참외 한 봉다리 1만원주고 구입해서 깍아 먹으며 온다. 참외가 엄청 달다. 20분을 좀더 달려 고령톨게이트로 진입하여 10여분 진행한 후 고령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북쪽으로 향하면 성주 참외휴게소를 지나고 성주 휴게소를 지난후 우측으로 금오산을 바라보며 진행하여 김천분기점을 지나 선산방향으로 달려 낙동분기점에서 청주방향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상주를 지나고 속리산 휴게소도 통과한 후 남이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진행하여 강서하이패스로 빠져나와 논스톱으로 달려 집에 도착을 하니 16시 30분이다.
오늘은 계획에 없던 고령 지산동고분군도 둘러보고 이후 만대산을 산행한 후 합천으로 이동하여 핫들생태공원에 조성한 작약꽃밭을 둘러보고 왔다. 마님은 작약꽃이 너무 좋단다.
고령 지산동 고분군 : 4.37km, 1시간 20분 소요
고령 만대산 : 산행시간 : 3시간 14분
산행거리 : 5.40km,
합천 핫들생태공원 작약꽃 밭 : 약1km 1시간 소요
연료비 : 4만원
통행료 왕복 : 17400원
참외 한봉다리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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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 만대산 및 합천햇들생태공원 작약밭 5월 15일경
청주 ~경북 고령군 쌍림면 산주리 771(고령신씨세덕비) : 202km, 2시간 20분 통행료 9100원\
고령신씨 세덕비~합천 핫들생태공원(합천군 율곡면 임북리 810-1,7.26, 합천읍 합천리 20-3) : 24km 25분,
합천 핫들 생태공원 ~정양늪생태공원 주차장(합천군 대양면 정양리145) : 2.6km 5분
고령 만대산
산행코스 : 고령신씨 시조비 주차장(좌측으로) -1분후 좌측으로(등산 안내도) -1분후 쉼터 정자 –정자 위 이정표(좌 2.3km, 직진 2km) -좌측으로 –통나무 계단길 –보상사길 만나고 –쉼터 –헬기장 –정상 –매화재 –원점
고령 만대산
산행코스 : 고령신씨시조비 주차장 - 신씨재실 - 신씨시조묘소 - 분기봉 능선전망대 - 분기봉506m -570m봉/ 수도지맥 갈림봉- 매화재 - 만대산 정상- 헬기장 - 546m / 수도지맥갈림길 -보상사 갈림길 - 매화재 계곡등산로합류 –고령신씨시조비 주차장
(산행거리 5.3 km , 소요시간 3 시간 20분 )
산행코스 : 산주교 –녹대산 –분기봉 –토곡산 –만대산 –노태산-어은산-산주교
산행거리 13.02km 산행시간 4시간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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