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 덕유산(삼공리~향적봉~중봉~삼공리)
2023.09.24.일요일 맑음
참석인원 : 아들하고 둘이서
청주 집 06:00 –서청주 톨게이트 06:13 –무주톨게이트(통행료 5100원) 07:07 –무주 삼공리 주차장(해발 약590m) 07:29 ~07:38 –도로 차단기(0.960km) 07:50 –등산로 아치문(1.04km, 약630m) 07:51 –월하탄(1.31km) 07:54 –다리(→) 07:56 –탐방안내소 삼거리(1.57km, 약635m) 07:57 –삼거리(좌) -다리 – 구천동수호비(2.04km, 약660m) 08:03 –인월담(2.39km, 약670m) 08:08 –비파담(2.80km, 약60m) 08:14 –다리 건너 반대편으로 –Y계곡삼거리(다리건너 좌측으로, 3.11km, 약700m) 08:18 –덕유산휴게소(3.24km, 약710m) 08:21 –금포탄(3.73km, 약730m) 08:27 –다리(→, 안심대 4.78km, 약755m) 08:39 –신양담 –명경담(5.3km, 약830m) 08:46 –구천폭포(5.57km, 약835m) 08:47 –백련담 08:50 –연화폭포 –백련교(6.08km, 약860m) 08:54 –일주문 08:55 –백련사 계단앞 공터 08:59 –백련사 대웅전(6.51km, 약930m) 09:04 –돌계단-데크계단 –침목계단 –부도(6.88km, 약995m) 09:22 –돌길 –계단 –향적봉2.0km 이정표(01-11지점, 7.0km, 약1000m) 09:24 –침목계단 –데크계단1.2 –침목계단1.2 –돌길 –침목/데크/침목/데크/침목계단 연속 –돌길 –전망 쉼터(7.45km, 약1120m) 09:35 –침목/바위지대/ 침목계단/돌길 – 향적봉 1.5km이정표(1-12지점, 7.52km, 약1140m) 09:37 –데크계단1.2 –돌길 – 침목계단 –돌길 –데크계단-돌계단 – 데크계단 –돌계단 –데크계단 –돌계단 –쉼터(7.85km, 약1270m) 09:49 –데크계단(장) -01-13지점(7.99km, 약1320m) 09:54 –돌길 –데크계단 –침목계단 –돌길 –출입금지 표지판(8.34km, 약1410m) 10:04 –돌계단(장) - 데크계단 –돌길 - 01-14번 표지목(8.55km, 약1460m) 10:11 –쉼터(의자2개) 10:12 –전망쉼터(8.67km, 약1515m) 10:16 –향적봉0.2km 이정표 삼거리(우측으로, 8.86km, 약1555m) 10:27 –침목계단 –향적봉(9.04km, 1614.2m) 10:33 ~10:46 –대피소(9.29km, 약1580m) 10:50 –전망대(9.88km, 약15580m) 10:59 –중봉(10.1km, 약1593.6m) 11:07 –05-07표지목(10.50km, 약1500m) 11:15 –백련사 3.7km 이정표봉(10.6km, 약1470m) 11:17 –내리막 침목계단 –데크계단 –05-06지점 표지목(11.0km, 1399m) 11:24 – 내리막 돌길(조릿대숲길) -고무타이어댄 내리막 계단(11.50km, 약1260m) 11:35 –오수자굴, 05-05지점 (11.60km, 약1242m) 11:39 –내리막 돌길 –개울가(11.9km, 약1140m) 11:45 –너덜 백련사 2.4km 이정표(12.0km, 약1100m) 11:49 –좌측계곡 개울 건너고(12.60km, 약1060m) 11:57 –좌측계곡 작은계류 건너고 12:43 –백련사 1.3km 이정표, 05-03지점 (13.0km, 약1005m) 12:04 –좌측 큰계곡 다리(13.50km, 약970m) 12:12 –계곡 철주 12:17 –백련사 0.5km이정표, 05-01지점(13.9km, 약954m) 12:19 –백련사입구(14.4km, 약950m) 12:33 –다리건너 어사길로 진행 –어사길 구천동주차장 6.2km 이정표(14.6km, 약888m) 12:36 ~12:48(중식) -다리(←, 15.6km, 약820m) 12:59 –신양담(15.8km, 약810m) 13:01 –다리앞 안심대(16.0km, 약755m) 13:03 –좌측 어사길로 진행 –돌길 –데크길 13:05 –데크길(16.6km, 약760m) 13:10 –우측 다리 앞 구천동 주차장 3.6km 이정표(직진, 16.9km, 약730m) 13:15 –잠시후 데크 –우측 다리 구천동 주차장 3.5km(금포탄, 17.1km, 약730m) 13:17 –길 좋아짐 – 덕유산 휴게소 지점, 구월담(17.6km, 약705m) 13:24 –데크길 –우측 다리 구천동주차장 3.0km 이정표(계곡삼거리, 17.7km, 약700m) 13:26 –데크길 –우측 다리 건너고 - 구천동주차장 2.5km, 비파담(18.0km, 약670m) 13:29 –우측 도로따라 진행 –좌측 다리건너고(인월암입구, 18.5km, 약670m) 13:35 –다리건너 계곡 좌측편으로 –인월암 입구 이정표(구천동 주차장 1.7km, 18.8km, 약665m) 13:40 –계단/데크 –반달형 쉼터 13:41 –구천동주차장 1.6km이정표(19.0km, 약645m) 13:42 –데크/쉼터/데크 –어사길 입구 삼거리(탐방안내소, 19.3km, 약635m) 13:47 ~13:53 –삼공리 구천동주차장(21.0km, 약590m) 14:12 ~14:18 –무주톨게이트 14:38 –서청주 톨게이트(통행료5100원) 15:30 –청주 집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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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국립공원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덕유산은 1975년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 상으로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르는 4개 군에 걸쳐 있으며, 총 229.43㎢의 면적이 공원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덕유산국립공원은 동쪽의 가야산, 서쪽의 내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계룡산과 속리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향적봉 1,614m)으로 아고산대 생태계의 보존가치 또한 높으며, 북쪽으로 흘러가는 금강과 동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수원지이기도 하다.
덕유산
덕유산은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솟은 산으로 주봉은 향적봉(香積峰, 1,614m)인데, 남서쪽에 위치한 남덕유산(1,507m)과 쌍봉을 이룬다. 두 봉을 연결하는 분수령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의 경계가 되며, 남덕유산에 대하여 북쪽의 주봉인 향적봉을 북덕유산이라고 부른다.
이들 두 산이 이루는 능선을 중심으로 북서쪽에 적상산(赤裳山, 1,034m)과 두문산(斗文山, 1,052m), 북동쪽에 거칠봉(居七峰, 1,178m)과 칠봉(七峰, 1,161m), 남서쪽에 삿갓봉(1,419m)과 무룡산(舞龍山, 1,492m) 등 1,000m 이상의 고산들이 일련의 맥을 이루어 덕유산맥이라 부르기도 한다.
덕유산 일대는 웅장한 산세와 계곡, 그리고 울창한 식생이 어울려 뛰어난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고, 산성·사찰 등 문화 유적이 많아 1975년 2월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공원 면적은 총 219㎢인데, 그 중 71㎢가 자연보호지역, 131㎢가 자연환경지역이다. 나머지 17㎢는 농촌지역·시설지역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덕유산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경승지는 무주구천동이다. 길이 28㎞에 이르는 구간에는 기암괴석·암반이나 급류·폭포·급연(急淵)·벽담(碧潭) 및 울창한 수림이 조화된 33경(景)이 있다.
제1경인 나제통문(羅濟通門)을 비롯하여, 은구암(隱龜巖)·청금대(聽琴臺)·와룡담(臥龍潭)·학소대(鶴巢臺)·일사대(一士臺)·함벽소(涵碧沼)·가의암(可意岩)·추월담(秋月潭)·만조탄(晩釣灘)·파회(巴洄)·수심대(水心臺)·세심대(洗心臺)·수경대(水鏡臺)·월하탄(月下灘)·인월담(印月潭)·사자담(獅子潭)·청류동(淸流洞)·비파담(琵琶潭)·다연대(茶煙臺)·구월담(九月潭)·금포탄(琴浦灘)·호탄암(虎灘巖)·청류계(淸流溪)·안심대(安心臺)·신양담(新陽潭)·명경담(明鏡潭)·연화폭(蓮華瀑)·이속대(離俗臺)·백련사(白蓮寺)·구천폭(九千瀑)·백련담(白蓮潭)의 32경이 있고, 마지막 33경은 덕유산정을 호칭한다.
나제통문은 무주군 설천면 소천리와 장덕리 사이의 암벽을 뚫은 인공동문(人工洞門)으로 구천동 입구에 있다. 이곳은 삼국시대에 백제와 신라의 국경이었는데, 이 통문이 뚫리게 된 경위나 시기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나제통문은 고려시대에 무풍현(茂豊縣)과 주계군(朱溪郡)의 경계였으나 고려의 마지막 왕인 공양왕 때 무풍현이 주계군에 병합되었고, 조선 태종 때 무주군으로 개칭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높이 3m, 길이 10m의 나제통문을 경계로 양 지역 간 언어와 풍습의 차이는 지금도 남아 있다.
백련사는 북덕유산 동쪽에 있는 사찰로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었고, 현재의 사찰은 전쟁 후에 새로 지은 것이다.
한편 덕유산 주변에는 적상산성·안국사·호국사·연각사·송계사 등의 사적 및 사찰과 칠봉약수골·칠연폭포·용추폭포 등의 경승지가 있다.
적상산성에는 1374년(공민왕 23) 최영(崔瑩) 장군이 제주도 토벌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곳이 천혜의 요새임을 간파하고, 산성을 쌓게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적상산 산정부의 분지는 성 내부에 해당된다.
이곳에는 본래 사책(史冊)과 보첩(寶帖)을 보관해 둔 사고(史庫)와 선원각(璿源閣) 외에 호국사(護國寺) 등의 사찰이 있었으나 현재는 약 3㎞의 성지(城址)와 약간의 석축(石築), 그리고 높이 1∼3m의 북문지(北門址)·서문지(西門址)·사고지(史庫址) 등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안국사는 적상산성 안에 있는 사찰로 고려시대에 창건되었고, 1613년(광해군 5)과 1864년(고종 1) 등 두 번에 걸쳐 중수되었다. 안국사 극락전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안국사에는 적상산사고(赤裳山史庫)의 현판이 남아 있다.
덕유산이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후, 북동쪽의 칠봉 산록에는 대규모의 국제 야영대회를 치를 수 있는 청소년 야영장과 자연학습장인 덕유대(德裕臺), 산의 능선을 이용한 스키장 등이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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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6:00
이번산행은 무주에 있는 덕유산이다. 덕유산은 국립공원으로 잘 알려져있는 산으로 겨울철에 눈산행으로 인기가 있는 산으로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으로 올라서 중봉이나 백암봉까지 잠시 다녀오기 좋은 산이다. 봄에는 철쭉으로 물들고, 여름에는 원추리, 비비추꽃이 만발하며 가을 단풍도 좋은 산이다. 또한 백두대간이 통과하는 구간으로 남덕유산 서봉에서 덕유산 백암봉을 거쳐 신풍령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능선은 백두대간중에서도 매우 아름다운 능선으로 산행코스가 경상도 전라도 어느방향에서건 오를 수 있는 곳이다. 오늘 산행은 삼공리 주차장에서부터 시작하기로 한다. 이곳에서 산행을 한 것은 매우 오래전으로 백련사까지 가는 거리가 너무 멀어 회피하는 산행길이지만 승용차편으로 원점회귀산행을 하려면 이곳밖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오늘은 아들녀석과 함께 산행하기로 한 날로 아들과 함께 집에서 06시 출발을 한다.
무주 삼공리 주차장(해발 약590m) 07:29 ~07:38
청주에서 무주 삼공리 주차장까지는 1시간 반가량 걸린다.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중부와 경부가 함께 진행하는 남이~회덕구간을 지난후 생각을 잘못해서 그만 호남고속도로로 진입을 하여 서대전에서 안영리를 거쳐 대전 산내로 다시 진입하여 중부고속도로 통영방향으로 진행을 하면 금산을 지나고 금강줄기의 S자를 그리며 흐르는 용포부근을 지난후 무주톨게이트로 빠져나가 좌측으로 국도를 따라 진행하여 적상면을 지난후 안성으로 가기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가면 고개를 2개 넘어 무주리조트입구에 닿는다. 여기서 좀 더 신풍령 방향으로 가면 구천동 삼공리 삼거리에 닿는다. 이곳에서 우회전하여 잠시 들어가면 널찍한 구천동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구천동
‘구천동’ 명칭의 유래에는 3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백련암을 중심으로 현재의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협곡에 9,000명의 승려가 살았다는 데서 연유한다는 설, 둘째로는 구(具)씨와 천(千)씨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 셋째는 ‘구천동’은 산과 산으로 중첩되어 깊고 깊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구천동 명칭 유래와 관련된 3가지 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 임훈의 「덕유산 향적봉기」에 의하면 성불 공자 9,000명이 이 골짜기에 수도하였으므로 이곳을 ‘구천둔(九天屯)’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그들이 조석으로 씻은 쌀뜨물이 개울을 부옇게 흐리게 했다고 한다. 당시 이웃 금산에 살던 한 여인이, 수도하려 구천둔에 입산한 남편이 약속한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2년 동안이나 골짜기를 찾아 헤매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되돌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때부터 ‘구천둔’이 ‘구천동’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또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의 설화에는 옛날 이곳에 구(具)씨와 천(千)씨가 많이 살고 있었던 데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기이한 바위가 9,000개나 되어 ‘구천동’이라 하였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숙종 때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은 덕유산을 가리켜 '불교의 소국'이라고까지 하였는데 당시 이곳에는 1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숙종 때 어사 박문수가 나그네 차림으로 무주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한 외딴집에 들었는데 주인이 근심을 하고 있었다. 그 집 주인은 구재서[구씨 또는 유씨로 나타나기도 함]라는 사람인데 마을에 천동수[천득수, 천석두 등으로 나타나기도 함]라는 욕심 많은 사람이 구재서의 식구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재서의 아들이 천동수의 부인을 꾀어내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천동수가 구재서의 며느리를 데려가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박문수는 다음날 무주 관아로 가서 군졸들을 준비시키고 황·청·흑·백 네 가지 색깔의 옷을 입혀 하늘에서 보낸 사자로 분장하여 천동수를 잡아 벌주었다. 천동수는 멀리 귀양 보내고, 구재서는 아들 며느리와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 마을에 구씨 사람들과 천씨 사람들이 어울려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천 명이 살 수 있는 둔지 구천동, 그리고 백련사
구천동의 지명 유래 중에 백련사와 관련된 「구천동과 설천」[『무주 군지』] 이야기가 있다. 백련사는 무주 구천동 계곡의 거의 끝부분인 해발 900m 지점에 있는 절이다. 백련사는 우리나라 절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빼어난 절경을 갖고 있다. 옛날에 백련사를 둘러싸고 빼어난 절경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의 수도승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그 수가 구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구천인(九千人)의 둔지(屯地)라는 의미의 ‘구천둔(九千屯)’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 ‘구천동(九千洞)’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1552년 덕유산을 탐방하고 썼던 조선명종 때 문신 임훈(林薰)[1500~1584]이 쓴 글에도 나온다. 임훈의 문집 『갈천집(葛川集)』의 「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 따르면, “옛날에 그 골짜기에 9천 명의 성불공자(成佛功者)가 살았으므로 구천인의 둔지라는 뜻에서 구천둔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로부터 ‘구천둔’이란 지명이 ‘구천동’으로 바뀌어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구천동과 설천」 설화에서는 ‘구천동’ 지명과 관련하여 ‘설천(雪川)’이라는 지명 유래도 설명하고 있다. 백련사에 구천 명이나 되는 중들이 먹을 쌀을 계곡에서 씻으면 엄청난 쌀의 양 때문에 온통 흰 눈이 내린 듯 하얀 쌀뜨물이 구천동 계곡을 따라 아랫마을로 흘러내렸다 하여 구천동 아랫마을을 ‘설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천동의 유래담이 설천 마을 유래까지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둔지’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성불공자가 아닌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가 전래되기 훨씬 이전인 삼한 시대 때부터 9천 명의 호국 무사들이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주둔하였다’ 하여 ‘구천둔’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는 전설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신라의 화랑과 백제의 수사의 전신으로서, 이 구천둔 골짜기에 들어와서 심신을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 화랑의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랑(南郞), 안상(安詳) 등 사선(四仙)이 구천동 골짜기와 인접한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와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기거하였다는 전설과도 연관성을 살펴볼 만하다.
중국 황제의 인정을 받은 땅 구천동 「구천동과 설천」
설화에 따르면, 구천동은 중국원나라 임금 순제가 붙여준 이름이라는 것이다. 원(元)나라 황제는 어느 날 옥새를 잃고 찾을 수가 없었다. 황제는 고려 왕에게 옥새를 찾아 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때 지금의 구천동에 유해(劉海)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다. 고려 왕은 유해를 원나라로 보내 옥새를 찾도록 했다. 원나라로 들어간 유해는 한 달 안에 옥새를 찾아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초조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계속 피우며 유해는 “에라, 모르겠다. 담배나 죽이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때 방 밖에서 유심히 유해의 행동을 살피고 있던 두 사나이가 사색이 되어 유해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렸다. 이 두 사람은 담거와 배소였는데 옥새를 훔친 도둑들이었다. 유해의 “담배를 죽이자” 하는 말에 두 사람은 자기들을 죽이겠다는 말로 알고 용서를 빌게 된 것이다. 옥새를 찾은 황제는 유해에게 큰 잔치를 베풀고 후한 상도 주었다. 그리고 황제는 유해가 태어난 곳을 ‘구천동’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천승지국(天乘之國)의 구국제후(九國諸候)가 모여서 가히 축하할 만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었다. 깊은 산골이라고 생각했던 구천동이 이런 연유로 해서 ‘구천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상향이면서 구원자를 기다리는 양가적 땅, 구천동]
무주 구천동 설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것이 어사 박문수 관련 이야기이다. 박문수 전승은 전국적인 것으로, 원한이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민중들의 강력한 염원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지역 박문수 전승과 동일하다. 그러나 어사 박문수가 무주 구천동 지역에 유난히 자주 출몰하는 이야기는 무주 구천동만의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주 구천동은 첩첩산중의 고립된 곳으로, 은둔과 피난의 십승지지(十勝之地)로서의 역할을 하며 신성함을 보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립된 곳이기 때문에 중앙이나 관의 지배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여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외부와 차단된 무주 구천동 같은 곳에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것은 다른 일반 지역보다 훨씬 더 극적인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었다. 중앙이나 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산간 오지 무주 구천동 사람들에게 암행어사 박문수는 특별한 구원자이자 영웅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중의 하나는 구천동박문수 설화가 많이 채록된 곳이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이라는 점이다. 무주 구천동 이야기인데 해당 지역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이 채록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은 무주 구천동 지역이 지리적·역사적으로 접경지로서의 경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백련사에 구천 명의 중들이 살고 있어서 ‘구천동’이라고 했다는 유래담에서 9천 명을 일반 백성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찍이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도사(道士)였던 격암(格庵)남사고(南師古)는 『정감록(鄭鑑錄)』에서 구천동을 전란의 화가 미치지 않는 십승지지로 꼽으며 전란에 피할 수 있는 곳 중의 한 곳이라고 했다. 이는 구천동이 전쟁이나 양반의 수탈을 피해 9천 명 정도의 백성들이 넉넉히 살아갈 수 있을 만한 무릉도원 같은 곳이라는 민중 의식을 반영한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더불어 ‘구천동’ 이름이 중국 황제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이라는 설화 역시 ‘구천동’에 대한 민중의 자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구천동 설화를 통해서 양가적(兩價的)인 민중 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경치로는 신선이 살 만한 곳, 중국 황제가 인정해 준 곳, 전란이 유일하게 피해 가는 곳, 십승지지 중의 하나, 9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이상향적인 무주 구천동의 장소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박문수 설화를 통해 첩첩산중, 깊고 깊은 계곡, 심산유곡의 구천동은 중앙 정치의 관리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곳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갇혀서 특별한 구원자를 기다리는 곳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양가적 감정은 바로 아름답지만 굽이진 계곡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무주 구천동만이 갖는 지역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인월담(2.39km, 약670m) 08:08
구천동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마친후 07시 38분 출발을 한다. 주차장에서 마을 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서 가도 결굴은 만나게 된다. 이렇게 진행을 하면 여러개의 펜션을 지나고 구천교를 건너서 도로를 따라 진행을 하게 된다. 이렇게 오르면 도로에 설치된 차단기가 나오고 잠시후 등산로가 시작되는 아치문이 나온다. 우측으로 작은 돌탑이 1기 있다. 이후 우렁찬 물소리가 들려오는 계곡을 따라 진행하는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첫 번째로 월하탄이라고 하는 곳이 나온다. 월하탄은 선녀들이 달빛아래 춤을 추며 내려오듯, 두줄기 폭포수가 기암을 타고 쏟아져 내려푸른 담소를 이루는 아름다운 곳이라 적혀 있다. 잠시 가면 다리를 건너고 우측편으로 차량이 다니는 길이 있으며 길다랗게 지은 탐방안내소가 있는 곳으로 앞쪽으로 조금 더 가면 다시 널찍한 도로는 우측으로 올라가고 좌측으로 좁다란 도로는 예전에 다니던 백련사길인데 우측 조금 위쪽으로 어사길이라고 계곡옆으로 새로개설을 했다. 우리는 빨리가기 위해 좌측편 예전에 다니던 구길을 따라 진행을 한다. 금시 다리를 건너고 잠시 올라가면 구천동 수호비가 나오고 다시 5분을 더 오르면 인월담이라고 하는 곳에 닿는다. 인월담은 무주구천동 3대 명소로 탁 트인 하늘아래 펼쳐진 너른 반석사이로 쏟아지는 폭포가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인월이란 물위에 달이 도장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비춘다는 말이라고 적혀 있다. 나라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문태서 의병장의 의지는 흰종이에 도장을 찍은 것처럼 명확했다. 그를 따르던 의병들의 깨우침은 ‘수호’라는 깊은 사명감이 었다고 적혀 있다. 요즘처럼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듯이 하는 사람들은 꼭 보아야 할곳이다.
다리(→, 안심대 4.78km, 약755m) 08:39
인월담에서 잠시 오르면 비파담이 나온다. 여려개의 폭포를 이루며 떨어지는 폭포의 못이 마치 비파모양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7선녀가 구름을 타고 내려와 목용을 한 후 넓은 반석 위에 앉아 비파를 띁으며 즐겼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여기서 다리를 건너 반대편 어사길을 잠시 따라 올라가 Y계곡을 이루는 곳에서 다리를 건너 다시 좌측편으로 넘어와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덕유산 휴게소가 나온다. 송어장이 있는 곳이다. 여기서 살짝 올라 고개를 넘어서 진행하면 금포탄이라고 하는 곳에 이른다. 이후 임도를 따라 좀더 오르면 세멘트다리가 나오며 앞쪽으로 안심대라고 적힌 표지판이 있으며 우측으로 어사길이 보인다.
백련사 대웅전(6.51km, 약930m) 09:04
다리를 건너 이제 계곡의 우측으로 임도를 따라 올라간다. 첫 번째 신양담이 나오고 이후 좀 더 가면 명경담이 나온다. 요즘 비가 많이와서 인지 수량도 상당히 많아 물소리도 우렁차고 흰포말을 이루며 흐르는 모습이 장관이다 잠시 더 오르면 구천폭포가 나오는대 폭포는 그리 크지 않다 여기서 조금 더 오르면 백련담이 나온다. 커다란 입석이 하나 서 있는 앞쪽으로 공터가 있는 지점이다. 이후 진행을 하면 연화폭포에 이어서 백련교가 나오고 이어서 일주문을 지난다. 부도가 우측으로 있으며 백련사 계단앞에 이른다. 좌측으로 돌아서 올라가도 되지만 계단을 따라 오르기로 한다. 천천히 계단을 따라 오르면 천왕문이 나오고 우화루와 종각이 있는 앞쪽으로 커다란 아그배나무가 마당에 놓여 있으며 다시 계단을 따라 더 오르면 대웅전 앞에 이르러 우측으로 명부전 뜰에 앉아 모처럼 쉬면서 커피도 한잔마신다.
백련사
덕유산 중심부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백련(흰 연꽃)이 피어나자 짓게 된 것이라고 전해온다. 무주구천동 14개 사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백련사 입구에 있는 아치형 다리 ''백련교'' 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면 석조계단(백련사계단 : 전라북도 기념물)이 나타나고, 그위에 대웅전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밖의 문화재로 매월당 부도와 정관당 부도가 있다. 고려 때 제작되었다는 삼존석불이 유명하다.
‘백련사 터’는 ‘신라 신문왕(681~691) 때 지은 백련사가 있던 곳이다. 원래의 건물은 6·25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2년 이후에 다시 지었다. 백련사는 백련 스님이 하얀 연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세운 절로, 구천동 14개 사찰 중 지금까지 남은 유일하다. 경내에는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 명부전, 선수당, 종각, 보제루, 천왕문, 백련사 계단, 정관당 부도, 매월당 부도 등이 남아 있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43호인 ’매월당 승탑‘으로 지대석에 종모양의 탑신을 올려놓은 간단한 형태를 하고 있다. 탑신의 상륜부에 보륜을 두른 후 그 윗부분에 유두형 보주를 조각했는데, 보주의 상두면에 연화문을 양각해 놓았고, 보륜 아래 탑견에도 화려한 연화문을 둘러 세련미를 주고 있다. 몸돌 중앙에는 ‘梅月堂雪欣之塔’이라는 탑명이 있고 그 옆에는 ‘乾隆甲辰三月日甥姪林善行建’이라고 각자 되어 있어 이 승탑은 ‘매월당’이란 호를 가진 설흔 스님의 승탑으로 정조 8년(1784) 3월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승탑은 기단 위에 종모양의 몸돌만 있고 지붕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다섯 번째는 네 번째 승탑과 같은 것이나 지붕돌이 있는 모습이다. ‘매월당’은 1772년에 적상산 안국사의 후불탱화 조성에 참여한 후 12년 뒤인 1784년에 구천동 백련사에서 입적한 스님이다.
출처 : 한국NGO신문(http://www.ngonews.kr)
쉼터(7.85km, 약1270m) 09:49
백련사에서 잠시 쉬고 우측으로 가면 삼성각 앞쪽에서 등산로가 시작된다. 이정표에 향적봉 2.5km가 적혀 있으며 01-10번 표지목에 해발 940m가 적혀 있다. 이제 산길을 따라 오르기시작하면 첫머리 짧막한 돌계단/데크계단/침목계단이 이어지며 올라서면 백련사 계단이라고 하는 부도가 나온다.
통일 신라 시대 석종형 사리탑과 금강 계단.
금강 계단(金剛戒壇)은 양산 통도사(通度寺) 금강 계단처럼 불사리(佛舍利)를 안치한 경우가 있으며, 김제 금산사(金山寺) 방등 계단처럼 수계(受戒) 의식을 집행하는 용도로 활용된 경우도 있다. 수계를 베풀 때에는 수계자를 가운데에 앉히고 삼사(三師)와 칠증(七證)이 둘러앉아서 계율을 전수한다.
백련사계단(白蓮寺戒壇)은 1600년대 초 정관당(靜觀堂)일선(一禪)[1533~1608]이 주석할 정도로 명성이 있던 백련사(白蓮寺)에서 별도의 수계를 베풀기 위해 조성한 계단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백련사계단[白蓮寺戒壇]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이후 진행을 하면 돌길이 이어지다가 계단을 따라 오르면 향적봉 2.0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표지목01-11지점이다. 해발 약1000m지점이다. 이후 침목계단을 따라 오르면 데크계단을 두 번에 걸쳐서 올라서고 다시 침목게을 두 번에 걸쳐서 올라선후 돌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침목계단, 데크계단, 침목계단, 데크계단, 치목계단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고 돌길을 따라 진행하면 전망쉼터가 우측으로 조금 높이있다. 여기서 다시 침목계단을 오르고 바위지대를 따라 올라 침목계단 돌길을 따라 올라서면 향적봉 1.5km 적혀 있는 표지목 01-12지점에 닿는다. 이후 진행하면 데크계단을 두 번에 걸쳐서 올라서고 돌길을 따라 진행하여 침목계단 돌길 데크계단 돌계단길을 따라 오르고 데크계단 돌계단 데크계단 돌계단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 오르면 해발 약1270m지점에 의자2개가 놓여 있는 쉼터가 나온다.
향적봉(9.04km, 1614.2m) 10:33 ~10:46
쉼터를 지나며 길다란 데크계단을 따라 올라서면 표지목 01-13지점에 닿는다. 이후 돌길을 따라 진행하고 데크계단을 따라 올라서고 다시 침목계단을 따라 올라선후 돌길을 따라 가면 우측으로 출입금지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길이 있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길다랗게 이어지는 돌계단을 따라 오르고 데크계단 돌길을 따라 오르면 표지목 01-14지점에 닿는다. 여기서 좀 더 오르면 우측으로 의자2개가 있는 쉼터를 지나고 다시 4분여 더 오르면 전망쉼터가 나온다. 우측편으로 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조망이 되며 설천봉 아래 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임도가 보인다. 그 넘어로 무주리조트입구의 일부가 보이기도 한다. 이제 능선으로 오르는 길에는 주목나무가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 좌측편으로 주로 주목나무가 분포를 하고 있다. 전망쉼터에서 잠시 휴식후 10분을 좀 더 오르니 이정표 삼거리에 닿는다. 좌측은 대피소로 직접 가는 길이고, 우측은 향적봉으로 직접 오르는 길이다. 여기 이정표에 향적봉 0.2km가 적혀 있다. 이제 침목계단으로 이루어진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서면 주변의 조망이 확터지며 시야가 좋아진다. 삼거리에서 6분을 올라서서 향적봉에 이르니 벌써 많은사람들이 향적봉 정상석에서 인증사진 찍을라고 줄을 서있다. 에고 벌써 많이들 올라왔구먼~~ 곤돌라가 있으니 타고 오면 쉽게 올라올 시간이다. 우리도 줄에서서 인증사진 찍고 정상바위에도 올라가본후 정상에서 시원한 공기 마시며 즐긴후 중봉으로 향한다.
중봉(10.1km, 약1593.6m) 11:07
무주 덕유산 향적봉은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높은 산이다. 전라북도 무주와 장수, 경상남도 거창과 함양군 등 2개도 4개 군에 걸쳐있으며,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등산로에는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향적봉에서 중봉을 거쳐 덕유평전, 무룡산까지 이르는 등산로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철쭉이 피는 계절의 풍경도 일품이지만 눈이 특히 많이 내리는 향적봉 일대의 설경은 장관이다.
이제 중봉으로 향한다. 천천히 계단을 따라 내려서서 대피소 뒤편으로 길을 따라 진행하면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는 주목나무가 보인다. 간혹 죽어 천년을 보내는 주목도 보이고 싱싱한채로 천년을 향해 가는 주목도 보인다. 이렇게 진행을 하면 우측편으로 고사목이 서있는 지점에서 앞쪽으로 덕유평전을 지나 동엽령, 무룡산을 거쳐 남덕유까지 이어지는 덕유능선의 멋진모습이 조망이 된다. 이후 조금씩 오르내리는 길을 따라 진행하여 마지막 잠시 오르면 중봉에 닿는다. 중봉에서 백암봉으로 향하는 길다란 계단길과 그 아래 널찍한 평원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우측으로 무주 안성 좌측으로 거창 북상면이 위치하는 덕유능선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오수자굴, 05-05지점 (11.60km, 약1242m) 11:39
중봉에서 오수자굴을 거쳐 백련사에 이르는 등산로가 좋지는 않다. 오래전에 이곳으로 하산을 한적이 있는대 지루하고 길도 좋지 않았엇다. 중봉아래 벌써 구절초가 이쁘게 피었다. 여기서 잠시 내려서면 짧막한 데크계단이 있고 바윗길을 따라 계속 내리막길이다. 05-07지점 표지목으로 지나고 잠시 올라서서 백련사 3.7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봉에 해발 1470m가 적혀 있다. 이후 바윗길을 따라 가파르게 내려선다. 간혹 내리막 침목계단이 있으며 데크계단도 있다. 내려서는 길 대부분은 푸르른 조릿대길이다. 표지목 05-06지점을 지난다. 해발 약1400m쯤 되는 지점이다. 여기서 내려서는 길은 더욱 가파르게 내려선다. 바위지대를 내려서는 곳이 많다. 조릿대숲길로 이루어진 돌길을 따라 내려서면 이제 고무타이어를 짤게 잘라서 댄 데크계단을 따라 길게 내려서면 그 끝지점에 오수자굴이 나온다. 표지목 05-05지점으로 해발 1242m가 적혀 있다. 오수자굴은 오수자라는 스님이 이곳에서 득도를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적혀 있다.
백련사입구(14.4km, 약950m) 12:33
오수자굴에서 돌계단길을 따라 계속 내려서면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며 개울가에 닿는다. 이제 개울가를 따라 진행하면 너덜지대에 닿는다. 걷기가 아주 나쁘다. 잠시 너덜길을 따라 가면 너덜지대 중간쯤에 이정표가 있다. 백련사 2.4km가 적혀있다. 이후 좌측 계곡에서 본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건너고 잠시 가면 좌측에서 본계곡으로 흐르는 작은 물을 건넌후 진행을 하면 백련사 1.3km가 이정표와 055-03지점 표지목에 닿는다. 해발 1005m쯤으로 이제 많이 내려왔다. 이후 진행을 하면 길은 육산길이 많아지며 걷기가 좋은 길이 많아진다. 이후 좌측에서 흐르는 큰 계곡의 물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후 진행을 하면 계곡옆으로 철주가 설치된 지점을 지나고 이윽고 백련사 0.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 닿는다. 표지목 05-01지점으로 해발 954m가 적혀 있다. 여기부터 백련사 입구까지 나가는 길이 나쁘다. 돌길을 따라 나가야 한다. 조금씩 오르내리는 돌길을 따라 걷기가 좋지를 않다. 이렇게 나가면 임도오수자굴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좌측으로 오르면 백련사, 직진으로 내려서면 주차장으로 가는 길로 여기에 공단직원이 근무하는 초소도 있다.
우측 다리 구천동주차장 3.0km 이정표(계곡삼거리, 17.7km, 약700m) 13:26
백련사 입구에서 어사길을 따라 진행한다. 어사길입구로 들어서면 다리를 건너 계곡의 우측길을 따라 서서히 내려서게 된다. 푹신한 야자메트길로 걷기에 좋다. 이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다. 첫 번째 이정표가 있는 지점 구천동 주차장 6.2km가 적혀 있는 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가기로 한다. 아들이 준비해온 삼각김밥으로 간단히 식사를 마치고 커피도 한잔씩 마시고 식사를 마무리 한다. 이제 주차장으로 향한다. 푹신한 깔개길을 따라 진행하면 10분이 좀 더 지나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임도와 나란히 가는 어사길을 따라 가면 신양담이 나오고 잠시 더 진행하여 안심대에 닿는다. 여기서 임도는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진행이 되고 어사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데크계단을 따라 잠시 올라선후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진행한다. 걷기에는 좋지는 않지만 자연상태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세멘트길을 걷는것보다는 훨씬 나은듯하다. 돌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간혹 짧막한 데크길이 나오기도 한다 두 번째 데크길을 지나면 우측으로 다리가 보이는 앞쪽 이정표에 닿는다. 주차장 3.6km가 적혀 있다. 이후 잠시 데크길을 걷고 나면 우측으로 다리가 또 나온다. 주차장 3.5km가 적혀 있으며 금포탄이 있는 지점이다. 어사길에도 금포탄등 표지판이 있었으면 더 좋겠다. 이후 길은 좋아진다. 평탄한 습지지형을 지나며 우거진 숲도 좋다. 우측으로 휴게소가 보이는 지점으로 구월담이라고 하는 곳이다. 여기서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다리가 보인다. 올라갈 때 건너던 다리로 양쪽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삼공리 구천동주차장(21.0km, 약590m) 14:12 ~14:18
계곡 합류지점에서 좌측편 길을 따라 계속 진행을 한다. 잠시 가면 데크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여기서는 좌측편 계곡으로 길이 없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구천동 주차장 2.5km가 적혀 있는 비파담이다.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로아래로 데크길이 있지만 굳이 내려서지 않고 도로를 따라 가면 6분후 다시 인월암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진행한다. 조금가면 인월암 입구에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인월암을 거쳐 오르는 길이 칠봉을 거쳐 설천봉,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일월암입구를 지나고 좋아진 길을 따라 진행하면 오르는 데크계단과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면 반달형 쉼터가 나온다. 여기 이정표에 구천동 주차장 1.6km가 적혀 있다. 여기부터는 길은 더욱 좋아진다. 데크길 쉼터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는 널찍한 길에는 몇 개의 안내문도 보인다.
지혜의 문
옛날 길을 돌로 막아 지나는 사람들에게 곡식, 돈 등을 받아야 길을 열어주는 심술이 고약한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고심하던 마을 사람들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평소 힘자랑을 좋아했던 도깨비에게 길을 막고 있는 돌을 쪼개 보라고 하였고 큰 바위가 두개로 나뉘게 되었다. 이를 지혜의 문이라고 일컬어지며 현재까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소원 성취의 문
옛날 금실이 좋은 부부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때, 전쟁으로 남편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부인은 매일 소원의 탑에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하였다.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 없는 남편을 위해 기도를 했던 부인의 정성으로 남편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문을 지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여기는 길이 좋아서 시간은 그리 많이 걸리지 안는다. 어사길을 따라 나가면 좌측으로 덕유대야영장으로 올라가는 길에 닿는다. 우측으로 조금 내려서면 백련사옛길과 이길이 갈리는 삼거리에 어사복을 입은 분이 사람들에게 무슨 이야기인지 설명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이제 임도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면 다리앞 탐방안내소에 닿는다. 잠시 쉬어간다. 이후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카라반트레일러 형태로 꾸며놓은 팬션등을 지나고 차단기를 넘어서 가면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는 지점을 지나 야영장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골목을 따라 가면 주차장에 닿는다. 이렇게 하여 오늘 덕유산 향적봉~중봉~~오수자굴을 거쳐 오는 산행을 마친다. 오늘은 날씨가 청명하고 좋아 산행하기는 매우 좋았다. 이길은 지루하여 잘가지 않는 길인대 아들이 덕유산은 처음인지라 덕유산 원점회귀 종주길 알려줄겸 산행을 했다.
돌아오는 길
돌아오는 길은 삼공리를 출발하여 무주리조트입구를 지난후 큰고개 두 개를 넘어 적상면에 닿고 이후 무주톨게이트로 진입하여 금산을 지나고 대전방향으로 진행하여 신탄진을 거쳐 서청주 톨게이트로 빠져나온후 집에 도착을 하니 1시간 35분이 걸린다.
이렇게 하여 청명하고 시원날씨에 덕유산 산행 모처럼 잘 하고 왔다.
산행시간 : 6시간 34분 소요
산행거리 : 21.0km
통행료왕복 10200원
연료비 : 4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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