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차 서강 묘족마을 02월 20일 화요일 맑음 10~20도
기상 05:30
오늘은 투어의 마지막 날이다. 계리 서강 묘족마을을 구경하는 날이다. 묘족마을이 얼마나 멋지걸래 투어에 넣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마지막 날이라 아쉬움도 남는 날이다.
오늘도 기상은 05시 30분에 한다.
아침에 일어나 밖을 보니 아직 깜깜하다.
서강묘족마을
서강천호묘채(西江千戶苗寨)는 묘족의 원생태 문화가 완전하게 보존된 묘족의 마을이다. 산발을 따라 조성된 10여개의 마을이 혼연일체를 이루어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서강묘채는 현재까지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적으로 규모가 가장 큰 묘족 마을이다.
노천박물관으로 인정되는 서강묘채는 묘족의 발전역사를 펼쳐 보여 묘족의 전통문화를 감상하고 연구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서강은 또한 소문이 자자한 은 장신구의 마을이기도 하다.
5천년전 황하(黃河) 중 하류의 벌판에서 살던 구려(九黎) 부족이 북쪽으로 확장하면서 동진과 남진의 염제(炎帝)와 황제(黃帝) 부족과 무력충돌을 빚었고 장기적인 전쟁 끝에 구려부족이 패전하여 제1차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했다.
그들은 황하 유역을 포기하고 남쪽으로 이동해 장강(長江)유역에 이르러 "삼묘국(三苗國)"을 건국했다. 그 뒤에 요제(堯帝)와 순제(舜帝)가 강대해지는 삼묘국을 정벌해 구려부족은 제2차 민족의 대이동을 시작해 한 갈래는 북서쪽으로 향하고 다른 한 갈래는 남서쪽으로 향했다.
북서쪽으로 간 묘족은 강(羌)족과 어울려 서강(西羌)의 조상이 되었고 남서쪽으로 간 묘족은 초(楚)나라 사람들과 화목하게 어울리면서 "초만(楚蠻)"의 주요 성원이 되었다.
서기 47년 한(漢)왕조가 군대를 파견해 초만 정벌을 시작했고 묘족은 하는 수 없이 제3차 민족의 대 이동을 통해 오늘날 귀주성의 남동쪽에 터를 잡게 되었다.
묘족은 수차에 걸친 대 이동 중 여러 갈래로 지파가 분류되었고 오늘날의 서강에는 서씨(西氏)묘족이 모여 살며 서씨 묘족은 600여 년 전에 이 곳에 터를 잡았다.
서강묘채의 건물은 대부분 우진각 지붕의 천두식 고상가옥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둘레에 난간이 있는 남방의 건물을 본 딴 묘족의 고상가옥은 장방형과 삼각형 등 다종 구조가 어울려 입체적인 공간으로 주변의 청산녹수와 조화를 이룬다.
보통 3, 4층으로 된 고상가옥의 1층은 농기구 창고와 비료 창고, 짐승 우리, 화장실로 사용한다. 2층은 거실, 주방과 침실이며 건물 밖의 둘레에는 등받이가 있는 의자를 설치해 더위를 식히고 쉬어 가며 여인들이 자수를 놓는 장소로 사용한다. 미인고(美人靠)라고 하는 이 의자는 묘족의 명물이다.
묘족의 마을은 풍수적 조건을 감안하고 주민들에게 편리를 도모하고자 마을 근처에 지붕이 있는 풍우교(風雨橋)를 놓았다. 과거의 풍우교는 목조 건물이었으나 비바람에 쉽게 무너져 2008년에 서강에서는 시멘트 풍우교를 신축했다.
비가 많이 내리는 남방에서 오고 가며 비를 피해 갈 수 있다는 의미의 풍우교는 교통수단의 역할과 여름철에 더위를 피하는 역할, 잔치를 차리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 대사를 의논하는 역할도 한다.
풍우교가 대부분 마을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묘족은 풍우교에서 마을로 진입하는 사람들을 막고 술을 권하기도 한다. 연인들은 이 다리에서 서로 사랑노래를 주고 받기도 한다.처마가 건듯 들린 날아 갈듯한 지붕에 정교한 조각, 화려한 벽화의 풍우교는 묘족의 건축문화와 조각문화, 그림문화, 종교문화를 직관적이고 형상적으로 잘 보여준다.
풍우교를 지나다가 지치면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대고 다리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산수와 예스러운 고상가옥의 조화에 매료되면 시간이 흐르는 줄도 모르게 된다.
묘족의 마을에 어둠의 장막이 내리면 건물마다 불을 밝혀 밤 하늘의 별이 내린 듯 하다. 묘채의 전경을 더 잘 보려면 마을 옆 높은 곳에 마련된 전망대에 올라야 한다.
관광차량을 이용하면 쉽게 오를 수 있는 전망대는 서강묘채 관광의 필수 코스이다. 이 곳에서는 묘채의 야경은 물론이고 이른 아침 가벼운 물안개에 싸인 마을이 선경같이 비쳐 오기도 한다.
서강묘채에서는 매일 오전과 오후에 현지 묘족들이 출연하는 노래와 춤의 향연을 펼친다. 현지인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즐거운 노래 속에서 춤을 추며 사랑을 노래하는 것을 보면 묘족을 더 잘 알게 된다.
이 마을에서 묘족의 옛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전부 노인들이다. 그들은 묘족의 고대 언어로 만물의 기원과 천지의 변화, 눈물 겨운 민족의 대 이동을 노래한다.
특별한 행사가 있는 날이면 또 구리 북 춤과 제사 날에만 추는 나무 북 춤도 볼 수 있어서 묘족의 유구한 역사와 다양한 풍속을 가까이에서 예술적으로 느낄 수 있다.
서강천호묘채는 귀주(貴州, Guizhou)성 검동남(黔東南, Qiandongnan) 묘족 동족 자치주 뢰산(雷山, Leishan)현, 검동남 주도 개리(凱里, Kaili)에서 35km, 귀양(貴陽 Guiyang)시에서 200km 거리에 위치한다.
다양한 교통편으로 귀양에 이른 다음 고속철을 이용해 개리에서 하차, 개리에서 서강묘채까지 관광버스를 바꾸어 탄다. 귀양에서 개리까지 38분, 개리에서 서강까지 1시간이 소요된다.
아침에 일어나 세면을 하고 짐을 정리한후 07시부터 식사를 한다. 식사는 5성급이라 그래도 괜찮다. 식사는 미리 준비가 되어 있으며 모처럼 베이컨도 맛보았다. 여기도 대부분 음식은 현지식으로 매운 양념등이 있으며 쌀국수도 맛있다. 지배인이 한국 손님은 처음인 듯 이모저모를 살핀다. 무엇을 좋아 하는지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살피는 듯하다. 젊고 친절한 지배인에게 중국 현지가이드를 통해 아메리카노 커피도 준비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다음 올 한국 여행객들을 위해서다. 식사가 끝나고 간단히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후 호텔을 출발 한다. 오늘은 07시 30분 출발한다고 하여 짐을 미리 다 챙겨 가지고 나왔다. 젊은 지배인은 우리가 나와서 갈때까지 인사도 하고 끝까지 손을 흔들어주며 친절을 베풀었다.
서강 묘족마을 매표소 입구 도착 08:18
호텔을 출발하니 화려하던 조명이 꺼져 있는 호숫가를 따라 나온다. 역시 아침에 보는 모습도 보기 좋다. 검동난 호텔이 있는 구역은 새로이 건설한 도시로 건물도 깨끗하고 크며 경치도 좋다. 호텔을 출발한지 5분후 계리 톨게이트로 진입을 한다. 검동난의 외곽을 따라 지나는데 도시가 생각보다도 상당히 크다. 이어지는 도시의 건물들을 보며 진행을 하면 25분후 서강진 톨게이트에 닿는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좁다란 도로를 따라 서서히 오르면 언덕을 넘게 되는데 여기 좌, 우측으로 묘족들의 멋지게 지은 건물들이 볼만하다. 이후 서서히 내려서면 도로변으로 몇 개의 주차장을 지나서 매표소 입구 주차장에 도착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 호텔에서 45분 가량 걸렸다.
묘족마을 투어 08:18 ~10:24
서강 묘족마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위쪽으로 조금 오르면 매표소가 나온다. 매표소에서 중국현지가이드 수속 받는대 시간이 많이 걸린다.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가이드가 나온다. 이제 묘족마을 출구로 들어가 셔틀버스를 타고 간다. 묘족마을 입구 셔틀정차장까지는 2분이 소요된다. 이후 우리는 묘족마을 냇가를 따라 걷는다. 냇가 양쪽으로 펼쳐지는 건물의 모습이 장관이다. 특히나 냇물 건너편 우측으로 급경사면으로 몇층으로 된 건물들이 쭈욱 이어서 있는 모습은 장관이다. 우째 저리 건물을 지었는지 땅 넓고 평야지도 많은대 참 묘족들 선조들 고생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황하, 장강 유역의 기름지고 넓은 농토에서 편하게 살던 묘족들이 한족들에 밀려 1차이동, 2차이동, 3차이동의 민족 대이동을 거치면서 산속깊이 숨어 든 것이다. 원양제전의 하니족과 묘족들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쫒겨 났을 것이다. 좁다란 계곡 속에 숨어 살기 위해선 급경사면으로 다닥다닥 붙은 건물을 지을 수 밖에 없었을게다. 힘이 없으면 항시 변방으로 쫒겨나게 마련이다. 일대일로 길은 하나로 통한다는 뜻인지는 모르지만 현재 중국 상황은 각지 변방까지 큰도시를 건설하며 한족들을 투입하고 있다. 산속에 사는 묘족이나 하니족, 동족들이 도시로 내려와 아파트에서 잘 살지는 미지수다.
전국토의 한족화가 아닐까 싶다. 소수민족의 독립을 두려워 하는 것이다. 티벳의 천장열차(칭짱열차)도 티벳에서 독립움직임이 있자 놓은 것은 모두가 알 것이다. 4000고지 이상되는 티벳고지에 그들의 편리를 위해서 놓았을까? 그때의 어린 달라이라마는 어찌 되었을지?
달라이 라마
티베트 불교의 최고 수장을 가리키는 세습명. 동시에 정치적인 의미에서 티베트의국가원수이자 실질 통치자이기도 하다.
현 텐진 갸초 달라이 라마는달라이 라마 14세다.
엄밀히 말하자면 달라이 라마는 황모파(겔룩파)의 수장이며, 그것도 대한불교조계종의 총무원장과 비슷한 자리다. 하지만 실질적인 영향력은 당연히 겔룩파에 국한되지 않는다. 조계종종정에 해당하는 직책은 간댄티빠(དགའ་ལྡན་ཁྲི་པ།, dga'-ldan-khri-pa)로, 간댄 대사원에 있는 둘의 의자를 보면 달라이 라마의 것보다 간댄티빠의 것이 3미터 가량 더 높아 의례상이나마 위계는 간댄티빠가 더 높음을 보여준다.
천주교와 이슬람에 비유하자면 교황령시기 교황, 이슬람 제국시기 칼리파에 준하는 직위로, 세속국가의 지배자이자 티베트 불교교단의 최고위급 성직자이기도 하다. 때문에 영어 호칭도 His/Your Holiness(성하)다. 다만 2011년 8월부터 정부수반으로서의 지위는 총리에게 이양한 상태이므로 이후로는 현대의 교황와 비슷한 위상이 되었다.
전설
첫 달라이 라마인 겐둔 둡빠의 꿈에 신성한 호수에서 살고 있던 요정이 겐둔 둡빠 앞에 나타나서는 "너와 너의 윤회체를 영원히 돌봐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사라졌다. 잠에서 깨어난 겐둔 둡빠는 티베트로 내려와서 달라이 라마의 근간이 되는 기반을 다졌다고 한다.
입구에서 묘족마을 냇가를 따라 중심부를 지나는 길은 대략 30분이 소요되었다. 다리를 건너 앞쪽으로 전망대로 올라가는 전동차 주차장이 나온다. 여기서 전동차를 타고 3~4분 올라가면 마을 전체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여기에 전통복장을 대여 해주는 곳이 몇군데 있다. 관광객들은 옷을 대여하여 사진도 찍고 할수 있다. 여기 보이는 전통의상을 입은 여인들이나 남성들은 현지인이 아닌 관광객들이다. 마을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망대에서 조망을 즐기며 15분가량을 지체한 후 다시 전동카를 타고 내려와 주차장에서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고 오면서 카페에서 커피나 음료를 마시려 했으나 오면서 적당 곳이 없어 셔틀버스 주차장 까지 나오니 10시 15분으로 자유시간으로 정한 10시 30분보다도 일찍 도착하여 그냥 셔틀버스를 타고 나와 매표소 앞에서 펼쳐지는 민속공연을 잠시 관람한 후 우리 버스를 타고 고속열차를 타기 위해 개리로 향한다.
개리 남역 도착 12:40
묘족마을을 10시 35분 출발하여 개리 남역으로 향한다. 돌아가는 길은 검동난을 통과한다. 우리가 머물던 호텔을 조금 더 지난후 첸둥난 남쪽 묘인향이라고 하는 길가옆 식당에 도착하여 점심식사를 한다. 마지막 점심식다. 식사는 고추볶음, 멸치볶음, 고기를 잘게썰어서 만든요리, 고추가 많이 들어간 목이버섯요리, 돼지고기, 마파두부, 콩나물등, 술도 빠질수 없다. 백년 뉘우란산이라고 쓴 52도짜리 술로 깔끔하게 입가심하고 점심식사 맛있게 하고 나온다. 이번여행의 음식은 대체로 만족스럽다. 아침 호텔 2군데 뻬놓고는 다 괜찮앗던 것 같다.
이제 고속열차를 타러 간다. 식당을 출발한지 4분이 되어 개리 남역에 도착을 한다. 역사는 우리가 버스에서 내려서 잠시 위로 올라가야 한다. 역사는 시골역이지만 상당히 널찍하고 크다. 여기도 상당히 복잡하여 앞차가 가기를 기다려 우리갈 탈 동인~곤명남 행 G2987열차 13:24분 열차를 타기위해 기다린다. 개찰은 10분 전에 한다. 개찰후 현지인들이 가는대로 뒤따라 진행하여 4번 홈에 도착하여 기다리니 잠시후 정시로 열차가 도착을 한다.
우리 일행은 4호차로 위치는 조금 다르지만 중앙부에 승차를 했다.
곤명 식당 도착 19:20
고속열차 승차후 멋지게 잘 달린다. 속도가 298km를 찍는다. 열차는 대부분 터널로 이어지는 고속철길을 따라 진행을 하여 밖을 내다봐도 별로 보이는 것은 없다. 열차가 귀양을 지나고 안순을 지나고 잘 달리다가 멈추어 서더니 얼마를 서 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장 시간이 흐른후 열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달리면 단주, 취징등 몇군데를 더 정차한후 곤명남역에 정차를 한다. 정시보다 1시간 07분이 늦은 19시 20분 도착을 하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서 아랬쪽 대합실에 이르러 좌측에 있는 화장실을 다녀오는대 아뿔사 박여사님 길을 잘못찾아 조금 늦는다. 그래도 길을 일치 않고 찾아 왔으니 댜행입니다. 곤명 남역 규모가 상당하다. 서울역, 용산역에 버금간다. 선로가 상당히 많으며 각지로 가는 열차편이 많은 곳이다. 박여사님 도착하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택시, 버스등이 기다리는 주차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대형버스를 타고 곤명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할 곳으로 향한다. 40분이 소요된다고 한다. 가면서 이모저모 중국 현지가이드 설명을 한다. 이곳 곤명 남역이 있던 곳은 곤명시가 아니였지만 현재는 곤명시로 편입된 곳이라 한다. 널찍한 도로를 따라 잘 달린다. 커다란 건물들도 많고 잘 정비된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곤명시의 인구가 서울시의 인구보다 조금 작은 870만명이라고한다. 운남성에서 가장 큰도시이다. 우리가 예전에 왔을 때와 천지차이로 많이 변모한 모습이다. 곤명역을 출발한지 꼭 40분 만에 식당에 도착을 했다.
식사후 호텔 도착 19:20 ~21:12
곤명 식당은 좁다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송이샤브집으로(云南野生苗火0) 요기도 끝자는 영 모르겠다. 우쨋든 운남성에서 나는 야생 버섯요리집이란 야그 같다. 가운데 커다란 가마솥에 고기육수물을 끊인다. 송이버섯은 한군데당 1kg이라고 한다. 버섯을 넣으려니 뒤에 서 있던 아가씨가 안 된다고 한다. 우짠댜 건져 먹는것도 못하게 하고 송이 날로 집어 먹어 보니 향이 나긴 한다. 끊이는 시간이 있다고 한다. 얼마를 기다려 송이를 풍덩넣고 한참을 기다려 건져 먹고 난후 다시 양고기를 넣고 다시 소고기를 넣고 거품을 제거한후 건져 먹는 방식이다. 상위에는 매콤한 양념장이 있지만 우리 식탁 옆쪽에 있는 양념코너에서 각가지 매운고추 파등으로 양념장 듬뿍 만들어 찍어 먹으니 맛이 그만이다. 고기 건져 먹고 난후 다음에 야채등을 넣고 건져 먹은후 마지막으로 국수를 넣고 건져 먹는것인대 우리는 소고기 한사라 더 시켜서 먹은 다음 마지막으로 국수 넣고 배불리 먹었다. 여기다가 마지막 저녁 식사인데 술이 빠질 수는 없지 않은가! 소청이라고 적힌 50도 짜리 술로 깔끔하게 취기 돋운다음 마지막 저녁식사도 우리 입맛에 맞게 맛있게 먹었다.
우쨋든 마지막 저녁식사로 송이자연산 버섯샤브 잘먹고 나왔다.
이제 마지막 추침을 위해 처음에 도착했던 호텔로 이동을 한다. 식당에서 25분 정도를 가니 호텔이 나온다. 처음에 갔던 호텔이라 그래도 낮이 익는다.
내일 아침이면 곤명도 마지막으로 인천으로 떠나야 한다.
아침 출발 시간은 6시로 일찍 일어나 짐 챙기고 준비한 후 호텔에서 도시락 받아들고 공항으로 간다고 한다.
이번 여행 함께 한 모든 님들 마지막밤도 행복한 밤 되겠지요~~
8일차 돌아오는 날 2월 21일 수요일 곤명 맑음, 인천,청주 비
기상 04:40
아침에 일찍 일어나 세면하고 짐을 챙긴다. 큰 가방에 넣고 부칠 짐 챙기고 배낭에 메고갈 짐 따로 잘 챙겨서 넣어야 한다. 검색대 통과할 때 쉽고 간편하게 나갈라믄 잘 챙겨야 한다. 부지런히 짐 챙기고 05시 45분경 호텔방을 나온다.
곤명공항 출발 08:45
호텔을 나오니 모두가 같은 시간에 나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키 반납하며 도시락 받아든다. 빵3개 사과 하나, 물 또 뭣이 있었더라 우쨋든 간단히 받아든 도시락들 챙기고 난 들고가기 귀찮아 현지에서 뚝딱 먹어 치웠다.
호텔을 06시 10분 출발하여 곤명공항으로 간다. 아직 날이 어둡다. 곤명공항에 이르니 화려한 불빛으로 빛나는 공항이 올 때 모습과는 다르게 보인다.
공항에 도착하여 금시 항공권 단체로 받느라 시간이 다소 많이 걸린다. 좌석은 앞에서 3번째 줄인 33번부터 37번사이 앞좌석을 배정받아 내릴 때 빨리 나갈수 있겠다. 이후 차래로 받아든 항공권과 대조를 하며 짐을 부친후 검색대로 들어서는대 에고 뭐 걸렸다고 배낭을 못가져가게 한다. 뭐라 배터 배터 하는대 뭔 야그여 손으로 그려가며 설명을 하는대 가만히 듣자하니 배터리를 말하는 것 같다. 우씨 ‘리’까지 하믄 알아 들을 틴지 배터가 뭣이여 ~
배낭을 열어서 보조배터리 핸드폰을 꺼내보이니 비닐장갑끼고 용량까지 확인하더니 다시 검색대를 통과 시킨다. 다시 나온 짐을 향해 오케이 하니 손으로 오케이 싸인을 보낸다.
이렇게하여 검색대 통과하고 마지막 출국 수속 순번대로 서서 단체 비자 디밀고 얼굴 디밀고 한참씩 수속마친후 우리는 부리나케 67번 게이트로 이동을 하니 에고 출발시간이 얼마 남지 않는다. 08시 20분 보딩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여 동방항공이 있는 마당에서 뱅기에 탑승후 몇분이 되어 곤명공항을 출발후 활주로로 이동하여 08시 58분 이륙하여 인천으로 향한다.
입국 수속후 짐찾고 공항 출발 14:24
곤명곤항과 작별한후 한동안 비행기가 안정을 찾은후 대략 1시간 30분후 기내식이 나온다. 기내식 받아들고 맥주 한캔과 커피도 한잔씩 시켜서 마시며 식사를 한다. 그러는 사이 2시간이 지나고 식사가 끝난후 다시 맥주한캔씩 시켜서 미리 준비한 안주로 맥주마시며 가니 그래도 시간은 잘 간다. 동방항공 맥주외에는 다른 술은 없다. 와인도 필요하고 독한 위스키도 필요한데 중국사람들은 녹차아니믄 안묵는가 보다. 어쨌든 마지막으로 커피한잔씩 더 시키니 떨어졌단다. 이런~~
20여분이 흘렀다. 자기들이 마시는 커피인지 식사때 마시던 커피보다 더 맛있고 진한 커피 두잔 가져다 주어 마나님하고 한잔씩 마시며 오니 제주도 상공을 지난단다. 갈때는 지루했지만 올때는 그런대로 수월하게 왔다. 오늘 우리나라 날씨가 좋지 않아 비가 온다고 한다. 우산도 준비하고 단디 내닐 준비해야 겠다.
우리 여행가이드에는 14시 35분 도착이라 되어 있는데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13시 41분이다. 한시간이 차이난다. 계산을 잘못한 것 같다.
우쨋든 비행기에서 내린후 통로를 따라 나간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선후 공항열차를 타고 2분후 열차에서 내려 다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간후 입국수속은 매우 간다하여 금시 나간후 중국인들이 몰려오기 전에 우리는 짐을 찾고 공항을 14시 24분 출발 했다.
청주 도착
역시 날씨가 좋지를 않다. 비가 온다. 공항에서 일산에 사시는 황선생님 내외와 인사는 나눈후 공항을 출발하여 15분가량을 이동한후 보문항 식당에 도착하여 시원한 김치찌개로 점심겸 저녁식사를 한후 출발을 한다. 비가 오는 길을 따라 진행하여 1시간후 평택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진행하여 천안에 17시 40분경 도착하여 손병일님 내외 하차후 다시 톨게이트로 들어가 청주 톨게이트를 거쳐 청주에 도착을 하니 18시 20분이다. 우산을 받쳐들고 트렁크를 끌고 집에 도착을 하니 18시 30분이다.
중국에서도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곤명 귀주성 여행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함께 한 모든 님들 장거리 여행에도 즐겁고 식사도 맛있게 잘하고 누구하나 뒤처지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시어 감사 합니다.
아듀~
여행경비 : 245만원
개인경비 단체로 개인당 : 20만원(남은 것은 돌려 준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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