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0년 부터)

1403 부산 금정산801.5m 2024.02.10.토요일 설날 맑음

산야55 2024. 2. 12. 12:58

부산 금정산801.5m

2024.02.10.토요일 설날 맑음

참석인원 : 마나님이랑 둘이서

 

청주 집 출발 04:45 김천분기점 06:00 동대구 분기점 06:35 청도 휴게소 06:55 ~07:35(아침식사) -대동톨게이트(우측으로, 요금 설날 면제) -잠시후 우측으로 빠져나가 괴정마을 대동면 보건지소 대동화명대교 화명고가교 지나 우측으로 빠져나가 굴다리 통과 산성로 따라 진행 금정산성광장 주차장(부산 금정구 산성로 501-2, 해발 325m) 08:25 ~08:38 능선마루(0.464km, 415m) 08:48 잠시 평탄한길 서서히 올라 이정표(0.701km, 435m) 08:52 잠시후 주능선에 닿고(0.815km, 430m) 08:54 서서히 내려서 동문(0.974km, 415m) 08:57 고당봉 4.4km 이정표(1.57km, 480m) 09:08 샘터 이정표(2.28km, 515m, *우측으로 제3망루) 09:38 오르막 침목 돌길 4망루(3.32km, 615m) 09:46 산불초소 의상봉(3.55km, 638m) 09:54 이정표 삼거리(직진, 3.79km, 600m) 10:00 양쪽으로 목책, 침목계단 오르막길 김유신 솔바위 표지판(4.06km, 650m) 10:06 오르막 침목계단 원효봉(4.21km, 682m) 10:11 사기봉 앞 이정표(4.48km, 670m) 10:16 내리막 돌계단 안부 이정표 오르막 돌계단 바위옆 산불초소(650M) 10:21 내리막 돌계단 북문(5.04km, 595m) 10:27 고당샘앞 이정표(우측으로, 5.85km, 725m) 10:52 능선 삼거리(우측으로, 6.12km, 715m) 10:58 금샘(6.21km 715m) 11:00 ~11:07 능선 이정표(좌측으로, 6.42km, 745m) 11:15 금정산 고당봉(6.64km, 801.5m) 11:23 ~11:50(중식) -내리막 데크계단 삼거리(우측으로, 6.76km, 770m) 11:53 해발750m표지(6.88km) 11:57 이정표(7.01km, 710m) 12:00 이정표 삼거리(좌 미륵사 0.5km, 7.14km, 705m) 12:02 미륵봉(7.46km, 711.8m) 12:10 이정표 삼거리(좌직진, 7.60km, 685m) 12:13 이정표 삼거리(좌측으로, 7.77km, 635m) 12:17 미륵사(7.88km, 635m) 12:20 내리막 돌길 삼거리(직진, 8.48km, 530m) 10:34 임도(우측으로, 8.61km, 510m) 12:36 차단기(8.91km, 480m) 12:40 좌측 동문 이정표(9.19km, 475m) 12:44 다리, 식당(9.42km, 465m) 12:46 잠시후 좌측 4망루 입구 좌측 금성산 장대 230m 표지판(10.0km, 420m) 12:54 도로 삼거리(초소, 10.2km, 405m) 12:58 도로 좌측 등산로 입구(10.5km, 400m) 13:01 국청사앞(11.0km, 330m) 11:07 산성교 앞 사거리(직진, 11.6km, 310m) 13:17 금정산성 광장 주차장(12.2km, 325m) 13:24 ~13:35 덕천 인터체인지 구포낙동강교 대저분기점(남해고속도로로 직진) -북부산 톨게이트 13:57 진영 칠원분기점(우측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인터체인지 앞 15:55 현풍분기점(우측으로) -고령 성주휴게소 16:50 ~17:15(저녁식사) -낙동분기점 17:58 청주 톨게이트 19:20 조치원역 청주 집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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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金井山

내용

높이는 800.8m이다.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어 한반도 동남단 바닷가에 이르러 솟은 명산이다. 부산의 진산(鎭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동래현 북쪽 20리에 금정산이 있고, 산꼭대기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며 깊이는 일곱 치쯤 된다. 물은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이라는 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는 이름을 지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금정은 금어(金魚)가 사는 바위 우물에서 유래된 것으로 판단된다.

금정산은 낙동강과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가 되는데, 최고봉은 북쪽의 고당봉(802m)이다. 북으로는 장군봉·계명봉(602m)이 뻗어 있고, 남으로는 원효봉(687m)·의상봉·파리봉·상계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이 백양산(白陽山, 642m)에 이어진다.

산정부는 각섬석화강암(角閃石花崗岩)으로 되어있고, 남동부는 마산암류(馬山岩類), 북부는 안산암질 암류(安山岩質岩類)로 구성되어 있다. 산정의 능선에는 암반이 노출된 첨봉(尖峰)이 많으며 대체로 동쪽과 남쪽은 급사면, 북쪽은 완사면을 이룬다.

급사면의 산록에는 주빙하환경(周氷河環境)에서 운반·퇴적된 심층풍화(深層風化) 기원 즉, 핵석(核石) 기원의 화강암 암괴들이 암괴류(岩塊流)를 형성하고 있다. 심층풍화 기원의 암괴류는 보통 3단계를 거쳐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먼저 1단계는 최종빙기(最終氷期) 이전의 온난습윤한 환경에서 화강암 계열의 심층풍화에 기원한 원력(圓礫)과 토르(tor)가 잠재적으로 형성된다. 그다음 2단계에서는 최종빙기 동안의 주빙하환경에서 솔리플럭션(solifluction)과 포행(匍行)에 의한 암설(岩屑)의 이동으로 암괴류가 형성된다.

마지막 3단계는 암괴류를 구성하는 암설 사이의 세립물질(細粒物質)이 점진적으로 제거되면서 지형면의 미기복(微起伏)이 형성된다.

 

현황

금정산은 산의 북동쪽에 위치한 범어사로 인하여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범어사 서쪽에는 주봉인 고당봉이 솟아 있고, 그 북쪽 장군봉에서 동쪽으로 계명봉 능선이 범어사를 에워싸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금정범어(金井梵魚)’로 기록되어 있어 신라시대부터 널리 알려졌고, 항상 금정산과 범어사를 연관시켜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범어사는 678(문무왕 18)에 의상이 창건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경상남도의 통도사·해인사와 더불어 3대 사찰의 하나로 손꼽힌다. 20여 동의 가람과 신라시대의 석탑인 범어사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은 금정산과 더불어 관광 명소로 이름이 높다. 절 부근에는 계명암을 비롯한 여섯 암자가 있다.

이 밖에도 금정산에는 금정산성·미륵암·정수암·국청사 등이 있고, 상계봉 남쪽에는 석불사가 있다. 1971년 사적으로 지정된 금정산성은 원래 동래읍의 외성으로 축성되어 동래산성으로 불렸으나 금정산성으로 개칭되었다.

산성은 임진왜란 후 당시 경상감사의 진언으로 1703(숙종 29)에 축성되었고, 그 뒤 다시 증축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훼손되었다가 1972년부터 2년 간에 걸쳐 동··3문과 성곽 및 4개의 망루를 복원하면서 둘레 17336m, 높이 1.56m인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이 되었다.

금정산 주변에는 높이 12m의 마애여래입상, 자연굴인 은동굴, 케이블카 시설, 식물원, 금강공원(金剛公園), 산성마을, 동래온천 등이 있다.

대한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금정산등산코스 - 산성마을 기점. 중리-국청사 -중성 성벽-4망루-북문 | 죽전-암문-미륵사 -고당봉 | 공해마을-파리봉

금정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해발 400m의 분지에 자리 잡고 있는 산성마을은 행정구역이 금정구 금성동으로 죽전(竹田)과 중리(中里), 공해(公廨) 세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죽전마을은 화살 만드는 대나무가 많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중리는 중성문(中城門)이 있었던 것에 연유한다. 그리고 공해마을은 공해란 관아(官衙)라는 뜻으로, 그곳에 좌기청(座起廳)과 군기고(軍器庫) 화약고 내동헌 별전청(別典廳) 등이 있었다.
이곳에 언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기록은 전하는 것이 없지만 신라 때부터 화전민과 승려들이 살았던 것으로 보고 있다. 또 옛날 어느 때인가 국()씨와 두()씨 성을 가진 두 가족이 이 마을에 처음 터를 잡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왜군에 붙들려가 한동안 마을이 텅 비었다가 기장군 철마에 살던 장사인 김해 김씨가 이주해 와 다시 마을을 개척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금정산성 안 동네라는 뜻의 금성리(후에 금성동)는 행정명칭이 1914년 부군(府郡)통합 때 새로 생긴 듯하다. 그 전에는 산성리로 <동래부지(1740)><동래부읍지(1832)> 방리조에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1872년 제작된 지방지도에는 지금의 부산교육원 자리에 성문리(城門里)라는 마을이 있었던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
풍수지리상 산성마을은 옥녀가 금반을 받쳐 든 옥녀금반(玉女金盤)형이라고 하지만 산성의 중심인 공해마을의 진산이어야 할 옥녀봉이 없다. 그래서옥녀의 자태는 보이지 않고 치마폭을 두른 듯한 산들로 둘러싸인산성마을의 옥녀는앉아 있는 것이 아니고 누워있는 형상을 이루고 있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옥녀의 기()는 봉우리에서가 아니라 생기봉 아래의 공알()바위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이 바위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공해마을 오른쪽으로 끼고 도는 계곡의 원류가 된다.
금성동은 산성막걸리로 유명하며 술을 만드는 누룩은 이 마을의 특산물로 한때 산성 누룩의 제조가 동래·부산지방의 쌀값을 좌우했다고 한다. 이런 마을의 술과 관계 깊은 오랜 역사 때문에 435세대 1천여 명이 사는 이 마을에 술과 관련된 음식업소가 1백여 곳이나 된다.

 

중리-국청사 중성 성벽-4망루-북문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1시간 10

중리에서 버스를 내려돌집옆 학생교육원으로 가는 포장도로를 따라 5분쯤 가다 오른쪽 숲 속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들어가면 국청사 (國淸寺)가 있다. 신라때 의상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알려진 이 절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금정산성을 방어하던 호국사찰로 승병장이 거주하는 승군의 사령부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도 당시 승병장이 사용한금정산성승장인이라는 쇠도장이 보관되어 있다. 그뿐만 아니라 <국청사지(國淸寺誌)>국청사에는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부산진첨사 정발(鄭撥) 다대포진 첨사 윤흥신(尹興信) 등과 함께 승장인 만홍(萬弘) 정안(定安) 성관(姓寬) 관찰(寬札)스님 등 수백 명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받들고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절로서 기능을 할 수 없게 된 것을 숙종 29(1703) 중성을 쌓는 등 금정산성을 개축하면서 국청사와 해월사(海月寺)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8세기 이 후 사세가 기울었던 국청사는 1978년부터 중창을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국청사에서 6~7분을 더 오르면솔밭공원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이어 산허리를 돌면 도로 오른쪽 산에 성곽이 이어진다. 중성이다. 도로 바로 위 표지판 앞을 돌아성을 따라 오른다.조금 가파르다 싶으면 곧 북쪽으로 뻗었던 성은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면서 거의 평지에 가까운 능선에 오른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멀리 제4망루와 의상봉이 보이면서 성은 방향을 다시 오른쪽으로 바뀌면서 커다란 깃발이 서있다. 오른쪽 계단 위에 장대(將臺)가 있다. 성은 급경사의 내리막으로 바뀐다.
성벽 왼쪽 등산로는 임도와 연결된다. 성의 내리막 끝에 있는 계곡을 건너 앞을 막는 바위봉을 오른쪽으로 돌아 오르면 제4망루와 이어진 중성의 위용이 드러난다. 장대에서 성을 계속 타기 싫으면 장대에 올라 동북쪽의 제4망루로 가는 지름길로 들어서면 된다.

잠깐 숨을 돌린 다음 성벽을 따라 내려서면 곧 성을 넘는 길과 마주친다. 왼편 북쪽은 북문으로 가는 지름길이고 남쪽으로 가면 산성마을이다. 앞의 능선에 올라서면 제4망루가 빤히 보이지만 10분 정도는 걸어야 망루가 있는 금정산 동쪽 능선길에 닿는다. 4망루에서 원효봉을 거쳐 북문까지 가는 데는 30분 정도면 된다.

 

죽전-암문-미륵사 고당봉

죽전마을 부산 공무원교육원 안내판 중성 암문 도로 미륵사 서쪽 능선 고당봉

산 행 길 소요시간 약 1시간 20

산성마을에서 고당봉에 오르려면 북문을 거치는 것이 길 찾기도 쉽고 빠르지만 숲 속을 걷는 재미가 거의 없다. 그러나 죽전마을에서 미륵사를 거쳐 고당봉으로 오르는 코스는 숲이 짙고 비교적 사람이 적어 고요함을 즐길 수 있다.
죽전마을에서 버스를 내려 금성동 1통 회관 앞에서 북쪽으로 난 돌담사이의 도로를 따라가면 방향이 서쪽으로 바뀌면서 금성동 교회가 보인다. 교회 뒷길을 따라 가면 금정산 허브랑 야생화농장 앞을 돌아 다시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면 오른쪽에 부산학생교육원으로 가는 길이 열려 있다. 도로 따라 계속가면 부산학생교육원으로 가는 지름길과 만난다.

산비탈을 따라 올라 소나무숲길을 지나면 곧 중성암문과 멀리 미륵사가 보인다.
암문을 지나면서부터 굴참나무 사잇길이지만 산은 오른쪽 뿐이다. 5~6분 걸으면 도로와 마주치는데 등산로는 도로 건너편의 유씨농장 표지판 뒤로 열려 있다.

철조망 울타리 사이로 들어서서 개울을 건너 2~3분이면 왼쪽 염소농장으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이어 2분 걸으면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은 개울을 두 번 건너는 등 20분정도면 제2금샘이 있는 서쪽 능선에 올라선다. 오른쪽 길을 따라 2분 정도면 개울을 건너서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북문산장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미륵사와 이어진다. 갈림길에서 5분 정도면 또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둘러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가야한다. 다시 6분정도면 제법 넓은 산길과 만난다. 왼쪽은 서쪽 능선까지 25분 걸린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3분이면 미륵사로 가는 지름길이 나온다. 잡목 숲길로 20분 정도 오르면 미륵사에 닿는다.
이 절은 원효대사가 세웠다지만 그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다.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미륵삼부경>중의상생경종요(上生經宗要)’를 썼고 또 호리병 5개로 왜구의 배 5만척을 구했다고 전한다. 당시 왜의 첩자를 유인하기 위해 대사가 장군기를 꽂았다는 바위구멍이 지금도 독성각 옆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절 한가운데 염화전 뒤편의 거대한 바위를 좌선바위라고 부른다. 이는 여러 개의 바위들이 모자이크한 듯이 어울려 있지만 해가 지고 난 뒤 바위사이의 금이 보이지 않게 되면 바위 전체에 스님이 좌선하는 형상이 분명히 드러나 붙여진 이름이다. 좌선바위 뒤편의 바위가 미륵불과 닮았다고 하여 미륵봉이라고 한다. 미륵사란 이름도 여기에 유래한다. 미륵사는 염화전(拈華殿)을 비롯하여 미륵전 오백나한전 칠성각 산신각 독성각 종각 요사들로 되어 있다.

미륵사에서 북문까지는 동쪽으로 700m 거리이고 고당봉으로 가려면 오백나한전과 종각 사이를 지나 해우소 옆길을 따라 300m쯤 가서 서쪽 능선에 이르면 고당봉까지는 1.2km.

 

공해마을-파리봉

산행길소요시간약50

공해마을 금산사 입구 계곡 갈림길 능선 파리봉

등산을 시작하기 보다는 상계봉이나 파리봉에 올랐다가 산성마을에 들르고 싶은 생각이 날 때 하산길로 이용하는 편이 더 좋을 듯한 코스다. 그러나 온천장 도시철도역이나 구포시장에서 버스를 타고 산성마을로 왔다가 빤히 쳐다보이는 파리봉에 이끌려 산을 오르려는 사람에게는 가장 빠른 코스다.
구포시장에서 출발하는 1번 마을버스라면 종점에서, 그리고 온천장 홈플러스 앞에서 203번 좌석버스를 탔다면 공해마을에서 내려 남쪽으로 뻗은 공해2길로 들어선다. 1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으로 파리봉의 바위가 보인다. 다시 3~4분이면 마을 끝집을 지나 은행나무 앞에 선다. 2분쯤 더 가 왼쪽의 남양농원과 오른쪽 금산사 간판사이의 포장도로를 따라 50m정도 가면 30m 전방에 바라크형 집이 보이고 오른쪽에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열려 있다.
오른쪽 길을 따라 2분 정도면 다시 산길이 갈라진다. 넓은 길을 그대로 30분 정도 오른다면 수박샘 부근의 도로와 만나고 남문까지는 불과 3분의 거리다.

오던 넓은 길을 버리고 오른쪽 길로 접어들어야 한다. 오른쪽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50m 정도 오르면 계곡 쪽으로 검은 비닐 파이프가 깔려 있는 희미한 길이 갈라진다.
오던 길을 그대로 따라가면 조금 전버렸던 넓은 길과 만난다. 다시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꾸어 5~6m 들어가 계곡을 건너면 오래된 등산로가 기다린다.

왼편(남쪽)으로 방향을 틀어 5분 정도면 주계곡과 멀어지면서 등산로가 희미 해지지만 등산로 왼편의 물길을 자세히 보면 원래의 산길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걷기 편한 잡목 숲속을 10여 분 오르면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오는데 주변을 주의 깊게 보면 리본 2개가 붙어 있다.

왼쪽의 산길을 그대로 오르면 제1망루와 파리봉을 잇는 능선에 올라선다. 파리봉 보다는 상계봉이 목표라면 이 길을 택하는 것이 제1망루와 가깝고 경사도 완만해서 좋다.

다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조금 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번에도 오른쪽길을 따라 오른다. 3~4분이면 등산로가 개울처럼 패어 있지만 그대로 10m 오르면 또 갈림길이 나오지만 왼쪽 길은 무시한다. 오를수록 등산로가 험하고 가팔라 지지만 10여 분이면 능선에 올라설 수 있다.

능선에서 북쪽의 파리봉은 1분의 거리이고 남쪽의 제1망루까지는 15분 정도의 거리다.

출처: https://cotube.kr/356[COTUBE 세상의이슈:티스토리]

 

[우리 산하] 금개구리가 살았던 금정산

부산에는 금개구리가 놀았던 금정산이 있듯이대구는 팔공산, 광주 무등산, 대전 계룡산, 영천 보현산, 서울 북한산등 각 도시를 상징하는 산이 존재한다.

부산을 상징하는 산은 금정산이다. 최근 날씨가 무척 무더운 날 금정산을 찾았다. 부산 금정구 장전동에서 북구 화명동을 연결하는 산성터널을 통과하였다. 이 터널은 20189월에 개통했고 금정산 밑을 관통하며 길이가 무려 5.62km이다. 이 터널을 이용하면 50여 분의 소요시간이15분으로 단축된다고 한다. 통행료는 소형차 1,500원이다. 멋모르고 이 터널을 이용하여 예정 시간 보다 빠르게 산성마을에 도착했다. 금정산 등산코스는 28개가 있다. 그중 범어사에서 북문 코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지만, 우리 일행은 산성마을을 지나 산불감시초소 제1차단기 입구 도로변에 주차 후 산행을 시작했다. 금정산성 북문까지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넓은 비포장 도로는 급한 경사가 아닌 살짝 오르막길이다. 때약볕 2.6km를 힘들게 걸어서 약1시간만에 북문에 도착했다. 북문에서는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과 산성이 한눈에 보인다.

금정산(金井山)은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양켠에 걸처 있다. 정상 높이는 801.5m의 고당봉이다. 산 정상 봉우리는 비로봉, 천왕봉, 천황봉은 많이 있지만, 고당봉은 생소하다. 고당이란 할머니 신을 모시는 당이 있어 고당봉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동래현 북쪽 20리에 금정산이 있고, 산꼭대기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며 깊이는 일곱 치쯤 된다. 물은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이라는 산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는 이름을 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금정은 금어(金魚)가 사는 바위 우물에서 유래됬다.

이 산은 낙동강과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가 되는데, 북으로는 장군봉·계명봉(602m)이 뻗어 있고, 남으로는 원효봉(687m)·의상봉·파리봉·상계봉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화려하지 않은 소박하게 느껴지는 북문을 뒤로 하고 금정산 정상을 오른다. 고당샘을 지나 금개구리가 살았다는 금샘 즉 금정이 있는 바위를 올랐다. 높지 않은 바위 꼭대기에 하트 모양의 웅덩이에 물이 고여 있다. 이 곳이 금개구리가 살았다는 금정(金井)이다. 이 물은 잘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여기서 10여분 올랐다 정상인 고당봉이다. 이 봉우리는 돌로 만든 연꽃 모습이다. 멀리 낙동강과 높고 낮은 산자락과 부산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정상에만 바위가 있고 녹색의 산자락이 푸른 융단을 펼쳐 놓은 듯한 금정산은 천상의 세상 같이 황홀하고 신비롭다.

우리나라 최대의 산성 금정산성(金井山城)은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산성은 동래온천장 서북쪽 금정산(801.5m)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금정산성은 동래부 및 양산, 기장의 피난겸 항전성으로 전장 17,337m, 높이 1.53m, 면적 약 8,213에 이르는 산성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에 속한다. 서울에 있는 한양도성이 18km, 남한산성이 8km이다. 이와 비교해 보면 얼마나 큰지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축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위치 및 규모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현재 이산성은 숙종 29(1703)에 쌓은 것으로 임진왜란 후 일본의 재침입에 대비하여 경상감사 조태동이 돌로 쌓기 시작해 숙종 33(1707)에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수축하였다. 그리고 순조 8(1808) 동래부사 오한원이 중수하였으며 순조 24(1824)에는 동래부사 이규현이 이곳에 별장을 배치하였다. 평상시에는 성내의 해월사, 국청사에 있는 승려들이 성벽의 보수유지를 담당하고 있었다고 한다. 망루와 북문, 동문, 서문이 복원되어 있다. 산성 안에는 먹거리촌인 산성마을이 있다.

금정총림 범어사(梵魚寺), 합천 해인사, 경주 불국사와 함께 영남의 3대 사찰이라 불리는 범어사는 금정산 동쪽 가슭에 자리잡고 있다.범어사는 678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오랜 역사 만큼 많은 고승을 배출했고 3층석탑(보물 제250), 대웅전(보물 제434), 일주문(부산시 유형문화재 2), 당간지주, 석등, 천년기념물 제176호인 등나무군생지 등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8대 총림 중 금정총림이다. 일반 사찰에 비해 일주문이 특이하다.

금정산, 금정산성, 범어사는 입장료가 없다. 산성마을 먹거리촌에 있는 무심정 식당(051 517-3353)은 일본식 건물 같은 3층의 목조건물이 특이하며 실내도 고풍스런 분위기다. 점심특선으로 팔보연밥이 인기있다고 한다. 1인분 15천원이다.

부산시 최초 공립수목원으로 1,300여종의 식물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화명수목원은 산성마을 입구에 있다. 월요일은 휴무이다. 입장료는 없다.
출처 : 시니어매일(http://www.senior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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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출발 04:45

이번 산행지는 부산에 있는 금정산이다. 명절 때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될 때 가려고 몇 번 뒤로 미룬 곳이다. 청주에서 부산까지 통행료 왕복이면 3만원정도 된다. 오늘은 연료비하고 저녁식사비 만 있으면 다녀온다. 오늘이 설날이라 갈 때는 조금 일찍가면 차가 많치는 않겠지만 올 때가 문제다. 오늘 명절 고속도로 정체가 얼마나 심한지 경험도 할 겸 길을 나서기로 한다. 금정산은 여러 번 다녀온 산이긴 하다. 백양산에서 금정산을 거쳐 양산까지도 갔었고 금정산을 거쳐 장산 방향으로도 돌아봤고 낙동정맥때도 지나던 곳이다. 마나님이 금정산은 다녀오지 않아 오늘 간단하게 산행코스를 잡아 출발을 한다. 집에서 일찍 서둘러 0445분 출발 한다.

 

금정산성광장 주차장(부산 금정구 산성로 501-2, 해발 325m) 08:25 ~08:38

집을 출발하여 얼마 전 개통한 강서 하이패스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달린다. 청주에서 상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낙동분기점에서 김천 방향으로 진행한후 김천분기점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하여 달린다. 지금까지는 차량이 별로 없었지만 대구를 지날 때는 차량이 많아 진다. 다행히 화물차가 없어 달릴만 한다. 경부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다가 동대구 분기점에서 밀양 방향으로 진행하여 달리다가 청도 휴게소에서 쉬어 간다. 쉬는 김에 아침식사로 하고 연료도 가득채운다. 올라올 때는 분명 정체가 심할것이기 때문에 미리 연료를 넣고 간다. 이후 진행을 하면 무척산이 보이는 삼랑진에서 낙동강을 건너 낙동강 우측편 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김해에 닿기 전 대동톨게이트(요금소)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편으로 빠져나가면 괴정마을로 나가는 길이 있다. 이곳으로 빠져나가 대동면소재지에 닿고 좀 더 진행한 후 좌측으로 가면 대동중학교를 지나고 잠시후 낙동강변길을 따라 잠시 가면 대동화명대교로 들어가는 인터체인지에 닿는다. 이후 대교를 건너고 화명역 부근의 지붕이 씌워진 고가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그 끝 지점에서 우측으로 빠져나가면 금정산성으로 올라가는 산성로에 닿는다. 이후 좁다란 길을 따라 진행을하면 얼마안가 금정산성광장 주차장에 닿는다. 청주에서 3시간 40분 가량 걸렸다.

 

동문(0.974km, 415m) 08:57

금정산성광장은 조금 변두리에 있지만 주차하기는 좋은 장소이다. 승용차 40여대는 주차할수 있으며 주차비도 무료다. 또한 이곳에서 동문으로 오르는 길도 있어 산행초입으로 잡기 좋다. 주차장 옆쪽에는 화장실도 겸비되어 있으며 널찍한 잔디 광장도 있다. 이곳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하고 주차장 끝에서 오르는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한다. 입구 이정표에 동문 0.9km, 남문 2.6km가 적혀 있다. 계단을 따라 오르면 잠시후 좌측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게 되면 10여분 후 능선에 닿는다. 여기서 잠시 능선 좌측 편으로 넘어가 평탄한 길을 따라 진행한 후 다시 서서히 오르게 되면 이정표가 나온다. 동문 0.25km, 남문 1.95km, 금성산성 광장 0.65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공기돌 바위 같이 생긴 놈들을 바라보며 잠시 더 가면 널찍한 성터길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동문 0.15km, 남문 1.85km, 금성산성 광장 0.7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성터길을 따라 서서히 내려서게 되면 동문이 나온다. 동문은 금정산 주능선의 해발 415m의 잘록한 고개에 위치하였으며 전망이 아주 뛰어난 곳으로 동래읍성에서 가장 근접하기 쉬워 금정산성의 으뜸 관문으로 자리하고 있다.

 

4망루(3.32km, 615m) 09:46

동문 이정표에 북문 4km, 고당봉 5km가 적혀 있다. 동문에서 서서히 오르면 널찍한 길을 따라 소나무숲을 통과하게 된다. 이후로도 널찍한 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게 된다. 오늘이 명절날이라 아직은 산행을 하는 분들이 안 보인다. 주차장으로 오면서 배낭을 메고 오르시던 분들은 임도를 따라 북문 방향으로 직접 오르는 분들로 보인다. 오르는 길에 우측으로 장전동으로 빠지는 길이 있다. 장전동 2.2km, 고당봉 4.4km가 적혀 있다. 이후 서서히 오르면 올망졸망한 바위들이 많은 지역을 통과하여 평탄한 길을 따라 한동안 진행하여 샘터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우측으로 3망루 0.45km, 북문 2.7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깜박 3망루 다녀오는 것을 잊어먹었다. 3망루가 있는 곳의 경치가 좋은 대 에고 그냥 지나친다. 이후 서서히 오르면 좌측으로 조망이 좋은 바위지대가 나온다. 앞쪽으로 파리봉과 마주하는 곳으로 금정동 일대가 보이며 뒤편으로 화명동의 아파트들도 보인다. 이후 평탄한 길을 따라 진행하고 널찍한 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능선 가까이 조망이 좋은 성터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앞쪽으로 의상봉 아래 암릉지대도 보이고 조망이 매우 좋다. 좀 더 진행하면 커다란 바위에 자란 소나무도 좋고 이곳에서 뒤돌아보면 제3망루 위쪽으로 암릉지대가 멋지게 조망이 된다. 저곳을 빼먹은 것이 서운하다. 이후 진행을 하면 안부 성터를 넘어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은 부산 과학고 방향에서 올라 온 길이며 안부를 지나 성터길을 따라 오르다가 좌측으로 빠지면 널찍한 돌계단 사이 침목으로 된 계단을 따라 올라서 잠시 육산 길을 따라 가면 4망루에 닿는다. 장대라고도 부르며 좌측편 임도에서 올라온 널찍한 길도 있는 곳이다. 조망이 역시 좋다.

 

장대

부산 금정산성의 장군지휘소인 장대(將臺)가 처음 지어진 후 306년만에 옛 모습대로 복원됐다(2009.5).

금정산 해발 475m 지점에 위치한 장대는 1703(숙종 29) 금정산성 전체를 내다볼 수 있게 축조됐지만 어느시기엔가 소실된 후 지금까지 터만 남아 있었다.

금정구청은 2009525일 오후 금정산 장대에서 부산시, 구청, 부산은행 관계자, 주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장대 낙성식을 진행했다.

지난해 11월에는 문화재보호구역 사적 제215호 추가지정을 통해 장대도 사적으로 인정받게 됐다.

고증과 조사결과 장대는 정면 3, 측면 2칸으로 축조된 건물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복원현장에서 다량의 와편과 상평통보 2, 젓가락 1쌍 등이 발견됐다.

 

의상봉(3.55km, 638m) 09:54

장대에서 성터길을 따라 진행하면 잠시 후 산불감시초소가 나오고 좀 더 진행을 하면 우뚝 솟아 있는 의상봉에 닿는다. 아래쪽으로 의상봉 안내문이 있으며 안내문 아래쪽에 의상봉 638m적힌 표지판이 보인다. 의상봉은 금정상성 제4망루가 있는 위쪽의 봉우리로 동해의 망망대해를 한눈에 바라보는 망대의 역할을 하는 봉우리다. 늠름하고 고고한 자태로 웅트린 호랑이가 동해를 바라보며 부산을 지키는 지혜로운 모습을 하고 있다. 의상봉은 용호봉이라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용이 여의주를 물고 승천을 하려고 하자 갑자기 금정산 산신령인 호랑이가 나타나 승천을 저지하려고 용과 격렬한 몸 싸움을 했다고 한다. 마침내 무승부가 된 호랑이와 용은 각각 위쪽은 용을 저지하는 형상의 호봉이 되었고 아래쪽은 용을 닮은 용봉이 되었는데, 두봉우리를 합쳐서 용호봉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뒤 1970년대 산악인들이 의상봉이라 명명한 뒤 지금까지 부르고 있다. 잠시 바위지대를 따라 올라가 본다. 아직은 찬바람이 세차고 쌀쌀한 날씨라 오래 있지는 못하겠다. 예전에는 정상석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대 정상석이 있던 자리만 남아 있고 정상석은 없어졌다. 3망루가 있는 암릉이 멋지게 조망이 되고 의상봉에서 아래쪽으로 뻗어 내려간 암릉이 멋지게 조망이 된다. 멀리 고당봉까지 조망 확 트여서 보기 좋다.

 

북문(5.04km, 595m) 10:27

의상봉에서 내려서서 성터길을 따라 진행하면 이정표 삼거리가 나온다. 북문 1.3km, 고당봉 2.3km가 적혀 있다. 이후 진행을 하면 양쪽으로 목책이 쳐져 있는 침목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한참을 올라서면 김유신 솔바위표지판이 있는 곳에 닿는다. 조망이 좋은 성터에 위치한 곳으로 김유신이 훈련할 때 몇 시간씩 서 있는 훈련을 할 때 선채로 소변을 싸버린 장소로 한 낭도가 김유신이 바라보던 곳에 소나무를 심어서 지금까지도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내용인대 어떤 소나무인지 ~~

잠시 평탄한 지역을 지나 다시 침목계단을 따라 오르면 원효봉이 나온다. 여기는 정상석이 있다. 조망이 좋은 곳으로 삼각점도 있다. 금정산 동쪽 성터에서 가장 높다란 봉으로 동해를 바라보는 전망대다. 원효봉에서 내려서면 이정표가 나온다. 북문 0.77km, 범어사 2.22km, 동문 3.2km가 적혀 있다. 이후 평탄하게 설치된 데크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사기봉앞 이정표에 닿는다. 남산고 2.6km, 고당봉 1.6km등이 적혀 있다. 여기서 내리막 돌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안부에 이정표가 있고 다시 오르막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커다란 바위지대 옆으로 산불감시초소가 있으며 다시 내리막 돌계단을 따라 내려서면 북문에 닿는다. 좌측으로 금성동에서 임도를 따라 올라온 길이 있으며 북문을 빠져나가면 범어사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는 국립공원 탐방센타도 있으며 샘도 있고 양쪽으로 산성을 보호하는 철조망이 쳐져 있어 성터로는 접을 막았다.

 

북문

금정구 금성동 금정산성 북쪽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성문이다.

금정산성 북문(金井山城北門)은 금정산성의 북쪽 해발 620m의 높은 곳에 위치한다. 범어사(梵魚寺)에서 범어천을 따라 돌계단으로 서쪽으로 2㎞쯤 올라가면 잘록한 분지에 자리하고 있다.

금정산성 북문은 1703년(숙종 29)에 금정산성을 축조하면서 함께 설치되었다. 1824년(순조 24)에는 금정산성 북문에 문루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어, 그 이전에는 육축(陸築)[성문을 축조하기 위하여 무사석 등 큰 돌로 축조한 성벽]과 성문만 축조되고 성문에는 문루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금정산성 북문이 허물어져 육축 일부만 남아 있었는데, 1986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정비하였다. 이후에도 부분적인 보수와 해체 보수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다.

[네이버 지식백과]금정산성 북문[金井山城北門]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금정산 고당봉(6.64km, 801.5m) 11:23 ~11:50(중식)

금정산성

금정산성(金井山城,영어:Geumjeongsanseong Fortress)은 부산광역시 금정구 금성동에 있는 삼국시대의 성곽이다.19712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금정산성이 함락되어 재건축되었다. 한국에서 규모가 가장 큰 산성답게 행정구역도 부산금정구와북구,동래구를 비롯해 경남양산시와도 경계를 이룬다. 때문에 산성을 오르는 코스는 매우 다양하다. 산성을 순회하는 코스 역시 무궁무진하게 짤 수 있다. 1701~1703(숙종29)에 건설이 완료되었다. 벽 공사는1707년에 끝났으며, 17km 길이에 1.5 ~ 3m 높이이다. 성 내부의 넓이는 8.2 제곱km이다.1807년까지 유지비용 때문에 사용되지 않았다. 금정산성 서문이 그 시기에 지어졌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성곽이 유실되었으나 복원작업을 통해 거의 복원하였다. 금정산성 북문은 성벽으로 둘려싸여 있으며 북문을 들어가면 휴식처와 주변에는 토양식 주차장이 있고 계명봉을 올라갈수 있는 길이 있다. 금정산성 남문 주위의 지역은 휴식 공간으로 인기가 있다. 금정산성 서문은 가기 힘들기 때문에 거의 찾지 않는다고 한다.

자료 출처 워키백과

 

현지 안내문

조선시대에 돌로 쌓은 석성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인 숙종 29(1703)에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바다를 지킬 목적으로 쌓은 곳이다. 전체길이는 약 17km이다.

증보문헌비고에 의하면 박태항에게 책임지어 쌓게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이에 앞서 현종 8(1667) 통제사 이지형이 왕에게 금정산성을 고칠 것을 건의하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미 오래 전에 쌓은 것으로 보인다.

낙동강 하구와 동래지방이 내려다 보이는 중요한 곳에 있어 바다로 침입하는 적에 대비한 성임을 알 수 있으며, 성의 크기나 성벽을 쌓은 양식으로 볼 때 처음 성을 쌓은 시기는 보다 앞선 시기까지도 올려 볼 수 있다.

숙종 33(1707)에는 성이 너무 넓다 해서 성의 중간에 남북을 구분하는 성을 쌓았고 영조 50(1774)에는 성이 너무 커서 지키기 어렵다 하여 일단 폐지하였다. 순조 6(1806)에 성을 다시 고쳤으며, 성벽은 화강암을 자연석 그대로 이용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1972년부터 1974년까지 동문·서문·남문을 복원하였으며, 1989년에 북문을 복원하였다.

현재 4의 성벽이 남아 있으나, 조선 후기에 도성과 주변의 대규모 방어시설을 충실히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산성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니고 있다.

 

이제 마지막 고당봉을 향해서 오르기 시작한다. 여기는 길이 녹아서 질척거리며 미끄럽다. 길도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오르막길이 대부분이며 평탄하게 이어지는 곳은 없다. 한동안 오르며 예전에 금샘에서 내려오던 곳을 보니 길이 막혀 있다. 마나님을 델구 넘어설 수도 없고 해서 그냥 고당봉을 향해 오르니 북문에서 25분쯤 올라서서 고당샘 앞쪽 이정표에 금샘이 적혀 있다. 금샘0.4km, 고당봉 0.2km가 적혀 있다. 금정산의 명물인 금샘을 지나칠 수는 없으니 우측으로 금샘을 향하여 진행한다. 우측으로 진행하는 시작지점에 고당샘이 있다. 고당샘은 온천천과 대천천의 발원지라 적혀 있다. 이후 평탄하게 이어지는 사면 길을 따라 진행을 하면 6분후 능선 삼거리에 닿는다. 좌측은 고당봉으로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금샘으로 가는 길이다. 잠시 가면 금샘안내문이 있으며 바위에 설치된 로프가 보인다. 짧막한 로프를 잡고 두 번에 걸쳐서 올라서면 아래쪽으로 우뚝 솟아 있는 바위에 금샘이 보인다. 겨울날씨에 얼어 붙어 있다. 예전에 다니던 길은 줄을 쳐서 막아 놓았다.

금샘은 오랜 세월 동안 풍화 작용과 기후 변화를 거치면서 만들어진 풍화혈 가운데 하나인 나마라고 적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등 고문에는 금정산 서북 산정에 바위샘이 있는데, 바위위에 난 샘은 둘레가 10(3m) 남짓하며 깊이는 7(21cm)쯤 된다, 금빛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내려와 그곳에서 헤엄치고 놀았가고 하여 금샘이라는 이름이 생겨 났다,‘고 기록하여 금샘의 유래를 전하고 있다.

 

금샘을 구경하고 다시 밧줄을 타고 내려와 되돌아서 능선 삼거리에서 직진방향으로 고당봉을 향해 서서히 오르면 금샘에서 보던 우뚝 솟은 바위 좌측으로 진행하여 능선에 올라선다. 여기 이정표에 금샘 0.2km, 고당봉 0.3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고당봉을 향하여 오르기 시작하면 얼마 오르지 않아 데크계단앞에 닿는다. 이제 마지막 지점의 데크계단을 따라 오르면 끝 지점은 원통형 계단으로 둥글게 돌면서 올라서서 암름 끝에 닿는다. 이제 암릉으로 연결이 되는 평탄한 데크 길을 따라 진행하면 마지막 고당봉 정상석 아래에 닿는다. 잠시 바위로 올라서서 고당봉 정상석과 함께 인증사진을 찍는다. 고당봉에서는 남쪽으로는 원효봉, 의상봉, 대륙봉, 상계봉, 파리봉으로 이어지는 금정산의 전체를 볼 수 있으며 북쪽으로는 장군봉을 거쳐 양산시로 이어지는 능선이 멋지게 조망이 된다. 계명봉을 거쳐 낙동정맥 길이 천성산으로 향하며 남쪽으로 백양산을 거쳐 다대포 몰운대에서 끝나는 낙동정맥길로 살펴 볼수 있다. 오늘은 미세먼지가 점차 늘어나면서 아침에 깨끗하던 날씨가 점차 흐려져 시야가 지금현제도 뿌연하다.

 

미륵봉(7.46km, 711.8m) 12:10

금정산 정상인 고당봉 따스한 곳에 자리를 잡고 간단히 준비한 샌드위치로 점심식사를 마치고 이제 미륵봉으로 향한다. 데크계단을 따라 내려서서 고모당을 지나고 잠시 더 내려서면 우측으로 잠시 오르는 길이 보인다. 위쪽으로 분재같이 멋지게 생긴 소나무가 보이는 곳이다. 이곳으로 올라서서 능선을 따라 좌측으로 내려선다. 길은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진행한 길보다는 못하다. 잠시 내려서면 해발 750m 스텐을 만든 표지가 보이고 이후 진행하면 이정표가 나온다. 고당봉 0.4km, 서문 4.7km가 적혀 있다. 이후 2분을 더 가면 좌측으로 미륵사로 가장 가까이 내려서는 길이 있는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다. 미륵사 0.5km, 율리역 6.4km가 적혀있다. 여기서 잠시 더 가면 미륵봉 앞에 닿는다. 여기 이정표에 고당봉 0.7km, 금곡 4.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잠시 들어가면 미륵봉 정상으로 바위면에 미륵봉 711.8m라 적어 놓았다. 미륵봉 아래쪽으로는 미륵사 있으며 미륵사 앞쪽으로 매단 등이 보인다. 고당봉이 올려다보이고 의상봉쪽으로 바라보는 좋은 전망대다.

 

임도(우측으로, 8.61km, 510m) 12:36

미륵봉에서 다시 등산로 나와 서서히 내려서면 이정표삼거리에 닿는다. 우측으로 호포역 3.3km, 서문 4.3km, 학생교육원 3.1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좀 더 내려서면 이정표가 나오는대 좌측으로 표시는 없지만 미륵사로 내려서는 길이 있다. 이길을 따라 내려서면 사면길 이정표에 닿는다. 좌측으로 미륵사 0.1km가 적혀 있다. 잠시 진행을 하면 비닐하우스가 보이며 미륵사 경내로 들어선다. 앞쪽으로 높다랗게 서 있는 종루가 있고 뒤편으로 미륵봉 절벽아래 자리 잡고 있는 미륵사가 아름답다. 미륵사 중앙에는 염화전(拈華巓)이 자리잡고 있다. 염화전 뒤편 암봉 병풍자락을 보면 코끼리 형상을 한 바위가 9개가 있다고 하는대 코끼리는 상서로운 동물이라 마음이 맑아야 코끼리 9마리가 보인다고 한다. 염화전 양쪽으로 산분 대신 노적가리 같은 바위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양식 걱정 없이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는 재미 있는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옛날에 상좌 스님 한분이 쌀이 계속 나오니까 욕심을 부려 많이 나오기를 바라면서 나무를 넣어 쌀이 나오게 하니 더 이상 쌀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미륵사를 구경하고 이제 내려서기 시작한다. 길게 내려서는 돌길을 따라 내려서면 거의 끝 부근에서 양쪽으로 가는 길이 있으며 좀 더 나가면 북문으로 가는 널찍한 임도 길에 닿는다. 입구에 미륵사 간판이 있으며 이정표도 있다. 이정표에는 미륵사 0.7km, 북문 0.9km, 금성동 2.8km가 적혀 있다.

 

금정산성 광장 주차장(12.2km, 325m) 13:24 ~13:35

이제 널찍한 임도 길을 따라 내려선다. 올라오시는 분들도 많다. 잠시 내려서면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다. 차량 몇대가 보인다. 이후 진행을 하면 좌측으로 동문이라 적혀 있는 이정표에 고당봉, 금성동 2.1km가 적혀 있다. 계속 이어지는 널찍한 임도 길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식당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계류를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이곳을 지나면 곧바로 4망루 0.9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4망루로 오르는 가장 좋은 길인듯하다. 이제 한동안 임도 길을 따라 내려서면 임도길 마지막으로 좌측으로 금성산 장대 230m 표지판이 있는 지점을 지나서 4분여 더 내려서면 임도 끝 지점에 닿는다. 초소가 있어서 일발 차량들은 여기서 막는다. 임도 끝에는 아스팔트 도로가 있어 도로변으로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학생교육원이 있고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3분여 도로를 따라 가면 좌측으로 장대가 적혀 있는 표지판 등산로 입구를 지나고 이제 내려서며 식당들도 보이기 시작하며 국청사 앞을 지나서 간다. 좌측으로 커다란 건물은 들어가보니 사찰은 아닌듯하다. 앞쪽 안내문을 보니 대일체 불교 유법사라고 적혀 있다. 이후 내려서면 금성동 사거리에 닿는다. 앞쪽 직진방향으로 도로를 따라 가면 10분을 못가서 금정산성광장 주차장에 닿는다. 이렇게 하여 오늘 금정산을 간단하게 돌아 봤다.

 

돌아오는 길

금정산성 광장 주차장에서 산행을 정리하고 이제 집을 향한다. 가는 길은 상당히 힘들 것 같다. 네이비게이션에 집도착 1930분 정도를 가리킨다. 산성로를 따라 진행하여 화명교차고가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구포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대저 분기점 방향으로 다리를 건너서 가니 분기점에서 밀양방향으로 가리키지 않고 창원방향으로 가라고 한다. 북부산 톨게이트를 지나며 잠시 차량이 잘 달리다가 금시 정체가 되어 창원까지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진행하여 중북내륙고속도로로 빠지는 칠원 분기점까지 차량이 밀린다. 이후 중부내륙고속도를 따라 진행을 하면 군데군데 정체가 되고 현풍분기점에서 고령방향으로 진행을 하여 성주휴게소에서 오랜만에 정차를 하여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진행을 하면 구미부근에서 정체가 심하다가 터널을 빠져나가 소통이 원활해지며 낙동분기점에서 청주로 가는 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니 여기도 군데군데 정체가 되어 청주 톨게이트를 1920분 빠져나가 잠시 조치원에 볼일이 있어 들럿다가 되돌아서 청주 집에 도착을 하니 20시다 올 때는 장장 6시간 25분이 걸렸다.

 

산행시간 : 4시간 46분 소요

산행거리 : 12.2km

 

연료비 : 6만원

통행료 : 명절 면제

 

저녁식사 : 김치찌개 2인분 : 18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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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금정산

청주 ~금성산성 광장(부산 금정구 산성로 501-2) : 280km, 3시간 1014900

청주 ~산성고개(부산시 금정구 산성로617, 유료주차장, 조금 위쪽에 주차공간 있음) : 287km, 3시간 10, 통행료 16800

청주 ~금정산성(부산광역시 학생교육원, 부산시 금정구 금성동 22-2) : 276.7km, 3시간 20분 통행료 14900

(부산화명수목원, 부산 북구 화명동 69)

(대천천 누리길 주차장: 부산 북구 화명동 산 43-14)

동문주차장(부산시 금정구 산성로 617) :276.5km, 3시간 10분 통행료 14900

****부산 금정구 금성동 222-2

 

장소~화명수목원내 화장실입구.

대천천누리길주차장(수목원주차장에서는 등산객차량을 통제한다고 합니다)에 주차가능.

버스하차장소~~화명수목원정류소(마을버스1)

탐방코스~~화명수목원~서문(해월문)~도원사~장골봉~석문~2금샘~명품소나무~미륵암~미륵사~사시골

유씨집입구~도원사갈림길~석문~서문~화명수목원

 

산행코스

금성동 주민센터~국정사~도원사갈림길~삼거리~미륵사~삼거리~미륵봉~산신각~금정산고당봉~갈림길~고당샘~고당봉낙뢰표석비~)북문~사기봉(넓적바위)~이정표(삼거리)~원효봉~의상봉~4망루~마당바위(전망)~금성동주민센터(원점)

걸음시간=5시간45걸음거리=12.44km

 

산행지 :부산시 금정구"미륵봉(711.8m)+금정산/고당봉(801.5m)+사기봉(682m)+원효봉(687m)+의상봉(640m)+연꽃바위/주먹바위

산행 코스 :금성동/203번버스 종점- 허브랑 야생화 - 북문/갈림길 초소 - 삼거리- 사시골-미륵사/갈림길- 미륵사 -미륵봉- 정법 - 북문 갈림길 -고당봉- 고당샘-북문-사기봉-원효봉-의상봉- 4망루 - 갈림길 -연꽃바위-주먹바위- 금성동- 금성동/203번버스 종점(원점 회귀)

산행 시간 :11.02km/6:22분 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