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0년 부터)

1374 무주 적상산, 무주구천동 어사길 2023.010.24.화요일 맑음

산야55 2023. 10. 27. 17:00

무주 적상산, 무주구천동 어사길

2023.010.24.화요일 맑음

 

참석인원 : 마나님이랑 둘이서

 

청주 집 06:20 금산휴게소 07:11 ~07:19 무주 톨게이트 07:34 적상산 사고 좌측 주차장(해발 약865m) 08:03 ~08:31 적상산사고 08:37 이정표(송대1.1km, 치목마을2.7km, 안국사 1.1km) 08:39 -도로 우측 등산로 도로 건너고 돌계단 데크계단 일주문(1.0km, 965m) 08:55 안국사 이정표(안렴대 0.6km, 향로봉1.7km, 전망대2.3km) 08:57 좌측길로 등산로 입구 09:00 오르막 돌계단 통나무계단 능선 이정표, 안렴대 0.3km(1.40km, 995m) 09:04 능선길 오르막데크계단 이정표 삼거리, 안렴대 0.15km, 향로봉 1.6km, 안국사 0.5km (1.60km, 1025m) 09:11 좌측으로 진행 내리막 철계단 안렴대(1.69km, 1015m) 09:15 ~09:24 되돌아서 삼거리 이정표(1.81km, 1025m) 09:27 안국사 삼거리 이정표, 안국사 0.2km, 향로봉 1.5km(2.05km, 1015m) 09:33 우측으로 송신탑봉(적상산 해발1030.6m) 09:35 서문지(2.31km, 1010m) 09:37 이정표 삼거리(좌 서창2.8km, 향로봉 0.7km, 2.85km, 975m) 09:45 향로봉(3.47km, 1024m) 10:00 ~10:11 되돌아서 서창 삼거리 이정표(4.12km, 975m) 10:21 좌측으로 하산(길은 없지만 내려갈만 함) -대형주차장(4.57km, 865m) 10:35 ~10:42 도로따라 진행 안국사, 전망대 삼거리(5.04km, 865m) 10:47 저수지둑(5.81km) 11:00 전망대(6.20km, 860m) 11:06 ~11:25 되돌아서 -적상산 사고 좌측 주차장(7.43km, 해발 약865m) 11:39 ~11:42 차량 이동 무주구천동 삼공리 국립공원 주차장 12:35 ~13:00 전기차 승차 백련사 주차장(해발 약895m) 13:23 백련사 대웅전(0.225km, 930m) 13:31 어사길 입구(0.560m) 13:36 -다리건너 어사길로 진행 어사길 구천동주차장 6.2km 이정표(888m) - 구천동주차장 5.7km 이정표(백련담부근, 1.19km, 840m) 13:46 다리(, 1.67km, 820m) 13:53 신양담(810m) 다리앞 안심대(2.09km, 755m) 14:00 좌측 어사길로 진행 돌길 데크길(2.31km) 14:04 데크길(2.64km, 760m) 14:11우측 다리 앞 구천동 주차장 3.6km 이정표(직진, 3.01km, 730m) 14:18 잠시후 데크 우측 다리 구천동 주차장 3.5km(금포탄, 3.16km, 730m) 14:20 길 좋아짐 덕유산 휴게소 지점, 구월담(3.68km, 705m) 14:299 데크길 우측 다리 구천동주차장 3.0km 이정표(계곡삼거리, 3.83km, 700m) 14:32 데크길 우측 다리 건너고(4.10km, 650m) 14:36 계곡 우측 돌길 -데크길 돌길 계곡 쉼터(4.34km) 14:41 ~14:50 -좌측으로 다리건너고(인월암입구, 4.55km, 670m) 14:55 계곡 좌측편으로 진행 인월암 입구 이정표(구천동 주차장 1.9km, 4.95km, 665m) 15:01 계단/데크 반달형 쉼터(5.12km) 15:04 구천동주차장 1.6km 이정표(645m) 15:05 데크/쉼터/데크 어사길 입구 삼거리(탐방안내소, 5.42km, 635m) 15:10 차단기앞 정자, 쉼터(6.22km) 15:23 - 삼공리 구천동주차장(7.04km, 590m) 15:34~15:45 무주톨게이트 16:08 서청주 톨게이트(통행료5100) 17:02 청주 집 17:10

~~~~~~~~~~~~~~~~~~~~~~~~~~~~~~~~~~~~~~~~~~~~~~~~~~~~~~~~~~~~~~~~~~~~~~~~~~~~~~~~~~~~~~~~~~

덕유산국립공원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덕유산은 1975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 상으로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르는 4개 군에 걸쳐 있으며, 229.43의 면적이 공원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덕유산국립공원은 동쪽의 가야산, 서쪽의 내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계룡산과 속리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향적봉 1,614m)으로 아고산대 생태계의 보존가치 또한 높으며, 북쪽으로 흘러가는 금강과 동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수원지이기도 하다.

 

 

적상산

높이 1,030.6m이다.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에서 북서쪽으로 약 10지점에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북동부에 있으며, 주위에는 백운산·대호산·단지봉·시루봉 등이 있다.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벽을 치마바위라고도 하며, 가을철이면 온 산이 빨간 옷을 입은 것 같다 하여 적상산이라고 했다. 동안·서안·북안에서는 금강의 지류인 무주남대천이 발원하며, 계곡이 방사상으로 발달했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리고, 인근 마을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의 경관이 특히 뛰어나다. 적상산성(사적 제146)이 있으며, 조선 후기 성내에 적상산사고가 세워졌다. 성내에는 안국사와 호국사가 있다.

상산·상성산이라고도 한다. 높이 1,030.6m. 소백산맥에 솟아 있으며, 덕유산 정상인 향적봉(1,614m)에서 북서쪽으로 약 10지점에 있다. 덕유산국립공원 북동부에 위치하며, 주위에는 백운산(559m)·대호산(592m)·단지봉(769m)·시루봉(499m) 등이 있다.

산정부는 비교적 평탄하나, 사방이 깎아지른 듯한 암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절벽 주변에는 단풍나무가 많다. 이 암벽을 치마바위라고도 하며, 가을철이면 온 산이 빨간 옷을 입은 듯하다 하여 산의 이름을 적상산이라고 했다. 동안·서안·북안에서는 금강의 지류인 무주남대천이 발원하며, 계곡이 방사상으로 발달했다. 적상산에는 단풍나무뿐만 아니라 소나무도 많아 주위의 바위와 잘 어울리고, 인근 마을에는 어디에나 감나무가 많아 가을의 경관이 특히 뛰어나다.

적상산성(사적 제146)이 있으며, 조선 후기 성내에 적상산사고가 세워졌다. 성내에는 안국사와 호국사가 있다. 이 절들은 나라의 안위를 빌기 위해 건립되었으며, 호국사는 1614년부터 건립된 적상산사고를 지키기 위해 세워졌다. 사고에 있던 서책들은 산 정상부의 안렴대 아래 험준한 절벽 밑 굴에 정묘호란의 재해를 피해 숨겨두기도 했다.

사천리 주차장-주능선일부-정상-능선 안부-안국사-내북창-외북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와 사천리 적상교-외사내-안렴대-안국사-하중리 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서쪽 산록으로 국도가 나 있어 무주에서 적상산 입구까지 버스가 운행된다.

~~~~~~~~~~~~~~~~~~~~~~~~~~~~~~~~~~~~~~~~~~~~~~~~~~~~~~~~~~~~~~~~~~~~~~~~~~~~~~~~~~~~~~~~~~

 

청주 집 06:20

오늘 산행은 밀양에 있는 천황산,재약산으로 잡았으나 독감이 걸려 간단히 산행을 할수 있는 무주의 적상산에 이어서 무주구천동에 있는 어사길을 다녀오려 한다. 적상산은 차량으로 안국사 부근 주차장까지 올라간후 정상부근을 돌아보는 간단한 산행을 하려 한다. 오전에 이곳을 둘러보고 다시 무주구천동으로 이동을 하여 전기버스로 백련사 주차장까지 올라선후 그곳에서 어사길을 따라 내려오는 산행을 하려 한다. 오늘은 시간이 넉넉하여 조금 늦게 일어나 집에서 0620분 출발을 한다.

 

적상산 사고 좌측 주차장(해발 약865m) 08:03 ~08:31

집을 출발하여 서청주 톨게이트로 진입을 하여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진행하여 대전을 지나고 식장지맥길의 마달터널을 지나면 추부톨게이트를 지나며 안개가 자욱하니 많이 끼였다. 잠시 더 진행하여 금산휴게소에 닿는다. 잠시 이곳에서 쉬었다가 다시 출발하면 금산부근으로 흐르는 금강물줄기 때문인지 안개가 더 자욱하니 많이 끼였다. 이후 금산과 무주의 경계를 잇는 고개를 넘어서 달리면 금강줄기의 몇 개의 다리를 건넌후 무주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이후 우측으로 진행하면 무주읍 우회도로 끝에서 우측으로 괴목, 안국사 방향으로 달리면 얼마가지 않아 우측으로 안국사로 오르는 입구에 닿는다. 이후 안국사로 향하는 길은 도중에 내창마을까지는 길이 괜찮지만 그 이후로는 길이 구불구불 올라서게 된다. 가로수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와 아직 단풍이 물들지는 않았지만 단풍나무길을 따라 서 올라서면 와인동굴 입구를 지나며 부터는 산길은 더욱 가파르고 구비도 많아진다. 천천히 올라서서 좌측으로 보이는 천일폭포주차장을 지나고 급하게 올라가면 적상터널을 지나고 적상호변길에 닿는다. 가면서 적상충렬비 앞 주차장 주변으로 붉게 물든 단풍이 보기 좋고 좀 더 가면 대형주차장과 소형주차장, 화장실등이 있는 가장 규모가 큰 주차장을 지나면 전망대와 안국사로 가는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전망대 방향으로 조금더 가면 길다랗게 주차장선이 그어진 주차장에 닿는다. 이곳에 주차를 하고 아침식사를 한다.

 

안국사 이정표(안렴대 0.6km, 향로봉1.7km, 전망대2.3km) 08:57

주차장에서 아침식사를 마친후 이제 산행을 시작한다. 길가에 단풍나무가 아직은 절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볼만은 하다. 절정기는 이번주 토, 일요일쯤이면 되겠다. 잠시 진행하여 안국사로 오르는 삼거리에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적상산 사고에 닿는다.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2층구조로 지은 사고는 아래로는 바람이 잘 통하고 위로는 햇살이 잘드는 방향이다. 사고는 전라북도 기념물 제88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의 사고는 고려말기 이후 조선초기에 이르기 까지 역대왕조의 실록을 보관하던 곳으로 선원전과 실록전을 두었다. 임진왜란 이전에는 춘추관, 충주, 성주, 전주사고 4곳이 있었으나 임진왜란때 전주사고를 제외한 전국의 모든사고가 불에 다 타버렸다. 이때 전주사고의 실록은 내장산, 해주등으로 거쳐 평안도로 옮겨 난을 피함으로써 임진왜란 중 멸실되지 않은 유일한 사고본으로 남게 된다. 그후 실록을 다시 편찬하여 전주사고본을 정본으로 정본 3부 초본인 교정본1부를 인쇄 모두 5부로 만들었으며 전화를 피할수 있도록 길은 산중이나 섬에 사고를 설치하였다. 원본인 전주사고본은 강화 마니산에 두었다가 정족산 사고로 옮겨졌으며 새로 인쇄한 정본중 1본은 서울의 춘추관에 두고 나머지는 태백산 사고와 묘향산사고에 보관하였다. 초본인 교정본은 오대산사고에 보관하였다. 이후 후금의 세력 확장으로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천혜의 요새로 이름난 적상산에 실록전을 창건하고 봉안하였으며 이안하였다. 또한 선원전을 세우고 왕실의 족보인 선원계보기략을 봉안함으로써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가 되었다. 그러나 1910년 일제에 병탄된 후 조선왕조실록등이 서울의 규장각으로 옮겨지면서 사고는 황폐화 되었다. 사고가 있던 본래 자리도 1992년 양수발전소상부 댐 축조로 물에 잠기게 되어 현재의 위치로 유구가 옮겨졌으며 1997년 선원각 복원을 시작으로 1998년 실록각등이 각각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적혀 있다.

 

적상산 사고를 잠시 돌아보고는 나가면 이정표가 보인다. 송대 1.1km, 치목마을 2.7km, 안국사 1.1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도로를 따라 진행해도 되고 도로위쪽 등산로를 따라 진행해도 된다. 갈잎이 어느새 노랗게 물들어 쓸쓸함도 느껴지지만 간혹 보이는 붉은 단풍을 마주 할때는 보기좋다. 이렇게 진행을 하면 도로를 건너 다시 앞쪽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돌계단을 따라 오르고 다시 데크계단을 따라 오르면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을 지나서 들어가면 안국사로 현재는 공사 중으로 어수선하다. 여기 이정표에 안렴대 0.6km, 향로봉 1.7km, 전망대 2.3km가 적혀있다.

 

안렴대(1.69km, 1015m) 09:15 ~09:24

안국사 이정표에서 좌측편으로 내려서서 공사중인 곳으로 지나면 안렴대로 오르는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신갈나무잎 사각사각 소리 들으며 천천히 걸어 오르면 돌계단이 나오고 다시 통나무계단을 따라 올라서 능선 이정표에 닿는다. 안렴대 0.3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우측으로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하면 군데군데 붉게 물든단풍나무도 보이고 누렇게 변한 신갈나무잎등이 우거져 있는 길을 따라 진행하여 오르막 데크계단을 따라 오르면 삼거리 이정표에 닿는다. 앞쪽으로는 산불감시탑이 있고 이정표에 안렴대 0.15km, 향로봉 1.6km가 적혀 있다. 이곳에서 잠시 안렴대를 다녀오기로 한다. 좌측으로 진행하면 조망이 좋은 바위봉에 닿는다. 앞쪽으로 걷히다 만 운무가 아직도 남아 있어 그런대로 볼만하다. 사진한장 찍고 조금 내려서면 두 번째 바위전망대가 나온다. 역시 같은 방향으로 조망도 같다. 여기서 철계단을 따라 내려서서 잠시 가면 평평한 바위전망대인 안렴대에 닿는다. 안렴대는 사방이 낭떠러지로 고려시대 거란이 침입했을 때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불려지고 있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사고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고 한다.

 

향로봉(3.47km, 1024m) 10:00 ~10:11

안렴대에서 다시 돌아나와 삼거리에서 향로봉으로 향한다. 거리가 1.6km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 없이 천천히 진행을 한다. 널찍하게 잘 닦여진 길을 따라 서서히 내려서게 되면 평평한 안부에 닿는다. 우측으로 안국사에서 올라온 길과 합류를 하는 지점이다. 안국사 0.2km, 향로봉 1.5km가 적혀 있다. 여기서 서서히 오르게 되면 우측으로 송신탑이 보이는 봉이 적상산의 최고봉인 적상산해발 1030.6m가 되는 봉이다. 이곳에서 다시 등산로를 따라 진행하면 서문지 복원지 현수막이 쳐져 있는 지점을 지나고 거의 평탄한 길을 따라 진행하면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한동안 진행을 하니 먼저올라온 두분이 그새 향로봉을 다녀온다. 이후진행을 하면 좌측으로 서창으로 내려서는 등산로 삼거리에 닿는다. 서창 2.8km, 향로봉 0.7km가 적혀 있다. 내려올 때는 이 지점에서 우측으로 내려설 예정이다. 산길은 없지만 내려설만 할 것 같다. 이후 서서히 올라서서 능선이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쯤에서 두 번째 먼저 향로봉을 다녀오는 내외분과 마주하고 평탄해진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어느새 향로봉 정상에 닿는다. 해발 1024m로 송신탑이 있는 봉보다는 조금 낮지만 정상석은 이곳에 설치되어 있다. 향로봉에서 무주읍까지도 능선을 따라 진행을 할수도 있다. 향로봉은 안렴대만 조망은 없다.

 

적상산 사고 좌측 주차장(7.43km, 해발 약865m) 11:39 ~11:42

이제 향로봉에서 되돌아서 온다. 벌써 관광차로 오신분들이 올라오고 있다. 몇분과 마주하며 내려서서 서창 2.8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선다. 길은 없지만 오래전에 임도였든한 흔적은 남아 있다. 이리저리 임도인듯한 곳을 따라 내려서면 길다랗게 둑으로 이루어진 곳에 닿는다. 몇 계단을 내려서면 단풍나무숲에 닿는다. 빼곡이 들어선 단풍나무숲을 따라 내려서면 대형주차장에 닿는다. 내려오는 곳이 세멘벽이 설치되어 있지만 내려서기 어려울 정도는 아니다. 능선에서 주차장까지 15분가량이 걸렸으니 안국사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시간이 훨씬 절약된다. 이후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얼마 안가 안국사와 전망대로 가는 삼거리에 닿고 직진방향으로 이어가면 우리 차를 주차한 주차장을 지나고 단풍나무길을 따라 진행하면 저수지둑에 닿는다. 이곳부터는 도로 양쪽으로 단풍이 더욱 잘 들었다. 관광버스로 올라오신분들과 자가용으로 오신분들이 전망대로 향하고 있는 모습들이 보인다. 이렇게 하여 전망대에 도착을 하여 둥그런 탑으로 돌아오르면 사방으로 보이는 조망이 매우 좋다. 앞쪽으로 백운산, 성지산이 마주하고 덕유산의 향로봉이 높다랗게 보이고 좌측 옆으로 거칠봉등이 조망된다. 전망대에서 멋진 조망을 구경한후 내려와서 잠시 커피한잔씩 마시고 다시 도로를 따라 나오면 주차장에 닿는다. 산행거리가 그래도 7.5정도가 나왔다.

 

백련사 주차장(해발 약895m) 13:23

적상산사고 좌측 주차장에서 이제 무주구천동으로 향한다. 내려오며 잠시 천일폭포를 둘러보았는대 적상호의 물을 완전히 빼서 인지 물이 한방울도 흐르지 않아 바위벽만 보았다. 이후 다시 내려오며 보니 단풍이 올라갈 때는 잘 보이지 않더니 많이 들었다. 특히나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는 볼만하다. 노랑게 떨어진 은행알이 수북이 쌓였는대 주워가는 사람이 없어 다 썩게 생겼다. 이렇게 내려서서 내창마을을 지나고 큰길로 나온후 우측으로 진행하면 괴목마을을 지나고 사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하면 큰 고개를 넘어서서 무주리조트 앞에 닿는다. 여기서 좀더 가면 삼공리로 여기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잠시 들어가면 삼공리 국립공원주차장에 닿는다. 주차장이 워낙커서 위쪽 주차장도 다 차질 않는다. 주차비도 없고, 입장료도 없으니 기분좋게 산행만 하면 된다. 여기 주차장에서 백련사 앞까지는 국립공원에서 운형을 하는 전기차 무공해 버스가 운행을 하고 있으니 올라갈 때는 버스를 타고 올라서 내려올 때 어사길을 따라 올 예정이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25분을 기다려 함께 기다리던 6~7명이 함께 타고 13시 출발을 하여 천천히 올라가니 백련사 주차장에 1323분 도착을 한다. 지루한 길인대 쉽게 잘 왔다.

 

백련사 대웅전(0.225km, 930m) 13:31

구천동

구천동명칭의 유래에는 3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백련암을 중심으로 현재의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 협곡에 9,000명의 승려가 살았다는 데서 연유한다는 설, 둘째로는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살았기 때문이라는 설, 셋째는 구천동은 산과 산으로 중첩되어 깊고 깊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다. [구천동 명칭 유래와 관련된 3가지 설에 대한 자세한 설명] 임훈의 덕유산 향적봉기에 의하면 성불 공자 9,000명이 이 골짜기에 수도하였으므로 이곳을 구천둔(九天屯)’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며, 그들이 조석으로 씻은 쌀뜨물이 개울을 부옇게 흐리게 했다고 한다. 당시 이웃 금산에 살던 한 여인이, 수도하려 구천둔에 입산한 남편이 약속한 3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므로, 2년 동안이나 골짜기를 찾아 헤매다가 끝내 찾지 못하고 되돌아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으며, 그때부터 구천둔구천동으로 바뀌었다고도 한다. 또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의 설화에는 옛날 이곳에 구()씨와 천()씨가 많이 살고 있었던 데서 구천동이라는 이름이 비롯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고, 기이한 바위가 9,000개나 되어 구천동이라 하였다는 등 여러 이야기가 전해진다. 숙종 때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은 덕유산을 가리켜 '불교의 소국'이라고까지 하였는데 당시 이곳에는 14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한다.

 

숙종 때 어사 박문수가 나그네 차림으로 무주를 지나다가 날이 저물어 한 외딴집에 들었는데 주인이 근심을 하고 있었다. 그 집 주인은 구재서[구씨 또는 유씨로 나타나기도 함]라는 사람인데 마을에 천동수[천득수, 천석두 등으로 나타나기도 함]라는 욕심 많은 사람이 구재서의 식구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재서의 아들이 천동수의 부인을 꾀어내려 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천동수가 구재서의 며느리를 데려가겠다고 협박했다는 것이다. 사연을 들은 박문수는 다음날 무주 관아로 가서 군졸들을 준비시키고 황···백 네 가지 색깔의 옷을 입혀 하늘에서 보낸 사자로 분장하여 천동수를 잡아 벌주었다. 천동수는 멀리 귀양 보내고, 구재서는 아들 며느리와 행복하게 살았다. 이후 마을에 구씨 사람들과 천씨 사람들이 어울려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천 명이 살 수 있는 둔지 구천동, 그리고 백련사

구천동의 지명 유래 중에 백련사와 관련된 구천동과 설천[무주 군지] 이야기가 있다. 백련사는 무주 구천동 계곡의 거의 끝부분인 해발 900m 지점에 있는 절이다. 백련사는 우리나라 절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여 빼어난 절경을 갖고 있다. 옛날에 백련사를 둘러싸고 빼어난 절경이 있다는 소문이 나자 전국의 수도승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그 수가 구천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래서 구천인(九千人)의 둔지(屯地)라는 의미의 구천둔(九千屯)’이라고 했는데, 이것이 변하여 구천동(九千洞)’이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1552년 덕유산을 탐방하고 썼던 조선명종 때 문신 임훈(林薰)[1500~1584]이 쓴 글에도 나온다. 임훈의 문집 갈천집(葛川集)등덕유산향적봉기(登德裕山香積峰記)에 따르면, “옛날에 그 골짜기에 9천 명의 성불공자(成佛功者)가 살았으므로 구천인의 둔지라는 뜻에서 구천둔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로부터 구천둔이란 지명이 구천동으로 바뀌어 불렸다고 한다. 그리고 구천동과 설천설화에서는 구천동지명과 관련하여 설천(雪川)’이라는 지명 유래도 설명하고 있다. 백련사에 구천 명이나 되는 중들이 먹을 쌀을 계곡에서 씻으면 엄청난 쌀의 양 때문에 온통 흰 눈이 내린 듯 하얀 쌀뜨물이 구천동 계곡을 따라 아랫마을로 흘러내렸다 하여 구천동 아랫마을을 설천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구천동의 유래담이 설천 마을 유래까지 확산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둔지는 군대가 주둔하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어 성불공자가 아닌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와 관련하여 불교가 전래되기 훨씬 이전인 삼한 시대 때부터 9천 명의 호국 무사들이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주둔하였다하여 구천둔이라는 지명을 갖게 되었다는 전설도 설득력을 갖고 있다. 그들은 신라의 화랑과 백제의 수사의 전신으로서, 이 구천둔 골짜기에 들어와서 심신을 단련하고 무술을 연마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신라 화랑의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랑(南郞), 안상(安詳) 등 사선(四仙)이 구천동 골짜기와 인접한 무주군 무풍면 철목리와 무주군 설천면 두길리에 기거하였다는 전설과도 연관성을 살펴볼 만하다.

 

중국 황제의 인정을 받은 땅 구천동 구천동과 설천

설화에 따르면, 구천동은 중국원나라 임금 순제가 붙여준 이름이라는 것이다. ()나라 황제는 어느 날 옥새를 잃고 찾을 수가 없었다. 황제는 고려 왕에게 옥새를 찾아 줄 사람을 보내달라고 간청을 했다. 그때 지금의 구천동에 유해(劉海)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렸을 때부터 총명하기로 유명했다. 고려 왕은 유해를 원나라로 보내 옥새를 찾도록 했다. 원나라로 들어간 유해는 한 달 안에 옥새를 찾아내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 뻔했기 때문에 날이 갈수록 초조했다. 답답한 마음에 담배만 계속 피우며 유해는 에라, 모르겠다. 담배나 죽이자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때 방 밖에서 유심히 유해의 행동을 살피고 있던 두 사나이가 사색이 되어 유해의 무릎 앞에 꿇어 엎드렸다. 이 두 사람은 담거와 배소였는데 옥새를 훔친 도둑들이었다. 유해의 담배를 죽이자하는 말에 두 사람은 자기들을 죽이겠다는 말로 알고 용서를 빌게 된 것이다. 옥새를 찾은 황제는 유해에게 큰 잔치를 베풀고 후한 상도 주었다. 그리고 황제는 유해가 태어난 곳을 구천동이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천승지국(天乘之國)의 구국제후(九國諸候)가 모여서 가히 축하할 만한 사람이 태어난 곳이라는 뜻이었다. 깊은 산골이라고 생각했던 구천동이 이런 연유로 해서 구천동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이상향이면서 구원자를 기다리는 양가적 땅, 구천동]

무주 구천동 설화에서 가장 빈번하게 나오는 것이 어사 박문수 관련 이야기이다. 박문수 전승은 전국적인 것으로, 원한이나 억울함을 풀어 줄 수 있는 존재에 대한 민중들의 강력한 염원이라는 점에서는 다른 지역 박문수 전승과 동일하다. 그러나 어사 박문수가 무주 구천동 지역에 유난히 자주 출몰하는 이야기는 무주 구천동만의 지역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주 구천동은 첩첩산중의 고립된 곳으로, 은둔과 피난의 십승지지(十勝之地)로서의 역할을 하며 신성함을 보존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립된 곳이기 때문에 중앙이나 관의 지배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여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는 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외부와 차단된 무주 구천동 같은 곳에 암행어사가 출두하는 것은 다른 일반 지역보다 훨씬 더 극적인 재미를 배가시킬 수 있었다. 중앙이나 관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산간 오지 무주 구천동 사람들에게 암행어사 박문수는 특별한 구원자이자 영웅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사실 중의 하나는 구천동박문수 설화가 많이 채록된 곳이 대구와 경상북도 지역이라는 점이다. 무주 구천동 이야기인데 해당 지역보다 다른 지역에서 더 많이 채록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은 무주 구천동 지역이 지리적·역사적으로 접경지로서의 경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백련사에 구천 명의 중들이 살고 있어서 구천동이라고 했다는 유래담에서 9천 명을 일반 백성으로 바꾸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찍이 조선 중기의 학자이며 도사(道士)였던 격암(格庵)남사고(南師古)정감록(鄭鑑錄)에서 구천동을 전란의 화가 미치지 않는 십승지지로 꼽으며 전란에 피할 수 있는 곳 중의 한 곳이라고 했다. 이는 구천동이 전쟁이나 양반의 수탈을 피해 9천 명 정도의 백성들이 넉넉히 살아갈 수 있을 만한 무릉도원 같은 곳이라는 민중 의식을 반영한 이야기라고 여겨진다. 더불어 구천동이름이 중국 황제로부터 부여받은 이름이라는 설화 역시 구천동에 대한 민중의 자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구천동 설화를 통해서 양가적(兩價的)인 민중 의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아름다운 경치로는 신선이 살 만한 곳, 중국 황제가 인정해 준 곳, 전란이 유일하게 피해 가는 곳, 십승지지 중의 하나, 9천 명 정도의 사람들이 넉넉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이라는 이상향적인 무주 구천동의 장소성이 드러난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많은 박문수 설화를 통해 첩첩산중, 깊고 깊은 계곡, 심산유곡의 구천동은 중앙 정치의 관리와 보호를 받지 못하는 곳으로, 억울한 사람들이 갇혀서 특별한 구원자를 기다리는 곳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러한 양가적 감정은 바로 아름답지만 굽이진 계곡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된 무주 구천동만이 갖는 지역적 특성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백련사 주차장에 내려서 세멘트길을 따라 올라서면 굵직한 돌배나무가 나온다. 여기서 계단을 따라 오르면 백련사 대웅전 앞에 닿는다. 여기서 바라보는 전경이 보기 좋다.

덕유산 중심부 구천동 계곡 상류에 자리잡은 백련사는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백련(흰 연꽃)이 피어나자 짓게 된 것이라고 전해온다. 무주구천동 14개 사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이라 한다. 백련사 입구에 있는 아치형 다리 ''백련교'' 를 건너 일주문을 지나면 석조계단(백련사계단 : 전라북도 기념물)이 나타나고, 그위에 대웅전 건물이 들어서 있다. 그 밖의 문화재로 매월당 부도와 정관당 부도가 있다. 고려 때 제작되었다는 삼존석불이 유명하다.

백련사 터신라 신문왕(681~691) 때 지은 백련사가 있던 곳이다. 원래의 건물은 6·25 한국전쟁 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62년 이후에 다시 지었다. 백련사는 백련 스님이 하얀 연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세운 절로, 구천동 14개 사찰 중 지금까지 남은 유일하다. 경내에는 석가모니를 모신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 명부전, 선수당, 종각, 보제루, 천왕문, 백련사 계단, 정관당 부도, 매월당 부도 등이 남아 있다.’라고 안내되어 있다.

전북 유형문화재 제43호인 매월당 승탑으로 지대석에 종모양의 탑신을 올려놓은 간단한 형태를 하고 있다. 탑신의 상륜부에 보륜을 두른 후 그 윗부분에 유두형 보주를 조각했는데, 보주의 상두면에 연화문을 양각해 놓았고, 보륜 아래 탑견에도 화려한 연화문을 둘러 세련미를 주고 있다. 몸돌 중앙에는 梅月堂雪欣之塔이라는 탑명이 있고 그 옆에는 乾隆甲辰三月日甥姪林善行建이라고 각자 되어 있어 이 승탑은 매월당이란 호를 가진 설흔 스님의 승탑으로 정조 8(1784) 3월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네 번째 승탑은 기단 위에 종모양의 몸돌만 있고 지붕돌은 없어진 상태이다. 다섯 번째는 네 번째 승탑과 같은 것이나 지붕돌이 있는 모습이다. ‘매월당1772년에 적상산 안국사의 후불탱화 조성에 참여한 후 12년 뒤인 1784년에 구천동 백련사에서 입적한 스님이다.
출처 : 한국NGO신문(http://www.ngonews.kr)

 

백련사입구(14.4km, 950m) 12:33

오수자굴에서 돌계단길을 따라 계속 내려서면 물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하며 개울가에 닿는다. 이제 개울가를 따라 진행하면 너덜지대에 닿는다. 걷기가 아주 나쁘다. 잠시 너덜길을 따라 가면 너덜지대 중간쯤에 이정표가 있다. 백련사 2.4km가 적혀있다. 이후 좌측 계곡에서 본 계곡으로 흐르는 물을 건너고 잠시 가면 좌측에서 본계곡으로 흐르는 작은 물을 건넌후 진행을 하면 백련사 1.3km가 이정표와 055-03지점 표지목에 닿는다. 해발 1005m쯤으로 이제 많이 내려왔다. 이후 진행을 하면 길은 육산길이 많아지며 걷기가 좋은 길이 많아진다. 이후 좌측에서 흐르는 큰 계곡의 물을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후 진행을 하면 계곡옆으로 철주가 설치된 지점을 지나고 이윽고 백련사 0.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 닿는다. 표지목 05-01지점으로 해발 954m가 적혀 있다. 여기부터 백련사 입구까지 나가는 길이 나쁘다. 돌길을 따라 나가야 한다. 조금씩 오르내리는 돌길을 따라 걷기가 좋지를 않다. 이렇게 나가면 임도오수자굴 등산로 입구에 닿는다. 좌측으로 오르면 백련사, 직진으로 내려서면 주차장으로 가는 길로 여기에 공단직원이 근무하는 초소도 있다.

 

우측 다리 구천동주차장 3.0km 이정표(계곡삼거리, 3.83km, 700m) 14:32

백련사 입구에서 어사길을 따라 진행한다. 어사길입구로 들어서면 다리를 건너 계곡의 우측길을 따라 서서히 내려서게 된다. 푹신한 야자메트길로 걷기에 좋다. 이길을 따라 잠시 내려서다. 첫 번째 이정표가 있는 지점 구천동 주차장 6.2km가 적혀 있다. 푹신한 깔개길을 따라 진행하면 10분이 좀 더 지나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 임도와 나란히 가는 어사길을 따라 가면 신양담이 나오고 잠시 더 진행하여 안심대에 닿는다. 여기서 임도는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진행이 되고 어사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 데크계단을 따라 잠시 올라선후 이어지는 돌길을 따라 진행한다. 걷기에는 좋지는 않지만 자연상태로 이어지는 길이기 때문에 세멘트길을 걷는것보다는 훨씬 나은듯하다. 돌길을 따라 길게 이어지고 간혹 짧막한 데크길이 나오기도 한다 두 번째 데크길을 지나면 우측으로 다리가 보이는 앞쪽 이정표에 닿는다. 주차장 3.6km가 적혀 있다. 이후 잠시 데크길을 걷고 나면 우측으로 다리가 또 나온다. 주차장 3.5km가 적혀 있으며 금포탄이 있는 지점이다. 어사길에도 금포탄등 표지판이 있었으면 더 좋겠다. 이후 길은 좋아진다. 평탄한 습지지형을 지나며 우거진 숲도 좋다. 우측으로 휴게소가 보이는 지점으로 구월담이라고 하는 곳이다. 여기서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면 우측으로 다리가 보인다. 올라갈 때 건너던 다리로 양쪽 계곡이 합류하는 지점이다.

 

삼공리 구천동주차장(7.04km, 590m) 15:34~15:45

계곡 합류지점에서 좌측편 길을 따라 계속 진행을 한다. 잠시 가면 데크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건너는 다리가 나온다. 여기서는 좌측편 계곡으로 길이 없어 다리를 건너야 한다. 다리를 건너면 구천동 주차장 2.5km가 적혀 있는 비파담이다. 우측으로 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도로아래로 데크길이 있지만 굳이 내려서지 않고 도로를 따라 가면 6분후 다시 인월암 입구에서 다리를 건너 좌측으로 진행한다. 조금가면 인월암 입구에 이정표가 있다. 이곳에서 인월암을 거쳐 오르는 길이 칠봉을 거쳐 설천봉, 향적봉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인월암입구를 지나고 좋아진 길을 따라 진행하면 오르는 데크계단과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면 반달형 쉼터가 나온다. 여기 이정표에 구천동 주차장 1.6km가 적혀 있다. 여기부터는 길은 더욱 좋아진다. 데크길 쉼터 데크길을 따라 진행하는 널찍한 길에는 몇 개의 안내문도 보인다.

 

지혜의 문

옛날 길을 돌로 막아 지나는 사람들에게 곡식, 돈 등을 받아야 길을 열어주는 심술이 고약한 도깨비가 살고 있었다.

고심하던 마을 사람들은 한 가지 꾀를 내었다. 평소 힘자랑을 좋아했던 도깨비에게 길을 막고 있는 돌을 쪼개 보라고 하였고 큰 바위가 두개로 나뉘게 되었다. 이를 지혜의 문이라고 일컬어지며 현재까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소원 성취의 문

옛날 금실이 좋은 부부가 마을에 살고 있었다.

그때, 전쟁으로 남편은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그날 이후 부인은 매일 소원의 탑에서 남편이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를 하였다. 몇 년이 지나도록 아무 소식 없는 남편을 위해 기도를 했던 부인의 정성으로 남편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이 문을 지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좋은 길을 따라 나오면 어사길 입구 도로에 닿는다. 도로를 따라 잠시 내려서면 삼거리 다리앞에 닿는다. 버스가 들어갔던 곳이다. 앞쪽으로 길다랗게 지은 탐방안내소가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다리를 건넌후 도로를 따라 내려오면 차단기 앞쪽 정자와 화장실, 쉼터가 있는 곳에서 닿는다. 도로를 따라 좀더 내려서면 야영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 마을길을 따라 내려가면 삼공리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산행거리 7km가 나온다. 오늘도 이렇게 하여 어렵지는 않았지만 두군대 코스 구경잘하고 간다.

 

돌아오는 길

삼공리에서 이제 집으로 향한다. 25분 가량을 나오면 무주톨게이트에 닿는다. 이후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 대전을 지나고 서청주톨게이트로 빠져나와 집에 도착을 하니 1710분이다. 1시간 25분 가량으로 무주는 청주에서 가까운 거리라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 산행지다.

 

적상산 산행시간 : 3시간 07

산행거리 : 7.43km

무주구천동 어사길 산행시간 : 2시간 11

산행거리 : 7.04km

 

연료비 : 3만원

통행료 : 10200(왕복)

 

~~~~~~~~~~~~~~~~~~~~~~~~~~~~~~~~~~~~~~~~~~~~~~~~~~~~~~~~~~~~~~~~~~~~~~~~~~~~~~~~~~~~~~~~~~~~

무주 적상산 1030.6m, 무주구천동 어사길

 

청주 ~안국사 주차장 : 112km 1시간 30, 통행료 5400

천일폭포 주차장 ( 적상면 북창리 928-3, 적상터널 120m)

적상호 주차장(북창리 942-1, 터널지나 안국사, 사고지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200m지점 우측으로 주차장)(주차장에서 적상호 전망대 : 1.1km

 

안국사 ~무주 삼공리 : 27km 35분 소요

 

산행일시 : 202306111230

네 비 명 : 안국사

등산코스 : 안국사 (주차장) - 안렴대 - 정상(향로봉) 최단코스 원점회귀 (4KM)

소요시간 : 왕복 1시간20분 소요 (주차장 안렴대 10정상까지 40하산 20분 소요(휴식 10)

 

삼공리 주차장 ~백련사 : 6.51km 2시간 30(1시간 16분 소요)

*** 덕유산 어사길

전기차 구천동 주차장 출발 : 09:10, 10:40, 13:00, 14:30, 16:00 (25분 소요)

전기차 백련사 출발 : 10:05, 11:35, 13:55, 15:25, 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