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0년 부터)

1359 동유럽 6개국 여행 제8일차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포스토니아 동굴및 프레드야마성,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날 2023.09.04.일 월요..

산야55 2023. 9. 22. 21:22

동유럽 6개국 여행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2023.0828일 월요일~2023.0910일 일요일(1214)

 

8일차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포스토니아 동굴및 프레드야마성,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날

2023.09.04.일 월요일 맑음

 

기상 04:30 아침산책(알파인코스터 상부, Straza hill) 06:10 ~07:00 아침식사 07:00 ~07:30 호텔출발 07:45 블레드섬 들어가는 선착장전 하차 07:40 보도 -선착장도착 07:49 ~07:54 블레드섬 08:00 ~08:30 다시 선착장 08:35 도보 버스승차 후 출발 08:48 포스토니아동굴로 이동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도보 동굴 입장후 동굴열차 출발 11:10 동굴열차 정차 11:15 이후 동굴 도보로 관람 동굴열차 출발 12:10 동굴열차 도착 12:15 동굴 출발 12:25 도보 식당 도착(Hotel JAMA) 12:30 ~13:25 도보 포스토니아 주차장 출발 13:40 프레자마성 주차장 도착 13:54 관람후 주차장 출발 14:26 플리치비체 인근 호텔로 이동(223KM, 3시간 15분 소요) - 크로아티아 국경 통과 15:35 주유소겸 휴게소 15:39 ~15:51 휴게소 17:30 ~17:45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저녁식사 1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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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토이나 동굴[슬로베니아어 :Postojnskajama]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근처에 자리한 긴 카스트로 동굴로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동굴 이며관광 명소임

- 길이는 20,570

-이 동굴은 피브카 강(PivkaRiver)의 유수 작용에 의해 생성됨

- 동굴의 발견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문헌 상으로는 17세기 야네즈 바이카르드 발바소르(JanezVajkardValvasor)가 최초로 이 동굴에 대해 기술

- 1818년에 새로 발견된 부분은주민 루카 체치(LukaČeč)가 오스트리아 최초의 황제인 프란시스 1(Francis)의 방문에 대비하여 기존에알려져 있던 구간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발견

-1819년 이동굴은 대중에게 공개

-1884년에는 전기종이 설치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동굴이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카르니올라주(Carniola)의 수도 류블리아나(Ljubljana)에 전기조명이 설치된 때보다 더 이른 것임

-1872년에는 관광객을 위한 최초듸 동굴열차와 함께 철도가 부설 되었으며,20세기에 들어와서 가스기관차가 도입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전기기관차로 대체되었다

-일반에게 공개된 구간은 전체 동굴 가운데 5.3로 일반인의 관람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 동굴은 또한 세게에서 가장 큰 혈기도룡뇽인 이고장 특유의 올름(동굴 도룡뇽붙이)이 서식한다.

[네이버 지식백과]포스토이나 동굴[Postojna Cave] (두산백과

 

포스토니아 동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 카르스트 동굴인 포스토이나 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다.

이 모든 게 석회암과 물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낸 걸작으로 떨어지는 물에 의해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이 형성된다. 고드름처럼 자라 천장에 매달리는 것이 종유석, 바닥에 떨어져 석회암 덩어리 탑처럼 쌓이는 게 석순, 석순이 자라 종유석과 만나 기둥을 형성하면 석주다.

100년에 1cm가 자란다고 하니 포스토이나 동굴 속의 이 모든 작품들은 수백만년의 세월에 걸쳐 떨어진 물방울들의 기적인 셈이다. 여기에 조금의 상상력을 보태면 그 모양은 산타클로스, 앵무새, 피사의 사탑, 그 밖의 모든 것이 된다. 성분에 따라 흰색, 빨간색, 검은색, 회색 등으로 달라지는 석회암의 색깔은 무한한 상상력에 색채를 더한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어두컴컴하지만 화려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기적은 정말이지 경이롭다

스파게티석이라 불리는 종유석. 비 오는 모양을 닮아 원래는 ‘Rock Rain’ 불렸으나 이후 이탈리아인들이 ‘Rock Spagetti’라 이름 붙였다

여러모로 사람을 닮은

프로테우스(Proteus)
포스토이나 동굴 안엔 그들만의 생태계가 있다. 끝없는 암흑이라는 조건에 적응한 100종이 넘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 그중 가장 유명한 생물이 프로테우스. 수명이 100년에 이르고 피부색 또한 사람과 비슷해 휴먼피시(Human Fish)라 불린다. 작은 뱀장어처럼 생긴 프로테우스를 옛날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용의 새끼라 믿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까닭에 눈은 퇴화되었고 피부 보호 물질이 없는 투명한 피부를 갖고 있어 매우 민감하다. 프로테우스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는 금물이다.

 

이름 그대로

브릴리언트(The Brilliant)
포스토이나 동굴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석회암들이 있지만, 이 중 유독 새하얀 빛을 발하는 석순이 있다. 바로 이름부터 찬란한 브릴리언트. 5m 높이에 겹겹이 녹아내리는 듯한 형상을 한 브릴리언트는 포스토이나 동굴의 상징으로, 원래의 순백색 색깔이 조명을 받아 더욱 미세한 빛을 발한다. 아이스크림 모양을 닮았다고 해 아이스크림 석순이라고도 불리는 브릴리언트.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브릴리언트 아이스크림이라 명명하고 싶다.
출처 : 트래비 매거진(https://www.travie.com)

 

프레자마성(Predjamski Grad)

슬로베니아 서남부, 동명의 마을 프레자마에 자리잡고 있다. 카르스트 구렁 위 123m 높이의 암벽동굴에 반쯤 박혀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프레자마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세계기록에 등재 되어 있다.

최초의 성은 13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독일어로 루그(Luegg)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델스베르크의 기사로 알려진 루그 귀족 가문이 성을 매입한 뒤 확장하였다. 참고로 아델스베르크는 프레자마의 독일어 명칭이다.

루그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슬로베니아 판 로빈 후드로 알려져 있는 의적기사, 에리스무스이다. 슬로베니아 어로는 에라젬 로에거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15세기 프레자마성의 성주로, 부유한 상인들에게 빼앗은 재화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죽은 친구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합스부르크가 황제 군대의 사령관을 죽인 탓에, 쫒기는 신세가 되어 프레자마 서응로 피신한다. 이후 헝가리의 왕을 도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싸운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에라스무스의 본거지인 프레자마 성을 포위한다. 에라스무스는 성안의 여러비밀 통로를 사용하여, 외부로부터 비밀리에 군수품 및 식자재를 보급 받으며 일년 넘게 항전한다.

난골불락처럼 보이는 프레자마 성에도 외부 공격으로부터 취약한 장소가 한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화장실이 었다. 에라스무스의 부하 중 한 명이 적에게 이러한 기밀 정보를 넘긴다. 이렇게 의적 에라스무스는 부하에게 배신당해, 황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폭탄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이후 성은 파괴되고 폐허만 남았다. 16세기 새로운 성을 건축했으나 이 성 역시 지진으로 파괴되고 현재 우리가 방문할수 있는 르네상스양식의 성은 16세기 중반건설된 것으로 6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38개의 방이 있다. 푸레자마성은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한다.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옮겨온 글

 

크로아티아

면적 약56(한반도의 0.256, 대한민국 10), 인구 약400만명(대한민국 5000만명 세게29)으로 세계 129위다.

크로아티아는지중해(아드리아해)와 접한발칸 반도서북쪽, 동남유럽에 위치한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독립한국가이다. 수도자그레브(Zagreb)이다. 1991년에야 독립을 선언한 신생국으로서, 짧은 역사에도 발칸 국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인종 청소 등 굵직한 사건을 겪었다.

발칸반도 지역에서는가톨릭정교회간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나라이며 서북쪽으로슬로베니아(그리고 약간만 더 건너서이탈리아오스트리아가 있다.), 동북쪽으로헝가리, 동쪽으로세르비아, 동남쪽으로 몬테네그로,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동부 중간에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를 접하고 있고, 이를 건너가면 이탈리아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역사에서 오랫동안 독립국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크로아티아 민족 자체는 남슬라브계에 속하며, 언어도 옆나라인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와 거의 같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세르보크로아트어로 불렸다.

 

본래 크로아티아가 속한 발칸은 오스만,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었지만, 민족 구성은 남슬라브계가 다수였기에 자연히 민족주의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시작된 1차 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한 이후, 러시아의 대슬라브주의의 영향과 세르비아의 주도하에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발칸의 여러 지역과 민족을 포괄하는 유고슬라비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인 민족주의자들은 유고를 거부했고, 2차대전 시기 추축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자, 나치의 괴뢰국 형태로 크로아티아가 독립한다. 그러나 2차대전이 나치의 패배로 끝나며 다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소속국이 되었다. 이후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 끝에 오늘날의 크로아티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군의 피상적인 침공과 약탈을 겪었지만, 크로아티아가 오스만 제국과 본격적으로 엮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전반에 들어서이다. 1526쉴레이만 1는 오스만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 왕국을 침공했고 이에 모하치 전투가 벌어졌다. 헝가리,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3개국의 국왕을 겸하고 있었던 야기에우워 가문러요시 2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헝가리군은 대패하여 사실상 멸망했다. 이때 러요시 1세의 자형이자오스트리아 대공합스부르크 가문페르디난트 1가 러요시 2세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고, 당시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크로아티아 왕국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신속하게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인정했다. 동시에 보헤미아, 서부 헝가리도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에 귀속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이 성립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9181차 세계 대전까지 계속되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방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현지의 문화와 자치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는 관용정책을 펼쳤는데, 이에 크로아티아도 상당 수준의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에 귀속된 이후 크로아티아의 영토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거듭된 공세를 받는 변경 지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해적들이 들끓는 탓에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키는 등 난장판이 되었다.

1797나폴레옹의 원정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캄포포르미오 조약의 결과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 대부분이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 베네치아가 다스리던 달마티아역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이로서 지금의 크로아티아 전체가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랑스에 참패하면서 쇤부른 조약으로 프랑스에 할양되었다가 1815빈 회의의 결과 다시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독일화, 헝가리의 헝가리인들은 헝가리인대로 마자르화를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강요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크로아티아인들은 일리리아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명목상 크로아티아의 종주국으로 크로아티아인들의 권리를 억압하려는 헝가리와는 사이가 최악이었는데1848년 헝가리 혁명당시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크로아티아인들은 합스부르크에 충성을 맹세한 후 헝가리 봉기 진압에 앞장섰다. 덕분에 크로아티아는 제한적으로나마 동등한 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1866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하여 충격과 후유증에 휩싸여 있는 동안, 헝가리 민족 운동이 고조되어 1867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중제국)이 수립되어 헝가리 왕국이 사실상 주권국이 되었다. 이때 크로아티아의 통치권이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넘어갔다. 헝가리는 크로아티아를 완전 편입하고 헝가리 왕국 내 타 소수민족들처럼 마자르화를 하려했으나 크로아티아는 주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였다. 이때프란츠 요제프 1가 나서서 크로아티아를 지지하며 압력을 넣은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주권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양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크로아티아는이스트리아 반도와 함께 제국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교두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의 해군 및 해양 정책에서 크로아티아의 비중은 매우 컸으며, 오스트리아 해군 내에도 실제 인구 비중에 비해 크로아티아계의 수가 더 많았다.

 

1918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크로아티아계는 이미 몰락이 기정사실화된 합스부르크와 결별하고 남슬라브 통일운동에 합류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원래 국명은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원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 위주로 흘러가는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을 보고 남슬라브인 통일운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대세르비아주의였다고 분개한 크로아티아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 내부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분쟁을 일으켰다. 크로아티아 문제는 크로아티아계가 반유고슬라비아 성향 국가인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지원을 얻어 아예 분리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더 심각해졌고 2차 세계 대전이 임박해 정세가 심상치 않은 19398월 크로아티아 농민당과 유고슬라비아의 섭정파블레 왕자의 타협으로 크로아티아계 거주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폭넓은 자치권을 가지는 크로아티아 바노비나(Banovina Hrvatska)로 재편되었으나 이미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결국1941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을 비롯한추축국의 침공 때 병력 소집을 거부하여 유고슬라비아의 파탄에 일조했다. 이후 독일-이탈리아-헝가리의 괴뢰 국가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세워졌고 독일의 후원 하에 반세르비아 조직인 우스타샤가 정권을 잡아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벌였는데, 어찌나 잔혹했는지 천하의 독일 국방군도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 우스타샤에 의해 살해당한 세르비아인의 수는 30만 명에서 70만 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의 학살이 저질러진 보스니아의 2차대전 직후 세르비아인이 100만여 명이었음을 생각하면 거의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인구의 20%에서 40%가 죽은 격이었다. 이 비율이면 유대인학살보다 더하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계의 체트니크라는 민족주의 저항군과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공산주의 게릴라들 모두와 격렬히 충돌하였다. 이 때문인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크로아티아가 인지도를 올렸을 때, 일각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체크무늬 유니폼을 보면 나치가 생각난다면서 항의하는 목소리도 있었을 정도였다.

1945
이후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통합되어 어느 정도 자치권을 누렸으나, 1980티토가 죽은 뒤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대두되자 크로아티아도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1990년 총선에서 유고슬라비아 내 각 공화국의 총선이 민족주의 정파의 승리로 끝났고, 크로아티아도 프라뇨 투지만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이 압승을 거뒀으며 1991 동구권의 붕괴를 계기로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국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연방 붕괴를 거부한 세르비아계 연방군과 무력 충돌,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일어났으나, 국제사회의 중재와 압력으로 연방군이 철군함으로써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을 달성하였다. 다만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지원 아래 세르비아계가 다수이던 크로아티아 동부 크라이나 지방이크라이나-세르비아 공화국설립을 선포하여 1995년 여름까지 전쟁을 지속해야 했다.

독립 이후 세르비아와의 전쟁으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물가상승률이 높아 한 동안 경제가 엉망진창이었으나 화폐개혁을 하는 김에 독일 마르크화에 페그를 거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화시켰고 국제재제로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겼던 세르비아와는 다르게 크로아티아는 그런 면에서 제약이 덜했던지라 1990년대 중반부터 안정세를 되찾았고 1997IMF 외환위기로 다시 휘청이기는 하나, 2000년대에 서방 세계로의 경제 통합을 지향하여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였다.
크로아티아도 2013년부터 EU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이후솅겐조약에도 가입하게 된다.

워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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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04:30

오늘은 조금 일찍일어나 준비를 한다. 날이 밝으면 다시 블레드호수를 아침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혼자서 어제 블레드성에 바로 정면으로 보이던 작은 언덕이 있는 산을 다녀올 예정이다. 6시가 넘어서 날이 밝는다. 나오기로 한 분들이 다 나오길 기다려 마나님한테 어제 간길을 따라 브레드 호수를 돌아보라하고 나는 혼자서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찾는다. 호텔에서 나와서 좌측으로 가면 골목이 몇 개 나온다. 제일 좌측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길이 반대편으로 이어지며 그방향으로는 잘 지은 전원주택들에서 길이 막힌다. 두 번째도 역시 막힌다. 다시 나와 중간쯤에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여기가 맞다. 잠시 들어가니 알파인코스터 매표소앞 주차장에 닿는다. 이른아침이라 통제가 없어서 무사히 통과를 하여 임도를 따라 올라서다가 알파인코스터 파란 잔디밭을 따라 올라간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풀에 이슬이 맺혀 등산화가 젖는다. 중간쯤에서 임도가 지나고 다시 알파인코스 잔디밭을 따라 오르니 상부에 닿는다. 이곳이 Straza hill이라고 하는 곳이다. 정상부에는 각종시설들이 되어 있다. 나무에 줄을 매어 건너는 코스도 보이고 이나무 저나무로 연결이 된 많은 시설이 되어 있다. 시간이 그리 많치 않기 때문에 간단히 위쪽으로 더 높다란 곳으로 올라서 좌측으로 돌아가는 길이 잘되어 있다.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블레드호수가 내려다 보이고 블레드섬이 바로 아래로 놓여있다. 멀리 설산도 보인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트리글라브국립공원이라 되어 있는 곳이다. 그아래로 모스토니아 협곡도 있다.

 

트리블라브 국립공원

슬로베니아의 상징과도 같은 곳
트리글라브 국립공원(Triglav National Park)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2864m 높이에 넓이도 83,807 헥타아르로 블레드, 보히니, 카란스카야 고라 등의 슬로베니아 도시를 끼고 있으며, 국립공원은 오스트리아, 이태리, 슬로베니아의 국경과 접하고 있습니다. 트리글라브 산은 슬로베니아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슬로베니아 국기에 이 산 모양이 들어있습니다.
높은 계곡과 산등성이, 특색있는 자연 환경은 이곳의 자랑거리이며 이 국립공원은 보니히 호수와 폭포, 협곡, 카르스트 지형 등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추운 북부 고산지대와 온화한 서부 지중해성 기후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동특한 동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저기저 설산이 이렇게 유명한 곳인지 몰랐지요!!

멋진모습을 눈에 가득담고 이제 내려간다. 역시 알파인 코스터 코스터 잔디밭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임도에서 좌측으로 따라내려가니 편하긴 한데 조금더 멀다. 이렇게 내려서 호숫가에 도착하니 박선생내외가 아침산책을 나왔다가 만난다. 난 호숫가를 조금 더 따라 가다가 호텔로 들어가니 모두가 나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렇게 하여 아침산책길 3.8KM 55분동안 걸었다.

 

블레드섬 08:00 ~08:30

호텔에서 식사는 역시 뷔페식으로 간단하게 한다. 주로 햄종류 치즈종류 모처럼 빵한조각 가져다가 햄넣고 먹어도 봤다. 식사는 여기도 좋지를 않다. 과일 썰어서 맛나게 한 멋이여 국물도 있고 한 것 요것은 맛있다. 간단히 식사 끝내고 짐챙겨서 이제 어제 일정중 오늘로 미뤄진 블레드섬으로 향한다. 버스로 잠시 간후 도로변에 내려서 노젖는 배가 여러대 서 있는 선착장에 도착을 해서 잠시 기다리니 멋지고 젊은 뱃사공이 나온다. 배는 노젖는 배로 환경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힘차게 노를 저어 5분여 들어가니 블레드 섬에 닿는다.

 

블레드 호수
호수 중앙에 작은 섬이 있는 거대한 호수
블레드 레이크는 Bohinj 빙하의 후퇴이후 형성된 호수로 긴쪽 지름은 2120 m 이며, 짧은쪽은 1380 m로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깊이는 최고 깊이가 30.6 m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빙하기 이후, Bohinj 빙하로 인해 해수면은 더욱 상승되었고 호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몇몇개의 작은 샘이 있으며, 호수의 북동쪽에 있는 온천샘은 주변 호텔(Grand Hotel Toplice, Hotel Park, Hotel Golf) 의 온천풀로 쓰이고 있습니다. 호수의 중앙에 있는 매우 작은 섬은 블레드 섬이라고 불리우며 이곳에는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매일 수시로 있으면 약 10분 걸립니다. 호수 주변은 하이킹 코스로 매우 좋으며 주변의 여행사에서 래프팅등의 스포츠도 참가 할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블레드섬을 한바퀴 일주하는대는 6KM라고 한다. 대략 1시간10~20분이면 되겠다. 시간이 있으면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 블레드섬에는 성모승천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교회안을 들어가지 않는 일정이라 외관만 구경을 한다. 올라가는 계단이 99개라고 하는대 하나둘 세면서 올라가다보면 98에서 끝이 난다고 한다. 하나는 물속에 있다고 한다. 이곳은 결혼식 성지로 신랑이 신부를 앉고 99계단을 올라가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한다. 신부는 절대로 숨을 쉬지 않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성모승천교회에는 전설이 있는대 소원의 종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인이 남편을 사별하고는 그 슬픔을 달래고 신에게 감사하려고 블레드섬의 예배당에 종을 설치하려고 했는대, 종을 제작해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 그만 종이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서럽게 슬퍼하는 여인의 사연을 들은 교황이 성모승천 교회에 종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블레드섬의 계단과 종에 사랑과 소원의 염원이 담긴 것은 이러한 전설에서 연유했 것이다.

교회 외부를 불러보고 뒤편으로 내려가니 조망이 매우 좋다. 건너편의 호텔지역과 우측으로 블레드성이 보인다. 섬주변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 블레드성 방향쪽으로 걸어나가 예쁜꽃이 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 가꾸는 꽃인대 시클라멘이라고 하는 꽃이 여기는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이후 선착장으로 돌아와 잠시 기다려 사진촬영마저 하고 능숙한 뱃사공의 노젖는 모습을 보며 5분여 나오면 블레드의 일정도 끝이다. 이렇게 하여 블레드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동굴 구경을 하러 간다.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블레드 지역의 관광을 모두 마치고 이제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동굴인 포스토니아 동굴로 향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나고 하며 관람거리는 세계최대라고 하는 동굴이다.

가는 길은 역시 목초지가 대부분인 길을 따라 진행한다. 동구권 국가들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환경이 좋다. 가는 거리가 100km가 조금 넘기 때문에 대략 1시간 반정도가 걸린다. 가는 길은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뉴블라냐를 옆으로 지나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어느덧 버스는 포스토니아 동굴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이정도면 이동시간이 적당하다. 중국등 큰 국가에서는 이정도면 옆동네 마실가는 거리다. 포스토니아 동굴입구 쪽으로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역시 유명한 곳인 것 같다.

 

세계최대 동굴

선도웅 동굴(산둥동굴, 선동동굴 이름이 가지각색이다)

선도옹 동굴(베트남어:Hang Sơn Đoòng/山洞)베트남 꽝빈성 보짝현에 위치해 있다. 세계 최대의 천연 동굴로 길이는 9km, 높이는 200m , 넓이는 150m이다. 이곳은 퐁냐께방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굴이다.

(Hang베트남어동굴이라는 의미)

라오스-베트남 국경 근처에 위치한 선도옹 동굴은 내부로 빠르게 흐르는 지하강과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의 단면을 가지고 있는데, 2009년 기준으로, 두번째로 가장 넓은 통로를 가진 동굴의 두 배라고 여겨진다. 부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통로다. 용해성 동굴로서 용해성 석회암으로 형성되었으며, 200~500만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티엔드엉 동굴

티엔드엉 동굴(베트남어:Thiên Đường/天堂洞)은 베트남 보짝현 선짝사에 위치한 자연 동굴이다. 해발 200m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이 동굴의 길이는 31km, 높이는 100m , 넓이는 150m이다.

퐁냐께방 국립공원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베트남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동굴로 알려져 있다.[3]

이 동굴은 2005년 한 현지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 동굴의 첫 5km2005년 영국 동굴 연구 협회의 탐험가들에 의해 31km 전체가 영국 동굴 탐험가들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동굴은 길이가 31km로 이 국립공원에서 가장 긴 동굴로 여겨졌던 퐁냐 동굴보다 길다. 높이는 72m, 폭은 150m에 이른다. 석회암 형성도 퐁냐 동굴보다 화려하다

영국의 동굴 탐험가들은 이 동굴 안에 있는 아름답고 장관인 종유석석순에 감명을 받았고 그들은 그것을 티엔드엉 동굴(천당 동굴)이라고 이름지었다. 2012년 이 곳에서 새로운 종인 진동굴성 생물 전갈의 종인 비엣보캅 전갈(Vietbocap thienduongensis)이 발견되었다.

 

세계최대 동굴이 베트남에 있는 줄은 몰랐다. 오래전 중국 계림에 있는 은자암이라는 동굴을 가본적이 있다. 규모도 크고 석순도 가지각색으로 멋지다. 석주는 오늘 관람하는 동굴보다도 훨씬 규모가 크다. 굵기도 상당하고 높이도 굉장하다. 그런대 잘못된 것이 조명이다. 총천역색으로 귀신이 나올법한 조명이라 석순이나 석주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큰 흠이다. 중국인구가 많기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포스토니아동굴입장 11:00

주차장에 도착하여 도보로 동굴입구로 간다. 강물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공원옆을 따라 오른후 좌측으로 돌아가면 우측으로 식당 기념품점 호텔들이 있고 가장 안쪽에 동굴입구가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의 가장 끝에 서서 순서를 기다려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간다. 표 검사를 하는 직원이 먼저 들어가려던 신여사를 불러세운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다. 가이드가 금시 가더니 표가 잘못됐다고 부리나케 매표소로 달려간 사이 새치기 하는 현지인들 모두 들어가고 이제 표 검사하는 직원이 다 들어왔다는 신호인지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후 나온 직원과 가이드가 거의 동시에 도착하며 표검사하는 직원이 다시 들어가더니 우리를 부지런히 검표를 하며 들여보낸다. 들어가서 보니 전기열차가 출발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직원은 열차가 출발했는지를 확인하러 간후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무사히 11시에 입장하는 동굴 관광열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이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라고 한다.

 

동굴관람 11:10 ~12:15

포스토이나

종유석 동굴로 유명한 도시, 포스토이나
세계적인 종유석 동굴인 포스토이나 야마(postojna)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남쪽으로 50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다. 고작 1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나, 세계 2번째로 큰 카르스트 동굴을 보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포스토이나 종유동굴
자연의 신비로 이루어진 동굴
신비스런 포스토이나 종유동굴(Postojna Cave)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동굴로, 수백만년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진 석회암의 용식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생겨난 희귀한 모양의 종유석이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20키로미터에 달하는 이곳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전기열차를 타고 대략 3.5km정도를 10분 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다. 걷는 거리는 1.5km로 총 5키로 구간이다. 나올때도 전기열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

전기열차가 출발하여 달리는대 속도감이 대단하다. 머리가 천장에 닿으것도 같고 간을 졸이며 좌,우로 펼쳐지는 멋진 종유석도 구경해야지 사진도 간혹 찍어 두어야지 바쁘다 바뻐~~

열차는 5분여 달린 것 같다. 상당히 빠르게 달려 내려주면 부지런히 종유석 구경하며 걷는다. 석순의 모습이 다양하고 엄청나다. 중국 계림의 은자암종유석도 대단한대 여기는 다채롭기가 더하다. 사진도 찍고 간혹 동영상도 찍고 하느라 마나님도 놓치고 에고 일행들도 안보인다. 어쨌든 가는 방향이야 한곳이니 부지런히 손놀림하여 진행을 한다. 여기는 조명이 은은하게 잘되어 있다. 포인트에서는 조명이 조금 더 밝게 비치고 수많은 종유석에는 은은한 불빛이 관람하기 좋을 정도로 잘되어 있다. 특히 종유석중에서 하늘에 유리보석이 은은하게 매달린 것은 처음보는 형태다. 참 이렇게 멋진 종유석도 있다니 놀랍다. 이탈리아 인들이 스파게티석으로 부른다고 한다. 빗방울이 영롱하게 매달린 형태다. 표현하기 참 힘든 것이다. 한참을 가면 굵직한 석주가 있고 그 옆으로 하얀색 석주가 땅에서 천장으로 자라고 있는데 이종유석의 이름은 브릴리어트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석순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석주는 은자암이 곤명의 동굴처럼 하늘 높이 솟은 대형은 없지만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석순과 석주 커튼형종류석등 종류가 다양하며 대단한 동굴이다.

관람시간은 대략 1시간이며 끝에서 다시 전기열차를 타고 나오면 동굴 관람은 마치게 된다.

 

프레자마성관람 13:54 ~14:26

동굴관람을 마치고 일행이 다 나올때를 기다려 식당으로 향한다. 우리가 예약을 했다는 식당은 하지를 않아 그 아래쪽에 있는 Hotel JAMA로 간다. 이쪽으로 예약을 변경해주었다고 한다. 호텔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식당도 깔끔하다. 우리는 식당에서 야채에 돌돌돌 말은 만두 비슷한 것이 나오고 주메뉴로 닭고기 볶음요리++야채소스가 든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맥주도 한잔씩 기울였다. 뒤이어 들어온 장께 님들은 워낙 부자들이라 차림새는 허름하지만 식사는 대단하다.

식사를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프레자마성으로 향한다. 15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작은 마을위에 있는 프라자마성을 관람한다.

역사는 상당히 깊은 곳이지만 크게 볼 것은 없다.

성안으로 들어가 좌,우로 다니며 방마다 구경을 하고 가장위쪽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

높이가 123m에 이르는암벽동굴로 반쯤 막혀 있는 형태로 세게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며,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크게 볼것이 있는 광광지는 아닌 것 같다.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이제 실제로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로 이동을 한다. 이번여행에는 크로아티아 일정이 많이 들어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지도로 볼 때 T형으로 생긴 국가로 아드리아 연안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아드리아해 반대편으로 이탈리아와 마주하는 국가다. 해안선을 많이 차지 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관광지는 대부분이 해안가를 끼고 있다.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가장 남쪽 두브로브니크까지 다녀서 다시 올라올 것이다. 이 반도의 끝은 그리스로 이어지게 된다. 프레자마성을 출발하여 크로아티아로 달린다. 어디가 어딘지 알수는 없지만 지나는 풍경만큼은 시원하니 보기 좋다. 블레드를 출발하지 1시간 10분후 국경이라고 한다. 국경을 통과하며 보이는 모습은 크게 변한게 없다. 국경을 통과한후 4~5분이 지나 주유소가 나온다. 역시 가이드가 분명 크로아티아에서 기름을 넣을 것이라고 하더니 맞다. 여기서 연료를 잔뜩 채운다. 이사장님 따져보더니 85만원어치라고 하던가 했다. 우쨋든 여기서 기름 넣는사이 댕겨 올곳 댕겨 오고 다시 진행을 하니 이제 모습이 많이 바뀐다. 큰산들이 보이지 않고 나지막한 산들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모습들이다. 소나무가 상당히 많은 것이 특색이다. 집들은 여기도 주홍색일색이다. 목초지가 많고 푸르게 자라고 있는 옥수수밭도 다수 보인다. 간혹 흰색의 바위산도 보이며 양떼가 모여있는 장면도 목격이 된다,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 4/1정도의 면적으로 인구수는 400만명이니 작은 나라다.

이제 버스는 산길을 달리기도 하고 평지 길을 달리기도 하며 달려 1시간 40분후 휴게소에서 두 번째 휴식후 다시 달리면 산골짜기 시골길을 따라 달려 큰산고개를 넘게 된다. 좌측으로 플리치비체가 있는 것 같다. 오면서 시골마을 풍경을 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갔는지 빈집이 허다고 무너져 내린 집이 반은 된다. 목초지도 대부분 자연상태 그대로라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은 것 같다. 고개를 넘어 지그재그로 한동안 내려서면 삼거리에 좌측으로 호텔(Hotel Lyra) 이 나온다. 시골마을에 번듯한 것은 여기 호텔뿐이다.

고개를 넘기 전 좌측으로 가면 플리체비체 였었다.

 

저녁식사 19:15 ~20:00

여기는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할때도 없기 때문에 호텔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뒤로 오토바이 부대도 이곳에 자리를 틀기로 했는지 속속도착한다.

식사는 빵한바구니, 야채 한그릇, 주메뉴 송어튀김+붉은 콩+버섯으로 된 요리다.

반주로 와인 한잔(밑에 깔리는 수준, 이사장님이 낸것임)을 했다.

방은 깨끗한 편이었고 창문을 열면 뒤편으로 침엽수림이 보인다.

여기도 샤워부스는 크지 않았던 것같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까지 왔다.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2023.0828일 월요일~2023.0910일 일요일(1214)

 

8일차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포스토니아 동굴및 프레드야마성,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날

2023.09.04.일 월요일 맑음

 

기상 04:30 아침산책(알파인코스터 상부, Straza hill) 06:10 ~07:00 아침식사 07:00 ~07:30 호텔출발 07:45 블레드섬 들어가는 선착장전 하차 07:40 보도 -선착장도착 07:49 ~07:54 블레드섬 08:00 ~08:30 다시 선착장 08:35 도보 버스승차 후 출발 08:48 포스토니아동굴로 이동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도보 동굴 입장후 동굴열차 출발 11:10 동굴열차 정차 11:15 이후 동굴 도보로 관람 동굴열차 출발 12:10 동굴열차 도착 12:15 동굴 출발 12:25 도보 식당 도착(Hotel JAMA) 12:30 ~13:25 도보 포스토니아 주차장 출발 13:40 프레자마성 주차장 도착 13:54 관람후 주차장 출발 14:26 플리치비체 인근 호텔로 이동(223KM, 3시간 15분 소요) - 크로아티아 국경 통과 15:35 주유소겸 휴게소 15:39 ~15:51 휴게소 17:30 ~17:45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저녁식사 1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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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토이나 동굴[슬로베니아어 :Postojnskajama]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근처에 자리한 긴 카스트로 동굴로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동굴 이며관광 명소임

- 길이는 20,570

-이 동굴은 피브카 강(PivkaRiver)의 유수 작용에 의해 생성됨

- 동굴의 발견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문헌 상으로는 17세기 야네즈 바이카르드 발바소르(JanezVajkardValvasor)가 최초로 이 동굴에 대해 기술

- 1818년에 새로 발견된 부분은주민 루카 체치(LukaČeč)가 오스트리아 최초의 황제인 프란시스 1(Francis)의 방문에 대비하여 기존에알려져 있던 구간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발견

-1819년 이동굴은 대중에게 공개

-1884년에는 전기종이 설치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동굴이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카르니올라주(Carniola)의 수도 류블리아나(Ljubljana)에 전기조명이 설치된 때보다 더 이른 것임

-1872년에는 관광객을 위한 최초듸 동굴열차와 함께 철도가 부설 되었으며,20세기에 들어와서 가스기관차가 도입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전기기관차로 대체되었다

-일반에게 공개된 구간은 전체 동굴 가운데 5.3로 일반인의 관람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 동굴은 또한 세게에서 가장 큰 혈기도룡뇽인 이고장 특유의 올름(동굴 도룡뇽붙이)이 서식한다.

[네이버 지식백과]포스토이나 동굴[Postojna Cave] (두산백과

 

포스토니아 동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 카르스트 동굴인 포스토이나 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다.

이 모든 게 석회암과 물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낸 걸작으로 떨어지는 물에 의해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이 형성된다. 고드름처럼 자라 천장에 매달리는 것이 종유석, 바닥에 떨어져 석회암 덩어리 탑처럼 쌓이는 게 석순, 석순이 자라 종유석과 만나 기둥을 형성하면 석주다.

100년에 1cm가 자란다고 하니 포스토이나 동굴 속의 이 모든 작품들은 수백만년의 세월에 걸쳐 떨어진 물방울들의 기적인 셈이다. 여기에 조금의 상상력을 보태면 그 모양은 산타클로스, 앵무새, 피사의 사탑, 그 밖의 모든 것이 된다. 성분에 따라 흰색, 빨간색, 검은색, 회색 등으로 달라지는 석회암의 색깔은 무한한 상상력에 색채를 더한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어두컴컴하지만 화려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기적은 정말이지 경이롭다

스파게티석이라 불리는 종유석. 비 오는 모양을 닮아 원래는 ‘Rock Rain’ 불렸으나 이후 이탈리아인들이 ‘Rock Spagetti’라 이름 붙였다

 

 

여러모로 사람을 닮은

프로테우스(Proteus)
포스토이나 동굴 안엔 그들만의 생태계가 있다. 끝없는 암흑이라는 조건에 적응한 100종이 넘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 그중 가장 유명한 생물이 프로테우스. 수명이 100년에 이르고 피부색 또한 사람과 비슷해 휴먼피시(Human Fish)라 불린다. 작은 뱀장어처럼 생긴 프로테우스를 옛날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용의 새끼라 믿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까닭에 눈은 퇴화되었고 피부 보호 물질이 없는 투명한 피부를 갖고 있어 매우 민감하다. 프로테우스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는 금물이다.

 

 

 

이름 그대로

브릴리언트(The Brilliant)
포스토이나 동굴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석회암들이 있지만, 이 중 유독 새하얀 빛을 발하는 석순이 있다. 바로 이름부터 찬란한 브릴리언트. 5m 높이에 겹겹이 녹아내리는 듯한 형상을 한 브릴리언트는 포스토이나 동굴의 상징으로, 원래의 순백색 색깔이 조명을 받아 더욱 미세한 빛을 발한다. 아이스크림 모양을 닮았다고 해 아이스크림 석순이라고도 불리는 브릴리언트.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브릴리언트 아이스크림이라 명명하고 싶다.
출처 : 트래비 매거진(https://www.travie.com)

 

 

프레자마성(Predjamski Grad)

슬로베니아 서남부, 동명의 마을 프레자마에 자리잡고 있다. 카르스트 구렁 위 123m 높이의 암벽동굴에 반쯤 박혀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프레자마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세계기록에 등재 되어 있다.

최초의 성은 13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독일어로 루그(Luegg)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델스베르크의 기사로 알려진 루그 귀족 가문이 성을 매입한 뒤 확장하였다. 참고로 아델스베르크는 프레자마의 독일어 명칭이다.

루그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슬로베니아 판 로빈 후드로 알려져 있는 의적기사, 에리스무스이다. 슬로베니아 어로는 에라젬 로에거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15세기 프레자마성의 성주로, 부유한 상인들에게 빼앗은 재화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죽은 친구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합스부르크가 황제 군대의 사령관을 죽인 탓에, 쫒기는 신세가 되어 프레자마 서응로 피신한다. 이후 헝가리의 왕을 도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싸운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에라스무스의 본거지인 프레자마 성을 포위한다. 에라스무스는 성안의 여러비밀 통로를 사용하여, 외부로부터 비밀리에 군수품 및 식자재를 보급 받으며 일년 넘게 항전한다.

난골불락처럼 보이는 프레자마 성에도 외부 공격으로부터 취약한 장소가 한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화장실이 었다. 에라스무스의 부하 중 한 명이 적에게 이러한 기밀 정보를 넘긴다. 이렇게 의적 에라스무스는 부하에게 배신당해, 황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폭탄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이후 성은 파괴되고 폐허만 남았다. 16세기 새로운 성을 건축했으나 이 성 역시 지진으로 파괴되고 현재 우리가 방문할수 있는 르네상스양식의 성은 16세기 중반건설된 것으로 6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38개의 방이 있다. 푸레자마성은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한다.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옮겨온 글

 

크로아티아

면적 약56(한반도의 0.256, 대한민국 10), 인구 약400만명(대한민국 5000만명 세게29)으로 세계 129위다.

크로아티아는지중해(아드리아해)와 접한발칸 반도서북쪽, 동남유럽에 위치한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독립한국가이다. 수도자그레브(Zagreb)이다. 1991년에야 독립을 선언한 신생국으로서, 짧은 역사에도 발칸 국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인종 청소 등 굵직한 사건을 겪었다.

발칸반도 지역에서는가톨릭정교회간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나라이며 서북쪽으로슬로베니아(그리고 약간만 더 건너서이탈리아오스트리아가 있다.), 동북쪽으로헝가리, 동쪽으로세르비아, 동남쪽으로 몬테네그로,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동부 중간에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를 접하고 있고, 이를 건너가면 이탈리아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역사에서 오랫동안 독립국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크로아티아 민족 자체는 남슬라브계에 속하며, 언어도 옆나라인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와 거의 같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세르보크로아트어로 불렸다.

 

본래 크로아티아가 속한 발칸은 오스만,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었지만, 민족 구성은 남슬라브계가 다수였기에 자연히 민족주의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시작된 1차 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한 이후, 러시아의 대슬라브주의의 영향과 세르비아의 주도하에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발칸의 여러 지역과 민족을 포괄하는 유고슬라비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인 민족주의자들은 유고를 거부했고, 2차대전 시기 추축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자, 나치의 괴뢰국 형태로 크로아티아가 독립한다. 그러나 2차대전이 나치의 패배로 끝나며 다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소속국이 되었다. 이후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 끝에 오늘날의 크로아티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군의 피상적인 침공과 약탈을 겪었지만, 크로아티아가 오스만 제국과 본격적으로 엮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전반에 들어서이다. 1526쉴레이만 1는 오스만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 왕국을 침공했고 이에 모하치 전투가 벌어졌다. 헝가리,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3개국의 국왕을 겸하고 있었던 야기에우워 가문러요시 2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헝가리군은 대패하여 사실상 멸망했다. 이때 러요시 1세의 자형이자오스트리아 대공합스부르크 가문페르디난트 1가 러요시 2세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고, 당시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크로아티아 왕국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신속하게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인정했다. 동시에 보헤미아, 서부 헝가리도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에 귀속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이 성립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9181차 세계 대전까지 계속되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방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현지의 문화와 자치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는 관용정책을 펼쳤는데, 이에 크로아티아도 상당 수준의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에 귀속된 이후 크로아티아의 영토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거듭된 공세를 받는 변경 지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해적들이 들끓는 탓에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키는 등 난장판이 되었다.

1797나폴레옹의 원정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캄포포르미오 조약의 결과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 대부분이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 베네치아가 다스리던 달마티아역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이로서 지금의 크로아티아 전체가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랑스에 참패하면서 쇤부른 조약으로 프랑스에 할양되었다가 1815빈 회의의 결과 다시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독일화, 헝가리의 헝가리인들은 헝가리인대로 마자르화를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강요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크로아티아인들은 일리리아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명목상 크로아티아의 종주국으로 크로아티아인들의 권리를 억압하려는 헝가리와는 사이가 최악이었는데1848년 헝가리 혁명당시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크로아티아인들은 합스부르크에 충성을 맹세한 후 헝가리 봉기 진압에 앞장섰다. 덕분에 크로아티아는 제한적으로나마 동등한 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1866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하여 충격과 후유증에 휩싸여 있는 동안, 헝가리 민족 운동이 고조되어 1867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중제국)이 수립되어 헝가리 왕국이 사실상 주권국이 되었다. 이때 크로아티아의 통치권이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넘어갔다. 헝가리는 크로아티아를 완전 편입하고 헝가리 왕국 내 타 소수민족들처럼 마자르화를 하려했으나 크로아티아는 주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였다. 이때프란츠 요제프 1가 나서서 크로아티아를 지지하며 압력을 넣은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주권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양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크로아티아는이스트리아 반도와 함께 제국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교두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의 해군 및 해양 정책에서 크로아티아의 비중은 매우 컸으며, 오스트리아 해군 내에도 실제 인구 비중에 비해 크로아티아계의 수가 더 많았다.

 

1918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크로아티아계는 이미 몰락이 기정사실화된 합스부르크와 결별하고 남슬라브 통일운동에 합류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원래 국명은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원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 위주로 흘러가는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을 보고 남슬라브인 통일운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대세르비아주의였다고 분개한 크로아티아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 내부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분쟁을 일으켰다. 크로아티아 문제는 크로아티아계가 반유고슬라비아 성향 국가인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지원을 얻어 아예 분리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더 심각해졌고 2차 세계 대전이 임박해 정세가 심상치 않은 19398월 크로아티아 농민당과 유고슬라비아의 섭정파블레 왕자의 타협으로 크로아티아계 거주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폭넓은 자치권을 가지는 크로아티아 바노비나(Banovina Hrvatska)로 재편되었으나 이미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결국1941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을 비롯한추축국의 침공 때 병력 소집을 거부하여 유고슬라비아의 파탄에 일조했다. 이후 독일-이탈리아-헝가리의 괴뢰 국가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세워졌고 독일의 후원 하에 반세르비아 조직인 우스타샤가 정권을 잡아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벌였는데, 어찌나 잔혹했는지 천하의 독일 국방군도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 우스타샤에 의해 살해당한 세르비아인의 수는 30만 명에서 70만 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의 학살이 저질러진 보스니아의 2차대전 직후 세르비아인이 100만여 명이었음을 생각하면 거의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인구의 20%에서 40%가 죽은 격이었다. 이 비율이면 유대인학살보다 더하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계의 체트니크라는 민족주의 저항군과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공산주의 게릴라들 모두와 격렬히 충돌하였다. 이 때문인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크로아티아가 인지도를 올렸을 때, 일각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체크무늬 유니폼을 보면 나치가 생각난다면서 항의하는 목소리도 있었을 정도였다.

1945
이후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통합되어 어느 정도 자치권을 누렸으나, 1980티토가 죽은 뒤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대두되자 크로아티아도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1990년 총선에서 유고슬라비아 내 각 공화국의 총선이 민족주의 정파의 승리로 끝났고, 크로아티아도 프라뇨 투지만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이 압승을 거뒀으며 1991 동구권의 붕괴를 계기로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국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연방 붕괴를 거부한 세르비아계 연방군과 무력 충돌,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일어났으나, 국제사회의 중재와 압력으로 연방군이 철군함으로써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을 달성하였다. 다만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지원 아래 세르비아계가 다수이던 크로아티아 동부 크라이나 지방이크라이나-세르비아 공화국설립을 선포하여 1995년 여름까지 전쟁을 지속해야 했다.

독립 이후 세르비아와의 전쟁으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물가상승률이 높아 한 동안 경제가 엉망진창이었으나 화폐개혁을 하는 김에 독일 마르크화에 페그를 거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화시켰고 국제재제로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겼던 세르비아와는 다르게 크로아티아는 그런 면에서 제약이 덜했던지라 1990년대 중반부터 안정세를 되찾았고 1997IMF 외환위기로 다시 휘청이기는 하나, 2000년대에 서방 세계로의 경제 통합을 지향하여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였다.
크로아티아도 2013년부터 EU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이후솅겐조약에도 가입하게 된다.

워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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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04:30

오늘은 조금 일찍일어나 준비를 한다. 날이 밝으면 다시 블레드호수를 아침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혼자서 어제 블레드성에 바로 정면으로 보이던 작은 언덕이 있는 산을 다녀올 예정이다. 6시가 넘어서 날이 밝는다. 나오기로 한 분들이 다 나오길 기다려 마나님한테 어제 간길을 따라 브레드 호수를 돌아보라하고 나는 혼자서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찾는다. 호텔에서 나와서 좌측으로 가면 골목이 몇 개 나온다. 제일 좌측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길이 반대편으로 이어지며 그방향으로는 잘 지은 전원주택들에서 길이 막힌다. 두 번째도 역시 막힌다. 다시 나와 중간쯤에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여기가 맞다. 잠시 들어가니 알파인코스터 매표소앞 주차장에 닿는다. 이른아침이라 통제가 없어서 무사히 통과를 하여 임도를 따라 올라서다가 알파인코스터 파란 잔디밭을 따라 올라간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풀에 이슬이 맺혀 등산화가 젖는다. 중간쯤에서 임도가 지나고 다시 알파인코스 잔디밭을 따라 오르니 상부에 닿는다. 이곳이 Straza hill이라고 하는 곳이다. 정상부에는 각종시설들이 되어 있다. 나무에 줄을 매어 건너는 코스도 보이고 이나무 저나무로 연결이 된 많은 시설이 되어 있다. 시간이 그리 많치 않기 때문에 간단히 위쪽으로 더 높다란 곳으로 올라서 좌측으로 돌아가는 길이 잘되어 있다.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블레드호수가 내려다 보이고 블레드섬이 바로 아래로 놓여있다. 멀리 설산도 보인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트리글라브국립공원이라 되어 있는 곳이다. 그아래로 모스토니아 협곡도 있다.

 

트리블라브 국립공원

슬로베니아의 상징과도 같은 곳
트리글라브 국립공원(Triglav National Park)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2864m 높이에 넓이도 83,807 헥타아르로 블레드, 보히니, 카란스카야 고라 등의 슬로베니아 도시를 끼고 있으며, 국립공원은 오스트리아, 이태리, 슬로베니아의 국경과 접하고 있습니다. 트리글라브 산은 슬로베니아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슬로베니아 국기에 이 산 모양이 들어있습니다.
높은 계곡과 산등성이, 특색있는 자연 환경은 이곳의 자랑거리이며 이 국립공원은 보니히 호수와 폭포, 협곡, 카르스트 지형 등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추운 북부 고산지대와 온화한 서부 지중해성 기후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동특한 동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저기저 설산이 이렇게 유명한 곳인지 몰랐지요!!

멋진모습을 눈에 가득담고 이제 내려간다. 역시 알파인 코스터 코스터 잔디밭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임도에서 좌측으로 따라내려가니 편하긴 한데 조금더 멀다. 이렇게 내려서 호숫가에 도착하니 박선생내외가 아침산책을 나왔다가 만난다. 난 호숫가를 조금 더 따라 가다가 호텔로 들어가니 모두가 나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렇게 하여 아침산책길 3.8KM 55분동안 걸었다.

 

블레드섬 08:00 ~08:30

호텔에서 식사는 역시 뷔페식으로 간단하게 한다. 주로 햄종류 치즈종류 모처럼 빵한조각 가져다가 햄넣고 먹어도 봤다. 식사는 여기도 좋지를 않다. 과일 썰어서 맛나게 한 멋이여 국물도 있고 한 것 요것은 맛있다. 간단히 식사 끝내고 짐챙겨서 이제 어제 일정중 오늘로 미뤄진 블레드섬으로 향한다. 버스로 잠시 간후 도로변에 내려서 노젖는 배가 여러대 서 있는 선착장에 도착을 해서 잠시 기다리니 멋지고 젊은 뱃사공이 나온다. 배는 노젖는 배로 환경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힘차게 노를 저어 5분여 들어가니 블레드 섬에 닿는다.

 

블레드 호수
호수 중앙에 작은 섬이 있는 거대한 호수
블레드 레이크는 Bohinj 빙하의 후퇴이후 형성된 호수로 긴쪽 지름은 2120 m 이며, 짧은쪽은 1380 m로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깊이는 최고 깊이가 30.6 m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빙하기 이후, Bohinj 빙하로 인해 해수면은 더욱 상승되었고 호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몇몇개의 작은 샘이 있으며, 호수의 북동쪽에 있는 온천샘은 주변 호텔(Grand Hotel Toplice, Hotel Park, Hotel Golf) 의 온천풀로 쓰이고 있습니다. 호수의 중앙에 있는 매우 작은 섬은 블레드 섬이라고 불리우며 이곳에는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매일 수시로 있으면 약 10분 걸립니다. 호수 주변은 하이킹 코스로 매우 좋으며 주변의 여행사에서 래프팅등의 스포츠도 참가 할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블레드섬을 한바퀴 일주하는대는 6KM라고 한다. 대략 1시간10~20분이면 되겠다. 시간이 있으면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 블레드섬에는 성모승천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교회안을 들어가지 않는 일정이라 외관만 구경을 한다. 올라가는 계단이 99개라고 하는대 하나둘 세면서 올라가다보면 98에서 끝이 난다고 한다. 하나는 물속에 있다고 한다. 이곳은 결혼식 성지로 신랑이 신부를 앉고 99계단을 올라가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한다. 신부는 절대로 숨을 쉬지 않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성모승천교회에는 전설이 있는대 소원의 종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인이 남편을 사별하고는 그 슬픔을 달래고 신에게 감사하려고 블레드섬의 예배당에 종을 설치하려고 했는대, 종을 제작해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 그만 종이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서럽게 슬퍼하는 여인의 사연을 들은 교황이 성모승천 교회에 종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블레드섬의 계단과 종에 사랑과 소원의 염원이 담긴 것은 이러한 전설에서 연유했 것이다.

교회 외부를 불러보고 뒤편으로 내려가니 조망이 매우 좋다. 건너편의 호텔지역과 우측으로 블레드성이 보인다. 섬주변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 블레드성 방향쪽으로 걸어나가 예쁜꽃이 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 가꾸는 꽃인대 시클라멘이라고 하는 꽃이 여기는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이후 선착장으로 돌아와 잠시 기다려 사진촬영마저 하고 능숙한 뱃사공의 노젖는 모습을 보며 5분여 나오면 블레드의 일정도 끝이다. 이렇게 하여 블레드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동굴 구경을 하러 간다.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블레드 지역의 관광을 모두 마치고 이제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동굴인 포스토니아 동굴로 향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나고 하며 관람거리는 세계최대라고 하는 동굴이다.

가는 길은 역시 목초지가 대부분인 길을 따라 진행한다. 동구권 국가들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환경이 좋다. 가는 거리가 100km가 조금 넘기 때문에 대략 1시간 반정도가 걸린다. 가는 길은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뉴블라냐를 옆으로 지나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어느덧 버스는 포스토니아 동굴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이정도면 이동시간이 적당하다. 중국등 큰 국가에서는 이정도면 옆동네 마실가는 거리다. 포스토니아 동굴입구 쪽으로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역시 유명한 곳인 것 같다.

 

세계최대 동굴

선도웅 동굴(산둥동굴, 선동동굴 이름이 가지각색이다)

선도옹 동굴(베트남어:Hang Sơn Đoòng/山洞)베트남 꽝빈성 보짝현에 위치해 있다. 세계 최대의 천연 동굴로 길이는 9km, 높이는 200m , 넓이는 150m이다. 이곳은 퐁냐께방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굴이다.

(Hang베트남어동굴이라는 의미)

라오스-베트남 국경 근처에 위치한 선도옹 동굴은 내부로 빠르게 흐르는 지하강과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의 단면을 가지고 있는데, 2009년 기준으로, 두번째로 가장 넓은 통로를 가진 동굴의 두 배라고 여겨진다. 부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통로다. 용해성 동굴로서 용해성 석회암으로 형성되었으며, 200~500만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티엔드엉 동굴

티엔드엉 동굴(베트남어:Thiên Đường/天堂洞)은 베트남 보짝현 선짝사에 위치한 자연 동굴이다. 해발 200m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이 동굴의 길이는 31km, 높이는 100m , 넓이는 150m이다.

퐁냐께방 국립공원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베트남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동굴로 알려져 있다.[3]

이 동굴은 2005년 한 현지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 동굴의 첫 5km2005년 영국 동굴 연구 협회의 탐험가들에 의해 31km 전체가 영국 동굴 탐험가들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동굴은 길이가 31km로 이 국립공원에서 가장 긴 동굴로 여겨졌던 퐁냐 동굴보다 길다. 높이는 72m, 폭은 150m에 이른다. 석회암 형성도 퐁냐 동굴보다 화려하다

영국의 동굴 탐험가들은 이 동굴 안에 있는 아름답고 장관인 종유석석순에 감명을 받았고 그들은 그것을 티엔드엉 동굴(천당 동굴)이라고 이름지었다. 2012년 이 곳에서 새로운 종인 진동굴성 생물 전갈의 종인 비엣보캅 전갈(Vietbocap thienduongensis)이 발견되었다.

 

세계최대 동굴이 베트남에 있는 줄은 몰랐다. 오래전 중국 계림에 있는 은자암이라는 동굴을 가본적이 있다. 규모도 크고 석순도 가지각색으로 멋지다. 석주는 오늘 관람하는 동굴보다도 훨씬 규모가 크다. 굵기도 상당하고 높이도 굉장하다. 그런대 잘못된 것이 조명이다. 총천역색으로 귀신이 나올법한 조명이라 석순이나 석주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큰 흠이다. 중국인구가 많기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포스토니아동굴입장 11:00

주차장에 도착하여 도보로 동굴입구로 간다. 강물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공원옆을 따라 오른후 좌측으로 돌아가면 우측으로 식당 기념품점 호텔들이 있고 가장 안쪽에 동굴입구가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의 가장 끝에 서서 순서를 기다려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간다. 표 검사를 하는 직원이 먼저 들어가려던 신여사를 불러세운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다. 가이드가 금시 가더니 표가 잘못됐다고 부리나케 매표소로 달려간 사이 새치기 하는 현지인들 모두 들어가고 이제 표 검사하는 직원이 다 들어왔다는 신호인지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후 나온 직원과 가이드가 거의 동시에 도착하며 표검사하는 직원이 다시 들어가더니 우리를 부지런히 검표를 하며 들여보낸다. 들어가서 보니 전기열차가 출발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직원은 열차가 출발했는지를 확인하러 간후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무사히 11시에 입장하는 동굴 관광열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이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라고 한다.

 

동굴관람 11:10 ~12:15

포스토이나

종유석 동굴로 유명한 도시, 포스토이나
세계적인 종유석 동굴인 포스토이나 야마(postojna)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남쪽으로 50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다. 고작 1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나, 세계 2번째로 큰 카르스트 동굴을 보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포스토이나 종유동굴
자연의 신비로 이루어진 동굴
신비스런 포스토이나 종유동굴(Postojna Cave)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동굴로, 수백만년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진 석회암의 용식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생겨난 희귀한 모양의 종유석이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20키로미터에 달하는 이곳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전기열차를 타고 대략 3.5km정도를 10분 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다. 걷는 거리는 1.5km로 총 5키로 구간이다. 나올때도 전기열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

전기열차가 출발하여 달리는대 속도감이 대단하다. 머리가 천장에 닿으것도 같고 간을 졸이며 좌,우로 펼쳐지는 멋진 종유석도 구경해야지 사진도 간혹 찍어 두어야지 바쁘다 바뻐~~

열차는 5분여 달린 것 같다. 상당히 빠르게 달려 내려주면 부지런히 종유석 구경하며 걷는다. 석순의 모습이 다양하고 엄청나다. 중국 계림의 은자암종유석도 대단한대 여기는 다채롭기가 더하다. 사진도 찍고 간혹 동영상도 찍고 하느라 마나님도 놓치고 에고 일행들도 안보인다. 어쨌든 가는 방향이야 한곳이니 부지런히 손놀림하여 진행을 한다. 여기는 조명이 은은하게 잘되어 있다. 포인트에서는 조명이 조금 더 밝게 비치고 수많은 종유석에는 은은한 불빛이 관람하기 좋을 정도로 잘되어 있다. 특히 종유석중에서 하늘에 유리보석이 은은하게 매달린 것은 처음보는 형태다. 참 이렇게 멋진 종유석도 있다니 놀랍다. 이탈리아 인들이 스파게티석으로 부른다고 한다. 빗방울이 영롱하게 매달린 형태다. 표현하기 참 힘든 것이다. 한참을 가면 굵직한 석주가 있고 그 옆으로 하얀색 석주가 땅에서 천장으로 자라고 있는데 이종유석의 이름은 브릴리어트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석순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석주는 은자암이 곤명의 동굴처럼 하늘 높이 솟은 대형은 없지만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석순과 석주 커튼형종류석등 종류가 다양하며 대단한 동굴이다.

관람시간은 대략 1시간이며 끝에서 다시 전기열차를 타고 나오면 동굴 관람은 마치게 된다.

 

프레자마성관람 13:54 ~14:26

동굴관람을 마치고 일행이 다 나올때를 기다려 식당으로 향한다. 우리가 예약을 했다는 식당은 하지를 않아 그 아래쪽에 있는 Hotel JAMA로 간다. 이쪽으로 예약을 변경해주었다고 한다. 호텔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식당도 깔끔하다. 우리는 식당에서 야채에 돌돌돌 말은 만두 비슷한 것이 나오고 주메뉴로 닭고기 볶음요리++야채소스가 든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맥주도 한잔씩 기울였다. 뒤이어 들어온 장께 님들은 워낙 부자들이라 차림새는 허름하지만 식사는 대단하다.

식사를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프레자마성으로 향한다. 15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작은 마을위에 있는 프라자마성을 관람한다.

역사는 상당히 깊은 곳이지만 크게 볼 것은 없다.

성안으로 들어가 좌,우로 다니며 방마다 구경을 하고 가장위쪽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

높이가 123m에 이르는암벽동굴로 반쯤 막혀 있는 형태로 세게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며,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크게 볼것이 있는 광광지는 아닌 것 같다.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이제 실제로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로 이동을 한다. 이번여행에는 크로아티아 일정이 많이 들어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지도로 볼 때 T형으로 생긴 국가로 아드리아 연안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아드리아해 반대편으로 이탈리아와 마주하는 국가다. 해안선을 많이 차지 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관광지는 대부분이 해안가를 끼고 있다.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가장 남쪽 두브로브니크까지 다녀서 다시 올라올 것이다. 이 반도의 끝은 그리스로 이어지게 된다. 프레자마성을 출발하여 크로아티아로 달린다. 어디가 어딘지 알수는 없지만 지나는 풍경만큼은 시원하니 보기 좋다. 블레드를 출발하지 1시간 10분후 국경이라고 한다. 국경을 통과하며 보이는 모습은 크게 변한게 없다. 국경을 통과한후 4~5분이 지나 주유소가 나온다. 역시 가이드가 분명 크로아티아에서 기름을 넣을 것이라고 하더니 맞다. 여기서 연료를 잔뜩 채운다. 이사장님 따져보더니 85만원어치라고 하던가 했다. 우쨋든 여기서 기름 넣는사이 댕겨 올곳 댕겨 오고 다시 진행을 하니 이제 모습이 많이 바뀐다. 큰산들이 보이지 않고 나지막한 산들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모습들이다. 소나무가 상당히 많은 것이 특색이다. 집들은 여기도 주홍색일색이다. 목초지가 많고 푸르게 자라고 있는 옥수수밭도 다수 보인다. 간혹 흰색의 바위산도 보이며 양떼가 모여있는 장면도 목격이 된다,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 4/1정도의 면적으로 인구수는 400만명이니 작은 나라다.

이제 버스는 산길을 달리기도 하고 평지 길을 달리기도 하며 달려 1시간 40분후 휴게소에서 두 번째 휴식후 다시 달리면 산골짜기 시골길을 따라 달려 큰산고개를 넘게 된다. 좌측으로 플리치비체가 있는 것 같다. 오면서 시골마을 풍경을 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갔는지 빈집이 허다고 무너져 내린 집이 반은 된다. 목초지도 대부분 자연상태 그대로라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은 것 같다. 고개를 넘어 지그재그로 한동안 내려서면 삼거리에 좌측으로 호텔(Hotel Lyra) 이 나온다. 시골마을에 번듯한 것은 여기 호텔뿐이다.

고개를 넘기 전 좌측으로 가면 플리체비체 였었다.

 

저녁식사 19:15 ~20:00

여기는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할때도 없기 때문에 호텔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뒤로 오토바이 부대도 이곳에 자리를 틀기로 했는지 속속도착한다.

식사는 빵한바구니, 야채 한그릇, 주메뉴 송어튀김+붉은 콩+버섯으로 된 요리다.

반주로 와인 한잔(밑에 깔리는 수준, 이사장님이 낸것임)을 했다.

방은 깨끗한 편이었고 창문을 열면 뒤편으로 침엽수림이 보인다.

여기도 샤워부스는 크지 않았던 것같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까지 왔다.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2023.0828일 월요일~2023.0910일 일요일(1214)

 

8일차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포스토니아 동굴및 프레드야마성,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날

2023.09.04.일 월요일 맑음

 

기상 04:30 아침산책(알파인코스터 상부, Straza hill) 06:10 ~07:00 아침식사 07:00 ~07:30 호텔출발 07:45 블레드섬 들어가는 선착장전 하차 07:40 보도 -선착장도착 07:49 ~07:54 블레드섬 08:00 ~08:30 다시 선착장 08:35 도보 버스승차 후 출발 08:48 포스토니아동굴로 이동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도보 동굴 입장후 동굴열차 출발 11:10 동굴열차 정차 11:15 이후 동굴 도보로 관람 동굴열차 출발 12:10 동굴열차 도착 12:15 동굴 출발 12:25 도보 식당 도착(Hotel JAMA) 12:30 ~13:25 도보 포스토니아 주차장 출발 13:40 프레자마성 주차장 도착 13:54 관람후 주차장 출발 14:26 플리치비체 인근 호텔로 이동(223KM, 3시간 15분 소요) - 크로아티아 국경 통과 15:35 주유소겸 휴게소 15:39 ~15:51 휴게소 17:30 ~17:45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저녁식사 1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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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토이나 동굴[슬로베니아어 :Postojnskajama]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근처에 자리한 긴 카스트로 동굴로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동굴 이며관광 명소임

- 길이는 20,570

-이 동굴은 피브카 강(PivkaRiver)의 유수 작용에 의해 생성됨

- 동굴의 발견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문헌 상으로는 17세기 야네즈 바이카르드 발바소르(JanezVajkardValvasor)가 최초로 이 동굴에 대해 기술

- 1818년에 새로 발견된 부분은주민 루카 체치(LukaČeč)가 오스트리아 최초의 황제인 프란시스 1(Francis)의 방문에 대비하여 기존에알려져 있던 구간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발견

-1819년 이동굴은 대중에게 공개

-1884년에는 전기종이 설치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동굴이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카르니올라주(Carniola)의 수도 류블리아나(Ljubljana)에 전기조명이 설치된 때보다 더 이른 것임

-1872년에는 관광객을 위한 최초듸 동굴열차와 함께 철도가 부설 되었으며,20세기에 들어와서 가스기관차가 도입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전기기관차로 대체되었다

-일반에게 공개된 구간은 전체 동굴 가운데 5.3로 일반인의 관람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 동굴은 또한 세게에서 가장 큰 혈기도룡뇽인 이고장 특유의 올름(동굴 도룡뇽붙이)이 서식한다.

[네이버 지식백과]포스토이나 동굴[Postojna Cave] (두산백과

 

포스토니아 동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 카르스트 동굴인 포스토이나 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다.

이 모든 게 석회암과 물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낸 걸작으로 떨어지는 물에 의해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이 형성된다. 고드름처럼 자라 천장에 매달리는 것이 종유석, 바닥에 떨어져 석회암 덩어리 탑처럼 쌓이는 게 석순, 석순이 자라 종유석과 만나 기둥을 형성하면 석주다.

100년에 1cm가 자란다고 하니 포스토이나 동굴 속의 이 모든 작품들은 수백만년의 세월에 걸쳐 떨어진 물방울들의 기적인 셈이다. 여기에 조금의 상상력을 보태면 그 모양은 산타클로스, 앵무새, 피사의 사탑, 그 밖의 모든 것이 된다. 성분에 따라 흰색, 빨간색, 검은색, 회색 등으로 달라지는 석회암의 색깔은 무한한 상상력에 색채를 더한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어두컴컴하지만 화려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기적은 정말이지 경이롭다

스파게티석이라 불리는 종유석. 비 오는 모양을 닮아 원래는 ‘Rock Rain’ 불렸으나 이후 이탈리아인들이 ‘Rock Spagetti’라 이름 붙였다

 

 

여러모로 사람을 닮은

프로테우스(Proteus)
포스토이나 동굴 안엔 그들만의 생태계가 있다. 끝없는 암흑이라는 조건에 적응한 100종이 넘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 그중 가장 유명한 생물이 프로테우스. 수명이 100년에 이르고 피부색 또한 사람과 비슷해 휴먼피시(Human Fish)라 불린다. 작은 뱀장어처럼 생긴 프로테우스를 옛날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용의 새끼라 믿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까닭에 눈은 퇴화되었고 피부 보호 물질이 없는 투명한 피부를 갖고 있어 매우 민감하다. 프로테우스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는 금물이다.

 

 

 

이름 그대로

브릴리언트(The Brilliant)
포스토이나 동굴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석회암들이 있지만, 이 중 유독 새하얀 빛을 발하는 석순이 있다. 바로 이름부터 찬란한 브릴리언트. 5m 높이에 겹겹이 녹아내리는 듯한 형상을 한 브릴리언트는 포스토이나 동굴의 상징으로, 원래의 순백색 색깔이 조명을 받아 더욱 미세한 빛을 발한다. 아이스크림 모양을 닮았다고 해 아이스크림 석순이라고도 불리는 브릴리언트.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브릴리언트 아이스크림이라 명명하고 싶다.
출처 : 트래비 매거진(https://www.travie.com)

 

 

프레자마성(Predjamski Grad)

슬로베니아 서남부, 동명의 마을 프레자마에 자리잡고 있다. 카르스트 구렁 위 123m 높이의 암벽동굴에 반쯤 박혀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프레자마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세계기록에 등재 되어 있다.

최초의 성은 13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독일어로 루그(Luegg)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델스베르크의 기사로 알려진 루그 귀족 가문이 성을 매입한 뒤 확장하였다. 참고로 아델스베르크는 프레자마의 독일어 명칭이다.

루그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슬로베니아 판 로빈 후드로 알려져 있는 의적기사, 에리스무스이다. 슬로베니아 어로는 에라젬 로에거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15세기 프레자마성의 성주로, 부유한 상인들에게 빼앗은 재화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죽은 친구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합스부르크가 황제 군대의 사령관을 죽인 탓에, 쫒기는 신세가 되어 프레자마 서응로 피신한다. 이후 헝가리의 왕을 도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싸운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에라스무스의 본거지인 프레자마 성을 포위한다. 에라스무스는 성안의 여러비밀 통로를 사용하여, 외부로부터 비밀리에 군수품 및 식자재를 보급 받으며 일년 넘게 항전한다.

난골불락처럼 보이는 프레자마 성에도 외부 공격으로부터 취약한 장소가 한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화장실이 었다. 에라스무스의 부하 중 한 명이 적에게 이러한 기밀 정보를 넘긴다. 이렇게 의적 에라스무스는 부하에게 배신당해, 황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폭탄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이후 성은 파괴되고 폐허만 남았다. 16세기 새로운 성을 건축했으나 이 성 역시 지진으로 파괴되고 현재 우리가 방문할수 있는 르네상스양식의 성은 16세기 중반건설된 것으로 6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38개의 방이 있다. 푸레자마성은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한다.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옮겨온 글

 

크로아티아

면적 약56(한반도의 0.256, 대한민국 10), 인구 약400만명(대한민국 5000만명 세게29)으로 세계 129위다.

크로아티아는지중해(아드리아해)와 접한발칸 반도서북쪽, 동남유럽에 위치한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독립한국가이다. 수도자그레브(Zagreb)이다. 1991년에야 독립을 선언한 신생국으로서, 짧은 역사에도 발칸 국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인종 청소 등 굵직한 사건을 겪었다.

발칸반도 지역에서는가톨릭정교회간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나라이며 서북쪽으로슬로베니아(그리고 약간만 더 건너서이탈리아오스트리아가 있다.), 동북쪽으로헝가리, 동쪽으로세르비아, 동남쪽으로 몬테네그로,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동부 중간에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를 접하고 있고, 이를 건너가면 이탈리아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역사에서 오랫동안 독립국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크로아티아 민족 자체는 남슬라브계에 속하며, 언어도 옆나라인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와 거의 같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세르보크로아트어로 불렸다.

 

본래 크로아티아가 속한 발칸은 오스만,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었지만, 민족 구성은 남슬라브계가 다수였기에 자연히 민족주의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시작된 1차 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한 이후, 러시아의 대슬라브주의의 영향과 세르비아의 주도하에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발칸의 여러 지역과 민족을 포괄하는 유고슬라비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인 민족주의자들은 유고를 거부했고, 2차대전 시기 추축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자, 나치의 괴뢰국 형태로 크로아티아가 독립한다. 그러나 2차대전이 나치의 패배로 끝나며 다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소속국이 되었다. 이후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 끝에 오늘날의 크로아티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군의 피상적인 침공과 약탈을 겪었지만, 크로아티아가 오스만 제국과 본격적으로 엮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전반에 들어서이다. 1526쉴레이만 1는 오스만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 왕국을 침공했고 이에 모하치 전투가 벌어졌다. 헝가리,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3개국의 국왕을 겸하고 있었던 야기에우워 가문러요시 2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헝가리군은 대패하여 사실상 멸망했다. 이때 러요시 1세의 자형이자오스트리아 대공합스부르크 가문페르디난트 1가 러요시 2세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고, 당시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크로아티아 왕국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신속하게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인정했다. 동시에 보헤미아, 서부 헝가리도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에 귀속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이 성립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9181차 세계 대전까지 계속되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방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현지의 문화와 자치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는 관용정책을 펼쳤는데, 이에 크로아티아도 상당 수준의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에 귀속된 이후 크로아티아의 영토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거듭된 공세를 받는 변경 지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해적들이 들끓는 탓에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키는 등 난장판이 되었다.

1797나폴레옹의 원정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캄포포르미오 조약의 결과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 대부분이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 베네치아가 다스리던 달마티아역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이로서 지금의 크로아티아 전체가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랑스에 참패하면서 쇤부른 조약으로 프랑스에 할양되었다가 1815빈 회의의 결과 다시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독일화, 헝가리의 헝가리인들은 헝가리인대로 마자르화를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강요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크로아티아인들은 일리리아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명목상 크로아티아의 종주국으로 크로아티아인들의 권리를 억압하려는 헝가리와는 사이가 최악이었는데1848년 헝가리 혁명당시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크로아티아인들은 합스부르크에 충성을 맹세한 후 헝가리 봉기 진압에 앞장섰다. 덕분에 크로아티아는 제한적으로나마 동등한 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1866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하여 충격과 후유증에 휩싸여 있는 동안, 헝가리 민족 운동이 고조되어 1867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중제국)이 수립되어 헝가리 왕국이 사실상 주권국이 되었다. 이때 크로아티아의 통치권이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넘어갔다. 헝가리는 크로아티아를 완전 편입하고 헝가리 왕국 내 타 소수민족들처럼 마자르화를 하려했으나 크로아티아는 주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였다. 이때프란츠 요제프 1가 나서서 크로아티아를 지지하며 압력을 넣은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주권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양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크로아티아는이스트리아 반도와 함께 제국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교두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의 해군 및 해양 정책에서 크로아티아의 비중은 매우 컸으며, 오스트리아 해군 내에도 실제 인구 비중에 비해 크로아티아계의 수가 더 많았다.

 

1918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크로아티아계는 이미 몰락이 기정사실화된 합스부르크와 결별하고 남슬라브 통일운동에 합류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원래 국명은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원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 위주로 흘러가는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을 보고 남슬라브인 통일운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대세르비아주의였다고 분개한 크로아티아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 내부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분쟁을 일으켰다. 크로아티아 문제는 크로아티아계가 반유고슬라비아 성향 국가인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지원을 얻어 아예 분리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더 심각해졌고 2차 세계 대전이 임박해 정세가 심상치 않은 19398월 크로아티아 농민당과 유고슬라비아의 섭정파블레 왕자의 타협으로 크로아티아계 거주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폭넓은 자치권을 가지는 크로아티아 바노비나(Banovina Hrvatska)로 재편되었으나 이미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결국1941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을 비롯한추축국의 침공 때 병력 소집을 거부하여 유고슬라비아의 파탄에 일조했다. 이후 독일-이탈리아-헝가리의 괴뢰 국가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세워졌고 독일의 후원 하에 반세르비아 조직인 우스타샤가 정권을 잡아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벌였는데, 어찌나 잔혹했는지 천하의 독일 국방군도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 우스타샤에 의해 살해당한 세르비아인의 수는 30만 명에서 70만 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의 학살이 저질러진 보스니아의 2차대전 직후 세르비아인이 100만여 명이었음을 생각하면 거의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인구의 20%에서 40%가 죽은 격이었다. 이 비율이면 유대인학살보다 더하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계의 체트니크라는 민족주의 저항군과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공산주의 게릴라들 모두와 격렬히 충돌하였다. 이 때문인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크로아티아가 인지도를 올렸을 때, 일각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체크무늬 유니폼을 보면 나치가 생각난다면서 항의하는 목소리도 있었을 정도였다.

1945
이후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통합되어 어느 정도 자치권을 누렸으나, 1980티토가 죽은 뒤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대두되자 크로아티아도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1990년 총선에서 유고슬라비아 내 각 공화국의 총선이 민족주의 정파의 승리로 끝났고, 크로아티아도 프라뇨 투지만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이 압승을 거뒀으며 1991 동구권의 붕괴를 계기로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국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연방 붕괴를 거부한 세르비아계 연방군과 무력 충돌,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일어났으나, 국제사회의 중재와 압력으로 연방군이 철군함으로써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을 달성하였다. 다만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지원 아래 세르비아계가 다수이던 크로아티아 동부 크라이나 지방이크라이나-세르비아 공화국설립을 선포하여 1995년 여름까지 전쟁을 지속해야 했다.

독립 이후 세르비아와의 전쟁으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물가상승률이 높아 한 동안 경제가 엉망진창이었으나 화폐개혁을 하는 김에 독일 마르크화에 페그를 거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화시켰고 국제재제로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겼던 세르비아와는 다르게 크로아티아는 그런 면에서 제약이 덜했던지라 1990년대 중반부터 안정세를 되찾았고 1997IMF 외환위기로 다시 휘청이기는 하나, 2000년대에 서방 세계로의 경제 통합을 지향하여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였다.
크로아티아도 2013년부터 EU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이후솅겐조약에도 가입하게 된다.

워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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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04:30

오늘은 조금 일찍일어나 준비를 한다. 날이 밝으면 다시 블레드호수를 아침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혼자서 어제 블레드성에 바로 정면으로 보이던 작은 언덕이 있는 산을 다녀올 예정이다. 6시가 넘어서 날이 밝는다. 나오기로 한 분들이 다 나오길 기다려 마나님한테 어제 간길을 따라 브레드 호수를 돌아보라하고 나는 혼자서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찾는다. 호텔에서 나와서 좌측으로 가면 골목이 몇 개 나온다. 제일 좌측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길이 반대편으로 이어지며 그방향으로는 잘 지은 전원주택들에서 길이 막힌다. 두 번째도 역시 막힌다. 다시 나와 중간쯤에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여기가 맞다. 잠시 들어가니 알파인코스터 매표소앞 주차장에 닿는다. 이른아침이라 통제가 없어서 무사히 통과를 하여 임도를 따라 올라서다가 알파인코스터 파란 잔디밭을 따라 올라간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풀에 이슬이 맺혀 등산화가 젖는다. 중간쯤에서 임도가 지나고 다시 알파인코스 잔디밭을 따라 오르니 상부에 닿는다. 이곳이 Straza hill이라고 하는 곳이다. 정상부에는 각종시설들이 되어 있다. 나무에 줄을 매어 건너는 코스도 보이고 이나무 저나무로 연결이 된 많은 시설이 되어 있다. 시간이 그리 많치 않기 때문에 간단히 위쪽으로 더 높다란 곳으로 올라서 좌측으로 돌아가는 길이 잘되어 있다.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블레드호수가 내려다 보이고 블레드섬이 바로 아래로 놓여있다. 멀리 설산도 보인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트리글라브국립공원이라 되어 있는 곳이다. 그아래로 모스토니아 협곡도 있다.

 

트리블라브 국립공원

슬로베니아의 상징과도 같은 곳
트리글라브 국립공원(Triglav National Park)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2864m 높이에 넓이도 83,807 헥타아르로 블레드, 보히니, 카란스카야 고라 등의 슬로베니아 도시를 끼고 있으며, 국립공원은 오스트리아, 이태리, 슬로베니아의 국경과 접하고 있습니다. 트리글라브 산은 슬로베니아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슬로베니아 국기에 이 산 모양이 들어있습니다.
높은 계곡과 산등성이, 특색있는 자연 환경은 이곳의 자랑거리이며 이 국립공원은 보니히 호수와 폭포, 협곡, 카르스트 지형 등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추운 북부 고산지대와 온화한 서부 지중해성 기후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동특한 동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저기저 설산이 이렇게 유명한 곳인지 몰랐지요!!

멋진모습을 눈에 가득담고 이제 내려간다. 역시 알파인 코스터 코스터 잔디밭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임도에서 좌측으로 따라내려가니 편하긴 한데 조금더 멀다. 이렇게 내려서 호숫가에 도착하니 박선생내외가 아침산책을 나왔다가 만난다. 난 호숫가를 조금 더 따라 가다가 호텔로 들어가니 모두가 나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렇게 하여 아침산책길 3.8KM 55분동안 걸었다.

 

블레드섬 08:00 ~08:30

호텔에서 식사는 역시 뷔페식으로 간단하게 한다. 주로 햄종류 치즈종류 모처럼 빵한조각 가져다가 햄넣고 먹어도 봤다. 식사는 여기도 좋지를 않다. 과일 썰어서 맛나게 한 멋이여 국물도 있고 한 것 요것은 맛있다. 간단히 식사 끝내고 짐챙겨서 이제 어제 일정중 오늘로 미뤄진 블레드섬으로 향한다. 버스로 잠시 간후 도로변에 내려서 노젖는 배가 여러대 서 있는 선착장에 도착을 해서 잠시 기다리니 멋지고 젊은 뱃사공이 나온다. 배는 노젖는 배로 환경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힘차게 노를 저어 5분여 들어가니 블레드 섬에 닿는다.

 

블레드 호수
호수 중앙에 작은 섬이 있는 거대한 호수
블레드 레이크는 Bohinj 빙하의 후퇴이후 형성된 호수로 긴쪽 지름은 2120 m 이며, 짧은쪽은 1380 m로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깊이는 최고 깊이가 30.6 m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빙하기 이후, Bohinj 빙하로 인해 해수면은 더욱 상승되었고 호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몇몇개의 작은 샘이 있으며, 호수의 북동쪽에 있는 온천샘은 주변 호텔(Grand Hotel Toplice, Hotel Park, Hotel Golf) 의 온천풀로 쓰이고 있습니다. 호수의 중앙에 있는 매우 작은 섬은 블레드 섬이라고 불리우며 이곳에는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매일 수시로 있으면 약 10분 걸립니다. 호수 주변은 하이킹 코스로 매우 좋으며 주변의 여행사에서 래프팅등의 스포츠도 참가 할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블레드섬을 한바퀴 일주하는대는 6KM라고 한다. 대략 1시간10~20분이면 되겠다. 시간이 있으면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 블레드섬에는 성모승천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교회안을 들어가지 않는 일정이라 외관만 구경을 한다. 올라가는 계단이 99개라고 하는대 하나둘 세면서 올라가다보면 98에서 끝이 난다고 한다. 하나는 물속에 있다고 한다. 이곳은 결혼식 성지로 신랑이 신부를 앉고 99계단을 올라가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한다. 신부는 절대로 숨을 쉬지 않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성모승천교회에는 전설이 있는대 소원의 종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인이 남편을 사별하고는 그 슬픔을 달래고 신에게 감사하려고 블레드섬의 예배당에 종을 설치하려고 했는대, 종을 제작해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 그만 종이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서럽게 슬퍼하는 여인의 사연을 들은 교황이 성모승천 교회에 종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블레드섬의 계단과 종에 사랑과 소원의 염원이 담긴 것은 이러한 전설에서 연유했 것이다.

교회 외부를 불러보고 뒤편으로 내려가니 조망이 매우 좋다. 건너편의 호텔지역과 우측으로 블레드성이 보인다. 섬주변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 블레드성 방향쪽으로 걸어나가 예쁜꽃이 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 가꾸는 꽃인대 시클라멘이라고 하는 꽃이 여기는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이후 선착장으로 돌아와 잠시 기다려 사진촬영마저 하고 능숙한 뱃사공의 노젖는 모습을 보며 5분여 나오면 블레드의 일정도 끝이다. 이렇게 하여 블레드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동굴 구경을 하러 간다.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블레드 지역의 관광을 모두 마치고 이제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동굴인 포스토니아 동굴로 향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나고 하며 관람거리는 세계최대라고 하는 동굴이다.

가는 길은 역시 목초지가 대부분인 길을 따라 진행한다. 동구권 국가들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환경이 좋다. 가는 거리가 100km가 조금 넘기 때문에 대략 1시간 반정도가 걸린다. 가는 길은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뉴블라냐를 옆으로 지나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어느덧 버스는 포스토니아 동굴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이정도면 이동시간이 적당하다. 중국등 큰 국가에서는 이정도면 옆동네 마실가는 거리다. 포스토니아 동굴입구 쪽으로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역시 유명한 곳인 것 같다.

 

세계최대 동굴

선도웅 동굴(산둥동굴, 선동동굴 이름이 가지각색이다)

선도옹 동굴(베트남어:Hang Sơn Đoòng/山洞)베트남 꽝빈성 보짝현에 위치해 있다. 세계 최대의 천연 동굴로 길이는 9km, 높이는 200m , 넓이는 150m이다. 이곳은 퐁냐께방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굴이다.

(Hang베트남어동굴이라는 의미)

라오스-베트남 국경 근처에 위치한 선도옹 동굴은 내부로 빠르게 흐르는 지하강과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의 단면을 가지고 있는데, 2009년 기준으로, 두번째로 가장 넓은 통로를 가진 동굴의 두 배라고 여겨진다. 부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통로다. 용해성 동굴로서 용해성 석회암으로 형성되었으며, 200~500만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티엔드엉 동굴

티엔드엉 동굴(베트남어:Thiên Đường/天堂洞)은 베트남 보짝현 선짝사에 위치한 자연 동굴이다. 해발 200m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이 동굴의 길이는 31km, 높이는 100m , 넓이는 150m이다.

퐁냐께방 국립공원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베트남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동굴로 알려져 있다.[3]

이 동굴은 2005년 한 현지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 동굴의 첫 5km2005년 영국 동굴 연구 협회의 탐험가들에 의해 31km 전체가 영국 동굴 탐험가들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동굴은 길이가 31km로 이 국립공원에서 가장 긴 동굴로 여겨졌던 퐁냐 동굴보다 길다. 높이는 72m, 폭은 150m에 이른다. 석회암 형성도 퐁냐 동굴보다 화려하다

영국의 동굴 탐험가들은 이 동굴 안에 있는 아름답고 장관인 종유석석순에 감명을 받았고 그들은 그것을 티엔드엉 동굴(천당 동굴)이라고 이름지었다. 2012년 이 곳에서 새로운 종인 진동굴성 생물 전갈의 종인 비엣보캅 전갈(Vietbocap thienduongensis)이 발견되었다.

 

세계최대 동굴이 베트남에 있는 줄은 몰랐다. 오래전 중국 계림에 있는 은자암이라는 동굴을 가본적이 있다. 규모도 크고 석순도 가지각색으로 멋지다. 석주는 오늘 관람하는 동굴보다도 훨씬 규모가 크다. 굵기도 상당하고 높이도 굉장하다. 그런대 잘못된 것이 조명이다. 총천역색으로 귀신이 나올법한 조명이라 석순이나 석주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큰 흠이다. 중국인구가 많기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포스토니아동굴입장 11:00

주차장에 도착하여 도보로 동굴입구로 간다. 강물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공원옆을 따라 오른후 좌측으로 돌아가면 우측으로 식당 기념품점 호텔들이 있고 가장 안쪽에 동굴입구가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의 가장 끝에 서서 순서를 기다려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간다. 표 검사를 하는 직원이 먼저 들어가려던 신여사를 불러세운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다. 가이드가 금시 가더니 표가 잘못됐다고 부리나케 매표소로 달려간 사이 새치기 하는 현지인들 모두 들어가고 이제 표 검사하는 직원이 다 들어왔다는 신호인지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후 나온 직원과 가이드가 거의 동시에 도착하며 표검사하는 직원이 다시 들어가더니 우리를 부지런히 검표를 하며 들여보낸다. 들어가서 보니 전기열차가 출발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직원은 열차가 출발했는지를 확인하러 간후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무사히 11시에 입장하는 동굴 관광열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이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라고 한다.

 

동굴관람 11:10 ~12:15

포스토이나

종유석 동굴로 유명한 도시, 포스토이나
세계적인 종유석 동굴인 포스토이나 야마(postojna)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남쪽으로 50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다. 고작 1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나, 세계 2번째로 큰 카르스트 동굴을 보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포스토이나 종유동굴
자연의 신비로 이루어진 동굴
신비스런 포스토이나 종유동굴(Postojna Cave)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동굴로, 수백만년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진 석회암의 용식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생겨난 희귀한 모양의 종유석이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20키로미터에 달하는 이곳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전기열차를 타고 대략 3.5km정도를 10분 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다. 걷는 거리는 1.5km로 총 5키로 구간이다. 나올때도 전기열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

전기열차가 출발하여 달리는대 속도감이 대단하다. 머리가 천장에 닿으것도 같고 간을 졸이며 좌,우로 펼쳐지는 멋진 종유석도 구경해야지 사진도 간혹 찍어 두어야지 바쁘다 바뻐~~

열차는 5분여 달린 것 같다. 상당히 빠르게 달려 내려주면 부지런히 종유석 구경하며 걷는다. 석순의 모습이 다양하고 엄청나다. 중국 계림의 은자암종유석도 대단한대 여기는 다채롭기가 더하다. 사진도 찍고 간혹 동영상도 찍고 하느라 마나님도 놓치고 에고 일행들도 안보인다. 어쨌든 가는 방향이야 한곳이니 부지런히 손놀림하여 진행을 한다. 여기는 조명이 은은하게 잘되어 있다. 포인트에서는 조명이 조금 더 밝게 비치고 수많은 종유석에는 은은한 불빛이 관람하기 좋을 정도로 잘되어 있다. 특히 종유석중에서 하늘에 유리보석이 은은하게 매달린 것은 처음보는 형태다. 참 이렇게 멋진 종유석도 있다니 놀랍다. 이탈리아 인들이 스파게티석으로 부른다고 한다. 빗방울이 영롱하게 매달린 형태다. 표현하기 참 힘든 것이다. 한참을 가면 굵직한 석주가 있고 그 옆으로 하얀색 석주가 땅에서 천장으로 자라고 있는데 이종유석의 이름은 브릴리어트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석순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석주는 은자암이 곤명의 동굴처럼 하늘 높이 솟은 대형은 없지만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석순과 석주 커튼형종류석등 종류가 다양하며 대단한 동굴이다.

관람시간은 대략 1시간이며 끝에서 다시 전기열차를 타고 나오면 동굴 관람은 마치게 된다.

 

프레자마성관람 13:54 ~14:26

동굴관람을 마치고 일행이 다 나올때를 기다려 식당으로 향한다. 우리가 예약을 했다는 식당은 하지를 않아 그 아래쪽에 있는 Hotel JAMA로 간다. 이쪽으로 예약을 변경해주었다고 한다. 호텔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식당도 깔끔하다. 우리는 식당에서 야채에 돌돌돌 말은 만두 비슷한 것이 나오고 주메뉴로 닭고기 볶음요리++야채소스가 든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맥주도 한잔씩 기울였다. 뒤이어 들어온 장께 님들은 워낙 부자들이라 차림새는 허름하지만 식사는 대단하다.

식사를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프레자마성으로 향한다. 15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작은 마을위에 있는 프라자마성을 관람한다.

역사는 상당히 깊은 곳이지만 크게 볼 것은 없다.

성안으로 들어가 좌,우로 다니며 방마다 구경을 하고 가장위쪽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

높이가 123m에 이르는암벽동굴로 반쯤 막혀 있는 형태로 세게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며,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크게 볼것이 있는 광광지는 아닌 것 같다.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이제 실제로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로 이동을 한다. 이번여행에는 크로아티아 일정이 많이 들어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지도로 볼 때 T형으로 생긴 국가로 아드리아 연안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아드리아해 반대편으로 이탈리아와 마주하는 국가다. 해안선을 많이 차지 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관광지는 대부분이 해안가를 끼고 있다.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가장 남쪽 두브로브니크까지 다녀서 다시 올라올 것이다. 이 반도의 끝은 그리스로 이어지게 된다. 프레자마성을 출발하여 크로아티아로 달린다. 어디가 어딘지 알수는 없지만 지나는 풍경만큼은 시원하니 보기 좋다. 블레드를 출발하지 1시간 10분후 국경이라고 한다. 국경을 통과하며 보이는 모습은 크게 변한게 없다. 국경을 통과한후 4~5분이 지나 주유소가 나온다. 역시 가이드가 분명 크로아티아에서 기름을 넣을 것이라고 하더니 맞다. 여기서 연료를 잔뜩 채운다. 이사장님 따져보더니 85만원어치라고 하던가 했다. 우쨋든 여기서 기름 넣는사이 댕겨 올곳 댕겨 오고 다시 진행을 하니 이제 모습이 많이 바뀐다. 큰산들이 보이지 않고 나지막한 산들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모습들이다. 소나무가 상당히 많은 것이 특색이다. 집들은 여기도 주홍색일색이다. 목초지가 많고 푸르게 자라고 있는 옥수수밭도 다수 보인다. 간혹 흰색의 바위산도 보이며 양떼가 모여있는 장면도 목격이 된다,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 4/1정도의 면적으로 인구수는 400만명이니 작은 나라다.

이제 버스는 산길을 달리기도 하고 평지 길을 달리기도 하며 달려 1시간 40분후 휴게소에서 두 번째 휴식후 다시 달리면 산골짜기 시골길을 따라 달려 큰산고개를 넘게 된다. 좌측으로 플리치비체가 있는 것 같다. 오면서 시골마을 풍경을 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갔는지 빈집이 허다고 무너져 내린 집이 반은 된다. 목초지도 대부분 자연상태 그대로라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은 것 같다. 고개를 넘어 지그재그로 한동안 내려서면 삼거리에 좌측으로 호텔(Hotel Lyra) 이 나온다. 시골마을에 번듯한 것은 여기 호텔뿐이다.

고개를 넘기 전 좌측으로 가면 플리체비체 였었다.

 

저녁식사 19:15 ~20:00

여기는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할때도 없기 때문에 호텔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뒤로 오토바이 부대도 이곳에 자리를 틀기로 했는지 속속도착한다.

식사는 빵한바구니, 야채 한그릇, 주메뉴 송어튀김+붉은 콩+버섯으로 된 요리다.

반주로 와인 한잔(밑에 깔리는 수준, 이사장님이 낸것임)을 했다.

방은 깨끗한 편이었고 창문을 열면 뒤편으로 침엽수림이 보인다.

여기도 샤워부스는 크지 않았던 것같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까지 왔다.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2023.0828일 월요일~2023.0910일 일요일(1214)

 

8일차 슬로베니아 블레드섬, 포스토니아 동굴및 프레드야마성, 크로아티아로 이동하는 날

2023.09.04.일 월요일 맑음

 

기상 04:30 아침산책(알파인코스터 상부, Straza hill) 06:10 ~07:00 아침식사 07:00 ~07:30 호텔출발 07:45 블레드섬 들어가는 선착장전 하차 07:40 보도 -선착장도착 07:49 ~07:54 블레드섬 08:00 ~08:30 다시 선착장 08:35 도보 버스승차 후 출발 08:48 포스토니아동굴로 이동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도보 동굴 입장후 동굴열차 출발 11:10 동굴열차 정차 11:15 이후 동굴 도보로 관람 동굴열차 출발 12:10 동굴열차 도착 12:15 동굴 출발 12:25 도보 식당 도착(Hotel JAMA) 12:30 ~13:25 도보 포스토니아 주차장 출발 13:40 프레자마성 주차장 도착 13:54 관람후 주차장 출발 14:26 플리치비체 인근 호텔로 이동(223KM, 3시간 15분 소요) - 크로아티아 국경 통과 15:35 주유소겸 휴게소 15:39 ~15:51 휴게소 17:30 ~17:45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저녁식사 19:15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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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토이나 동굴[슬로베니아어 :Postojnskajama]

-슬로베니아의 포스토이나 근처에 자리한 긴 카스트로 동굴로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동굴 이며관광 명소임

- 길이는 20,570

-이 동굴은 피브카 강(PivkaRiver)의 유수 작용에 의해 생성됨

- 동굴의 발견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문헌 상으로는 17세기 야네즈 바이카르드 발바소르(JanezVajkardValvasor)가 최초로 이 동굴에 대해 기술

- 1818년에 새로 발견된 부분은주민 루카 체치(LukaČeč)가 오스트리아 최초의 황제인 프란시스 1(Francis)의 방문에 대비하여 기존에알려져 있던 구간을 준비하고 있던 중에 우연히 발견

-1819년 이동굴은 대중에게 공개

-1884년에는 전기종이 설치 되었는데, 그것은 당시 동굴이 있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카르니올라주(Carniola)의 수도 류블리아나(Ljubljana)에 전기조명이 설치된 때보다 더 이른 것임

-1872년에는 관광객을 위한 최초듸 동굴열차와 함께 철도가 부설 되었으며,20세기에 들어와서 가스기관차가 도입되었고 1945년 이후에는 전기기관차로 대체되었다

-일반에게 공개된 구간은 전체 동굴 가운데 5.3로 일반인의 관람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길다.

-이 동굴은 또한 세게에서 가장 큰 혈기도룡뇽인 이고장 특유의 올름(동굴 도룡뇽붙이)이 서식한다.

[네이버 지식백과]포스토이나 동굴[Postojna Cave] (두산백과

 

포스토니아 동굴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긴 카르스트 동굴인 포스토이나 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다.

이 모든 게 석회암과 물의 화학작용이 만들어낸 걸작으로 떨어지는 물에 의해 종유석, 석순, 석주 등이 형성된다. 고드름처럼 자라 천장에 매달리는 것이 종유석, 바닥에 떨어져 석회암 덩어리 탑처럼 쌓이는 게 석순, 석순이 자라 종유석과 만나 기둥을 형성하면 석주다.

100년에 1cm가 자란다고 하니 포스토이나 동굴 속의 이 모든 작품들은 수백만년의 세월에 걸쳐 떨어진 물방울들의 기적인 셈이다. 여기에 조금의 상상력을 보태면 그 모양은 산타클로스, 앵무새, 피사의 사탑, 그 밖의 모든 것이 된다. 성분에 따라 흰색, 빨간색, 검은색, 회색 등으로 달라지는 석회암의 색깔은 무한한 상상력에 색채를 더한다.

 

포스토이나 동굴은 어두컴컴하지만 화려하다. 자연이 만들어 낸 기적은 정말이지 경이롭다

스파게티석이라 불리는 종유석. 비 오는 모양을 닮아 원래는 ‘Rock Rain’ 불렸으나 이후 이탈리아인들이 ‘Rock Spagetti’라 이름 붙였다

 

 

여러모로 사람을 닮은

프로테우스(Proteus)
포스토이나 동굴 안엔 그들만의 생태계가 있다. 끝없는 암흑이라는 조건에 적응한 100종이 넘는 동물들이 서식하고 있는 것. 그중 가장 유명한 생물이 프로테우스. 수명이 100년에 이르고 피부색 또한 사람과 비슷해 휴먼피시(Human Fish)라 불린다. 작은 뱀장어처럼 생긴 프로테우스를 옛날 슬로베니아 사람들은 용의 새끼라 믿었다고 한다. 어둠 속에서 생활하는 까닭에 눈은 퇴화되었고 피부 보호 물질이 없는 투명한 피부를 갖고 있어 매우 민감하다. 프로테우스 앞에서 카메라 플래시는 금물이다.

 

 

 

이름 그대로

브릴리언트(The Brilliant)
포스토이나 동굴에는 여러 가지 모양의 석회암들이 있지만, 이 중 유독 새하얀 빛을 발하는 석순이 있다. 바로 이름부터 찬란한 브릴리언트. 5m 높이에 겹겹이 녹아내리는 듯한 형상을 한 브릴리언트는 포스토이나 동굴의 상징으로, 원래의 순백색 색깔이 조명을 받아 더욱 미세한 빛을 발한다. 아이스크림 모양을 닮았다고 해 아이스크림 석순이라고도 불리는 브릴리언트.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브릴리언트 아이스크림이라 명명하고 싶다.
출처 : 트래비 매거진(https://www.travie.com)

 

 

프레자마성(Predjamski Grad)

슬로베니아 서남부, 동명의 마을 프레자마에 자리잡고 있다. 카르스트 구렁 위 123m 높이의 암벽동굴에 반쯤 박혀 있는 형태를 띠고 있다. 프레자마 성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세계기록에 등재 되어 있다.

최초의 성은 13세기 고딕 양식으로 지어졌으며, 독일어로 루그(Luegg)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아델스베르크의 기사로 알려진 루그 귀족 가문이 성을 매입한 뒤 확장하였다. 참고로 아델스베르크는 프레자마의 독일어 명칭이다.

루그 가문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슬로베니아 판 로빈 후드로 알려져 있는 의적기사, 에리스무스이다. 슬로베니아 어로는 에라젬 로에거라고 불리는 이 인물은 15세기 프레자마성의 성주로, 부유한 상인들에게 빼앗은 재화를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곤 했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에라스무스는 자신의 죽은 친구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합스부르크가 황제 군대의 사령관을 죽인 탓에, 쫒기는 신세가 되어 프레자마 서응로 피신한다. 이후 헝가리의 왕을 도와 합스부르크 가문의 오스트리아에 대항해 싸운다. 오스트리아 군대는 에라스무스의 본거지인 프레자마 성을 포위한다. 에라스무스는 성안의 여러비밀 통로를 사용하여, 외부로부터 비밀리에 군수품 및 식자재를 보급 받으며 일년 넘게 항전한다.

난골불락처럼 보이는 프레자마 성에도 외부 공격으로부터 취약한 장소가 한곳 있었는데, 그곳이 바로 화장실이 었다. 에라스무스의 부하 중 한 명이 적에게 이러한 기밀 정보를 넘긴다. 이렇게 의적 에라스무스는 부하에게 배신당해, 황장실에서 볼일 보다가 폭탄 맞아서 죽었다고 한다. 이후 성은 파괴되고 폐허만 남았다. 16세기 새로운 성을 건축했으나 이 성 역시 지진으로 파괴되고 현재 우리가 방문할수 있는 르네상스양식의 성은 16세기 중반건설된 것으로 6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38개의 방이 있다. 푸레자마성은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한다.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옮겨온 글

 

크로아티아

면적 약56(한반도의 0.256, 대한민국 10), 인구 약400만명(대한민국 5000만명 세게29)으로 세계 129위다.

크로아티아는지중해(아드리아해)와 접한발칸 반도서북쪽, 동남유럽에 위치한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서 분리독립한국가이다. 수도자그레브(Zagreb)이다. 1991년에야 독립을 선언한 신생국으로서, 짧은 역사에도 발칸 국가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유고슬라비아 전쟁과 인종 청소 등 굵직한 사건을 겪었다.

발칸반도 지역에서는가톨릭정교회간의 경계선상에 위치한 나라이며 서북쪽으로슬로베니아(그리고 약간만 더 건너서이탈리아오스트리아가 있다.), 동북쪽으로헝가리, 동쪽으로세르비아, 동남쪽으로 몬테네그로, 그리고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동부 중간에 접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아드리아해를 접하고 있고, 이를 건너가면 이탈리아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역사에서 오랫동안 독립국이었던 적이 별로 없다. 크로아티아 민족 자체는 남슬라브계에 속하며, 언어도 옆나라인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와 거의 같다. 유고슬라비아 시절에는 세르보크로아트어로 불렸다.

 

본래 크로아티아가 속한 발칸은 오스만, 오스트리아 등 강대국의 지배를 받던 지역이었지만, 민족 구성은 남슬라브계가 다수였기에 자연히 민족주의 독립운동이 벌어졌다. 오스트리아의 세르비아 침공으로 시작된 1차 대전에서 오스트리아가 패전한 이후, 러시아의 대슬라브주의의 영향과 세르비아의 주도하에 크로아티아를 포함한 발칸의 여러 지역과 민족을 포괄하는 유고슬라비아가 탄생했다. 그러나 크로아티아인 민족주의자들은 유고를 거부했고, 2차대전 시기 추축군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자, 나치의 괴뢰국 형태로 크로아티아가 독립한다. 그러나 2차대전이 나치의 패배로 끝나며 다시 크로아티아는 유고슬라비아의 소속국이 되었다. 이후 1991년 유고슬라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전쟁 끝에 오늘날의 크로아티아가 탄생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군의 피상적인 침공과 약탈을 겪었지만, 크로아티아가 오스만 제국과 본격적으로 엮이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전반에 들어서이다. 1526쉴레이만 1는 오스만 대군을 이끌고 헝가리 왕국을 침공했고 이에 모하치 전투가 벌어졌다. 헝가리, 보헤미아, 크로아티아 3개국의 국왕을 겸하고 있었던 야기에우워 가문러요시 2가 이 전투에서 전사했고, 헝가리군은 대패하여 사실상 멸망했다. 이때 러요시 1세의 자형이자오스트리아 대공합스부르크 가문페르디난트 1가 러요시 2세의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고, 당시 오스만 제국의 위협에 직면해 있던 크로아티아 왕국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합스부르크 가문의 도움을 받기 위해 신속하게 페르디난트 1세를 국왕으로 인정했다. 동시에 보헤미아, 서부 헝가리도 함께 합스부르크 가문에 귀속되어 합스부르크 제국이 성립되었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지배는 19181차 세계 대전까지 계속되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방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합스부르크 가문은 현지의 문화와 자치권을 상당 부분 인정하는 관용정책을 펼쳤는데, 이에 크로아티아도 상당 수준의 자치를 누릴 수 있었다.

합스부르크에 귀속된 이후 크로아티아의 영토 대부분은 오스만 제국의 거듭된 공세를 받는 변경 지대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국토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해적들이 들끓는 탓에 주민들을 내륙으로 이주시키는 등 난장판이 되었다.

1797나폴레옹의 원정으로 베네치아 공화국이 멸망하면서 캄포포르미오 조약의 결과 베네치아 공화국 영토 대부분이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 베네치아가 다스리던 달마티아역시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다. 이로서 지금의 크로아티아 전체가 오스트리아 영토가 되었는데2차 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랑스에 참패하면서 쇤부른 조약으로 프랑스에 할양되었다가 1815빈 회의의 결과 다시오스트리아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오스트리아 당국은 크로아티아인들에게 독일화, 헝가리의 헝가리인들은 헝가리인대로 마자르화를 크로아티아인들에게 강요했는데 이에 반발하여 크로아티아인들은 일리리아 운동을 통해 자신들의 민족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했다. 특히 명목상 크로아티아의 종주국으로 크로아티아인들의 권리를 억압하려는 헝가리와는 사이가 최악이었는데1848년 헝가리 혁명당시 헝가리인들이 오스트리아로부터 분리독립을 선언하자 크로아티아인들은 합스부르크에 충성을 맹세한 후 헝가리 봉기 진압에 앞장섰다. 덕분에 크로아티아는 제한적으로나마 동등한 주권을 얻을 수 있었다.

1866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가 패하여 충격과 후유증에 휩싸여 있는 동안, 헝가리 민족 운동이 고조되어 1867대타협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중제국)이 수립되어 헝가리 왕국이 사실상 주권국이 되었다. 이때 크로아티아의 통치권이 오스트리아에서 헝가리로 넘어갔다. 헝가리는 크로아티아를 완전 편입하고 헝가리 왕국 내 타 소수민족들처럼 마자르화를 하려했으나 크로아티아는 주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이해관계가 충돌하였다. 이때프란츠 요제프 1가 나서서 크로아티아를 지지하며 압력을 넣은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주권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크로아티아 지역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해양 정책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 크로아티아는이스트리아 반도와 함께 제국이 바다로 나갈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교두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국의 해군 및 해양 정책에서 크로아티아의 비중은 매우 컸으며, 오스트리아 해군 내에도 실제 인구 비중에 비해 크로아티아계의 수가 더 많았다.

 

1918 1차 세계 대전이 끝나기 직전 크로아티아계는 이미 몰락이 기정사실화된 합스부르크와 결별하고 남슬라브 통일운동에 합류하여 유고슬라비아 왕국(원래 국명은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의 일원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 위주로 흘러가는 유고슬라비아의 상황을 보고 남슬라브인 통일운동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대세르비아주의였다고 분개한 크로아티아계는 유고슬라비아 왕국 내부에서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분쟁을 일으켰다. 크로아티아 문제는 크로아티아계가 반유고슬라비아 성향 국가인 이탈리아와 헝가리의 지원을 얻어 아예 분리독립을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더 심각해졌고 2차 세계 대전이 임박해 정세가 심상치 않은 19398월 크로아티아 농민당과 유고슬라비아의 섭정파블레 왕자의 타협으로 크로아티아계 거주지역이 다른 지역보다 폭넓은 자치권을 가지는 크로아티아 바노비나(Banovina Hrvatska)로 재편되었으나 이미 크로아티아계와 세르비아계의 갈등은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와버렸다.

결국1941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을 비롯한추축국의 침공 때 병력 소집을 거부하여 유고슬라비아의 파탄에 일조했다. 이후 독일-이탈리아-헝가리의 괴뢰 국가크로아티아 독립국이 세워졌고 독일의 후원 하에 반세르비아 조직인 우스타샤가 정권을 잡아 무자비한 인종청소를 벌였는데, 어찌나 잔혹했는지 천하의 독일 국방군도 치를 떨었다고 한다. 이 당시에 우스타샤에 의해 살해당한 세르비아인의 수는 30만 명에서 70만 명 사이로 추정되는데 대부분의 학살이 저질러진 보스니아의 2차대전 직후 세르비아인이 100만여 명이었음을 생각하면 거의 보스니아의 세르비아인 인구의 20%에서 40%가 죽은 격이었다. 이 비율이면 유대인학살보다 더하다!

이로 인해 세르비아계의 체트니크라는 민족주의 저항군과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이끄는 공산주의 게릴라들 모두와 격렬히 충돌하였다. 이 때문인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크로아티아가 인지도를 올렸을 때, 일각에서는 크로아티아의 체크무늬 유니폼을 보면 나치가 생각난다면서 항의하는 목소리도 있었을 정도였다.

1945
이후 크로아티아 사회주의 공화국으로서 티토의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으로 통합되어 어느 정도 자치권을 누렸으나, 1980티토가 죽은 뒤 세르비아 민족주의가 대두되자 크로아티아도 민족주의가 대두되었으며 1990년 총선에서 유고슬라비아 내 각 공화국의 총선이 민족주의 정파의 승리로 끝났고, 크로아티아도 프라뇨 투지만크로아티아 민주연합이 압승을 거뒀으며 1991 동구권의 붕괴를 계기로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국을 선포했다. 이로 인해 연방 붕괴를 거부한 세르비아계 연방군과 무력 충돌, 유고슬라비아 전쟁이 일어났으나, 국제사회의 중재와 압력으로 연방군이 철군함으로써 슬로베니아와 함께 독립을 달성하였다. 다만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지원 아래 세르비아계가 다수이던 크로아티아 동부 크라이나 지방이크라이나-세르비아 공화국설립을 선포하여 1995년 여름까지 전쟁을 지속해야 했다.

독립 이후 세르비아와의 전쟁으로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물가상승률이 높아 한 동안 경제가 엉망진창이었으나 화폐개혁을 하는 김에 독일 마르크화에 페그를 거는 방식으로 물가를 안정화시켰고 국제재제로 투자유치에 어려움을 겼던 세르비아와는 다르게 크로아티아는 그런 면에서 제약이 덜했던지라 1990년대 중반부터 안정세를 되찾았고 1997IMF 외환위기로 다시 휘청이기는 하나, 2000년대에 서방 세계로의 경제 통합을 지향하여 비교적 빠르게 성장하였다.
크로아티아도 2013년부터 EU에 가입하게 되었으며 이후솅겐조약에도 가입하게 된다.

워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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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04:30

오늘은 조금 일찍일어나 준비를 한다. 날이 밝으면 다시 블레드호수를 아침산책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혼자서 어제 블레드성에 바로 정면으로 보이던 작은 언덕이 있는 산을 다녀올 예정이다. 6시가 넘어서 날이 밝는다. 나오기로 한 분들이 다 나오길 기다려 마나님한테 어제 간길을 따라 브레드 호수를 돌아보라하고 나는 혼자서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찾는다. 호텔에서 나와서 좌측으로 가면 골목이 몇 개 나온다. 제일 좌측에 있는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길이 반대편으로 이어지며 그방향으로는 잘 지은 전원주택들에서 길이 막힌다. 두 번째도 역시 막힌다. 다시 나와 중간쯤에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니 여기가 맞다. 잠시 들어가니 알파인코스터 매표소앞 주차장에 닿는다. 이른아침이라 통제가 없어서 무사히 통과를 하여 임도를 따라 올라서다가 알파인코스터 파란 잔디밭을 따라 올라간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고 풀에 이슬이 맺혀 등산화가 젖는다. 중간쯤에서 임도가 지나고 다시 알파인코스 잔디밭을 따라 오르니 상부에 닿는다. 이곳이 Straza hill이라고 하는 곳이다. 정상부에는 각종시설들이 되어 있다. 나무에 줄을 매어 건너는 코스도 보이고 이나무 저나무로 연결이 된 많은 시설이 되어 있다. 시간이 그리 많치 않기 때문에 간단히 위쪽으로 더 높다란 곳으로 올라서 좌측으로 돌아가는 길이 잘되어 있다.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블레드호수가 내려다 보이고 블레드섬이 바로 아래로 놓여있다. 멀리 설산도 보인다. 지도를 검색해 보니 트리글라브국립공원이라 되어 있는 곳이다. 그아래로 모스토니아 협곡도 있다.

 

트리블라브 국립공원

슬로베니아의 상징과도 같은 곳
트리글라브 국립공원(Triglav National Park)은 슬로베니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해발 2864m 높이에 넓이도 83,807 헥타아르로 블레드, 보히니, 카란스카야 고라 등의 슬로베니아 도시를 끼고 있으며, 국립공원은 오스트리아, 이태리, 슬로베니아의 국경과 접하고 있습니다. 트리글라브 산은 슬로베니아 민족의 상징과도 같은 것으로 슬로베니아 국기에 이 산 모양이 들어있습니다.
높은 계곡과 산등성이, 특색있는 자연 환경은 이곳의 자랑거리이며 이 국립공원은 보니히 호수와 폭포, 협곡, 카르스트 지형 등 다양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곳에는 다양한 식물과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곳으로 추운 북부 고산지대와 온화한 서부 지중해성 기후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동특한 동식물을 볼 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저기저 설산이 이렇게 유명한 곳인지 몰랐지요!!

멋진모습을 눈에 가득담고 이제 내려간다. 역시 알파인 코스터 코스터 잔디밭길을 따라 내려서다가 임도에서 좌측으로 따라내려가니 편하긴 한데 조금더 멀다. 이렇게 내려서 호숫가에 도착하니 박선생내외가 아침산책을 나왔다가 만난다. 난 호숫가를 조금 더 따라 가다가 호텔로 들어가니 모두가 나보다 일찍 도착했다. 이렇게 하여 아침산책길 3.8KM 55분동안 걸었다.

 

블레드섬 08:00 ~08:30

호텔에서 식사는 역시 뷔페식으로 간단하게 한다. 주로 햄종류 치즈종류 모처럼 빵한조각 가져다가 햄넣고 먹어도 봤다. 식사는 여기도 좋지를 않다. 과일 썰어서 맛나게 한 멋이여 국물도 있고 한 것 요것은 맛있다. 간단히 식사 끝내고 짐챙겨서 이제 어제 일정중 오늘로 미뤄진 블레드섬으로 향한다. 버스로 잠시 간후 도로변에 내려서 노젖는 배가 여러대 서 있는 선착장에 도착을 해서 잠시 기다리니 멋지고 젊은 뱃사공이 나온다. 배는 노젖는 배로 환경을 염두에 둔 것 같다. 힘차게 노를 저어 5분여 들어가니 블레드 섬에 닿는다.

 

블레드 호수
호수 중앙에 작은 섬이 있는 거대한 호수
블레드 레이크는 Bohinj 빙하의 후퇴이후 형성된 호수로 긴쪽 지름은 2120 m 이며, 짧은쪽은 1380 m로 거대한 크기를 가지고 있으며, 깊이는 최고 깊이가 30.6 m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빙하기 이후, Bohinj 빙하로 인해 해수면은 더욱 상승되었고 호수는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호수 주변에는 몇몇개의 작은 샘이 있으며, 호수의 북동쪽에 있는 온천샘은 주변 호텔(Grand Hotel Toplice, Hotel Park, Hotel Golf) 의 온천풀로 쓰이고 있습니다. 호수의 중앙에 있는 매우 작은 섬은 블레드 섬이라고 불리우며 이곳에는 작은 교회가 있습니다. 이 작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는 매일 수시로 있으면 약 10분 걸립니다. 호수 주변은 하이킹 코스로 매우 좋으며 주변의 여행사에서 래프팅등의 스포츠도 참가 할수 있습니다.

출처 하나투어 여행정보

 

블레드섬을 한바퀴 일주하는대는 6KM라고 한다. 대략 1시간10~20분이면 되겠다. 시간이 있으면 한바퀴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여기 블레드섬에는 성모승천교회가 있는데 우리는 교회안을 들어가지 않는 일정이라 외관만 구경을 한다. 올라가는 계단이 99개라고 하는대 하나둘 세면서 올라가다보면 98에서 끝이 난다고 한다. 하나는 물속에 있다고 한다. 이곳은 결혼식 성지로 신랑이 신부를 앉고 99계단을 올라가면 행복하게 살수 있다고 한다. 신부는 절대로 숨을 쉬지 않고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성모승천교회에는 전설이 있는대 소원의 종에 대한 이야기다.

한 여인이 남편을 사별하고는 그 슬픔을 달래고 신에게 감사하려고 블레드섬의 예배당에 종을 설치하려고 했는대, 종을 제작해 배를 타고 가던 중 풍랑을 만나 그만 종이 호수에 빠지고 말았다. 서럽게 슬퍼하는 여인의 사연을 들은 교황이 성모승천 교회에 종을 달아주었다고 한다. 블레드섬의 계단과 종에 사랑과 소원의 염원이 담긴 것은 이러한 전설에서 연유했 것이다.

교회 외부를 불러보고 뒤편으로 내려가니 조망이 매우 좋다. 건너편의 호텔지역과 우측으로 블레드성이 보인다. 섬주변으로 돌아가는 길이 있어 블레드성 방향쪽으로 걸어나가 예쁜꽃이 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분에 가꾸는 꽃인대 시클라멘이라고 하는 꽃이 여기는 야생으로 자라고 있다.

이후 선착장으로 돌아와 잠시 기다려 사진촬영마저 하고 능숙한 뱃사공의 노젖는 모습을 보며 5분여 나오면 블레드의 일정도 끝이다. 이렇게 하여 블레드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동굴 구경을 하러 간다.

 

포스토니아동굴 주차장 도착 10:25

블레드 지역의 관광을 모두 마치고 이제 슬로베니아의 유명한 동굴인 포스토니아 동굴로 향한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규모가 크나고 하며 관람거리는 세계최대라고 하는 동굴이다.

가는 길은 역시 목초지가 대부분인 길을 따라 진행한다. 동구권 국가들이 깨끗하고 조용하며 환경이 좋다. 가는 거리가 100km가 조금 넘기 때문에 대략 1시간 반정도가 걸린다. 가는 길은 슬로베니아의 수도인 뉴블라냐를 옆으로 지나는 길을 따라 남쪽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어느덧 버스는 포스토니아 동굴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이정도면 이동시간이 적당하다. 중국등 큰 국가에서는 이정도면 옆동네 마실가는 거리다. 포스토니아 동굴입구 쪽으로 건물들이 많이 보이고 벌써부터 많은 사람들이 모여 든다. 역시 유명한 곳인 것 같다.

 

세계최대 동굴

선도웅 동굴(산둥동굴, 선동동굴 이름이 가지각색이다)

선도옹 동굴(베트남어:Hang Sơn Đoòng/山洞)베트남 꽝빈성 보짝현에 위치해 있다. 세계 최대의 천연 동굴로 길이는 9km, 높이는 200m , 넓이는 150m이다. 이곳은 퐁냐께방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동굴이다.

(Hang베트남어동굴이라는 의미)

라오스-베트남 국경 근처에 위치한 선도옹 동굴은 내부로 빠르게 흐르는 지하강과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의 단면을 가지고 있는데, 2009년 기준으로, 두번째로 가장 넓은 통로를 가진 동굴의 두 배라고 여겨진다. 부피로 볼 때 세계에서 가장 큰 동굴 통로다. 용해성 동굴로서 용해성 석회암으로 형성되었으며, 200~500만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티엔드엉 동굴

티엔드엉 동굴(베트남어:Thiên Đường/天堂洞)은 베트남 보짝현 선짝사에 위치한 자연 동굴이다. 해발 200m 고도에 위치해 있으며, 이 동굴의 길이는 31km, 높이는 100m , 넓이는 150m이다.

퐁냐께방 국립공원내에 자리를 잡고 있으며 베트남 하노이남쪽으로 450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동굴로 알려져 있다.[3]

이 동굴은 2005년 한 현지인에 의해 발견되었고, 이 동굴의 첫 5km2005년 영국 동굴 연구 협회의 탐험가들에 의해 31km 전체가 영국 동굴 탐험가들에 의해 공개되었다. 이 동굴은 길이가 31km로 이 국립공원에서 가장 긴 동굴로 여겨졌던 퐁냐 동굴보다 길다. 높이는 72m, 폭은 150m에 이른다. 석회암 형성도 퐁냐 동굴보다 화려하다

영국의 동굴 탐험가들은 이 동굴 안에 있는 아름답고 장관인 종유석석순에 감명을 받았고 그들은 그것을 티엔드엉 동굴(천당 동굴)이라고 이름지었다. 2012년 이 곳에서 새로운 종인 진동굴성 생물 전갈의 종인 비엣보캅 전갈(Vietbocap thienduongensis)이 발견되었다.

 

세계최대 동굴이 베트남에 있는 줄은 몰랐다. 오래전 중국 계림에 있는 은자암이라는 동굴을 가본적이 있다. 규모도 크고 석순도 가지각색으로 멋지다. 석주는 오늘 관람하는 동굴보다도 훨씬 규모가 크다. 굵기도 상당하고 높이도 굉장하다. 그런대 잘못된 것이 조명이다. 총천역색으로 귀신이 나올법한 조명이라 석순이나 석주등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것이 큰 흠이다. 중국인구가 많기 때문에 인산인해를 이룬다.

 

포스토니아동굴입장 11:00

주차장에 도착하여 도보로 동굴입구로 간다. 강물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 공원옆을 따라 오른후 좌측으로 돌아가면 우측으로 식당 기념품점 호텔들이 있고 가장 안쪽에 동굴입구가 있다. 길게 늘어선 줄의 가장 끝에 서서 순서를 기다려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간다. 표 검사를 하는 직원이 먼저 들어가려던 신여사를 불러세운다. 뭔가 잘못됐구나 싶다. 가이드가 금시 가더니 표가 잘못됐다고 부리나케 매표소로 달려간 사이 새치기 하는 현지인들 모두 들어가고 이제 표 검사하는 직원이 다 들어왔다는 신호인지 안으로 들어간다. 한참후 나온 직원과 가이드가 거의 동시에 도착하며 표검사하는 직원이 다시 들어가더니 우리를 부지런히 검표를 하며 들여보낸다. 들어가서 보니 전기열차가 출발을 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 직원은 열차가 출발했는지를 확인하러 간후 기다리라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무사히 11시에 입장하는 동굴 관광열차를 타고 안으로 들어갈수 있었다.

 

이동굴은 유네스코 세계자연문화유산이자 세계 3대 동굴로 알려져 있다. 21km 총 길이 중 5km 정도 구간만 관광객들에게 개방되는데, 이는 일반인이 관람할 수 있는 동굴 코스로는 세계에서 가장 긴 코스라고 한다.

 

동굴관람 11:10 ~12:15

포스토이나

종유석 동굴로 유명한 도시, 포스토이나
세계적인 종유석 동굴인 포스토이나 야마(postojna)로 유명한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서 남쪽으로 50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도시다. 고작 1만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나, 세계 2번째로 큰 카르스트 동굴을 보기 위해 세계각지에서 몰려든 사람들로 언제나 북새통을 이루는 곳이다.

 

포스토이나 종유동굴
자연의 신비로 이루어진 동굴
신비스런 포스토이나 종유동굴(Postojna Cave)은 세계에서 두번째로 긴 동굴로, 수백만년에 걸쳐 조금씩 이루어진 석회암의 용식으로 인하여 자연적으로 생겨난 희귀한 모양의 종유석이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20키로미터에 달하는 이곳은 그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정도로 아름답다.

 

전기열차를 타고 대략 3.5km정도를 10분 정도 걸린다고 되어 있다. 걷는 거리는 1.5km로 총 5키로 구간이다. 나올때도 전기열차를 타고 나와야 한다.

전기열차가 출발하여 달리는대 속도감이 대단하다. 머리가 천장에 닿으것도 같고 간을 졸이며 좌,우로 펼쳐지는 멋진 종유석도 구경해야지 사진도 간혹 찍어 두어야지 바쁘다 바뻐~~

열차는 5분여 달린 것 같다. 상당히 빠르게 달려 내려주면 부지런히 종유석 구경하며 걷는다. 석순의 모습이 다양하고 엄청나다. 중국 계림의 은자암종유석도 대단한대 여기는 다채롭기가 더하다. 사진도 찍고 간혹 동영상도 찍고 하느라 마나님도 놓치고 에고 일행들도 안보인다. 어쨌든 가는 방향이야 한곳이니 부지런히 손놀림하여 진행을 한다. 여기는 조명이 은은하게 잘되어 있다. 포인트에서는 조명이 조금 더 밝게 비치고 수많은 종유석에는 은은한 불빛이 관람하기 좋을 정도로 잘되어 있다. 특히 종유석중에서 하늘에 유리보석이 은은하게 매달린 것은 처음보는 형태다. 참 이렇게 멋진 종유석도 있다니 놀랍다. 이탈리아 인들이 스파게티석으로 부른다고 한다. 빗방울이 영롱하게 매달린 형태다. 표현하기 참 힘든 것이다. 한참을 가면 굵직한 석주가 있고 그 옆으로 하얀색 석주가 땅에서 천장으로 자라고 있는데 이종유석의 이름은 브릴리어트라고 한다. 아이스크림석순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석주는 은자암이 곤명의 동굴처럼 하늘 높이 솟은 대형은 없지만 가지각색의 아름다운 석순과 석주 커튼형종류석등 종류가 다양하며 대단한 동굴이다.

관람시간은 대략 1시간이며 끝에서 다시 전기열차를 타고 나오면 동굴 관람은 마치게 된다.

 

프레자마성관람 13:54 ~14:26

동굴관람을 마치고 일행이 다 나올때를 기다려 식당으로 향한다. 우리가 예약을 했다는 식당은 하지를 않아 그 아래쪽에 있는 Hotel JAMA로 간다. 이쪽으로 예약을 변경해주었다고 한다. 호텔은 상당히 규모가 크고 식당도 깔끔하다. 우리는 식당에서 야채에 돌돌돌 말은 만두 비슷한 것이 나오고 주메뉴로 닭고기 볶음요리++야채소스가 든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하며 맥주도 한잔씩 기울였다. 뒤이어 들어온 장께 님들은 워낙 부자들이라 차림새는 허름하지만 식사는 대단하다.

식사를 마치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프레자마성으로 향한다. 15분 정도 버스로 이동하여 작은 마을위에 있는 프라자마성을 관람한다.

역사는 상당히 깊은 곳이지만 크게 볼 것은 없다.

성안으로 들어가 좌,우로 다니며 방마다 구경을 하고 가장위쪽까지 올라갔다 내려오면 된다.

높이가 123m에 이르는암벽동굴로 반쯤 막혀 있는 형태로 세게에서 가장 큰 동굴 성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성룡감독의 용형호제의 촬영장소이기도 하며, 성룡은 프레자마성에서 촬영당시 추락으로 큰부상을 입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한국 드라마 흑기사(2017)에도 나왔다고 한다.

크게 볼것이 있는 광광지는 아닌 것 같다.

 

플리치비체 인근 Hotel Lyra 도착 19:00

이제 실제로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로 이동을 한다. 이번여행에는 크로아티아 일정이 많이 들어가 있다. 크로아티아는 지도로 볼 때 T형으로 생긴 국가로 아드리아 연안을 끼고 길게 이어진다. 아드리아해 반대편으로 이탈리아와 마주하는 국가다. 해안선을 많이 차지 하고 있기 때문에 유명관광지는 대부분이 해안가를 끼고 있다. 우리는 크로아티아의 가장 남쪽 두브로브니크까지 다녀서 다시 올라올 것이다. 이 반도의 끝은 그리스로 이어지게 된다. 프레자마성을 출발하여 크로아티아로 달린다. 어디가 어딘지 알수는 없지만 지나는 풍경만큼은 시원하니 보기 좋다. 블레드를 출발하지 1시간 10분후 국경이라고 한다. 국경을 통과하며 보이는 모습은 크게 변한게 없다. 국경을 통과한후 4~5분이 지나 주유소가 나온다. 역시 가이드가 분명 크로아티아에서 기름을 넣을 것이라고 하더니 맞다. 여기서 연료를 잔뜩 채운다. 이사장님 따져보더니 85만원어치라고 하던가 했다. 우쨋든 여기서 기름 넣는사이 댕겨 올곳 댕겨 오고 다시 진행을 하니 이제 모습이 많이 바뀐다. 큰산들이 보이지 않고 나지막한 산들과 잡목으로 이루어진 모습들이다. 소나무가 상당히 많은 것이 특색이다. 집들은 여기도 주홍색일색이다. 목초지가 많고 푸르게 자라고 있는 옥수수밭도 다수 보인다. 간혹 흰색의 바위산도 보이며 양떼가 모여있는 장면도 목격이 된다, 크로아티아는 우리나라 4/1정도의 면적으로 인구수는 400만명이니 작은 나라다.

이제 버스는 산길을 달리기도 하고 평지 길을 달리기도 하며 달려 1시간 40분후 휴게소에서 두 번째 휴식후 다시 달리면 산골짜기 시골길을 따라 달려 큰산고개를 넘게 된다. 좌측으로 플리치비체가 있는 것 같다. 오면서 시골마을 풍경을 보니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젊은이들은 도시로 나갔는지 빈집이 허다고 무너져 내린 집이 반은 된다. 목초지도 대부분 자연상태 그대로라 오랫동안 손이 가지 않은 것 같다. 고개를 넘어 지그재그로 한동안 내려서면 삼거리에 좌측으로 호텔(Hotel Lyra) 이 나온다. 시골마을에 번듯한 것은 여기 호텔뿐이다.

고개를 넘기 전 좌측으로 가면 플리체비체 였었다.

 

저녁식사 19:15 ~20:00

여기는 다른 곳에서 식사를 할때도 없기 때문에 호텔식당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우리 뒤로 오토바이 부대도 이곳에 자리를 틀기로 했는지 속속도착한다.

식사는 빵한바구니, 야채 한그릇, 주메뉴 송어튀김+붉은 콩+버섯으로 된 요리다.

반주로 와인 한잔(밑에 깔리는 수준, 이사장님이 낸것임)을 했다.

방은 깨끗한 편이었고 창문을 열면 뒤편으로 침엽수림이 보인다.

여기도 샤워부스는 크지 않았던 것같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마지막 여행지인 크로아티아까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