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0년 부터)

1353 동유럽6개국 여행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2023.08월28일 월요일~2023.09월10일 일요일(12박14일)제1일차 2023년 8월 28일가는 날 날씨: 비, 제2일차 2023년 8월 29일 ..

산야55 2023. 9. 22. 13:05

동유럽6개국 여행

체코, 오스트리아, 독일,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헝가리

2023.0828일 월요일~2023.0910일 일요일(1214)

 

팀명 : 우리들 세상

참석인원 : 인솔자 이강우님

한의수, 이용진, 김동희, 이용석, 김선순, 박종진, 이선, 신희종, 신영란, 황선 복, 신예옥, 이규현, 신광자, 박옥규, 안영자, 윤순진, 박순녀, 박경자(18)

 

1일차 2023828일 날씨: 비 가이드 이재현님

청주 산업단지 입구 출발 04:55 송산휴게소 06:17 ~06:29 인천보문항 식당 아침식사 07:10 ~07:30 인천 재2공항 도착 08:00 짐부치고 탑승권 09:00 검색대 통과 및 출국수속 236번 게이트 도착 09:40 비행기 탑승 10:40 인천공항 출발 11:43(23분 연) -인천공항 이륙 11:54 항공기 B777-300기종. 인천~프라하 8245km, 11시간 45분 운행, 기내식 2번 제공 프라하 공항 착륙 16:55 프라하공항 도착 17:00(5분 연착) 입국수속후 짐찾고(박순녀님 트렁크 파손 교환) 현지가이드 이재현님 프라하공항 출발 08:05 궂은비는 내리고 버스 이동 프라하 시내 도착 08:45 도보 프라하 시내 식당 도착(Zlata Lyra) 19:10 ~19:55(, 스프, 갈비, 달달한 후식) -시내구경 구시청사 천문시계탑 틴 성모마리아 교회 볼타바강(카를교) -우측으로 돌아서 버스타고 08:54 호텔도착 21:20분 도착(Clarion Comgress 호텔)

 

2일차 2023829일 날씨: (프라하성, 체스키크롬로프, 맆노 트리탑 트라이얼)

기상 05:00 아침식사 07:00 -Clarion Comgress (클라리온 호텔) 출발 07:55 버스이동 프라하성도착입구 버스 하차 08:29 프라하성 도착 08:35 중앙탑(평민, 귀족, ) -뒤편 프라하시내 조망지점 성비투 대성당등 관람 프라하성출발 09:42 ---가이드 이미아님으로 교체 ----버스이동 ---고속도로 휴게소 11:35 ~11:45 체스키크롬로프 주차장 13:10 CRCMA식당도착 13:20 식당출발 14:15 시내관광 및 크롬로프성투어 망토다리 체스키크롬로프 주차장 15:26 ~15:27 버스이동 맆노 트리탑 트라이얼(리프노 나트 볼타보우전망대) 주차장 16:07 셔틀버스승차 17:03 트리탑 하차 17:15 트리탑 트레킹 17:18 ~17:38 리프트 상부출발 17:45 리프트 하부도착 18:00 버스출발 18:15 오스트리아 린츠 Josef Linz 식당 도착 19:41~식당출발 21:05 코트야드 메리어트 린츠 호텔 도착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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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체코 공화국(체코어:Česká republika체스카 레푸블리카), 줄여서 체코(체코어:Česko체스코)중앙유럽에 있는공화국이다. 북서쪽과 서쪽은독일, 남쪽은오스트리아, 남동쪽은슬로바키아, 북동쪽은폴란드와 닿아 있다. 수도는프라하이고, 주요 도시로는브르노,오스트라바,즐린,플젠등이 있다

폴란드와 더불어 동유럽에서는 공업이 발달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체코는 크게보헤미아(체히),모라바,실레시아(슬레스코) 세 지방으로 나뉜다. 체코는1993 체코슬로바키아로부터 분리되었다.1999 312에는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에 가입하였으며,2004 51에는 유럽 연합의 정회원국이 되었으나 아직 유로존은 아니다. 이 나라의 민족 구성은 대부분이 서슬라브족에 속하는 체코인으로 인구의 90% 정도를 유지한다. 슬로바키아인은 두 번째로 주요한 민족이다.

 

국명[편집]

체코라는 이름은 체코를 형성하는 3개의 지방 가운데 하나인 보헤미아의 체코어 표기인 '체히'(Čechy)에서 유래된 이름이다.1993 체코슬로바키아가 무너진 뒤에 수립된 체코 공화국은 '체스코'(Česko)라는 체코어약칭을 사용한다.

1993년 체코 외무부가 체코를 뜻하는 약칭으로 체키아(Czechia)를 사용할 것을 제안했으며 2016년부터 공식적으로 체키아를 짧은 영어이름으로 채택했다

 

역사[편집]

9세기말부터14세기초까지 프르셰미슬 왕조가 다스렸다. 이후룩셈부르크 왕조가 다스리는 중에 카렐 1가 신성 로마 황제 카를 4로 즉위하였다.

15세기 이후 후스파종교 개혁이 격렬하게 전개되었다. 17세기의 보헤미아는 로마 가톨릭 국가였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 하에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 교도들 사이에 여러 차례 불협화음이 일어났으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개신교도의 세력이 크다는 것을 인식하고 신앙을 인정해 주었다. 이후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겸 보헤미아의 왕마티아스(황제 재위: 1612~19, 보헤미아 왕 재위: 1611~17)도 양쪽 진영에 대한 융화 정책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열렬한 로마 가톨릭 교회 신자인페르디난트 2는 보헤미아 왕에 선출(재위: 1617~37)되는 동시에 개신교에 대한 탄압을 실시했다. 그 와중에 프라하 대주교령에 있던 개신교 예배당들이 철거되었고, 개신교 신자들은 이에 항의하였으나 묵살되었다. 결국에는 탄압에 반발한 개신교 시민들이 프라하의 왕궁을 습격해 국왕 고문관 3명을 왕궁의 창문에서 던져버리는 프라하 창밖 투척사건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으며(1618), 개신교 신자인 보헤미아 제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단결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이것이30년 전쟁(1618~48)의 시발점이 되었다.

반란군 제후들은 다른 개신교 제후에게 협력을 호소하였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찬성을 얻어냈다. 황제마티아스가 사망하고(1619), 보헤미아 왕 페르디난트 2세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도 겸임(재위: 1619~37)하게 되자, 보헤미아의 제후들은 페르디난트 2세를 황제로 인정하지 않고, 개신교 제후 연합의 중심적 존재였던 팔츠 선제후 프리드리히 5를 의회에서보헤미아의 왕(재위: 1619~20)으로 선출하고 황제에게 대항하였다

하지만 개신교 동맹측이개혁파 교회(Reformed church)루터교회의 대립으로 발이 묶인 사이, 황제페르디난트 2는 로마 가톨릭 교회 세력의 연대를 강화해교황의 원조금과 스페인-합스부르크 왕가의 지원군 및 바이에른 대공막시밀리안 1(재위: 1623~51) 등의 로마 가톨릭 교회 제후의 원조를 받아틸리 백작 요한 체르클라에스를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군대를 파견했다.

사실상 로마 가톨릭 교회 동맹세력이 우위를 차지함으로써 이 시점에서 승부는 이미 결정되었다. 1620 118개신교 동맹측의 보헤미아군은백산(白山) 전투에서 틸리 백작이 이끄는 로마 가톨릭 교회 동맹군에게 괴멸적인 대패를 당했고, 보헤미아의 수도프라하는 저항하지 못하고 항복했다. 이후합스부르크 왕가의 보헤미아 지배는 강화되었다. 곧이어 1627년 신()영지조례법에 의해 의회는 권력을 모두 빼앗기게 되어 사실상 속령이 되었다. 이로 인해 다수의 보헤미아 귀족 및 개신교도가 망명하여 유럽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합스부르크 왕가에 의한 재산몰수 및 국외추방이라는 가혹한 전후 처리는 다른 개신교 제후의 이탈을 초래하게 되었고, 전쟁이 장기화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전쟁이후신성 로마 제국로마 가톨릭지배가 강화되었고 그대로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帝位)를 독점한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체코를 1918까지 지배하였다

이후체코슬로바키아로 독립하였으나 1938에 결국 뮌헨 협정을 통해서 나치 독일에 합병되어 2차 세계 대전이 끝날 때까지 1939보헤미아-모라비아 보호령으로서 점령 통치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1945소련에 의해 공산화, 사실상 위성국인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 공화국이 되었다. 이에 반발한 민중에 의해 1968프라하의 봄으로 대표되는 반체제 운동이 있었으나 군사개입으로 실패했다.

1980년대 후반 중앙유럽 민주화 물결을 타고 비폭력 혁명인 벨벳 혁명을 통해 민주화에 성공한 후, 국민 투표를 통해 1993부터 슬로바키아와 분리하여 체코 공화국이 성립하였다.

현재 체코의 인구수는 1050만명이며 세계88, 면적은 7887101ha로 세계 118(대한민국은 10041259ha), GDP 2823억 달러로 세계 46위 종교는 무교34.5%, 카톨릭 10.4%, 개신교1.1%등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프라하

체코 중서부 블타바강연변, 엘베강과의 합류점 가까운곳이 있다. 체코의 최대의 경제 문화 정치 중심도시이다. 기후는 대륙성 기후영향을 받는 해양성 기후로 여름은 햇볕이 많으며 겨울에는 비교적 온화하다. 공업도시로서의 프라하에는 100여개 기업이 있고 전국 공업생산의 10%가량을 생산한다. 식품공업으로는 스미호프의 맥주, 프라하 햄이 유명하고, 의복 제지 화학공업등이 영위되고 있다. 유럽철도의 중심지로 유럽의 각국과 연결되며 하항이다.

주요 관광지는 카를교, 구시가, 프라하성등이 있다. 인구수는 약215만명이다.

 

프라하성

체코를 대표하는 국가적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거대한 성이다. 9세기 말부터 건설되기 시작해 카를 4때인 14세기에 지금과 비슷한 모습을 갖추었고, 이후에도 계속 여러 양식이 가미되면서 복잡하고 정교한 모습으로 변화하다가 18세기 말에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프라하 구시가지의블타바강() 맞은편 언덕에 자리잡고 있다. 길이는 570m,너비는 128m이며, 9세기 이후 통치자들의 궁전으로 사용된 로브코위츠 궁전 외에 성()비투스대성당·성조지바실리카·성십자가교회 등 3개의 교회와 성조지수도원 등 다양한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 건설될 당시에는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지어졌으나, 13세 중엽에 초기 고딕 양식이 첨가되고, 이어 14세기에는 프라하 출신인 카를 4세에 의해 왕궁과 성십자가교회 등이 고딕 양식으로 새롭게 건축되면서 이 때부터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 되었다. 그 뒤 블라디슬라프 2세 때 후기 고딕 양식이 가미되고, 1526년 합스부르크왕가가 이 지역을 지배하면서 다시르네상스양식이 도입되었다. 그러다 바로크시대인 1753년부터 1775년 사이에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었는데, 시작에서 완성될 때까지 900년이나 걸렸다.

1918년부터는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면서 내부 장식과 정원이 새롭게 정비되었다. 왕궁뿐 아니라 성 안에 있는 모든 건축물들이 정교한 조각과 높이 솟은 첨탑, 화려하고 다채로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유럽에서도 중요한 역사 유적으로 평가받고 있다.프라하뿐 아니라 체코·유럽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이며, 특히 성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네이버 지식백과]프라하성[Prague Castle] (두산백과 두피디아, 두산백과)

 

체스키크롬로프

체코의 남보헤미아주에 위치한 인구 13,000(2019년 기준)의 작은 마을. 아름다운 풍광과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유명한 체스키 크룸로프 성을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이다.

 

13세기 후반 블타바(Vltava) 강변에서 보헤미아 지역의 무역 거점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성과 마을의 건축이 시작되었다. 성과 마을의 건설이 완료된 후에는보헤미아 왕국의 귀족이었던 로쥼베르크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1602합스부르크 가문신성 로마 제국 황제 루돌프 2 [2]에게 매각되었다가, 신성 로마 제국의페르디난트 2때에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령인오스트리아 대공국의 에겐베르크 가문[3]에 양도되었다. 1719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슈바르첸베르크 가문의 소유가 되었다.

1차 세계대전
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기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였으며, 1938년부터 종전(1945)까지는나치 독일의 지배 하에 있다가 종전 후 다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중세 이후 주민의 다수를 이루었던 독일계 주민들은 이 때 전원 추방되었다.

공산당의 지배 하에 있던 시기에 마을의 상당수가 훼손되었지만, 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의벨벳 혁명이후 공산주의 정부가 무너지면서 마을의 대부분이 다시 복구되었다.

냉전 이후인 1992년에 마을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유럽에서 인기 있는 관광지로 알려지며 체코의 대표적인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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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차 2023828일 날씨:

기나긴 코로나로 연기한 동유럽여행이 이제 코앞으로 닿아왔다. 손가락을 구부리며 하나둘 줄어드는 날을 지나 이제 여행에 앞서 사전설명회를 한다고 한다. 몇분을 제외한 모든사람들이 모여 규현이 형님내외가 제공한 식사 및 주류로 화기애애한 설명회를 마치고 며칠 남지않은 날을 기다려 이제 짐도 꾸리고 빠진 것이 없나 다시 한번 더 점검을 한후 드디어 828일 아침 0455분 버스가 인천공항으로 출발을 한다. 28인승 리므진버스로 편안하게 뜬눈으로 잠 못주무신 분들 잠도 자며 진행하여 송산포도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후 다시 달려 인천에 있는 보문항이라고하는 식당에서 김치찌개로 아침식사 든든하게 마친후 30여분을 더 달리면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된다. 청주에서 출발하여 3시간 05분이 걸렸다. 아침식사시간 포함이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서울의 두분을 기다려 잠시후 짐을 부치고 뱅기표 받아 들고 검색대를 통과하여 들어간후 이제 마지막으로 출국수속 간단히 여권대고 5초간 인지대고 5초간 있으면 입국수속도 완료를 하게 된다.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어 활보를 하며 입국장으로 들어가 우리가 탑승할 236번 게이트에 도착하니 가장 끝 지점으로 에고 멀다.

 

프라하공항 도착 17:00(5분 연착)

236번 게이트에 도착을 하니 보딩시간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여밖에 없다. 어쨌든 여기저기 돌아댕기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커피도 한잔씩 마시며 시간을 보낸후 우측편 236번 게이트로 한사람 한사람 뱅길로 들어간다. 뱅기는 B777-300기종으로 중형쯤되는 것 같다. 탑승인원 338명 최대 운항거리 13033KM, 순항속도 901K/H, 항공기 길이63.73M, 날개폭 60.93M, 항공기 높이18.76M, 좌석수는 338석으로 되어 있다. 비행기 편명은 KE969, 우리좌석은 35D로 중간쯤에 대부분이 함께 자리가 배치되었다.

비행기 출발시간은 1120분이지만 공항 사정인지 23분이 늦은 1143분 출발을 하여 10여분후 인천공항을 날아서 프라하 공항으로 진행한다.

인천에서 프라하까지는 8245KM11시간 45분이 걸린다고 한다. 중국영공을 어느 정도 지나서야 비행기가 안정을 찾고 자유가 주어진다. 이제 기내식도 제공되고 주류도 약간씩 제공이 된다. 장거리 비행때는 술한잔씩 하고 주무시라고 술은 기본으로 준다. 기내식은 자국기 인고로 한식이 제공되어 좋다. 비빔밥 빵 등으로 두 번이 제공 된다. 첫 번째 기내식이 제공된후 한잠주무시라고 불을 끄고 항공기내를 어두컴컴하게 하여 진행하면 그래도 눈을 감았다 떳다를 하나 어느순간 잠이 들어 눈을 뜨니 비행기는 중국 영공을 통과하여 동유럽쪽으로 기울게 된다. 이후 두 번째 기내식이 제공되고 좀 더 가면 장장 11시간 20여분을 날아서 프라하 공항에 내려앉게 된다. 현지시간으로 17시 프라하 공항에 도착하여 길게 늘어선 줄에 서서 대기를 하여 입국수속은 여기도 간단하게 진행을 한다. 모든 국가가 이제는 여행을 편하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간소화를 시켜 출입국 수속이 옛날처럼 번잡하지 않아 좋다. 입국수속후 짐을 찾아 나오는대 그래도 시간이 다소 많이 걸려 1시간이 걸려서야 한국인 현지 가이드인 이재현님을 만나게 된다.

 

프라하 시내 식당 도착(Zlata Lyra) 19:10 ~19:55(, 스프, 갈비, 달달한 후식)

프라하공항에서 짐을 찾고 나니 우리 박순녀 여사님의 트렁크가 박살이 나서 이사장님하고 교환하러 가느라 시간이 다소 더 많이 걸렸다. 이럴 때 사장님모시고 가니 해결을 하지 우리끼리 가면 우찌 할지 몰라 당황할 것 같다. 에고 영어 한마디는 배워둘걸 ~~

이제 무신 소용이 있나 그냥 따라 댕기는 거지뭐~~

트렁크 교환하고 현지 가이드 이재현님의 안내로 공항까지 마중나온 대형버스에 승차를 하여 프라하 시내로 들어간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궂은비는 주룩주룩 내려서 우중중하고 험상궂다. 가지나 낮선 먼나라 까지 와서 우중충하게 비가 내리니 기분 아주 안좋다. 우쨋든 대형버스를 타고 40분을 이동하여 프라하시내 뒷골목 적당한 지점에서 내린다. 이후 비를 맞으며(우비는 입었다) 우리는 이재현 가이드의 뒷꽁무니를 따라 졸졸졸 빠른 걸음으로 먼나라 이국땅에서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따라 붙는다. 뒷골목을 따라 진행하여 25분을 진행하여 프라하 구시가지 구청사 시계탑부근에 있는 Zlata Lyra라고 적힌 길다란 통로를 따라 들어가는 식당에 도착을 한다. 우리가 마지막 손님인 듯 다른 손님은 없다. 우리나라 같으면 지금시간이 한창일텐데 여기는 식당이 일찍 파하는 것 같다. 2015년 동유럽투어때도 여기 프라하 시계탑 인근에서 식사를 했던 것으로 기억을 한다. 그때는 한낮이 어서 사람도 많고 북적였었다. 식사는 바구니 하나가득 담긴 빵이 나오고 이어서 스프가 나오고 굵직한 뼈에 살이 붙은 갈비가 나왔다. 맛이 괜찮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맥주한잔 아닌가. 식사가 끝나고 달달한 후식이 나온다.

 

프라하 구시가지 투어 19:55 ~20:50

대충 먹고 나서 식사를 끝내고 바쁘게 나가 얼마안가 구시청사 천문시계탑에 도착하니 20시에 종이 울리고 있다. 이 시계는 1410년에 최초로 설치되어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된 천문시계이며, 여전히 작동을 하는 천문시계로서는 가장 오래된 시계라고 한다.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구시가 시청 남쪽 벽에 설치되어 있으며 시계 장치는 세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천문 눈금판으로, 하늘의 의 위치와 다양한 천문학적 정보들을 표시한다. 두 번째는 '사도들의 행진'으로, 매 시간마다 12사도의 모형과 죽음을 형상화 한 해골의 모형 등 여러 움직이는 조각품들이 나타난다. 세 번째는 달력 눈금판이다.

우리는 조금 늦은 탓인지 종이 울리고 12사도가 나타나는 마지막 장면을 목격한다. 매정시가 되면 많은 사람들이 천문시계의 퍼포먼스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곳이다.

2차 대전 당시 화재로 상당부분 훼손된 것을 복원과 증축공사를 하여 지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프라하 천문시게는 600년전 만든 상태 그대로이며, 12사도의 인형과 함께 2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위쪽 시게는 천문 눈금판으로 천문학적 정보를 표시하고, 천동설에 기초해서 만든 천문시계의 가장 밖은 체코의 고대시간표, 안쪽의 로마자는 하루 24시간을 표시하며, 안쪽으로 일출과 일몰시간, 낮과밤을 나타낸다. 오른쪽 해골과 기타치는 사람, 지팡이를 짚은사람, 거울을 보는 사람은 인간의 탐욕, 욕심, 증오를 나타낸다.

매시간 정각이 되면 해골이 종을 치는데 탐욕과 욕심에 찬 인간에게 죽음이 다가옴을 알린다. 그리고 위에 두 개의 창문이 열리며 12사도가 나타나며 이 모습을 지켜본다. 마지막으로 닭이 훼를 치면서 삶이 시작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닭이 울지 않는 경우 프라하 시내에 변고가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천문시계는 유럽상업의 중심이었던 프라하에서 무역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글을 모르는 상인들을 위해 프라하 시의 요청으로, 1410년 시계공 미쿨라스 천문학 교수 얀신델과 1490년 하누쉬에 의해 설치되었다. 정교한 천문시게의 명성이 전 유럽으로 퍼지고 시계 제작 요청이 쇄도 하자 설계도의 유출을 우려하여 시계공의 눈을 지져 버렸다. 우연히 이야기를 듣게 된 하우쉬는 시계탑으로 올라가 더듬거리며 천문시계의 중요한 부품을 망가뜨렸다. 이후 시계는 400년 동안 멈추었다가 1860변부터 거짓말처럼 작동하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앞쪽으로 높이 80M의 두 개의 탑이 우뚝솟아 있는 틴성모마리아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2015년도에 왔을때는 이곳에서 커피도 마시고 시장구경도 하고 시간이 많았는대 이번에는 시간여유가 없다.

 

시계탑을 잠시 구경하고 골목을 따라 부지런히 걸어 가면 볼타바강앞에 닿는다. 프라하 시내에는 유럽전역이 그러하지만 전차가 많이 다닌다. 다방면으로 연결이 되는 전차와 그 뒤를 따르는 차량들이 뒤엉켜서 가는 모습을 보면 어지어울 지경이다. 어떻게 전차와 차량들이 같은 도로를 따라 사고 없이 잘 다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우리도 예전에 프라하성에서 전차를 타고 볼타바강변까지 내려온적이 있다. 볼타바강 입구에는 카롤4세의 동상이 있고 14세기에 지어졋다는 카를교 탑이 있다. 여기서부터 카를교를 따라 진행하면 좌, 우측으로 유유히 흐르는 볼타바강변으로 은은히 빛나는 야경이 보기 좋다. 카를교에는 30개의 성상이 조각되어 있으며 이중 네포무크 동상은 소원을 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이다. 머리에 별 5개가 있는 성상이다. 청동판에는 네포무크의 순교와 개가 조각되어있는대 쓰다듬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어 반질반질하게 달아 있다.

네포므크 신부는 카를4세의 아들 바츠라프 4세가 통치할 때 프라하 주교로 어느날 왕비가 고해 성사를 통해 임신한 사실을 털어놓자, 왕비의 외도를 의심해 고해성사의 내용을 이야기 하라며 추궁하지만 발설하지 않는다. 이에 화가 난 왕은 카를교 다리 아래로 던져 버렸다. 신부는 내 마지막 소원을 이 다리에 바치노니이다리에 선자는 소원을 이뤼라라며 다리에서 떨어지기 직전 축복하였고, 며칠 후에야 시신이 강물에 떠올랐다고 한다.

이때 강물에 5개의 별이 함께 떠 올랐다고 한다.

이 자리가 네포무크 신부가 떨어진 자리로 사람들은 신부가 떨어진 이곳에 십자가 표시를 세우고 이후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이렇게 하여 카롤교의 30성상의 모습을 관람하고 다리를 건넌후 우측으로 돌아서 으스스한 골목을 따라 진행하면 한동안 진행하여 버스가 있던 자리로 돌아와서 시내구경을 마친다.

간단한 일정이지만 긴 비행 끝에 비가 내리는 시내구경은 조금은 벅찬 여행이 었다.

 

 

호텔도착 21:20분 도착(Clarion Comgress 호텔)

시내구경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와 버스를 타고 25분 가량을 전차길을 따라르고 널찍한 도로를 따르기도 하면 진행을 하면 조금은 변두리인 듯 큼지막한 호텔에 닿는다. Hotel Clarion Congress(클라리온 콘그래스호텔)이다.

큼지막한 침대 2개와 욕조가 딸린 화장실로 4성급호텔이다.

모두가 시차도 있고 첫날이라 잠이 안올듯하다.

 

 

2일차 2023829일 날씨: (프라하성, 체스키크롬로프, 맆노 트리탑 트라이얼)

기상 05:00 아침식사 07:00 -Clarion Comgress (클라리온 콘그래스호텔) 출발 07:55

오늘 새벽 2시경에 잠시 깨어 잠시 오질않아 카톡하며 시간 보내다가 05시에 일어나 세수하고 짐정리하고 해도 시간이 안간다. 에고 밖으로 나가 봐야 여기는 뭐 별로 볼 것도 없고 밖에는 오늘도 궂은비가 내리고 있으니 나갈수도 없다. 지루한 시간 끝에 아침식사시간이 된다 07시 정확히 입장을 힌다. 식당입구에 매달린 볏집으로 엿은 고추와 마늘이 여기도 있다니 신기하다. 술통도 보인다. 식사는 뷔폐식으로 마음껏 가져다 먹으면 된다. 베이컨, 햄종류가 안보인다. 우짠일이여~` 먹음직 스럽게 볶은 야채, 콩등이 들어간 요리에 굵지한 소시지도 두조각, 계란 후라이 2개로 오늘 아침은 간단히 먹고 나온다. 식사후 짐을 챙겨 가지고 나왔으니 양치는 화장실로 들어가 간단히 하고 0755분 호텔을 출발한다.

우리가 타고 갈 버스는 어제 그 버스다. 크로아티아 국적의 버스로 우리가 투어하는 내내 바뀌지 않고 우리와 함께할 버스와 훌쭉하고 키가 훤칠한 기사님이다.

 

프라하성 관람 08:35 ~09:35

호텔을 출발하여 버스로 이동을 하여 프라하성입구 전차선옆에서 내린다. 여기서 잠시 걸어 들어가면 프라하성에 닿는다. 프라하성은 대통령이 현재도 함께 사용하는 공간으로 경찰들이 성을 지키고 있다. 체코의 대통령은 큰 권한은 없다고 한다. 내각 임명권등이 없으며 외교정책에 대한 발언권이 있으며 전쟁상황, 국가 재난과 같은 비상시에는 내각을 구성할수 있다. 내각각료 개인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수 있으며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는 인사가 뽑히면 승인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취임을 막을수도 있다. 체고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체코 총리가 실질적인 국가원수라고 한다.

프라하성으로 들어가 우측으로 돌아서 들어가면 프라하시내가 잘 보이는 조망지점이 나온다. 예전에도 이곳에서 사진을 많이 찍던 장소다. 여기서 사진도 찍고 조망을 즐긴후 다시 돌아와 안으로 들어가면 중앙탑이 나온다. 가장 하층에 평민을 가리키는 조형물이 있고, 가운데 귀족들이 맨 위쪽에 왕이 군림을 하고 있는 형상이라고 한다. 여기서 9시에 개방을 하는 성비투 대성당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권을 들고 차례로 대성당으로 입장을 한다.

역시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스테인드그라스에 대한 설명이 주다. 체코의 국민화가 알퐁소 무아의 작품으로 까롤4세의 빨랑색옷을 입은 사람을 잘 보라고 한다. 32천개의 조각으로 만든 장미의 창, 정면으로 최후의 심판등 여러스테인드 그라스 작품이 있다. 천장은 십자가 형태이며 건물의 반은 16세기 전의 지어 졌으며 반은 그후에 지어진 건물로 잘보면 표시가 난다고 한다. 성비투스 대성당은 1344년 카를4세 때 착공하여 1929년에 완공이 되었다고 한다. 16세기 중엽에는 르네상스식 첨탑이, 17세기이후에는 둥근 모양의 바로크식 지붕이 완성되어 붙여진 건물이라 한다. 1753~1775년 사이에 오늘날과 같은 신고딕양식의 완성된 형태를 갖추었다고 한다. 성안에는 체코의 왕과 귀족 대주교의 유골이 안치되어 있으며 성당 중앙에 합스부르크가의 페드디난트1세의 묘가 있고, 뒤쪽으로 7개의 예배당이 있으며, 제단 오른쪽에는 카를교에서 죽임을 당한 성인 네포무크이 묘가 있다. 네포무크의 성요한은 보헤미아왕국의 작은 도시 포쿠스에서 태어나 시토회 수도회에 들어가면서 네포무크로 개명되었으며, 프라하 가렐대에서 공부하다가 교회법을 공부하기 위해 파도바 대학교에 유학을 하였다.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보헤미아로 돌아와 프라하 대주교 총대리가 된다. 이후 소피왕비의 고해성사를 듣게 되는데, 왕비의 부정을 의심한 벤체슬라우스 왕이 그내용을 밝히라는 요구에 거부하여 고문을 당하다가 혀를 잘라 블타바강에 내던져 죽임을 당하게 된다.

네포무크 성상에는 오른손에 십자가상을 들고 있으며 왼손으로 입을 막고 있는 모습으로 고해의 비빌을 누설하라는 강요를 거절했음을 의미한다. 머리에 있는 다섯 개의 별로 장식된 후광이 있다. 그가 블타바강에 던져진 다음날 다섯 개의 별과 같은 광채가 떠올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서이다. 이 광채 때문에 시신이 발견되고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또 하나 전해오는 이야기는 그가 죽고 몇십년이 지난후 유골을 성 비투스 성당에 옮기기 위해 관을 열어보니 다른 신체는 모두 부식되었으나 잘린 혀는 그대로였다고 한다. 그의 유골은 성 비투스 성당 내 약22돈의 은관에 안치되었다. 나오면서 좌측으로 보물이 나왔다는 비밀의 장소는 들어갈수 없었다. 이렇게 하여 성비투스 대성당을 관람하고 프라하성 관람을 마친다.

 

체스키크롬로프 주차장 13:10

프라하성 관람을 마치고 걸어 나와 전차정류장앞에서 버스에 승차를 한다. 이곳에서 어제 밤부터 대략 하루동안 수고해주신 이재현 가이드와 이별을 하고 나이 지긋한 몸짐이 조금은 좋은 이미아님으로 교체가 된다. 28년동안 가이드 생활을 했다는 배테랑이라고 한다. 이제 버스는 체코의 두 번째 투어 장소인 체스키크롬로프로 이동을 한다. 시내를 벗어나며 양쪽으로 펼쳐지는 널찍한 초지가 부럽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런 토지는 각종 작물을 재배하겠지만 여기는 전부가 초지다. 널찍한 초지는 트랙터로 수확한 둥그렇게 말아 놓은 대략 1톤 가량의 소들이 겨울내내 먹고 자랄 사료다. 싱싱한 목초를 먹고 자란 소가 건강하고 우유도 많이 나며 건강할 것이다. 싱싱한 우유로 만든 유제품들도 역시나 맛이 좋을 것이다. 이곳의 우유는 고소한 맛이 2배이며 요거트 버터 치즈도 맛이 좋다고 한다. 조금 짠 것을 죄외하면 정말 싱싱하고 맛이 좋은 유제품들이다. 우리나라 축산업은 미국산 사료를 사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가두워 키우는 축산법이라면 여기서는 마음대로 움직이며 싱싱한 풀을 먹고 자란 소들의 육질이니 맛이 안좋을리 없다. 우리나라도 마블링을 위주로 등급을 매길것이 아니라 진짜 유럽의 낙농법을 따라야 앞으로는 축산업이 살아나지 않을까 싶다. 땅이 작아 초지확보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

잠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쉬어 간다. 이후로로 널찍한 초지는 계속 이어지며 1시간 반 정도를 더 가서야 체스키크롬로프 망토다리앞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프라하성에서 3시간 30분이 걸렸다.

 

체스키 크롬로프 관광 13:10 ~15:26

이곳도 2015년에 왔던 곳으로 그때와 변한 것은 없다. 일단 버스에서 내려서 잠시 가면 망토다리아래를 통과하여 블타바강의 목교를 건너 구시가지로 들어간다. 좌측 아래로 보이는 것이 이발사의 다리다. 여기도 사람이 많이 모이니 항시 소매치기 조심조심 사방으로 눈을 돌리며 진행하여 광장옆 좌측 골목으로 들어가면 작은 식당이 나온다. 예전에도 이곳에서 흑맥주 한잔하며 식사를 하던장소다. 첫 번재로 둥그런 빵속에 넣은 스프가 있는 맛있는 음식이 나오고 이후 주메뉴는 소고기 직화구이와 감자 2, 절인양배추, 길다란 고추, 걸레빵같은 것이 든 음식이다. 흑맥주한잔에 소고기 직화구이 맛이 일품이다. 후식으로 달달한 케익도 좋다. 식사가 끝나고 광장으로 나와 작은 탑에서 설명을 한다.

유럽의 만은 것중 하나가 탑과 성이다. 주변에 대해서 대충 설명을 듣고 골목을 빠져나오면 이발사의 다리에 닿는다. 블타바강을 건너는 작은 목교다.

스보르노스티 광장과 체스키크롬로프성을 잇는 이다리는 평범한 목조다리인 것 같지만 전해 내려오는 전설로 유명하다. 16세기 말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였던 루돌프 2세는 정신 질환이 있던 줄리어스 왕자를 체스키크롬로프로 요양을 보냈다. 그 곳에서 줄리어스 왕자는 이발사의 딸 마르케타을 보고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했으나 정신병으로 인해 아내를 살해했고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살인자를 찾겠다며 무고한 마을 주민들을 하루에 한명씩 죽이기로 하고 이 일을 실행에 옮긴다. 이발사는 마을 사람들의 억울한 죽음을 지켜볼 수 없어 본인이 살해 했다고 거짓자백을 한후 처형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마케르타를 죽인건 정신병을 앓고 있던 줄이러스 왕자였다. 나중에 이 모든 사실을 안 루돌프 2세는 1608년 줄이러스를 교수형에 처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은 이발소 앞에 있던 다리에서 그를 애도하기 시작하며 이 다리를 이발사의 다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발사의 다리에는 프라하 카를교에 있던 성인 네프무크의 동상도 있다.

 

체스키 크롬로프성

프라하 성에 이어서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인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고딕 양식부터 시작하여 수 차례 새로운 건축 양식들이 증축되면서 현재는 여러 양식이 복합된 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1250년 이 마을의 영주들이 고딕 양식의 성을 세웠는데 그중 가장 힘 있는 비트코프치(Vítkovci) 가문을 대표로 내세워 비트코프치가의 문장이었던 5송이의 장미가 이 성의 상징적 의미가 됐다.

1302년 비트코프치 가문의 후손이 없자 친척이었던 로젠베르그(Rosenberg) 가문이 뒤를 이어 체스키크룸로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면서 고딕 양식이었던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증축했다. 16세기에 들어와 체스키크룸로프 성의 상징인 흐라덱(Hrádek)이 세워지게 되고 17세기 초 합스부르크가의 황제였던 루돌프 2세(Rudolf II)가 성을 매입하였는데 30년 종교 전쟁이 끝난 후 합스부르크가의 후손인 페르디난드 2세(Ferdnad II)가 17세기 말에 오스트리아 에겐베르그(Eggenberg) 가문에게 이 성을 선물해 주면서 에겐베르그 가문이 바로크 양식의 성을 추가로 증축했다.

하지만 에겐베르그 가문도 대를 이을 사람이 없게 되자 얼마 못 간 18세기 초 또 다른 가문인 슈바르젠베르그(Schwarzenberg) 가문에게 넘어가게 되고 그 후손들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체스키크룸로프 성을 마지막으로 개조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인 1950년 성은 결국 국가로 귀속됐다. 내부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 진행되며 예배당과 각종 방을 돌아보는 코스와 미술 작품을 돌아보는 코스가 있다.

 

이발사의 다리를 건너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체스키(체코의) 크롬로프(습지) 성이 나온다. 잠시 올라서면 옛날에 쓰던 소방기구들, 포로 쓰던 동그란 돌덩이들이 있으며 성곽아래로 곰도 보인다. 이렇게 올라서면 성곽으로 올라가는 곳이 나온다. 이곳은 예전에 올라가지 않은 곳이다. 입장료가 필요한 곳이다. 빙글빙글 돌면서 성 꼭대기로 올라간다. 쉽지는 않다. 올라가면 종루도 보이고 창문으로 조망도 트이기도 한다. 이렇게 꼭대기로 올라서면 성아래 마을의 모습이 내려보인다. 다시 내려와 진행하면 분수대도 보이고 손님맞이 방이라고 하는 곳도 지나고 적을 속이기 위해 만들었다는 속임수 창문도 있는 곳을 지나며 예전에 올라서서 사진 찍다가 혼을 난 곳을 지나서 가면 성을 모두 통과하여 내려서는 지점을 조금 더 진행하여 좌측으로 조망이 매우 좋은 곳에서 사진도 찍고는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망토다리 앞에 닿는다. 망토다리는 체스키크롬로프성을 둘러싼 망토모양의 다리로 과거 성을 보호하기 위한 요새 역할을 한곳으로 15세기에는 목조다리로 지어졌으나 재건을 통해 석조기둥 위에 3층규모 하치를 덮은 것에서 망토다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망토다리를 마지막으로 관람후 잠시 걸어나오면 주차장에 닿는다. 이렇게 하여 체스키 크롬로프의 관람을 마친다. 체스키크롬로프 관광중에는 비가 소강상태로 오지를 않아 햇살은 나지 않았지만 깨끗한 모습의 시내의 모습과 주변의 모습들을 볼수 있었다.

 

버스이동 맆노 트리탑 트라이얼(리프노 나트 볼타보우전망대) 주차장 15:07

체스키 크롬로프에서 체코의 마지막 일정인 맆노 트리탑 트라이얼(리프노 나트 볼타보우전망대)로 이동을 한다. 이동시간은 40분이다. 잘 정돈된 체코의 목초지를 지나고 전나무와 독일가문비나무가 쭉쭉 뻗은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커다란 리프노호수가 나온다. 호숫가 길을 따라 진행하면 휴양지의 전원주택들 요트들이 많이 보이며 가장안쪽에 자리잡은 휴양지다. 그리 높지 않은 산꼭대기에 나무로 만든 전망대가 있다고 한다.

체코 남부 슈바마 산맥에 위치한 리프노 지역은 프라하에서 2시간 30, 체스키크롬로프에서 40분 거리에 잇는 곳으로 현지인은 물론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유명한 휴양지라고 한다. 하이킹 사이클링, 인라인스케인트등으로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수 있는 곳이라 한다.

전망대로 올라가는 방법은 셔틀버스를 이용하는 방법,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방법, 걸어서 리프트아래로 난 길을 따라 올라는 가는 방법등이 있다. 우리는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간다고 한다. 체르키크롬로프에서 소강상태를 보이던 비가 이제 많이 오기 시작한다. 셔틀버스는 얼마만큼있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비를 맞기도 하고 처마밑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면서 대략 1시간을 기다린 끝에 버스가 출발하기 바로 앞서 물어서 버스에 승차를 하여 1703분 전망대로 향한다. 버스는 10분을 조금 더 지나 상부 전망대 승강장에 도착을 한다. 내려가는 버스시간은 1730분 이후 18시에 있다나 그럼 30분 마다 다닌다는 것인대 우짠댜 15분 만에 전망대를 돌아나와야 30분 버스를 타고 내려갈수 있다.

 

트리탑 트레킹 17:18 ~17:38

트리탑은 2012년에 세워진 9각형의 탑으로 빙글빙글 돌아서 꼭대기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오는 방식인데 중간에 원통형으로 만들어진 것은 입구를 막아놓아 타고 내려오는 것이 아닌 것 같다. 비가 오는 중이라 부지런히 돌면서 오르면 조형물도 보이고, 간혹 징검다리식의 시설물도 설치되어 있다. 트리탑을 돌아가며 보이는 나무수종은 하늘로 치솟은 전나무, 독일 가문비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간혹 소나무들도 많이 보인다. 부지런히 올라갔다 내려왔어도 버스시간이 지나서 내려올때는 리프트를 타고 내려왔다. 리프트 의자에 물이 고여 있어 엉덩이가 젖은 분들이 다수 있었다. ㅎㅎㅎ

이렇게 하여 트리탑을 다녀오는 것으로 체코의 일정을 마무리 하고 이제 오스트리아로 향한다.

 

체코 리프노 나트 볼타보우전망대 버스출발 18:15 오스트리아 린츠 Josef Linz 식당 도착 19:41~식당출발 21:05 코트야드 메리어트 리쯔 호텔 도착 21:25

비는 계속 이어진다. 블타보우 전망대 주차장을 1815분 출발하여 오스트리아로 향한다. 이곳에서 오스트리아 리쯔까지는 1시간 반가량이 걸린다. 체코 국경을 넘어서며 오스트리아의 산악지대로 내려서는 길가의 모습은 깔끔하게 정돈이 되어 있으며 집들도 한결 산뜻하고 잘지어졌다. 체코의 목초지가 널찍하니 크기는 하여도 오스트리아는 산악지대의 산사면으로 깔끔하게 다듬어진 초지의 모습도 아름답고 역시 부자나라는 다르다는 느낌이 든다. 커다란 마을도 지나고 다시 시골마을의 깨끗한 모습을 바라보며 진행하여 1시간 30분 조금은 우중충해 보이는 리쯔시내에 도착을 한다. 어둠이 내려앉아서 인지 골목도 좁고 그리 밟아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도 좁다란 골목으로 전차도 달리고 자동차도 같이 달리는 시스템으로 복잡해 보인다. 건물은 튼튼해 보이며 틈이 없이 빼곡이 도로변으로 늘어서 있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이동하여 Josef Linz(조세프 린츠)라는 식당으로 들어간다. 골목에는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더만 이곳 식당은 발디딜 틈이 없이 만원이다. 대부분 맥주한잔시켜 마시며 웃고 떠들고 시끄럽다. 우리는 가장 안쪽에 있는 곳으로 자리를 잡아 한동안 기다린 끝에 소고기 육수에 치즈가 들어간 스프가 나오고 한참을 기다려 맥주시킨거 나오고 이어서 돼지고기 튀김과 채소 감자에 소스 얹은 것 해서 나온다. 주문을 어떻게 했는지 하나가 남아 옆 테이블에서 맥주를 마시는 오스트리아 인들에게 넘기니 좋아한다. 후식을 먹고 이제 식당을 출발하여 20분후 린츠의 코트야드 메리어트 린츠 호텔에 도착을 하여 오늘하루도 마감을 한다. 방은 널찍하지는 않으나 욕조가 있고 그리 시설이 나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