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0년 부터)

1397 진천 만뢰산611m2023.01.03. 화요일 맑음(영하 9도)

산야55 2023. 2. 25. 07:03

진천 만뢰산611m

2023.01.03. 화요일 맑음(영하 9)

 

참석인원 : 마나님이랑 둘이서

 

청주 집 07:10  오창 신도시 미래지 공원앞 삼거리(우측으로) -507번 지방도 오창읍 원형로터리 17번국도 사석리 삼거리() -병천방향도로 보탑사입구 우측 새재기 길 보련마을 입구 주차장(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249-3, 해발 약210m) 08:25 ~08:45  보련마을 삼거리(0.387km, 225m) 08:52  이정표 삼거리(우측 도솔암 방향으로, 1.0km, 280m) 09:01 도솔암(1.30km, 330m) 09:08 마지막 민가 09:14  잡목사이로 벌목지 가시밭길(옛길 없어 짐) -우측 능선(2.10km, 465m) 09:44  벌목지 위 급경사 지대로 직등  대문리 하산로와 옛도솔암 중간지점 주능선(2.41km, 485m) 10:12 정자 10:21 만뢰산 정상(2.90km, 611m) 10:30 ~10:46 잠시후 이정표 삼거리() -내리막길  만뢰지맥 삼거리(좌측으로, 우측은 엽돈재, 3.45km, 520m) 10:59  우측 봉항리 하산로 삼거리 이정표(3.57km, 500m) 11:01  좌측 보련마을 삼거리 이정표(3.96km, 460m) 11:07  잠시 더 내려서서 안부  오르막길 좌측 첫 번째 보탑사 하산로 삼거리 이정표(4.46km, 485m) 11:17 489.7봉 표지판(4.53km) 11:19  잠시 내려섰다 안부지나 오르막길 - 두 번째 보탑사 하산로(좌측으로 하산, 4.90km, 455m) 11:37 평탄한지 이정표(우측 멱수, 좌측으로, 5.38km, 325m) 11:37  보탑사(5.84km, 290m) 11:45 ~11:55 도로따라 1.5km -보련마을 입구 주차장(7.83km) 12:18 ~12:23 차량이동 진천읍 사석리 두부촌(두부전골 중 35000+공기밥2 =37000) 12:35 ~13:05  청주 집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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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태몽이 탄생한 그곳 진천 만뢰산

[충청투데이 이심건 기자]만뢰산(萬賴山)은 만노산(萬弩山금노산(今奴山금노산(今弩山금물노산(今勿奴山)으로도 불리는데 고구려시대의 지명을 따서 그대로 붙인 이름이라고 전해 온다. 본래 고구려 땅이었던 진천 지역이 신라 땅이 된 뒤 김유신(金庾信)의 아버지 김서현(金舒玄)이 만노태수로 부임했는데 북쪽으로는 고구려군과 서쪽으로는 백제군과 선전 분투하면서 군민에게 선정을 베풀었기에 평화롭게 살았다고 해 만뢰산(萬賴山)이라 불린다는 전설이 있다. 진천군 백곡면 대문리와 진천읍 연곡리 경계에 있으며 높이는 611m이다. 진천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천안시와도 경계를 이룬다. 인근에 연곡리 보련마을이 있어 보련산이라고도 한다. 정상부에 만뢰산성이 있으며 조선 시대는 이흘산성(伊訖山城)으로 불렸다. 진천군의 주봉(主峰)으로, 관내 하천 분포의 일대 분수령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을 서쪽 24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3,980척이요, 안에 우물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지되었다라는 내용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산 정상에 있는 만노산성(萬弩山城)에서 유창국(柳昌國)이 조감과 함께 적과 맞서 수천 명의 피란민을 구했다고 전한다. 세종실록지리지의 태령산(胎靈山) 관련 기사에서 만노군태수(萬弩郡太守)’라는 내용이 있어 이 지명은 당시 이곳에 있었던 만노군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지도서에는 협탄령에서 뻗어 나와, 떨어진 줄기가 성산(城山)이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대부분의 옛 지도에서도 만노산이 기재돼 있으며, 보련산은 따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는 만노산과 보련산이 다른 위치에 지명이 기재돼 있어 이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덕성산(德城山)(519m)의 한 지맥이 서운산(瑞雲山)(547m)을 이루고, 다시 엽둔재(葉屯峙)(344m)를 넘어 남방으로 뻗치어서 이루어진 산이다. 봄철이면 능선에 진달래가 만발해 산행하기에 좋다. 연곡 계곡이 발원하며, 연곡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태령산(胎靈山)(421m)과 이웃하고 있다.

 역사적 인물 및 사건
김유신은 가락국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후손으로 595(진평왕 17)에 진천읍 상계리 계양마을에서 출생했다.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은 김유신(595~673)이 태어난 곳과 그의 탯줄을 보관한 태실을 가리킨다. 김유신은 609(진평왕 31) 화랑이 돼 용화향도(龍華香徒)를 거느리면서 화랑정신을 수양했다. 629(진평왕 51) 중당(中幢)의 당주로서 청주의 낭비성 전투에 출전해 고구려군을 격파한 뒤 경상도 압량주의 군주가 됐다. 644(선덕여왕 13) 소판(蘇判)이 돼 상장군에 오르고 백제의 가혜성 등 7성을 점령했다. 647(진덕여왕 1) 명활성을 거점으로 반란을 일으킨 상대등 비담과 염종을 진압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무산성·감물성·동잠성 등을 공격한 백제군을 격퇴했다. 이처럼 당나라군과 연합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며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됐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이운해(李運海)가 지은 칠언율시의 한시 만뢰산이 있다. 이 한시에서 만뢰산(萬賴山)’은 김유신 장군 이후 병자호란 당시 의병을 일으켜 적군을 물리친 유창국(柳昌國)과 휘하 의병들의 활동이 지금도 눈에 밟힐 정도로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내용이 소개돼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장과 그 휘하 의병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김유신은 조선 시대에도 삼국통일의 주역으로 높이 숭배돼 명종(明宗) 때인 1563(명종 18)에 최치원(崔致遠), 설총(薛聰)과 함께 경주의 서악서원(西嶽書院)에 배향됐다.

 문화유산
1964 9 3일 보물 제404호로 지정된 진천연곡리석비(鎭川蓮谷里石碑)가 있다. 1993 2년여의 공사 끝에 보탑사가 건립되면서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단장해 오늘에 이르렀다. 고려 전기인 10세기경에 세워진 비석이다. 건립 경위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는 일반적인 비석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거북 모양의 받침돌에는 거북등 모양의 무늬가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머리는 말머리 모양과 흡사하나 많이 마멸된 상태이며, 앞발의 발톱은 모두 파손된 상태다. 비신을 받쳐 주는 비좌 부분에는 연꽃 문양을 새겼는데, 잎이 작으면서도 양감이 느껴진다. 비의 전체 높이는 360, 비신은 213, 폭은 112, 두께는 22이다. 비신에는 4면 어느 곳에도 명문이 없어 연곡리 백비라고도 부른다. 이수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서로 여의주를 차지하려고 하는 모습이 사실적으로 조각돼 있으며, 이수에도 27×25의 사각형 제액이 있을 뿐이다. 본래는 논 가운데 있던 것을 1968년 현재의 자리에 비각을 건립해 보호하고 있다. 사람들은 비석이 위치했던 곳을 비석이 서 있는 곳이라 해 비선골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만뢰산을 대표하는 인물인 김유신과 얽힌 기념물도 있다. 진천읍 벽암리 508번지(문진로 1411-38)에 있는 진천 길상사(吉祥祠)가 대표적이다. 흥무대왕 김유신(金庾信)의 위패와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진천군과 김해김씨 문중이 관리하고 있다. 1975 2 2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입구의 홍살문과 본전인 흥무전(興武殿)을 비롯해 관리사·내삼문·협문 등 모두 6동의 건물이 배치돼 있다. 흥무전은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주심포집으로 벽면과 기단 등을 콘크리트로 지은 현대식 목조 건물이다. 안에는 장우성(張遇聖)이 그린 가로 98, 세로 187의 영정이 있는데 1976 11 5일 봉안했다. 뒤뜰에 1957년 세운 흥무대왕신성비, 안뜰에는 1976년에 세운 김유신장군사적비, 입구에는 길상사중건사적비 등이 있다.

 설화
만뢰산의 역사적인 인물 김유신의 아버지인 김서현 장군의 태몽 담과 평범한 인물보다 10개월이 많은 20개월 후에 김유신 장군이 태어났다는 탄생 담이 있다. 김서현 만노태수는 도임한 날로부터 군민을 사랑하고 군민을 위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실천했다. 태수가 도임한 지 1년이 가까운 어느 경진(庚辰) 날 밤이었다. 하늘에서 갑자기 오색이 찬란하고 으리으리한 구름이 아름답게 퍼지면서 구름 속에서 형혹성(熒或星)(화성(火星)과 진성(眞星)) 두 별이 합치더니 다른 별보다 유난히 빛이 났다. 하늘에서 땅까지 불줄기가 뻗치니 정신이 황홀해졌다. 별이 불줄기를 타고 내려오더니 태수의 가슴에 와서 안겼다. 정신없이 별을 안고 있다가 깨어보니 꿈이었으나 참으로 훌륭한 꿈이었다. 만명 부인은 혈통을 존중하는 신라 왕실의 엄격한 전통을 깨뜨리고 태수를 따라서 만노군으로 왔다. 만명 부인은 피곤한 몸으로 내아에 있을 때 정신이 아찔해지더니 깜빡 잠이 들었다. 그때는 자정이 가까워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북두칠성과 남천성이 합해지더니 오색영롱한 구름이 하늘을 덮었다. 두 별이 합해지면서 무지개 같은 불줄기가 땅으로 내리 쏟으며 부인 앞까지 뻗치더니 금빛이 번쩍이는 황홀한 갑옷을 입은 동자가 무지개 같은 불줄기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왔다. 정신을 가다듬고 조용히 바라보고 있는데 금빛 갑옷을 입은 동자가 품에 와서 안기었다. 너무도 반가워서 동자를 안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가 깨어보니 꿈이었다. 그날 밤이 신축(辛丑)날 밤이었다. 이튿날 조용한 틈을 타서 태수에게 꿈 이야기를 하게 되니 지난번에 태수가 꾼 꿈과 비슷했다. 태수는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가 꾼 꿈 이야기도 했다. 태수는 대인을 낳게 되는구나 싶어 품 안에 들어온 별이나 금갑동자가 비슷한 점이 있고, 그 꿈이 대몽이오. 내 꿈도 대몽이었는데 우리 내외가 모두 큰 꿈을 꾸었소. 이 꿈이 태몽이 틀림없소. 나라에 큰 재목이 될 대장 하나 낳으면 얼마나 좋은 일이오라고 하면서 기뻐했다.

 추천코스
1 코스 : 김유신탄생지 - 생태공원안부갈림길 - 갈미봉 - 만뢰산 정상-도계능선-보탑사-연곡저수지 김유신탄생지 ( 11km, 4시간30분 소요)
2 코스 : 김유신탄생지 - 연보정 - 태령산정상(태실) - 생태공원안부갈림길 - 갈미봉 - 만뢰산정상 - 도계능선 - 보탑사 - 연곡저수지 ( 11km, 4시간30분 소요)
3 코스 : 김유신탄생지 - 연보정 - 태령산정상(태실) - 생태공원안부갈림길 - 갈미봉 - 만뢰산 정상 - 도계능선 - 482 - 504 - 김유신탄생지 ( 15km, 5시간 소요)
4 코스 : 보련마을 입구 - 마을회관 - 솔암 - 북쪽 계곡 - 북동릉 - 만뢰산 정상 ( 3km, 2시간 30분 소요)
5 코스 : 대문리 하수문 삼거리 - 골 합수점 삼거리 - 남서쪽 계곡 - 북서릉 - 만뢰산 정상 ( 3.5km, 2시간 30분 소요)
6 코스 : 보탑사 - 만뢰산 정상 ( 2.67km, 1시간 40분 소요)
7 코스 : 보탑사 - 만뢰산 정상 - 갈미봉 - 만뢰산자연생태공원 - 태령산(태실) - 김유신 탄생지 ( 9.28km, 4시간 50분 소요)
8 코스 : 보탑사 - 삼거리 - 엽돈재 ( 11.3km, 5시간 50분 소요)
9 코스 : 보탑사 - 멱수 ( 7.81km, 3시간 50분 소요)
10 코스 : 보련마을 - 도솔암 - 만뢰산 정상 - 보탑사 ( 4.75km, 2시간 50분 소요)
11 코스 : 보련마을 - 도솔암 - 만뢰산 정상 - 갈미봉 - 김유신 탄생지 ( 8.89km, 5시간 소요)
12 코스 : 보련마을 - 도솔암 - 삼거리 - 엽돈재 ( 11.55km, 6시간 소요)
이심건 기자 beotkkot@cctoday.co.kr
출처 : 충청투데이(https://www.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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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7:10

새해 첫 산행으로 집에서 가까운 진천에 있는 만뢰산을 가기로 한다. 오늘 날씨가 강추위라서 일찍 일어나 먼 곳까지 가기도 힘들고 해서 가까운 곳으로 잡는다. 만뢰산은 몇 번 다녀온 산이지만 마나님은 아직 가지 않아서 간단히 다녀오려 한다. 집에서 느지막하게 일어나 준비하고 07 10분 나선다.

 

보련마을 입구 주차장(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249-3, 해발 약210m) 08:25 ~08:45

만뢰산 가는 길은 국도를 따라가는 방법이 제일 좋다. 마침 출근시간대라 차량이 많아서 지체가 많이 된다. 청주에서 오창으로 난 LG로를 따라 진행하여 미호천 교각을 넘는대 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교각을 넘어 옥산에서 오창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를 건너는대 까지도 신호를 몇 번을 받고는 오창 산단을 통과하여 청원축제가 열리는 미래지 공원앞 사거리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이 길은 병천에서 오창으로 이어지는 도로다, 이 도로는 차량이 얼마 없어 시원스럽게 지나서 오창 원형로타리에서 진천방향으로 진행하면 차량은 많아 지지만 정체가 될 정도는 아니다. 문백을 지나 진천 터널 전에서 우측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대 길을 놓쳐 좀 더 진행하여 우측으로 빠져나가 되돌아서 구길을 따라 진행하면 사석리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좌측으로 병천으로 가는 길을 따라 진행하다가 몇 분후 우측으로 빠지는 길이 우측길과 직진방향 그 새재기로 있어 잘 진입해야 한다. 이후 보탑사 방향으로 진행하면 김유신장군 탄생지를 지나 잠시 더 가면 저수지끝 쪽에 보련마을 입구 주차장에 닿는다. 보통 시간때 같은면 50분이면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인대 1시간 15분이 걸렸다.

 

도솔암(1.30km, 330m) 09:08

보련마을 입구 주차장에 도착하여 커피한잔 마시고 산행준비를 하고 나서니 콧등이 싸늘하다. 오늘 기온이 영차 7도 까지 내려간다고 했는대 여기는 시골 산골짜기라 그런지 영하 13도를 가리킨다. 이제 보련마을로 진입을 한다. 예전에 이 길을 따라 올라갔기에 의심의 여지도 없이 진행했는대 위쪽에서 큰 코를 다쳤다. 이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이다. 어쨌든 예전에 올라갔던 대로 진행을 한다. 보련마을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하여 좁다란 마을길을 따라 진행하면 좌측은 만뢰산으로 올라가는 임도길이고, 우측으로 가면 도솔암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 이정표에 만뢰산 정상 2.26km, 보탑사 2.7km가 적혀 있고, 우측으로 도솔암이 적혀 있다. 예전에도 도솔암을 거쳐 능선으로 진입을 했기 때문에 그때 기억대로 도솔암으로 향하면 좁다란 세멘트길을 따라 서서히 오르기 시작하여 민가처럼 생긴 도솔암에 닿는다. 여기까지 23분가량이 걸렸다.

 

우측 능선(2.10km, 465m) 09:44

도솔암에서 세멘트길을 따라 좀더 오르면 마지막 민가가 나온다, 예전에는 없던 집이다. 위쪽으로 길이 있어야 하는대 길이 안 보인다. 집 뒤쪽으로 가서 살피니 올라갈 길이 없다. 다시 돌아 나와 집 좌측 골짜기로 진입을 한다. 좀 더 오르니 잡목지대다. 오래전 올라갈때는 확실한 길이 있었는대 길이 없어졌다. 눈이 쌓여 길이 보이지도 않치만 흔적은 보일것인대 잡목만 이리저리 쓰러져 있다. 이렇게 하여 잡목지대를 빠져나가니 벌목지다. 벌목지를 따라 오르니 산초가시가 찔러대고 잡목이 자라기 시작하여 진행하기가 쉽지를 않다. 우측 능선 아래로 길이 있나 살펴보아도 길은 없다. 그냥 예전에 길이 있었던 자리를 따라 진행한다. 산경표, 네이버 지도를 참고하며 진행하여 올라서면 벌목작업을 하며 다닌 산사면 좁다란 임도가 나온다. 어쨌든 여기까지는 옛길이 있던 자리는 맞는대 위쪽으로도 벌목지로 오르는 곳으로 길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 임도를 따라 우측으로 진행하여 잠시 더 오르면 오르며 보이는 우측편 능선에 닿는다. 태령산 방향으로 벌목지사이로 작업로가 많이 나 있는 것이 보인다.

 

만뢰산 정상(2.90km, 611m) 10:30 ~10:46

능선에 닿은후 벌목작업때 다닌 임도길을 따라 잠시 더 오른다. 좌측으로 산하는 벌목지다. 멀리 태령산 뒤편으로 군부대가 정상을 점령한 문안산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잣고개 뒤편 봉화산이 보인다. 몇 해 전 친구와 둘이서 만뢰산에서 시작하여 문안산 군부대 철조망을 통과하고 잣고개를 넘어 봉화산을 지난 후 친구는 우측으로 하산하여 차량을 회수하여 집으로 가고 나홀로 진행하여 오창 양천산까지 진행하느라 고생한 생각이 난다. 벌목지 끝 임도에서 조금 더 올라서서 바위지대에서 잠시 쉬면서 따끈한 물 마시고 쉬어서 다시 산행을 진행한다. 이곳으로는 길이 없기 때문에 가장 오르기 쉬운 곳으로 방향을 잡아 직등을 하기 시작한다. 급경사 지대이기 때문에 오르기 쉽지 않다. 벌목지를 다 오른후 낙엽시 수북한 급경사 지대를 따라 오르니 주루룩 미끄러지기 일쑤다. 어쨌든 수분에 걸쳐 올라서니 주능선길에 닿는다. 대문리 하산로와 옛 도솔암에서 올라온 곳 까지의 중간지점쯤 된다. 이제 주능선 길을 따라 진행한다. 눈이 많이 왔는지 발자욱만 간신히 나 있다. 잠시 진행하니 도솔암에서 예전에 올라온 곳에 닿는다. 만뢰산 제1지점 국가지점 표지판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서서히 눈길을 따라 진행하면 몇 분을 더 진행하여 만뢰산 정상아래 정자에 닿는다. 북쪽으로 서운산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안성 시내의 아파트들이 보인다. 정자를 지나 눈속에 그려진 하트모양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잠시후 만뢰산 정상에 올라서니 의외로 기온이 따스하다. 만뢰산 정상석을 배경으로 새해 첫 산행 기념 사진을 찍는대 이넘 카메라가 말귀를 잘못 알아들어 사진 찍는대 오래 걸린다. 간신히 사진찍고 간식으로 준비해간 감으로 허기를 면하고 이제 하산을 시작한다.

 

좌측 보련마을 삼거리 이정표(3.96km, 460m) 11:07

만뢰산은 해발 611m로 진천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천안시 병천면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만노산, 만뢰산, 금물노산 또는 이홀산으로 불리웠다고 한다. 이곳에는 신라때 쌓았다는 옛 성터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고구려 백제의 침공을 방어하던 군사적 요충지이기도 하다. 김유신 장군의 태를 묻었다는 태령산이 남쪽편에 있으며 산아래는 통일대탑 보탑사 있다.

이제 하산을 시작하면 잠시후 이정표가 나온다. 우측으로 하수문 1.86km, 보탑사 2.55km, 보련마을 2.88km가 적혀 있다. 이제 좌측으로 보탑사 방향으로 진행을 한다. 내려서는 길은 눈이 얼어붙어 매우 미끄럽다. 마니님은 미리 정상에서 아이젠을 착용해서 잘 내려간다. 나는 그냥 내려가려니 에고 미끄럽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잘 내려가긴 했다. 이렇게 한동안 내려서면 우측으로 돌목고개를 거쳐 금북 정맥길의 엽돈재로 향하는 능선이고 보탑사는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엽돈재 조금 위쪽에서 시작하는 만뢰지맥은 이곳까지 진행한후 잠시 지맥길에서 조금 벗어난 만뢰산 정상을 다녀온후 다시 보탑사 방향으로 진행을 하게 된다. 이제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서서히 내려서는 길을 따라 잠시 가면 우측으로 천안 병천면 봉항리로 하산하는 삼거리 이정표가 있다. 봉항3리 마을 회관 2.1km가 적혀있다. 여기서 다시 서서히 내려서는 길을 따라 진행하면 6분후 좌측으로 보련마을로 하산하는 임도길 입구에 닿는다. 만뢰산 1.07km, 보탑사 1.52km, 보련마을 1.85km가 적혀 있다. 산 아래로 가까이 임도 길이 보인다.

 

보탑사(5.84km, 290m) 11:45 ~11:55

보련마을 하산로에서 잠시 더 내려서서 안부에 닿은 후 다시 서서히 오르는 길을 따라 오르면 좌측으로 첫 번째 보탑사로 하산하는 삼거리 이정표에 닿는다. 좌측으로 보탑사 1.02km, 우측 능선 따라서 1.3km가 적혀 있다. 우측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잠시후 해발 489.7m가 적혀 있는 표지판이 붙어 있는 봉에 닿는다. 여기서 서서히 내려서고 안부에 닿은후 다시 서서히 오는 길을 따라 오르면 정상부에 이정표가 나온다. 좌측으로 보탑사 0.85km, 멱수 7.58km가 적혀 있는 두 번째 이정표에서 보탑사로 하산을 한다. 여기서 멱수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진행하다가 좌측으로 하산하는 세 번째 코스는 잘 이용하지 않는 길이다. 이제 보탑사를 향하여 내려선다. 낙엽이 수북히 쌓여 있고 간혹 눈길도 있어 미끄럽다. 한동안 내려서면 보탑사의 통일대탑이 내려다보이는 조망터를 지나서 잠시더 내려선후 우측으로 돌아서 내려서면 작은 개울가 길에 닿고 개울가 길을 따라 잠시 더 내려서면 멱수방향으로 오르는 지점의 이정표를 지나며 길은 넓어지고 이정표를 한번 더 지나서 보탑사에 닿는다. 보탑사에는 연곡리 석비가 있는대 거북받침 위에 비몸을 세우고 비머리를 얹은 일반형 석비로 비문이 없어 일명 백비라고 부려 더욱 유명한 비석이다. 우측으로 들어가면 통일대탑이 있고 뒤편으로 영산전, 지장전이 있으며 우측으로 적조전이 있는데 이곳에는 와불이 모셔져 있다. 이렇게 대충 보탑사를 둘러 보았다.

 

보련마을 입구 주차장(7.83km) 12:18 ~12:23

보탑사에 나오면 앞쪽으로 커다란 느티나무가 한그루 있으며 아래쪽으로 주차장이 있다. 우리는 좌측편 좁다란 길을 따라 내려가 널찍한 도로에 닿은 후 보련마을 주차장으로 향한다. 거리는 대략 1.5km 정도 된다. 이후 도로를 따라가니 보련마을 주차장에 닿기 전 우측으로 팬션 마당에 물을 뿌려서 만든 얼음 나무가 멋지다. 잠시 들어가 사진으로 담고 나와 잠시 더 내려가면 보련마을 주차장이다. 보탑사에서 23분이 걸렸다.

보련마을에서 도솔사를 거쳐 오르는 길은 이제 없어져 산행을 하기는 어렵겠다. 여기서 오르는 길은 우측편 마을로 진입하는 소로길 입구에 등산안내도와 함께 뒤편으로 등산로가 보이니 이 길을 따라 진행하면 되겠다. 이 길은 우측편 임도길을 따라 올라 갈미봉으로 향하는 길로 보인다.

 

돌아오는 길

보련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여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향한다. 10분을 좀더 진행하니 사석리에 닿는다. 좌측으로 두부촌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진천 이쪽이 두부가 유명하기에 두부촌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하기로 한다. 옛날 집에 주황색 페인트를 칠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집이다. 손님은 쏠쏠히 있는 편이다. 두부전골 중으로 시켰다. 요금이 조금 비싼편이다. 중자는 35000, 대자는 45000원이라 적혀 있다. 비지장등 일반적인 음식은 9000원이다. 잠시후 두부전골이 나온다. 두부는 국산콩을 썻다고는 하지만 딱 다섯쪽이다. 소고기 몇조각 넣고 버섯 몇 종류가 들어가 있다. 시원하니 맛은 괜찮다. 아낌없이 국물까지 싹 쓸어 식사를 마치고 이제 집으로 향한다. 옛길을 따라 나와 청주로 들어가는 큰길에 닿은 후 대낮이라 차량이 많지를 않아 시원스럽게 달린다. 청주 3차 우회도로에 진입하여 다시 LG로에 진입하여 달려 집에 도착하니 13 40분이다.

오늘 새해 첫 산행은 이렇게 간단하게 마쳤다.

 

산행시간 : 3시간 33분 소요

산행거리 : 7.83km

 

연료비 : 2만원

점심식사 : 두부전골 중 35000+공기밥2 2000 =37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