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기(2000년 부터)

1223 산청 지리산 천왕봉~제석봉 2020.06.23.화요일 맑음

산야55 2023. 2. 13. 20:32

산청 지리산 천왕봉~제석봉

2020.06.23.화요일 맑음

참석인원 : 우리 세식구

 

청주 집 04:57 -함양 휴게소 06:35 ~06:55 -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지리산 탐방센타 주차장(해발 약615m) 07:49 ~08:10 -도로따라 -도로에서 좌측 법계사방향으로 -통천길 아치문(0.50km, 해발 약650m) 08:19 - 법계사 2.7km이정표(1.63km, 740m) 08:29 -쉼터(1.96km, 780m) 08:38 -칼바위(2.10km, 815m) 08:42 -출렁다리 -이정표 삼거리(쉼터, 우측 법계사방향으로, 2.26km, 845m) 08:45 -오르막 돌계단 -테크계단(2.42km, 910m) 08:53 -지리 05-03표지목(2.49km, 960m) 08:56 -오르막 돌계단 -지리 05-04표지목(2.98km, 1129m) 09:11 -오르막 테크계단 -망바위(이정표 천왕봉 3.0km, 3.08km, 1177m) 09:18 ~09:29 -지리 05-05지점 09:42 -테크길(, 경보기, 3.56km, 1265m) 09:46 -오르막 계단(3.75km, 1310m) 09:53 -오르막 돌계단 - 오르막 계단 -지리 05-06지점(3.90km, 1345m) 09:59 -헬기장(3.96km, 1345m) 10:01 -로터리 산장(4.12km, 1340m) 10:06 -법계사 일주문 10:08 -오르막 계단 -오르막 계단 -잠시 평탄한 흙길 -지리 05-07지점(4.37km, 1456m) 10:15 -오르막 돌길 -오르막 계단 -바위지대 철구조물 -오르막계단 -바위지대 철구조물 -오르막계단 -바위지대 철구조물 -오르막 돌계단 -심장 안전쉼터(4.67km, 1520m) 10:34 -지리 05-08지점( 좌꺽임 지역, 4.85km, 1531m) 10:52 -심장 안전쉼터(5.05km, 1605m) 10:59 -오르막 계단 - 철계단 -오르막 돌계단 -계단 -개선문(5.30km, 1700m) 11:10 ~11:14 -지리 05-09지점(5.36km, 1711m) 11:16 -오르막 돌길 - 천왕봉 0.6km 이정표(5.45km, 1720m) 11:22 -오르막 돌계단길 -계단(5.62km, 1730m)11:26 - 돌부리길(헬기사고 지점) -능선 심장안전쉼터(5.69km, 1750m) 11:33 -천왕샘(5.87km, 1840m) 11:36 -계단 -철계단위, 지리 05-10지점 (5.96km, 1859m) 11:40 -계단 -천왕봉(6.20km, 1915m) 11:55 ~12:44(중식) -내리막 바윗길 -내리막 계단 -내리막 바윗길 -내리막 계단 -내리막 계단 -통천문(6.58km, 1800m) 13:03 -안부 이정표(6.97km, 1755m) 13:14 -제석봉 전망대(제석봉 정상 1808m, 7.27km, 1790m) 13:27 -장터목 산장(7.836km, 1660m) 13:44 ~13:50 -00(8.23km, 1690m) 14:08 ~14:21 -백무동길 삼거리(좌측으로, 8.57km, 1660m) 14:32 -장터목 0.5km 이정표(8.77km, 1653m) 14:38 -장터목 산장(9.16km, 1660m) 14:46 ~15:05 -지리 04-08지점(9.64km, 1552m) 15:24 -중산리 4.8km 이정표(9.87, 1470m) 15:34 -지리 04-07지점(9.97km, 1430m) 15:38 -다리(중산리 4.5km 이정표, 10.03km, 1340m) 15:41 -짧막한 내리막 철계단 -다리(, 10.27km) 15:51 -계곡 우측편 테크길(10.67km, 1230m) 16:04 -유암폭포(중산리3.7km이정표, 10.82km, 1220m) 16:08 -계곡 우측 테크길(10.92km, 1205m) 16:11 -지리 04-05지점(11.01km, 1187m) 16:13 -계곡 우측 테크길 -다리(홈바위교, , 11.14km) 15:16 -곧장 테크길로 연결됨 -작은 돌탑지대 16:27 ~16:37 -계곡 좌측편 다리(좌지곡)1, 계곡 좌측 다리(좌지곡) 16:38 -중산리3.1km 이정표(11.52km, 1114m) 16:40 -계곡 좌측편 계단(11.63km, 1085m) 16:44 -계곡 좌측 다리1.2.3 -다리끝 너럭바위 16:47 -중산리 2.6km 이정표(12.0km, 1025m) 16:54 -내리막철계단, 테크길(12.09km) 16:57 -곧이어 내리막 철계단2 -테크길 -내리막 계단 17:04 -지리 04-02지점(12.36km, 977m) 17:05 -내리막 계단 끝 출렁다리(좌지곡, 12.65km, 925m) 17:12 -지리 04-01지점(12.86km, 879m) 17:17 -계곡옆 테크길 17:22 -잠시 올라 우측 마이크 17:25 -이정표 삼거리(쉼터, 중산리 방향으로, 13.17km, 845m) 17:26 -칼바위(13.37km, 815m) 17:20 -중산리 0.7km이정표(13.83km) 17:44 -지리 05-01지점(13.92km, 741m) 17:47 -통천길 아치문(14.35km, 650m) 17:56 -지리산 중산리 탐방센타 주차장(15.33km) 18:10 ~18:17 -산청 톨게이트 18:48 -죽암휴게소 20:25 ~20:33 -서청주 톨게이트(9300) 20:47 -청주 집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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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높이 1,915.4m. 국립공원 제1.

지리산의 산세는 유순하나 산역(山域)의 둘레가 800여 리에 달한다. 동경 127°27′∼127°49, 북위 35°13′∼35°27에 위치한 거대한 이 산은 총면적이 440.4이며, 전라북도에 107.7, 전라남도에 87.9, 경상남도에 244.7 분포한다.

주능선 방향은 서남서동북동으로, 최고봉인 천왕봉(天王峰, 1,915m)을 중심으로 서쪽으로는 칠선봉(七仙峰, 1,576m)·덕평봉(德坪峰, 1,522m)·명선봉(明善峰, 1,586m)·토끼봉(1,534m)·반야봉(般若峰, 1,732m)·노고단(老姑壇, 1,507m) 등이, 동쪽으로는 중봉(1,875m)·하봉(1,781m)·싸리봉(1,640m) 등이 이어진다.

또 주능선과 거의 수직 방향으로 발달한 가지능선은 7001,300m의 고도를 나타내며, 종석대(鐘石臺, 1,356m)에서 북으로 고리봉(1,248m)·만복대(萬福臺, 1,433m) 등의 연봉이 나타난다.

이 산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섬진강 지류들의 강력한 침식작용으로 계곡은 깊은 협곡으로 되고 산지 정상부는 둥근 모양을 나타내는 험준한 산세를 나타낸다.

그래서 이들 계곡이 교통로로 이용되고 있으며, 산지의 주변에는 동쪽에 산청, 남쪽에 하동·광양, 서쪽에 구례, 북쪽에 남원·함양 등의 도시와 계곡에 마을이 발달하고 있어 원상(圓狀)을 이룬다.

지리산에는 이칭(異稱)과 별칭(別稱)이 많다. 한자로는 지이산(智異山)이라 쓰지만 읽기는 지리산이라고 한다. 실제로 지리산을 그 음대로 지리산(地理山)이라 쓴 기록도 많다. 원래 智異는 지리라는 우리말의 음사(音寫)일 뿐이며 지리는 산을 뜻하는 두래에서 나온 이름이다.

두래는 ()의 분음(分音)으로서 두리’·‘두류 등으로 변음하여 頭流’·‘豆流’·‘頭留’·‘斗星’·‘斗流 등으로 한자를 붙여 지명이 된 것이 많다. 이 중 두류(頭流)는 백두산의 맥세(脈勢)가 흘러내려서 이루어진 산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러한 지리산(地理山두류산(頭流山) 등이 지리산의 이칭이다.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삼신산은 중국 전설의 발해만(渤海彎)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州山)으로, 이곳에 신선(神仙)과 불사약(不死藥)과 황금(黃金백은(白銀)으로 만든 궁궐이 있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 있는데 지리산은 이 중 방장산에 대비가 된다. 그 밖에 봉래가 금강산, 영주가 한라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여 4대 신산(四大神山)이라 하고, 그에 구월산을 합하여 5대 신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어떤 경우에나 지리산을 신산(神山)으로 꼽는 데는 이론(異論)이 없다.

서산대사휴정(休靜)은 지리산을 웅장하나 수려함은 떨어진다(壯而不秀)고 표현하였다.  팔역지(八域志)의 저자 이중환(李重煥)은 그의 산수론(山水論)에서 지리산을 조선의 12대 명산 중의 하나로 꼽기도 하였다.

오악(五嶽) 중 남악(南嶽)에 해당되며 12종산(宗山)의 하나이기도 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호남읍지, 신경준(申景濬) 산수고(山水考),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도 모두 지이산(智異山)이라 표기되어 있다.

특히,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두류산·방장산·지리산(地理山남악 등의 이칭이 소개되어 있고, 두류의 류()자는 백두산의 맥이 잠시 정류(停留)하였다 하여 류()로 씀이 옳다는 제안도 제시되어 있다. 따라서, 두류산(頭留山)이라는 이칭이 하나 더 추가된다.

 

문학·예술 속에 나타난 모습

우리나라의 기본 골격이 백두산으로부터 지리산에 이르는 산맥계가 중추가 된다는 인식에는 예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다. 그래서 지리산을 백두산이 흘러내린 산이라 하여 두류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것은 우리나라 전래의 지리 사상인 풍수지리설에서도 받아들인 바이거니와, 실학자들에 이르기까지 전혀 이의 없이 전수되어온 땅에 대한 우리 민족의 기초적인 관념인 것이다.

이것을 가장 극명하게 밝힌 이가 신경준이다. 신경준은 그의 산수고에서 산의 족보라고 할 수 있는 산맥세의 흐름을 상세하게 파악한 바 있는데, 뒤에 이것을 기초로 산경표(山經表)가 만들어졌다.

백두산을 시작으로 하여 지리산에서 끝나는 맥세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지리산은 민족의 진원지며 영산으로 추앙받는 백두산의 한반도 남부를 대변하는 산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이것이 풍수사상에서는 민족적인 주체의식을 상징하는 의미를 띠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실상사의 풍수전설이 아니겠는가 생각된다. 백두산의 기맥(氣脈)이 이곳을 지나 일본으로 연결되는데 그 지기(地氣)를 끊어 놓기 위하여 창건한 사찰이 바로 실상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경내 약사전에 봉안된 4,000근짜리 무쇠로 제작된 약사여래철불은 높이 2.5m로 좌대 없이 땅바닥에 그대로 모셔져 있다. 이 불상은 지리산 주봉인 천왕봉과 일본 후지산(富士山)을 일직선상으로 바라보도록 좌정되어 있는데, 맨 바닥에 철불을 모신 이유가 일본으로 흘러가는 지기를 막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보광전 범종에 그려진 일본 지도 역시 매일 종을 때릴 때 얻어맞는 위치에 일본이 그려져 있어 위의 이야기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지리산 도처에서 들을 수 있는 설화들인데, 남원시 주천면 노치산 갈재의 숯막이야기는 고종이 그곳에 숯 수천 가마를 쌓고 불을 놓아 일본으로 가는 지맥을 막았다는 것이다. 임진왜란 때 혹은 동학운동 때 또는 의병항쟁 때 왜군을 피하여 들어간 사람들의 한 맺힌 이야기들일 것이라고 여겨진다.

지리산에는 지리천왕(智異天王)과 여신(女神)숭배의 설화들이 있다.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보면 그는 천왕봉에 발을 딛고 맨 먼저 그 천왕봉에 있는 성모 묘에 제를 올리는데, 당집에 들어가 주과(酒果)를 차려놓고 성모상 앞에서 비는 일이 그것이었다.

이 성모상의 기원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로 석가모니의 어머니인 마야부인(摩耶夫人)이라는 설이 그 하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불교에서 마야부인상을 숭배하는 전통이 없었던 것으로 미루어볼 때 이 설은 후세의 윤색이 아닌가 싶다.

둘째로 고려왕계를 성스러운 혈통으로 인식시키기 위하여 고려 왕실에서 도선선사(道詵禪師)로 하여금 이 성모상을 만들게 하였다는 설이다.

성모에 대하여 이승휴(李承休) 제왕운기(帝王韻紀)에서는, 지금 지리천왕은 곧 고려태조의 비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고 고려 사람들이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이야기(三國遺事 感通 第七, ‘仙桃聖母隨喜佛事에 자세히 수록되어 있음.)를 듣고 이를 그들 임금의 핏줄로 삼고자 이를 만들어 받든다고 하였다.

셋째로 도선이 지리산에 선암(仙巖운암(雲巖) 등 삼암사(三巖寺)를 세우면서 이 절을 세우면 삼한을 통일할 수 있다는 성모의 계시를 받았다고 하였다. 그 뒤 고려를 세워 후삼국을 통일한 뒤 계시를 내린 성모상을 세워 받들었다는 설이다. 넷째로 중국의 여신인 마고(麻姑)가 동쪽으로 와 정착한 것으로 믿고, 그 여신 숭배가 이 성모상을 있게 하였다는 것이다.

전설에 지리산의 산정에 사는 여신의 이름이 마고 또는 마야고(麻耶姑)로 불린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그래서 마고성모라는 복합어를 쓰기도 한다. 마고전설은 지리산의 능선을 형상화하고 있는 면도 있다. 마고는 반야(般若)를 사랑하였다. 어느 날 반야는 돌아오겠다고 기약하고 떠났으나 오지를 않는다. 마고는 기다림의 초조로 나무를 할퀸다.

 

이것이 지리산 주능선 부근의 고사목(枯死木)이다. 그 올로 베를 짜던 자리가 세석평전이라는 것이다. 지금도 천왕봉의 돌무덤 위에 앉아서 서쪽 하늘을 보면 낭군봉인 반야봉이 마치 달려올 듯한 산세로 눈에 담긴다.

산 주변에서 익히 들을 수 있는 설화·전설들 외에도 음악에 있어서 민요가 주변 산촌에서 불려지고 있을 법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지리산을 주 대상으로 삼은 것 같지는 않다. 예컨대 아리랑의 경우, 남원아리랑·하동아리랑 등이 있으나 지리산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지리산을 소재로 혹은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을 보면 고려사 악지나 증보문헌비고에 작자나 연대는 알려지지 않은 지리산가(智異山歌)라는 백제 때의 가요가 있었다고 되어 있다. 아마도 이것이 지리산에 대한 최초의 문학·예술 작품이 아니었겠는가 여겨진다.

구례의 한 여인이 지리산 밑에 살았는데, 용모가 아름답고 부덕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임금이 그 여자를 데려가고자 하나 죽기를 한하고 듣지 않으면서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본격적인 지리산 기록은 역시 기행문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조선 시대의 기행문으로는 김종직의 유두류록(佔畢齋集 2), 이륙(李陸) 유지리산록(遊智異山錄)(東文選 21), 남효온(南孝溫) 지리산일과(智異山日課)(秋江文集 6), 김일손(金馹孫) 속두류록(續頭流錄)(濯纓集 5), 조식(曺植) 유두류록(南冥文集 4), 양대박(梁大樸) 두류산기행(頭流山紀行)(淸溪集 坤), 박장원(朴長遠) 유두류산기(遊頭流山記)(久堂集 15), 정협(鄭悏) 유두류록(遊頭流錄)(東文選 21), 송병선(宋秉璿) 두류산기(頭流山記)(淵齋文集 21) 등이 있다.

이 중 김일손의 지리산 기행문 내용에서 몇 가지 표현을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일행은 종자(從者)를 제외하고 정여창(鄭汝昌임정숙(林貞淑) 등 세 사람이며, 날짜는 4 14일이다.

단성(丹城) 서쪽으로 15리를 지나 또 비탈을 타고 서너마장을 가니 골짜기 입구 바위에 광제암문(廣濟巖門)’이라는 네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자획이 고고(高古)하여 세상에서 최치원(崔致遠)의 수적이라고 전한다.……나무를 휘어 농기구를 만들고 쇠를 달구어 연장을 만드는 것으로 생업을 삼는 마을이 있어 감탄하니, 따라온 중이 일러주기를, 이런 외진 땅에 사는 것은 이정(里正)의 박해가 없고 과중한 부역의 고통을 받지 않은 지 오래이기 때문이라 하였다.……길은 없고 다만 천길 바위 위에서 떨어지는 폭포가 마치 은하수를 거꾸로 쏟는 듯하고, 오가는 나무꾼이 작은 돌멩이를 올려놓아 길을 표시하여 두었는데 나무그늘이 하늘을 가리어 햇볕이 들지 않았다.

시내가 그치고 대숲을 헤쳐 나오니 이윽고 땅은 모두 돌인데, 칡덩굴을 더위잡고 굴면서 숨가쁘게 10여 리를 걸어서 한 높은 고개에 오르니, 철쭉꽃이 활짝 피어 별천지를 이루고 있었다. 우람한 봉우리 세존암(世尊巖)을 만나 마침 사다리가 있어 올라가 바라보니 천왕봉이 10리 정도 되어 보였다.

여기서 5리쯤 가서 법계사(法界寺)에 닿으니 중은 한 사람밖에 없고, 산꽃이 곱게 펴 저문 봄철을 수놓았다. ……저물녘에 봉우리의 절정에 오르니 바위 위에 한 칸의 판옥(板屋) 한 채가 겨우 서 있었다. 그 안에 여자의 석상이 있는데 이른바 천왕(天王)이란다. 지전(紙錢)이 어지러이 들보 위에 걸리었고, ‘김종직·유호인(兪好仁조위가 성화 임진(成化壬辰, 1472)에 함께 오르다고 쓰여 있었다. 예전에 구경 온 사람들의 성명을 훑어보니 당세의 호걸들이 많았다.”

위의 일부 인용한 글로써 당시 지리산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을 정도로 그 묘사가 섬세하다. 또 알려진 한시로는 김부의(金富儀) 등지리산(登智異山), 김돈중(金敦中) 지리산차계부운(智異山次季父韻), 이색(李穡) 두류산, 이첨(李詹) 두류산, 양성지(梁誠之) 지리산, 최익현(崔益鉉) 등두류산(登頭流山)·천왕봉(天王峯), 유방선(柳方善) 청학동(靑鶴洞) 등이 있다.

현대작품으로는 이병주(李炳注) 지리산, 문순태(文淳太) 달궁 피아골, 서정인(徐廷仁) 철쭉제 등의 소설이 있는데, 이들은 거의가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좌우 대립에 따른 민족의 뼈아픈 과거를 묘사하고 있다. 이는 지리산이 현대사에서 차지하였던 첨예한 이념 대립의 공간적 현장성의 반영인 것으로 보여진다.

또 산을 둘러싸고 있는 전라북도·전라남도·경상남도의 작가들로부터도 시·소설·수필 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발표되었으나, 대부분이 서정성을 짙게 풍기는 것들이다.

이것은 아마도 직접 몸으로 그 뼈저린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쓰라린 상처를 덮어두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에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혹은 묵중하고 푸근한 지리산의 웅자가 그 섬세한 정기로 모든 인간의 아픔을 감싸안은 것인지도 모른다.

 

제석단(帝釋壇)

제석봉에는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었다.

제석단(帝釋壇)은 제석천(帝釋天)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다.

천제석(天帝釋천주(天主)라고도 부르며 단군의 아버지 환인을 이른다.

민간에서는 이를 신앙 대상으로 삼아 하늘의 주인으로 천제석, 천주로 숭배하였다.

1586년에 지리산을 오른 양대박(1543~1592) <두류산기행록>에서 폐허가 된 제석당 터와 신을 모시는 사당인 제석신당에 대해 적고 있다. 그보다 뒤인 1610년에 지리산을 찾은 박여량(1554~1611) <두류산일록>에서 "제석당의 규모는 제법 넓어 들보의 길이가 거의 23~24자 정도나 되었다. 좌우의 곁방을 제외하고 가운데 삼 칸의 대청이 있었다. 지붕은 판자로 덮었는데 못을 박지 않았고, 벽 또한 흙을 바르지 않고 판자로 둘러놓았다"며 한 노파가 돈을 내어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아 제석당을 새로 지었다고 적고 있을 정도로 제석당은 인근 주민들에게 신령스러운 곳이었다

 

문창대

문창대:문수보살의 지혜가 햇살처럼 찬란하다는 뜻이니 곧 지혜를 구함이다.

고운 최치원의 유적지로 잘 알려져 있는 문창대는, 최치원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 법계사에 자주 왕래를 하면서 이곳에 올라 저멀리 서편에 위치한 향적대의 바위에 과녁을 만들어놓고 활을 쏘기도 하였으므로 이곳을 처음에는 시궁대(矢弓臺) 또는 고운대(孤雲臺)라고 하였다가, 최치원이 사후에 받은 문창후(文昌侯)의 시호(諡號)를 따서 문창대로 개칭을 하였다고 전한다.

지리산 문창대를 세간에 처음 알린 사람은 조선중기 영남사림의 중심인물이었던 진주선비 부사 성여신(浮査 成汝信)이다.

그는 1617년 중산리 법계사 코스로 천왕봉을 등정한 후 칠언고시의 형식으로 기록한 유두류산시(遊頭流山詩)’를 통하여 법계사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문창대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였다.

 

황혼 무렵 겨우 법계사에 이르렀네.

(중략...)

동쪽에 걸터앉은 세존봉에는 우뚝한 바위가 사람이 서 있는 듯

서쪽에 문창대 솟아 있으니 고운이 옛 자취 남긴 곳이네.

바위에 고운의 필적 새겨 있다 하는데 험하고 가파른 절벽이라 가볼 길이 없네. (하략....)

 

이렇게 성여신에 의해 문창대가 알려지면서 그 이후 칼바위- 법계사코스로 지리산을 등반하고 남긴 여러 선비들의 기행록에 문창대가 등장하면서 법계사 주변의 명소로 자리 잡혀져 왔던 것이다.

 

석천

중대라고도 일컫는 반석지대에는 석천이라고 부르는 물이 고여 있는 장정 무릎높이의 돌 구덩이 두 곳이 있으며, 주변에는 5-6개의 작은 구덩이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다. 구덩이는 오랜 세월 동안 풍우로 인해서 자연적으로 생긴 일종의 바위의 혈()인 것 같은데, 구전에 의하면 이 우물은 7년 대한(大旱)에도 물이 마르지 않는 신령스런 샘물이라 하며, 만일 이 샘물을 퍼서 마르게 하면 3일 내에 소나기가 내려 석천의 물이 채워진다는 설이 있어서, 가뭄이 계속되면 이곳에 올라 설천의 물을 퍼 없애고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다 전한다.

[출처] 세존봉능선, 문창대 (2009. 01. 31.)

 

법계사옆 신문창대(가짜)

오른쪽 바위의 중간쯤에 '고운최선생장리지소(孤雲崔先生杖履之所)'라는 각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새겨져 있으며, 글씨체는 수려하지 않고 조잡하며 각자를 새긴 연대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하다. 지난 1977년 로타리산장을 건립하기 위하여 자리를 물색하던 중 이 각자가 발견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진주산악회 학술조사반은 1979년 이곳이 진짜 문창대라고 발표하였다고 한다. 그후 구문창대, 신문창대 등으로 불리워 오면서 문창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어 왔으나 최근 지리99의 가객님께서 여러 고문헌과 자료 등의 탐색을 통해 세존봉 아래 문창대가 진짜 문창대임을 밝혀낸 바 있다.

[출처] 세존봉능선, 문창대 (2009. 01. 31.)|작성자 머하유

 

향적대(향적사지터)

동국여지승람에 향적사는 천왕봉의 성모사당의 향화(香火)를 위해 세워진 절이라고 했으니, 성모사당과 역사를 함께한 것으로 추정할 뿐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지만 폐사 시기는 지금부터 약 200여 년 전이다.[지리99에서 가객님의 글]

 

향적사지터

그 옛날 선인들이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는 향적대 와 향적사지터.....

해발 약 1600미터 정도에 위치한 향적사지터는 아늑한 장소에 커다란 암봉인 향적대를 배경으로 하고있었다.

남해쪽으로 확 트인 조망...좌측의 천왕봉...뒤로는 병풍처럼 둘러쳐있는 제석봉.......우측으로는 곡점능선...

정말이지 지리산 최고 명당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치성을 드린 제단....너무나 맛좋은 샘이 지금도 보존되어 있고, 옛 절터였다는 것을 증명하듯 지금도 주춧돌이 있다

 

<향적사의 개요>

동국여지승람에 향적사는 천왕봉 성모사당의 향화(香火)를 위해 세워진 절이라고 했으니,성모사당과 역사를 함께한 것으로만 추정할뿐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수없지만, 폐사시기는 지금부터 약 200년 전이다.

1750에서 1768년 사이에 간행된 여지도서의 기록에는 천왕봉 아래에 있는 향적사가 근세에 폐한 절이고 했다.

조선시대 선비들의 유람록에 나타나는 향적사의 흔적은 1464년 이륙이 향적사를 다녀 왔다고 하였고, 이후로 1472년 김종직을 필두로 남호온. 김일손 등 폐사시기로 추정되는 18세기 초까지 여러 선비들의 행차가 있었다. 그중 1775년 중산리에서 홈바위골 코스로 천왕봉을 오른 류문용이 향적사 터라고 기록한 것을 보면 여지도서의 기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제석단>

주변에는 민간신앙으로 제석천(帝釋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帝釋壇) 흔적이 남아 있다.... 옛날에는 제석당이 라는 사당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제석단 길은 과거에는 백무동에서 장터목으로 가는 길이였다고 한다.

제석단은 해발 17백미터의 고지인데도 제석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야영지로 손색이 없는 양지바른 명당이다.

이동항(방장유록) - 1790년에 쓴 옛산행기를 보면 제석당 판잣집이었다. 그곳에는 얼굴을 희게 칠하고 화려한 옷을 입은 돌 부인을 모셔 놓고 있었다. 제석당 옆에 있는 샘물에서는 찬 물이 돌 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으나, 물 성질이 매우 셌다. 그것을 그냥 마시면 금방 배가 아팠다. 그래서 솥을 걸고 물을 끓여서 각자 마른 목을 축였다. 1610/ 박여량

제석당 뒤에는 바위에서 흘러나오는 샘이 있었다. 돌을 쌓아 물을 막아놓았는데 물맛이 매우 시원했다.

 

<호구당터>

1807/하익범

향적사 옛터에 이르러 조금 쉬어 숨을 가다듬고 있자니 여섯 명의 남녀가 돌 위에 모여앉아 있었다. 뭐하냐고 묻자 복을 구하는 행동이라고 한다.

능선을 따라 호구당(虎口堂) 역참에 이르는 길은 순탄한 길이었다. 고개를 넘어 5리쯤 가니 석문과 승운(昇雲) 사다리가 있었다. 벽을 기어올라 또 5리쯤 가니 바로 천왕봉이었다

하익범이 말한 호구당은 현 제석봉과 통천문 사이의 안부에 있었던 당집으로 당시 지나던 길손들의 숙소 역할도 했던 것으로 추정하는 지명이다.

 

법천폭포

어떤 지도는 법천폭포를 유암폭포 위치에 표시한 지도가 있는데 이는 잘못된 것이며 법천폭포 위쪽에 유암폭포가 있는 것이 맞다.

법천폭포 앞의 바위에서 다시 철다리로 돌아가 홈바위교로 향한다.

이곳 법천폭포까지는 폭포을 가로질러 앞 능선을 오르게 되면 곡점능선이다.

명선교를 건너 우측 계곡 옆의 능선으로 진행해도 향적사지터가 나온다.

지목 04-08 바로위에 중계기 탑이 우측에 있는데, 바로 이 중계기 옆에 나무로 막아논 곳이 향적사지터와 금강대 들머리다. 중계기 옆을 지나 계곡으로 진입 오르다 뒤로 보면 금강대 좌선대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곡점능선의 일출봉, 좌측과 뒤로는 천왕봉이, 제석봉이...

금강대라 불리는 암봉- 바위봉 3개가 나란히 보이는데 제일 우측의 봉우리는 조심하며 오를 수 있다. 향적사지에 도착하니 치성을 드리는 제단이 있고 주춧돌도 보이고, 향적사지터에서 천왕봉 방향으로 조금가면 샘터가 있다. 샘터 윗부분 향적대!

 

*.장터목 산장에서 제석단 가는길

장터목산장에서 천왕봉 가는 등산로를 10여 미터 오르다 보면 좌측으로 바위 몇 개 사이로 약간의 공터가 나오고 그 앞에 밧줄로 막아 놓은 곳이 있다. 그 줄을 넘으면 제석단 가는 길이 보이고, 제석단까지 5분여 정도 걸린다. 장터목에서 하동바위로 하산할 때는 장터목 화장실로부터 10미터 정도가다 우측 위로 사잇길이 있다. 그리고, 백무동 하산코스로 가다가 나무계단에서 동쪽으로 주목나무 사이를 통과하니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제석단이 나타난다. 오늘은 나무계단에서 동쪽으로 진행했다. 제석단에서 계속 우측으로 진행하면 창암능선에서 이어지는 등산로와 이어지고 제석봉 방향으로 오르면 제석봉 이정표가 있는 곳으로 올라선다.

 

법계사옆 신문창대('고운최선생장리지소(孤雲崔先生杖履之所)'라는 각자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가로로 새겨져 있음)

문창대는 세존봉 정상의 8부 능선에 있다. 로타리 산장에서 망바위 방향으로 하산하는 능선을 따라 100미터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망바위 거쳐 중산리 가는 길은 우측으로, 세존봉은 헬기장에서 능선으로 직진하여 오르막길로 들어서면 세존봉 능선길 이다. 진행하다 내려선 안부에서 자세히 보면 가파른 능선을 오르는 길이 있고, 우측 사면으로 우회하는 길도 보인다.

거대한 바위 두 개가 기둥을 바치고 있는 문창대. 그 위용이 대단한 문창대 암벽사이(석문)로 난 급경사 길로 내려오는 길은 상당히 어려운 길이다. 하지만 문창대 몸통부분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이 길뿐이다.

급경사 길을 내려오니 주등산로 나무계단이 있고 바로 주등산로에 옆에 문창대 우량 측정탑이 있다...

중산리에서 문창대를 갈려면 망바위를 지나 오르다가 구조목 05-06 지점에 짧은 나무다리가 있고, 다리 옆 우측 너덜 길로 올라가면 된다. 이곳에서 30여 미터 오르면 문창대 석문으로 오르는 입구를 만난다.

 

금강대

옛 김일손의 기록에는 ~“(향적사)앞에 우뚝한 금강대라는 바위에 올랐다

금강대에서 바라본 조망은 가히 압권 그대로이다.

좌측으로는 천왕봉과 남능이 그리고 우측으로는 곡점능선이 손에 잡힐듯하고, 앞쪽엔 세존봉을 비롯한 저멀리 남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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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집 04:57

정령치에서 바래봉~덕두산~인월까지 지리산 자락을 돌아본 후 오늘은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을 다녀오기로 한다. 그간 합천 남산제일봉, 거창 장군봉~의상봉~우두산도 한 바퀴 돌고 연습 삼아 바위산도 몇 개 돌았다. 우리 마님이 지리산 천왕봉 가고 싶다하여 8시간 이상짜리 산행 몇 개로 연습 삼아 하였기에 지리산 천왕봉도 무사히 다녀올 수 있을 거라 확신을 하며 새백 4시에 일어나 산행준비를 마치고 5시가 조금 못되어 승용차편으로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 있는 지리산 탐방센타로 향한다.

 

가는 길

청주 집을 출발하여 서청주 톨게이트로 중부고속도로에 진입하여 대전을 지나고 금산 무주를 지나 덕유산휴게소에서 쉬고 갈까 하다가 다음 휴게소에서 쉬기로 하고 육십령 터널을 넘어 서상을 지나고 좌측으로 거망 황석산 자락, 우측으로 백두대간 자락인 영취산 백운산, 백두대간 자락에서 갈려나온 대봉산~도숭산으로 이어지는 산자락 사이 위천을 따라 이어지는 중부고속도로를 따라 가면 청주에서 출발한 후 1시간 40분후 함양휴게소에 도착을 한단. 여기서 잠시 휴식을 하며 준비해간 도식락으로 아침을 간단히 먹고 난 후 출발하여 함양분기점을 지나고 생초, 산청을 지나면 지리산 중산리 탐방센타로 가는 단성톨게이트에 닿는다. 이곳까지 도로비가 9300원이 나온다. 이후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잠시 후 우측으로 돌아 4차선 도로에 안착하여 달리면 도로는 다시 편도 1차선으로 바뀌고 중산리와 대원사로 갈리는 시천면 소재지 조금 못미처에서부터 다시 왕복 4차선길이 이어져 내대리로 갈리는 부근까지 이어지다가 다시 편도 1차선길을 따라 달리면 중산리 자연휴양림 입구에 있는 대형버스주차장에서 다시 좁다란 길을 따라 1.6km 정도를 더 올라가야 중산리 지리산 탐방지원센타 주차장이 나온다. 청주에서 2시간 50분가량이 걸렸다.

 

이정표 삼거리(쉼터, 우측 법계사방향으로, 2.26km, 845m) 08:45

중산리 지리산 탐방지원센타 주차장도 예전과 변한 것 같다. 주차요금이 자동으로 카드결제 시스템으로 바뀌고 현금은 탐방지원센터 옆 사전정산기에서 정산 후 출차를 할 수 있게 하였다. 탐방지원센타 앞에 진주로 가는 버스시간표가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는 확인이 필요하고, 주차요금이 비수기는 일일 4000, 성수기는 5000원이라 되어 있다. 이제 탐방지원센타를 지나 산행을 시작한다. 정확히 08시 출발하여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개울을 건너기전 백운암으로 올라가는 테크계단 앞에 커다란 지리산 안내도가 있는데 이곳에서 핸폰을 안 가져 왔다고 마님 나를 다시 차로 돌려보낸다. 차에서 핸폰 찾아 다시 출발 한 시간이 08 10분으로 거리도 약 0.5km가 나온 후다. 이제 핸폰을 가지고 개울을 건너는 다리를 지나고 잠시 후 순두류 경상남도 환경교육원으로 가는 도로에서 좌측으로 가면 잠시후 통천길 아치문이 나온다. 아치문을 지나서 널찍한 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앞쪽에 마님이 가는 것이 보인다. 이후 셋이서 함께 진행하여 법계사 2.7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고 다시 널찍한 공터로 되어 있는 쉼터를 지나면 4~5분 칼바위가 나온다. 뾰족하게 두 조각으로 난 칼바위를 지나서 3분여 더 가면 출렁다리가 나오고 그 앞쪽에 평상이 설치되고 이정표가 있는 쉼터 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좌측은 장터목으로, 우측은 법계사를 거쳐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이다. 여기서 천왕봉은 4.1km, 장터목은 4.0km로 거의 비슷한 거리다. 우리는 우측으로 천왕봉을 올랐다가 제석봉을 거쳐 장터목에서 이곳으로 내려올 예정이다.

 

망바위(이정표 천왕봉 3.0km, 3.08km, 1177m) 09:18 ~09:29

이정표 삼거리에서 법계사로 가는 길은 첫머리부터 가파른 길이다. 30여분 이상을 쉬지 않고 올라야 망바위까지 갈수 있는 지리산 길 중에서도 힘든 구간이다. 첫머리부터 오르기 시작하면 돌계단으로 따라 오르기 시작하여 10여분이 지나야 테크계단이 나온다. 이후 3분을 더 오르면 05-03지점 표지목이 있으며 해발 약 960m지점이다. 다시 오르막 돌계단을 따라 천천히 오른다. 앞서간 딸랑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올라서 따라 갈수도 없고, 뒤 따라 오는 마님은 델구 가야 하는데 좀 더디다. 망바위까지는 내친김에 올라가서 쉬면서 기다려 볼 작정으로 쉬지 않고 오른다. 15분가량을 지루하게 오르는 돌 계단길 다리가 팽팽해진다. 이제 지리 05-04지점으로 해발 1129m 1000지점을 훌쩍 넘어섰다. 우거진 숲속길이라 가끔씩 몰아치는 시원한 바람에 그래도 좀 났다. 이제 오르막 테크계단 길을 따라 오르고 바위 길을 따라 지그재그 올라서면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첫 번째 망바위다. 잠시 망바위에 올라본다. 위로는 연하봉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길중 가장 높은 길이다. 연하봉에서 중산리 자연휴양림까지 이어지는 일출봉 능선이 가까이 마주한다. 오래전 청래골에서 일출봉 능선으로 접근을 한 적이 있어 연하봉전 일출봉의 바위들이 아직도 머릿속에 맴돈다. 이제 다시 내려와 조금 더 오르면 망바위 이정표가 있는 바위 앞에 닿는다. 여기 바위는 오를 수 없을 것 같다. 여기 이정표 앞 너럭바위에 앉아 마님이 올 때를 기다린다. 여기서 천왕봉은 3.0km, 법계사는 1.0km, 중산리는 2.4km가 적혀 있다. 아직도 중간지점도 못 올라왔다.

 

로터리 산장(4.12km, 1340m) 10:06

물도 마시고 시원한 바람에 땀을 말리고 둘루랄라 쉬고 있자니 10여분이 지나서 마님이 올라온다. 그래도 빨리 올라왔다. 마님은 쉬었다 가라하니 에고 뿔이 단디 났다. 초행길에 같이 올라와야 하는대 혼자만 떼어놓구 왔으니 뿔이 난 것이다. 우쨋든 그냥 스쳐 지나가는 마님 뒤를 따라 말을 붙이며 오른다. 망바위 부터는 그래도 산길이 좀 났다. 경사도가 그래 가파르지 않고 서서히 오른다. 15분가량을 이렇게 오르면 지리 05-05지점으로 해발 약 1265m가 나온다. 반반하게 깔아 놓은 바위 길도 지나고 울퉁불퉁 오르는 돌길도 올라서 가면 4~5분후 우측으로 커다란 바위아래에서 흘러나오는 샘이 있고, 좌측으로는 비가 올 때 경보를 울리는 경보기가 있는 지점이다. 이후 다시 6~7분을 진행하여 오르막 계단을 올라서고 돌 계단 길을 오르는 곳에는 길 좌측으로 선바위가 나란히 있다. 잠시 후 지리 05-06지점에 해발 1359m가 적혀 있으나 이보다는 조금 낮은 1345m정도가 된다. 우리가 돌아 올라온 바위봉이 1375m정도로 이곳이 최치원의 흔적이 있다는 문창대가 있는 곳 일게다. 여기서 잠시 가면 돌로 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헬기장이고 잠시 살짝 내려서서 가면 로타리 산장에 닿는다. 이곳은 능선을 따라 오는 방법과 순두류 방향으로 오는 방법 두 가지가 있다. 순두류 방향 길이 2.4km가 더 길다. 순두류 방향은 탐방지원센타 주차장 반대편 지리산 거북이산장식당 앞에서 환경교육원 앞까지 약3km구간을 운행하는 셔틀버스(2000)을 타고 내려서 오면 시간이 절약된다. 환경교육원에서 로터리 산장까지는 약 2.7km거리다. 평일 첫차는 8, 주말은 720분이다. 로터리 산장에는 취사장, 화장실, 탁상등 편의 시설이 되어 있다.

 

개선문(5.30km, 1700m) 11:10 ~11:14

로터리 산장에서 잠시 오르면 법계사 일주문이 나온다. 그 앞쪽으로 샘터가 있고 산길은 좌측으로 나 있다. 오르막 계단을 필두로 오르기 시작한다. 다시 오르막 계단을 올라서서 잠시 평탄한 흙길을 따라 가고 다시 올라서면 지리 05-07지점으로 해발 1456m가 적혀 있다. 다시 오르막 돌길을 따라 오르고 테크 계단을 따라 오르면 바위지대에 철 구조물이 있는 슬랩지대에 닿는다. 여기부터 200m구간은 안전사고 다발구간으로 주의를 요한다는 표찰이 걸려 있다. 이후 안전팬스로 양쪽으로 철주가 쳐져 있는 곳으로 올라서서 오르막 계단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안전팬스가 쳐져 있는 철주를 따라 긴 슬랩지대를 따라 오른다. 오르막 계단으로 오르고 바위지대를 철 구조물을 지나서 오르막 돌계단을 따라 오르면 심장 안전쉼터가 나온다. 이곳에서 바위지대를 따라 오르면 지리 05-08지점으로 산길이 좌측으로 꺽이는 지점으로 해발 약1531m. 이후 바위 길을 따라 7분여 더 오르면 심장 안전쉼터가 나오고 오르막 계단을 따라 오르면 짧막한 철 계단을 오른다. 이제 산 아래 보이는 전경이 더욱 좋아지며 푸른 산하가 점점 발밑으로 내려다 보인다. 철 계단위 오르막 돌 계단길을 오르고 다시 테크계단을 오르면 이제 높다란 선바위가 우측으로 있고 좌측은 바위절벽이 있는 사이로 지나는 개선문이다. 여기 이정표에 해발 1700m가 적혀 있으며 천왕봉은 800m가 남은 지점이다.

 

천왕봉(6.20km, 1915m) 11:55 ~12:44(중식)

개선문에서 2분여 지나면 지리 05-09지점으로 해발 1711m가 나온다. 설악산 대청봉 높이다. 오르막 계단을 따라 4분여 오르면 천왕봉 0.6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온다. 이제 천왕봉도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다. 잠시후 우측으로 우뚝선 선바위가 나온다. 뒤편으로 보이는 파란하늘과 너무 조화가 잘되는 선바위다. 우거진 숲 사이로 오르는 길다란 계단 길을 따라 오르면 조망이 확 트인다.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낙남정맥 길이 시야에 아른거리고 뒤편 멀리 높다란 산이 광양의 백운산 좌측편 멀리 보이는 봉이 하동의 금오산일게다. 이제 앞쪽으로는 길다랗게 오르는 돌부리길이다. 돌부리길 첫머리 좌측으로 부러진 구상나무가 얼마 전 있었던 헬기사고 지점이란다. 이제 돌부리 길을 따라 오르면 마지막 심장안전쉼터가 있는 조망터에 닿는다. 위로는 지리의 가장 높다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천왕봉이요! 좌측으로 연하봉을 거쳐 성삼재까지 이어지는 지리의 주능선이 시작되는 곳이다. 우측으로 함양의 삼봉산이 우뚝 솟아있고, 하봉쪽 뒤편으로 뾰족한 산은 산청의 왕산, 필봉으로 추정된다. 백두대간 자락의 백운산은 살짝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심장안전쉼터에서 이제 발걸음을 옮기면 2분후 천왕봉 아래 바위틈에서 시원한 물줄기가 흐르는 천왕샘이다. 이물은 흘러흘러 마야계곡을 이루고 다시 흘러서 물줄기가 점차 커져 시천면에서 대원사방향 물과 합쳐져 덕천강을 이룬 후 진주의 진양호로 흘러 들것이다. 천왕샘을 지나면 대부분 계단으로 이루어진 급경사지대를 오른다. 길게 이어지는 테크계단을 올라서고 짧막한 철 계단을 올라서면 지리 05-10지점으로 고도는 1859m에 이른다. 잠시 돌길을 따라 진행하여 천왕봉까지 이어지는 길 다란 테크계단을 오르면 이제 천왕봉 정상이다. 여기서 마지막 힘을 쏟아 오른다. 대부분 쉬고 또 쉬고 몇 번이고 쉬어 가는 곳이다. 마지막 가장 힘든 곳이다. 정면으로 바위지대가 파란하늘과 어울어져 오늘 청명한 날씨에 매우 상쾌하니 좋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위도 싹 가신다. 천왕봉 주변 바위사이로 파란 싹이 난 청초의 잎이 세차게 불어대는 바람에 어쩔 줄 모르고 춤을 추어댄다. 출렁이는 청초의 잎이 파도치는 모습이 장관이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의 모습도 한몫을 한다. 지리산 천왕봉 이 길로도 이번이 4번째로 기억된다. 성삼재에서 종주산행 4번 화대종주, 백무동 방향에서 몇 번하면 10번 이상은 올라온듯하다. 천왕봉 이정표에 중산리 5.4km, 장터목 1.7km, 화대종주의 끝지점인 대원사는 11.7km가 적혀 있다. 하봉 방향으로 이어지는 대원사로 향하는 길이 보인다. 하봉 뒤로 좌측으로 백두대간 자락의 백운산, 대봉산, 산청의 왕산과 필봉이 우측으로 웅석봉이 그 뒤편으로 높다랗게 솟아 있는 남덕유산도 오늘 좋은 날씨 덕에 판별이 된다. 우리가 올라온 능선 좌측으로 조금 구불구불하게 이어지는 능선이 시천에서 시작된 황금능선이라고 하는대 이곳에서 너무 시원하게 잘 보인다. “황금능선은 30여년 전 세석산장 관리인 정원강님이 써레봉에서 국수봉- 구곡산 - 덕천강에 이르는 긴 능선의 험한 산죽(조릿대)을 낫으로 베어내고 길을 만든 후 이곳에서 보는 지리산의 아름다운 능선들에 감탄해 그 이름을 황금능선 이라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정상의 정상석에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문구도 좋다. 정상석과 함께 인증사진 찍고 정상바위아래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한다. 바람이 불어와 오늘 더운날씨 임에도 한기가 느껴진다.

 

장터목 산장(7.836km, 1660m) 13:44 ~13:50

천왕봉 바위아래에 터를 잡고 점심식사 후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 인증사진 다시한번 더 찍고 하산을 시작한다. 하산은 장터목으로 해서 중산리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이 코스가 댕일치기 천왕봉 댕겨 오는 대는 가장 좋은 것 같다. 천왕봉에서 급경사 바위지대를 내려서 돌길을 따라 잠시 가면 이쁘장한 바위가 나온다. 이곳에서 잠시 사진도 찍고 평평하게 깔아놓은 돌길을 따라 내려오며 보이는 지리능선의 장쾌함이 좋다. 정면 좌측으로 촛대봉, 그 뒤편 높다란 봉이 왕시루봉, 중간 앞쪽 높다란 봉이 반야봉, 그 뒤편으로 뾰족이 얼굴을 내민 봉이 노고단, 우측으로 높다란 봉이 만복대 우측으로 바래봉으로 향하는 능선이 조망된다. 이후 내려서는 바윗길에는 고사목으로 변한 구상나무들의 모습들이 많이 보인다. 애처로운 모습이나 또한 좋은 사진자료로는 더없이 좋다. 파란 하늘과 구상나무고사목이 너무 조화가 잘된다. 이제 내리막길에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짧막한 계단을 내려서고 바윗길을 따라 내려서고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서고 두 번째 계단도 내려서면 통천문이 나온다. 철계단을 따라 통천문을 통과한다. 이후 안부에 닿은 후 앞쪽의 봉을 넘어서서 가면 두 번째 안부지점에 이정표가 나온다. 장터목 1.0km가 적혀 있다. 몇 해 전 이곳을 지날 때는 야생화가 곱게도 피었는대 오늘은 흰색의 다복한 이름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이넘 하나만 피었다. 이제 앞쪽의 제석봉을 향해 계단과 바위 길을 따라 오른다. 오르는 길 우측으로 붉은색 해당화가 곱게 피었고 바윗길을 따라 점점 오르면 제석봉앞 이정표에 닿는다. 장터목대피소 0.6km, 해발 1806m가 적혀 있다. 정상은 풀밭위쪽 고사목지대에 있지만 보호구역이라 들어가면 안 된다. 좌측편 제석봉 전망대에서 여기저기를 살펴보면 된다. 전망대에서 보는 지나온 천왕봉의 모습이 장엄하고, 주변 제석봉의 고사목지대의 푸른 초원이 이국적인 모습으로 너무 좋다. 진행방향으로 연하봉 아래 일출봉의 모습도 좋고 푸른 초원 뒤로 반야봉, 노고단, 만복대가 조금 더 가까워진 모습이다. 이제 장터목으로 향하는 평탄한 돌길을 따라 내려서면 좌,우로 초원지대의 고사목과 푸르게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들이 보기 좋다. 이렇게 하여 천왕봉에서 1시간이 걸려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을 한다.

 

장터목 산장(9.16km, 1660m) 14:46 ~15:05

장터목 산장에서 잠시 00샘을 다녀오기로 한다. 전에 두 차례 이곳을 찾다가 실패를 했기에 이번에는 꼭 찾으려 한다. 제석봉에서 내려오며 장터목산장에 닿기 전 막대로 막아 놓은 곳에서 진입을 해도 된다고 했지만 나는 화장실 뒤편에서 백무동으로 가는 길을 따르다가 진입을 해보려 한다. 백무동 길을 따라 몇 분간 진행하면 나뭇가지에 표지판이 하나 걸려 있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길은 점차 흔적이 없어지지만 잠시 나뭇사이를 빠져나가 오르면 옆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산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좌측으로 이동을 하면 몇 분 안되어 앞쪽으로 물기가 가득한 바위아래지점에 닿는다. 여기 바위벽 틈새에서 흘러 나오는 샘물이 손이 시릴 정도로 차갑다. 졸졸졸 흐르는 물을 입으로 시원스럽게 받아먹고 나니 더위가 싹 가신다. 이곳은 신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집이 있었으나 현재는 흔적도 없으며 바위에 새겨진 잘 판독이 안 되는 문구와 시원한 물이 흐르는 샘이 있고, 앞쪽으로 몇평쯤 되는 공터가 있다. 00단이라 하여 산을 좋아 하시는 분들이 가끔씩 이곳을 찾으려 들어온다. 이곳에서 잠시 쉬면서 커피한잔씩 마시고 몇분간 이동하여 코끼리바위(얼굴바위) 있는 곳에 닿으면 제석봉에서 내려오는 조금 더 좋아진 길에 닿는다. 이 길을 따라 내려오면 몇 분후 백무동으로 향하는 등산로에 닿는다. 여기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장터목 0.5km가 적혀 있는 이정표가 나오고 마지막 장터목산장에 도착하니 1시간이 소요되었다. 이곳에서 오지 않는 마나님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려 되돌아가 살피니 다리를 접질러서 오지를 못하고 있다. 잠시 진정하고 절룩대며 걸어서 대피소에 닿은 후 공단직원에게 에어파스진통소염제를 뿌리고 하산을 시작한다.

 

유암폭포(중산리3.7km이정표, 10.82km, 1220m) 16:08

장터목에서 잠시 내려서면 식수대가 있고 이제 가파르게 내려서는 돌길이다. 지리산의 산길이 그렇듯이 여기도 역시나 돌길이 주류를 이룬다. 다리를 다친 마나님은 절룩이며 살살 내려오니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렇게 가다가는 해떨어지기 전에 주차장까지 갈수 있을지 미지수다. 내려오면 공단직원 준 에어 파스 한번더 뿌리니 바닥이 나고 이제는 참고 내려가는 수밖에 없다. 장터목에서 배낭을 뒈져 봤으나 진통제 가지고 다니던 거 다른 배낭에 있나 없고, 겔타입 진통소염제도 보이지 않았는데 다시한번 더 찾아보니 가방 깊숙한 곳에서 나온다. 다행이다. 그래도 두 번은 바르고 떨어진다. 이렇게 하여 내려서니 시간은 점점 더 지체가 되고 갈 길은 멀고 클랐다. 그래도 장터목에서 뒤따라 내려오는 한분이 있었는데 우리 앞으로는 가지 않는다. 20여분을 내려오니 지리 04-08지점으로 500m를 내려온 지점이다. 다시 10분을 내려서니 중산리 4.8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 닿는다. 해발 약1470m지점으로 좌측 계곡으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제법 커졌다. 4분후 지리 04-07지점으로 내려서고 3분후 다리가 나온다. 우측에서 좌측으로 건너는 다리다. 여기 이정표에 중산리 4.5km가 적혀있다. ~` 거리가 쉽사리 좁혀 지지를 않는다. 돌길을 따라 지루하게 내려서고 짧막한 철 계단을 내려서고 좌측에서 우측으로 건너는 다리를 건넌 후 계곡 우측 편으로 잠시 이어지는 테크 길을 따라 진행한 후 잠시 더 내려서면 좌측으로 폭포하나가 나온다. 폭포를 구경하고 조금 더 내려서면 이정표에 유암폭포라 적혀 있다. 중산리 3.7km가 적혀 있다. 그래도 거리는 줄어든다. 마나님의 속도도 조금은 빨라졌다.

 

중산리 2.6km 이정표(12.0km, 1025m) 16:54

유암폭포까지 내려온 것만도 다행이다. 그래도 걷는 속도가 조금은 나아졌으니 해가 떨어지기 전에 주차장까지는 도착할거 같다. 먼저 가던 젊은 친구들도 뒤처지기도 한다. 계곡 우측으로 난 테크 길을 지나고 3분을 더 가면 지리 04-05지점에 닿는다. 이후 길은 조금은 더 나아진 거 같다. 계곡 우측 테크 길을 지나고 홈바위교에 닿는다. 우측 편에서 좌측으로 건너는 다리다. 다리를 건너면 곧장 내려서는 테크 길로 연결이 되어 진행되다가 냇가 옆으로 작은 돌탑을 수없이 많이 쌓아 놓은 지점에 닿는다. 이곳 그늘진 곳에서 잠시 쉬면서 커피도 마시고 쉬어 간다. 이후 계곡의 좌측으로 이어지는 길을 따르면 계곡 좌측 지계곡을 건너는 작은 다리를 두 번에 걸쳐 지나고 중산리 3.1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 닿는다. 해발 1114m가 적혀 있다. 4분후 계곡 좌측 편으로 계단을 내려서서 가면 다시 3분후 계곡 좌측 지계곡을 건너는 다리 3개가 연속으로 이어진다. 그 끝에 너럭바위가 있으며 바윗길을 따라 다시 7분여 더 내려서면 중산리 2.6km가 적혀 있는 이정표에 닿는다. 해발 약 1025m지점으로 보통 때 같으면 주차장 까지 1시간정도가 소요될 거리다. 그래도 이곳까지 내려왔으니 다행이다 싶다.

 

이정표 삼거리(쉼터, 중산리 방향으로, 13.17km, 845m) 17:26

이정표를 지나 3~4분후 내리막 철 계단이 나온다. 곧 테크 길과 연결이 되고 곧이어 내리막 두 번째 철 계단이 나온다. 이후 냇가 좌측으로 이어지는 테크길, 내리막 계단을 따르면 지리 04-02지점에 닿는다. 해발 977m로 이제 천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삼거리까지 남은거리도 1km로 우리마님 주차장 까지는 무사히 갈수 있겠다. 5~6분을 더 가면 길게 내려서는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 끝에 좌지계곡을 건너는 출렁다리가 나온다. 이후 5분을 더 가면 지리 04-01지점으로 삼거리까지 남은 거리는 500m 해발 879m가 적혀 있다. 계곡옆 테크길을 지나고 잠시 언덕을 올라서면 우측으로 강수에 대비한 마이크가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좌측으로 돌아 내리만 법계사로 갈라지던 쉼터가 있는 삼거리다.

 

지리산 중산리 탐방센타 주차장(15.33km) 18:10 ~18:17

이제 남은 거리는 1.3km. 대부분 내려가는 길로 지금보다는 길이 좀 더 나은 길이다. 3분여 내려서면 칼바위가 나오고 툭툭 튀어 나온 돌길을 따라 15분가량을 내려서면 중산리 0.7km가 적혀 있는 이정표를 지나서 3분을 더 가면 지리 05-01지점으로 해발 741m로 남은 거리는 500m가 된다. 이후 10여분을 지나서 좌측으로 야영장이 있고 아치형문으로 되어 있는 통천길 출입문에 닿는다. 곧이어 순두류 경남환경교육원까지 이어지는 아스팔트길에 닿는다. 이 길을 따라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 잠시 더 내려가면 국립공원중산리 탐방안내소를 지나 탐방지원센타를 지나면 잠시 후 이층으로 되어 있는 주차장에 도착을 한다. 우리는 햇볕을 피해 아래층에 세워 두었다.

이렇게 하여 15.3km를 걷는데 10시간이 소요되었다. 역시 지리산 천왕봉은 쉬운 길은 아니다. 내려올 때 마님이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며 내려오느라 시간이 다소 더 걸리긴 했지만 그래도 빨리 내려왔다는 생각이 든다.

 

돌아오는 길

중산리 주차장에서 짐을 정리하고 오늘은 곧바로 집으로 향한다. 주차장에 나올 때는 카드로 자동정산 된다. 하루 비수기는 4000원 성수기는 5000원인대 성수기 요금인 5000원이 결제된다. 차량도 없고 코로나로 인하여 한산한때이며 평일인대 성수기라 하니 이해가 잘 가지는 않는다. 성수기와 비수기의 기준을 제시하여 놓았음 좋겠다. 중산리에서 지방도를 따라 산청 톨게이트까지 나가는대 약 40분이 걸렸고 이후 산청톨게이트로 진입하여 고속도로를 따라 올라오면 함양을 지나고 서상을 지나 육십령터널을 지난 후 덕유산휴게소를 지나고, 무주 금산을 지나 금산휴게소에서 쉴까 하다가 통과를 한다. 이후 마전터널을 지나고 대전을 지나서 청주에 닿기 전 마지막 휴게소인 죽전휴게소에 잠시 멈춰선다. 10여분 휴식 후 다시 달리면 15분후 서청주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집에 도착하니 21시다.

중산리에서 대략 2시간 43분이 걸렸다.

오늘도 무사히 지리산 천왕봉에서 제석봉까지 다녀왔다.

청명한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더운 줄 몰랐고, 천왕봉의 풀잎이 파도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제석봉의 초원지대와 고사목의 조화가 너무 좋았으며 장터목 부근에서 돌부리에 접질려 내려오며 고생을 한 마나님 고생 많았수!!!

 

연료비 : 45000

도로비 : 편도 9300원 왕복 18600

주차료 : 5000